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국도의 문곡교, 소나기재를 넘어 장릉을 지나 조금 내려오면 국도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가면 청령포를 거쳐 비포장도로인 광천리-배나무골-단양으로 이어진다.
강원도 영월은 산수 좋은 곳이다. 산은 산대로 첩첩이 솟아있고, 강은 강대로 갈래갈래 흐르는 강마을. 평창, 정선과 함께 산이 많다하여 '산다삼읍'으로 불린 영월은 주천강과 평창강, 동강, 서강, 남한강이 관통하고 있다. 이 지역의 세도가들이 풍류를 즐겼다고 하지만 이곳은 영월의 상징이 된 단종(端宗)의 유배지 청령포가 자리잡고 있다.
영월8경 가운데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17세의 단종이 세조 3년(1457)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유배되던 해 여름 큰 홍수가 나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고 살던 집이 떠내려 가버리자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읍내로 호송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시를 읊으며 한을 달래기 몇 달 만인 같은 해 10월 단종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눈을 감았다.
분위기 있는 울창한 솔숲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 속을 헤멘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어린 임금이 지은 시에는 그의 한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남쪽으로 매우 가파른 층암절벽으로 가로막힌 데다 동·북·서쪽이 서강(西江)에 삼면이 강으로 싸여 거의 섬이나 다름없고 절해의 고도를 이뤄 빠져나가기 힘든 곳으로 이곳에 유배되었던 단종이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한 바 있다. 청령포는 그만큼 험하다.
어린 임금 단종은 이곳에 유배된 뒤 거동까지 제한됐다.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390척(117m)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단종이 이곳에 머물렀을 당시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포졸 50명을 상주시켜 단종을 감시하였다.
청령포는 영월 시가지에서 서쪽으로 3km쯤 떨어져 있으며,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여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청령포 앞은 강폭이 30~40m 정도로 그리 넓지 않지만 청령포로 들어가려면 청령포 나루를 오가는 자그마한 유람선을 이용하여 배를 타고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다. 언제 보아도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물빛을 바라보다 보면 이내 청령포에 닿는다.
유배당시 기거했던 '단종어가'
반월도처럼 퍼져 나간 강가의 자갈밭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울울창창한 송림이다. 거의가 아름드리 소나무이고 면적이 광대하다.
송림 속의 단종이 거처하던 집은 허물어져 주춧돌만 남아 있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 영월군이 복원에 들어가 2000년 4월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어가'는 어가 또는 적소라는 명칭에 대한 논란과 주거형태, 어가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한동안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녀들이 지내던 초가집도 다시 세우고 시녀 인형도 앉혀두어 당시 단종의 유배생활을 한결 실감나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집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울창한 솔숲이다. 청령포의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솔숲 한가운데에는 단종의 슬픔을 보고(觀) 들었다는(音) 수령 600년(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의 소나무 '관음송'이 있다.
거동을 제한한 '금표비'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청령포 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 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관음송에서 서쪽의 산비탈을 조금만(50m쯤) 올라가면 단종이 앉아, 두고 온 한양 쪽을 바라보았다는 노산대 꼭대기에 다다른다. 발 아래는 수십 길 절벽이고, 그 밑으로는 서강이 유유히 흘러 매우 아름답다. 관음송 뿐만아니라 청령포의 솔숲은 한이 서린 듯 구부구불하다. 영월 주천강 자락 법흥사의 꼿꼿한 직송과는 딴판이다. 똑같은 영월 땅에서 이렇게 솔숲이 다른 것을 두고 후세 사람들은 한 맺힌 단종을 생각하곤 했다.
관음송을 지나면 벼랑에 오를 수 있다. 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첩첩산을 휘돌아 흐르는 강줄기만 보인다. 이곳이 바로 단종이 한양 쪽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는 노산대다. 아래쪽에는 왕비 송씨를 그리며 쌓았다는 자그마한 돌탑이 서 있다. 석양 무렵에 특히 좋다. 또한 이곳에는 단종이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막돌로 쌓아올렸다는 '망향탑'이 서 있다. 조선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왕으로 대접받은 단종, 세조의 직계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바람에 죽어서도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비운의 인물임을 이 청령포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글 사진 / 한지호 자동차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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