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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부여 4번국도-동남리 정림사지

by 구석구석 200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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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절터 정림사지(定林寺址)는 백제인에 의해 만들어진 2개의 남은 석탑 중 하나가 위치한 곳으로 현재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의 석조불좌상(보물 108호)이 남아 있다. 정림사지(사적 제301호)는 백제의 사비천도 즈음인 6세기 중엽에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했던 사찰로서 그 후로 고려 현종 19년(1028)에 중건되어 명맥이 이어졌지만 백제 시대에는 이 절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1942년 발굴조사 때 ‘대평 팔년 무진(大平八年戊辰) 정림사대장당초(定林寺大藏當草)’라고 쓰여져 있는 고려 초기의 기와 명문이 발견되어 정림사라고 부르며, 이 기와가 1028년의 것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국보로 지정된 백제 때의 5층석탑으로 보아 그 이전에도 절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다만 발굴 작업 중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기와 조각에 '정림사'라는 사찰 명칭이 있어 그렇게 불려지는 것뿐인데 삼국유사에는 정림사가 출현하지 않아 삼국시대의 이름은 아니다.


멸망한 도읍의 한복판에서 1400여 년을 견뎌온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현란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백제미의 상징적 유물이다. 높이 8.33m이고 149매의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목조탑 축조 양식을 계승한 걸작품이다. 이 탑은 익산의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에 세워진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변화를 알려주는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익산 미륵사지가 목탑의 양식을 대체적으로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면 정림사지는 목탑의 모방에서 한 단계 발전해 석탑의 조형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익산 미륵사가 백제 무왕조(600-641)에 만들어진 것이니 정림사지 석탑은 그 이후일 것이다.  


이는 시기적으로 7세기 중엽에 해당한다. 경주의 분황사 모전석탑과 부여 정림사지석탑이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비교해 보면 그 기술적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그 뛰어난 돌 기술자였던 백제인들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 정림사지 5층 석탑이다. 5층 석탑과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어 탑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 안에 모셔져 있는 정림사지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은 고려시대 정림사를 중건하면서 새롭게 조성한 불상이다.


이 석불좌상 좌대의 윗 부분은 위로 치켜든 연꽃이, 중간에는 팔각간석마다 안상이, 아래 부분은 겹연꽃 무늬가 아래로 중첩되게 새겨진 뛰어난 작품이다.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잉어 떼가 노니는 연못 
현재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백제시대 정림사지의 강당 자리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정림사지는 부소산과 왕실 연못이었던 궁남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위치 상으로 상당히 중요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보여지나 현재는 탑만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다.

 

불교 미술 가운데 양과 질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탑파와 불상이다. 이는 탑파와 불상이 불교의 예배 대상으로서 불교 신도들의 신앙과 정성이 모두 이 두 곳에 결집되었던 때문이다. 탑파는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하였기 때문이며 불상은 직접 예배를 올리는 대상인 때문이다. 따라서 탑파와 불상이 가장 뛰어난 불교 미술로서 한국의 고대 미술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지호 / 자동차여행가

 

정림사지 발굴조사시행

 

정림사지(사적 제301호)에서 열린 문화유적 발굴조사 개토제에서 김무환(왼쪽에서 5번째)부여군수와 문화유적 발굴조사단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백제가 도읍을 공주에서 부여로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었던 정림사는 올해부터 2011년까지 130억원이 투입돼 복원될 예정이다.

부여=연합뉴스

 

정림사지 041-830-2532 / 정림사지박물관 041-832-2721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IC를 지나 10km 가서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다시 논산 IC를 벗어나 4번 국도로 18km 쯤 가면 부여읍내에 이르게 된다. 소방서로타리에서 군청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면 좌측으로 푯말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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