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은 고장마다 곡조를 달리하며 수 백곡이 포진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는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 고장 이름이 붙은 아리랑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지만 대개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흩어져 있다. 가을로 향해가는 시점에 오지의 신선함이 가득한 무공해 마을이자 정선아리랑의 본고장인 강원도 정선군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강원도의 대표적 산간마을인 정선을 예전엔 가기가 쉽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59번 포장국도로 오대천 물길 따라 이어지는 수려한 경관을 끼고 달리면 종전처럼 평창이나 영월을 거치지 않고 고속도로에서 불과 1시간도 채 안 걸리게 닿을 수 있다.
정선군은 해마다 10월 초순이면 다채로운 향토 문화행사인 '정선아리랑제'를 개최한다. 이때에 맞춰 가면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백두대간이 온통 이 군의 전체를 가로질러 내려가기에 보이는 건 온통 산이다. 그러기에 정선은 갈아먹을 땅들이 적어 논밭을 다 합쳐도 전체 땅의 10%를 넘지 못한다.
정선장에 나오는 무공해 식품들
정선군에서는 5개의 오일장이 지금도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이런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2·7일마다 서는 정선읍장은 버스터미널 맞은편 골목에 선다.
각종 공산품과 수산물이 정선장의 대부분을 차지함은 여느 장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외지에서 정선장을 찾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산채를 직접 들고 나와 전을 이룬 할머니들이다.
장터에는 이런 할머니들이 죽 늘어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이 취나물 산에서 직접 뜯은 거래요." 강원도 억양으로 무릎 앞에 놓인 물건을 들어 보이며 사라고 권한다. 비닐봉지에는 도라지, 취나물, 더덕 등을 비롯해 치커리, 마 등 생소한 것들도 많다.
정선의 특산물이라면 토종꿀, 황기, 영지버섯, 산나물 등이다. 특히 한약재로 쓰이는 황기는 사람의 체온을 조절해주고 병후에 원기를 돋워 주는 것으로 대추와 밤, 황기를 넣어 닭과 함께 푹 고아 먹기도 한다.
수입품들이 범람하는 작금의 시장풍토 속에 좁쌀, 찹쌀, 고춧가루 등의 진열품에는 확실한 우리의 것을 입증하듯 '국산', '정선'이라는 원산지 표시를 해 놓은 것이 믿음직스럽다.
정선5일장의 필수코스 정선골황기보쌈
정선 하면 볼 것도 많고 떠올리는 것도 많은데, 지금은 정선 5일장과 MTB 열차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주 토·일요일과 정선 5일장(2-7일)이 서는 날이면 정선 5일장 MTB 열차가 오전 7시10분 서울역을 출발, 청량리역~양평역~원주역~제천역~증산역을 거쳐 오전 11시55분 정선역에 도착한다. 이 열차는 관광객이 탑승할 수 있는 객차 6량과 MTB를 적재할 수 있는 화물객차 2량을 연결해서 운행한다. 정선 5일장을 볼 수 있고, MTB(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은 정선의 강과 산에서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비단 관광열차만이 아니고 친구나 가족단위, 각종단체의 여행객들의 발길도 정선땅에는 계속 이어지는데, 5일장 장터에 접해 있는 ‘정선골황기보쌈(033-563-8114)’은 먹거리 필수코스가 되어 있다. 정선은 전국 황기 생산량의 60%를 점하고 있는 고장이라 황기를 주제로 한 음식 개발은 당연한 일. 안주인 김주순씨(49)가 이 일을 거뜬히 해내었다. ‘황기부인’으로도 불리는 김주순씨는 돼지고기를 황기로 요리를 해낸 황기보쌈 개발자로 널리 알려져 이 집은 언제나 만원사례다.
/ 박재곤 대구시산악연맹 고문
한스러움에 지친 아우라지 처녀상
정선을 찾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다. 정선 아우라지 하면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나오는 송천과 남동쪽의 임계에서 흘러나오는 임계천이 만나 어우러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한줄기가 되어 조양강을 이루고 북쪽에서 오대천을 만나 좀 더 굵어진 물줄기는 남한강의 상류를 이룬다.
