지지대고개와 비
수원과 의왕시의 경계가 되는 작은 고개로서, 이 고개는 예전엔 사근현(沙斤峴)이라 불렀으며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차할 때마다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이 고개를 오르면 멀리 화산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가 보이는데도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아주 더디게 느껴져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왜 이렇게 더딘가?"하고 한탄을 하였다고 하며,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환궁을 할 때는 이 고개의 마루턱에 어가를 멈추어 서게 하고 뒤돌아서서 오랫동안 부친의 묘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 어가에 올라서도 화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돌리지 않아 행차가 자꾸 늦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이 고개를 `느리게 느리게 넘어가는 고개` 또는 `더디게 더디게 넘어가는 고개` 라는 뜻의 한자어를 써서 지지대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지지대비는 홍문관 제학 서영보가 지었고 윤사국(尹師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 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숭정 기원후 1807년 정묘 12월에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지대비의 높이는 1.5m이며,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기념물제19호 지지대고개 노송지대
노송지대는 지지대고개 정상으로부터 서울-수원간 국도변에 노송(老松)이 생장하는 5㎞ 구간을 일컫는다. 조선 시대 정조가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의 나무 심는 관리에게 1,000냥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그루와 능수버들 40그루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죽고 일부만이 보존되고 있다. 이곳의 소나무는 적송으로 껍질이 붉고 가지 끝에 있는 눈의 색깔도 붉다. 적송은 내륙지방에서 많이 자란다고 해서 육송이라고도 부르는데,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보다 잎이 연하여 여송(女松)이라 칭하기도 한다. 소나무는 잎 두 개가 모여 한 쌍을 이루는 이엽송이며, 외래종인 리기다소나무는 껍질도 붉은 색을 띠지 않고 잎이 세 개가 모여 나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찾아 가는 길 서울 사당동 → 남태령 → 과천우회도로 → 과천~의왕 간 고속도로 → 의왕인터체인지 → 경수산업도로(1번국도) → 지지대고개 정상 → 노송지대
중요민속자료 제123호(1984.1.10) 이병원가옥
장안구 파장동 383번지에 있는 이병원씨의 집입니다. 이 집은 1888년 3월에 지어진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 123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으로 생긴 사랑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우리조상들의 집이 어떻게 생겼을까를 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는 곳 입니다.
이 가옥은 조선 말기에 지어진 살림집으로 뒤에는 낮은 산이 있고 주위로 나지막한 산이 둘러져 있으며 앞에는 광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있어 풍수상으로 좋은 위치에 자리잡았다. 전체 건물은 안채, 사랑채, 헛간채, 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ㄱ자형의 안채가 남서향으로 놓이고 그 앞으로 ㄴ자형으로 연결된 사랑채가 오른쪽으로 비켜 앉아 안마당을 감싸고 있다. 바깥마당 맞은편에는 5칸 규모의 헛간채가 마련되었는데, 사랑채는 담장으로 둘러쌌지만 바깥마당은 사방으로 트였다. 뒤꼍에는 우물이 있고 구석에 단칸의 광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감나무 등이 심어져 살림집 뒤꼍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부엌은 마당 쪽으로 반 칸을 더 내밀어 잡았는데 안방과 연결이 쉽도록 반 칸 너비의 툇마루를 두어 매우 기능적으로 처리하였다.
건넌방은 위 아래 2칸으로 구성되는데 앞쪽으로 약간 돌출되어 전체적으로 안채의 평면이 ㄷ자형에 가깝게 되었다. 지붕은 초가로 되어 있지만 부재의 치목이나 창호의 구성 등을 볼 때 매우 정성 들여 지은 건물로 대청 상량문을 통해 1888년 3월에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가옥은 공간 구성이 농가의 쓰임새에 알맞게 되어 있으며, 건축구조가 견실하고 평면이 기능적으로 처리되어 조선 말기 살림집의 특색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하숙집 40가구, 연간 교육생 1만여 명 이용 '노송마을'
마을 인근에 지방행정연수원, 경기도인재개발원, 국세공무원교육원 등이 있어 멀리서 교육 오는 사람들이 꼭 머무르는 곳이다. 전국에서 올라 온 교육생들이 숙식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연형 하숙촌이 형성(약 40가구)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수원 노송하숙마을'은 1980년께부터 연수를 받으러 온 지방 공무원들이 찾아오면서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하숙집 약 40가구. 교육생 연간 1만 여명. 매출액은 연간 약 5억원으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하숙마을에서 23년 동안 하숙을 치고 있다는 구례하숙 서정애(56)씨는 “하숙마을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 1957년 경기도인재개발원이 처음 들어선 후 1978년 지방혁신인력개발원(현재는 지방행정연수원), 1979년 교육인적자원연수원이 세워지면서 공무원 상대 하숙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주변에 변변한 숙박시설이나 식당이 없어 고민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하숙을 시작했다. 하숙생들에게 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매일 새벽시장에서 장을 봐 상에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경기도로부터 정보화마을로 지정받아 경기도의 도움과 자체적인 재교육을 통해 자생적인 공동체로 하숙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하숙마을은 수원시의 북부에 위치하는 관문으로써 정조대왕의 얼이 담긴 200여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지지대 고개, 노송지대 등 많은 유적과 농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콩마당 031-254-2827
광교산 10번 등산로의 맛집은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앞에 자리잡은 '콩마당'.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방문하는 마니아부터 경기도행정동호회인 월목산악회도 이곳 단골손님이다. 그 이유는 바로 질리지 않는 고소함이다. 그만큼 점심과 저녁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는 것은 기본. 그 비법에 대해 물어보니 권 사장의 답은 간단하다. "정직하게 장사하면 됩니다"
100% 국산 콩과 자연간수만 고집하는 권 사장. 그것도 우리나라 대표 콩인 파주 장단콩을 대놓고 쓴다. 재료가 최고니 맛도 최고일 수밖에 없다. 이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는 마늘과 채 썬 무를 몇 점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바글바글 끓인 콩비지찌개다. 이곳 콩비지찌개의 첫 만남은 그저 허여멀건 하다는 것. 그러나 입에 들어간 첫 맛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고소하다 못해 시원한 맛이 최고다. 고기를 절대 쓰지 않는 것이 이곳만의 특징이다.
이곳의 손두부 또한 별미. 투박한 질감이지만 우리에겐 오래전부터 밥상의 귀염둥이 영양덩어리로 사랑받아온 손두부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래서 이곳 손님은 옛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권 사장이 유일하게 공개하지 않은 비법을 가지고 있는 두부전도 맛있다. 처녀 볼살처럼 동그랗고 탱탱하게 모양 잡은 두부전의 맛 또한 고소함 그 자체다.
인천일보 송용환기자
파장동362 토담골 031-255-3808
보건환경연구원에서 고속도로밑을 지나 약수암방향으로 가면 등산로 입구에 위치
엄선된 육질의 신선하고 담백한 맛의 고급 한우 생고기와 갈비, 녹돈삼겹살을 맛볼 수 있다. 자연과 바로 접하고 있어 맑은 공기와 푸르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토담골에서는 잠시나마 삭막한 도시에서 탈출하여 여유를 느낄 수 있게한다. 맛과 정성된 상차림,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와 넓은 좌석, 그리고 자연, 이 모든 것이 어우려져 있는 곳이 바로 토담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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