송천은 돌이 많아 거칠게 흐르고 임계천은 보다 잔잔하게 흐르는데, 강 중심에서는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은 소용돌이가 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통나무 다리를 만들어 놓기도 하는데 아직도 이 나루터에는 뱃삯을 받고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아우라지 뱃사공이 있다. 삿대를 저어 가는 배가 아니라 강물 위에 매어놓은 줄을 당기면 서서히 움직이는 줄배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게......
애잔한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은 수십 가지가 되지만 그 중 많은 노랫말이 이 나루터를 유래로 하여 만들어지고 불려졌다고 전한다. 나룻배가 오가는 강변엔 유래를 알리는 기념비와 뗏목을 따라 객지로 떠난 님을 기다리는 애달픔과 강물이 불어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한스러움에 지친 '아우라지처녀상'이 서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민다.
/ 한지호 자동차여행가
보통음식에 별난 이름 콧등치기 / 청원식당
정선에 가면 음식점 간판에서 ‘콧등치기’라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콧등치기는 메밀국수의 별명이다. 현지에서는 본명을 빼버리고 별명만 통용시키니 외지사람들은 별난 별명에 호기심을 갖게 마련인가 보다.
아우라지역 전 50m쯤 거리, 오른편에 ‘청원식당(033-562-4262)’이라는 간판이 걸린 나지막한 기와집이 있다. 간판에는 유독 콧등치기의 원조임을 강조해 놓았다. 집주인 방순옥(69) 할머니는 뜨거운 물로 반죽한 메밀가루를 안반에 놓고 홍두께로 밀어 고르게 편 다음, 척척 접어 썰어 끓는 물에 넣어 10분 정도 삶는다.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고 시간도 짧다.
건진 국수에 갖은 양념을 얹기만 하면 되는데, 뜨거운 국물에 양념을 얹은 것을 느름국이라 하고, 찬 물에 한 번 헹궈낸 다음 양념을 얹은 것을 콧등치기라 했다. 콧등치기는 사리가 떡볶이처럼 쫄깃해서 입으로 후루룩 빨아들이면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청원식당의 콧등치기가 유독 유명해진 것은 다른 집에서는 흉내낼 수 없다는 방순옥 할머니의 손끝에서 배어나오는 양념맛이라고 한다. 한 그릇 5,000원.
내 집처럼 편안한 펜션 쉴 만한 물가
정선 아우라지 인근에 자리한 한적한 펜션. 2005. 9월에 오픈했다. 고요한 밤이면 아우라지에서 시작해 흐르는 조양강 물소리가 마음을 뒤흔든다. 햇빛 잘 드는 비탈진 언덕에 자리해 현관에서 몇 개의 계단을 내려서야 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
룸마다 마련된 넓은 다락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침실로 사용할 수도 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아늑한 분위기는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온돌룸도 따로 마련돼 있다. 룸마다 붙여진 이름대로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산소리를 모두 듣고 느낄 수 있는 펜션. 목재 전문가인 주인이 최고 재질의 나무를 사용해 지었고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새 집임에도 상쾌한 나무 냄새가 솔솔 풍긴다.
아침에는 원두커피와 따끈한 토스트를 대접한다. 항골계곡, 아우라지를 비롯해 정선읍내 등 정선의 주요 관광지와 가까운 것도 장점. 바비큐 데크도 마련돼 있다. 조경 공사가 마무리되는 내년 봄쯤엔 더욱 완벽한 모습을 갖출 듯. 02-2057-1561(휴펜션) 8만~10만원 진부에서 정선 방면 59번 국도에서 아우라지 방면으로 좌회전, 나전역 바로 앞
정선여행 수정과 속의 곶감
‘돌과 이야기’ 옥산장 033-562-0739 www.oksanjang.pe.kr
여행업계 종사자들은 “정선에 가서 옥산장 전옥매 여사를 만나보고 돌과 이야기, 할머니의 정선아리랑을 듣지 않았다면 곶감 빠진 수정과를 마신 격의 정선여행입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옥산장에 가서 하룻밤을 자면서 ‘돌과 이야기’를 듣고 옥산 할머니의 구성진 정선아리랑을 듣는 인간탐구 관광상품까지 등장한 판국이라니 그 유명도는 알 만하다.
옥산 전옥매 할머니. 그녀는 온갖 역경을 딛고 곱게 피어난 한 송이 들국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분이다. 죽고 싶을 만큼 어려움에 부딪친 사람이라면 할머니를 한 번 만나보고 오라는 권유가 인간탐구 관광상품의 주제라고 한다.
스무 살 나이에 6·25 전쟁터에서 부상한 남편을 만났다. 아들의 부상 소식에 충격을 받아 실명한 시각장애자 시어머니를 모시고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다. 이런 역경 속에서 올망졸망한 2남1녀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다. 생계 방편으로 옥산장이라는 여관을 짓고 어려울 때면 집 앞 아우라지 물가를 찾아가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울고 나면 그 심정을 달래 주기라도 하듯 돌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 돌들을 모아 수석전시관을 꾸몄다. 삼라만상이 그 돌들 속에서 한마당 축제를 펼친다. 멍석 깔린 수석전시관에서는 밤마다 구성진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질펀하게 퍼진다. 평소 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젊은이들이 구석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연출되고, 여관방 잠자리로 가서는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며 앞날의 힘찬 삶을 다짐한다는 여행상품이라니 참으로 특이하고도 뜻 깊은 상품이 아닐 수 없다.
여관 한 쪽 큰 한옥은 식당이라 잠을 잔 여관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향수 짙은 숙박시설인데, 할머니는 아침상에 강원도의 토속음식들을 차려낸다.
/ 월간산 463호 2008.5
여관도 정갈하지만, 여관과 식당 사이에 있는 한옥에 묵으라고 권하고 싶다. 전옥매씨가 전통 강원도집을 보여주고 싶어 지은 한옥. 지붕은 기와 대신 굴피(참나무의 두꺼운 껍질)로 얹었고, 서양 벽난로와 비슷한 고콜(관솔불을 올려놓기 위해 벽에 뚫은 구멍)도 있다. "황토에 짚을 섞어 쌓은 벽 덕분인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게 최숙희씨 설명. 둘이 들어갈 만한 작은방 3만원, 서넛이 잘 만한 큰방 4만원. 7월 20일~8월 20일 성수기에는 1만원씩 더 받는다.
'감자붕생이'는 강원도 정선 토속음식이다. 정선 '옥산장' 주인 최숙희씨가 설명하는 감자붕생이 만드는 법은 이러하다. "우선 감자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해요. 감자를 솥에 담고 익반죽한 감자가루를 수제비처럼 떼어 감자 위에 얹고 푹 쪄요. 감자가 잘 익었으면 잘게 으깨요. 익은 감자를 으깨서 떡처럼 익은 감자가루 덩어리에 골고루 묻혀주죠." 약간의 소금 간이 전부다.
감자도 아니고 떡도 아니다. 감자·감자떡 범벅? '뭐 이런 음식이 있나' 하는 마음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묘하게 맛있다. 따끈하고 쫄깃한 감자떡과 포슬포슬한 감자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탄수화물 중독인가? 어쨌건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진다. "붕생이는 정선사투리로 '보슬보슬하다'는 뜻이에요. 우리 정선 사람들은 감자붕생이를 된장과 함께 채소에 싸서 쌈처럼 식사로 먹기도 해요."
감자붕생이는 아쉽게도 아무 때나 먹지 못한다. 미리 예약해야 할 뿐 아니라, 감자붕생이만 먹을 수도 없다. 감자전, 감자송편, 메밀전병, 도토리묵무침, 황기백숙 등 정선 토속음식이 고루 나오는 '전통코스요리'(1인 1만5000원·15인 이상)나 '특정식'(1인 1만원)을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감자를 갈아서 만드는 수제비인 '감자옹심이'(6000원)는 따로 주문 가능하다.
/ 조선닷컴 김성윤기자
아우라지에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
오래 전부터 아우라지 주민들은 밭을 일구거나 집터를 닦다가 토기 조각들을 종종 발견했다. 지표조사에서 아우라지 강 연안 지역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대단위 취락지로 밝혀지자, 정선군과 강원도문화재연구소는 장기 발굴작업에 들어갔다.
1차로 남쪽 아우라지 충적지대에서 신석기 시대 주거지 1동과 야외 爐址(노지) 6기, 청동기 시대 주거지 15동의 유적을 발굴했다. 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석묘와 석곽묘들을 찾아냈다. 정선군은 아우라지 일대를 선사유적공원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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