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경기도

오산 내삼미동 초가집 유엔군초전기념비 문헌서원

by 구석구석 2008. 2. 14.
728x90

 

오산시 내삼미동에 들어선 '오산미니어처빌리지'는 방대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곳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과거 여행에서 시작해 세계여행을 거쳐 평화의 메시지에 도달하게 된다. 과거 여행을 통해서는 한국의 옛 모습과 세계사의 주요 순간들이 포착된 작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 '비차(飛車)'를 모티브로 만든 상상의 공간인 '조선 공항' 모형 앞에서는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세계 여행은 철로로 연결된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발트삼국, 독일, 네덜란드가 하나의 철로로 연결된다. 세계 곳곳에 도착한 평화 사절단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오산미니어처빌리지'는 독일 함부르크의 '미니어처 원더랜드'와 미국 뉴욕의 '걸리버스 게이트' 등 세계 주요 미니어처 테마파크에서 벤치마킹한 기술력을 도입한 국내 유일의 실내형 미니어처 전시관이다.

 

부지면적 1만1천783㎡, 건축면적 3천521.86㎡(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의 실내전시관에, 실제 크기의 87분의1로 연출된 미니어처 세상이 펼쳐진다.

오산미니어처빌리지의 운영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이며(월요일은 휴관), 미니어처빌리지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경인일보 오산/민정주기자]

 

오산시 내삼미동 산밑에 아담하고 공기 좋은 곳에 일가족이 오붓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면서 외식하기 좋은 곳 「초가집」은 유황오리를 전문으로 하는 맛 집이다.
유황오리란 일반 토종 집오리에 유황과 인삼 등 여러 한약재를 주원료로 한 사료를 장기간 먹여 키운 특수 오리를 말하는데, 식용유황오리는 35일~40일정도 키워 음식점에서 다양하게 요리해서 파는 식용오리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과 닭이 제사상에 올랐던 점을 미루어 보면 오리는 식품으로서의 가치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최근에는 민간요법과 한방의학에서 폭 넓게 활용되고 현대의학과 영양학적으로도 오리의 효능이 입증되면서 오리고기의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

 

초가집의 '유황오리백숙'(30,000원)은 유황오리에 업나무, 당귀, 인삼, 대추, 감초, 마늘, 생강, 부추 등을 넣어 압력솥에 푹 다려 내는 것으로 오리 특유의 냄새라든가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20여 가지의 계절 밑반찬과 함께 등장하는 오리백숙은 살점을 뜯어 발라내 먹어보면 생각처럼 육질이 질기지 않고 연하며 입안 가득 구수한 맛이 풍긴다. 껍질 맛도 독특하고, 식성에 따라서 겨자소스 또는 후추소금에 찍어먹어도 좋다.

유황오리의 조리 방법에는 옛 선조들이 닭이나 꿩에 황토 흙을 발라 장작불이나 숯불 아궁이에 오랫동안 구워 먹던 방법을 응용하여 개발한 '유황오리 황토가마구이'식도 있지만, 오리백숙은 담백한 국물과 함께 후식으로 나오는 죽도 먹을 만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하는 기호식품이다.


옛날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 오리를 길러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오리는 해독력과 생존 본능이 강한 동물로 민간에서 성인병의 예방 및 치료제로 각광받아 왔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500년~3,500년경의 조각과 그림에 오리를 잡는 장면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오리를 식용으로 한 역사는 그 연원이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지역의 오리 사육은 동양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오리를 각 부위별로 독특한 약성을 지니고 있다고 파악하여 이를 부위별로 따로 병증에 맞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를 하여 먹어왔다.
이러한 오리가 근래에 들어서 특별한 효능을 지닌 약재이면서, 미식가의 미각을 돋구는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데는 1986년 '신약'이라는 저술로 널리 알려진 인산 김일훈의 '인산의학'을 통해서 이다.

인산의학의 특징은 종래의 민간요법의 틀을 벗어나 공해시대에 맞는 새로운 틀의 치병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이때 가장 널리 각광 받고 전래되기 시작한 부분이 오리와 유황을 이용한 '해독보원(解毒補元)에 있다.
즉, 오리가 가진 다양한 해독 능력과 병에 강한 저항력, 자연치유력 등을 이용하여 독성은 매우 강하나 다양한 효능을 지닌 약재를 먹여 오리로 하여금 이를 해독하면서 약의 효능은 더욱 배가시키도록 한 후 이러한 오리를 요리를 통해 사람이 섭취하도록 하는데 있다.
대부분의 고기가 산성인데 반해 오리고기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몸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역할 이외에 노화방지효과로 피부에 탄력을 주어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과 노약자의 건강에 유익하고 우수한 스태미너 식품이다.
이밖에도 오리고기는 인체에 꼭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과 무기질, 비타민, 칼슘 등 영양분이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등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완전식품이다.
유황오리 전문식당인 초가집은 백숙 외에도 '유황오리보쌈', '유황오리훈제', '유황오리탕', '키토산오리로스구이'(각 30,000원)가 있고, 식사 메뉴로는 '삼계탕'(10,000원)과 '돌솥밥+청국장'(7,000원)도 준비된다.

031-373-8980 / 주차장: 20대 / 10:00~ 22:00 / 연중무휴


 

내삼미동 산70-6 UN군 초전기념비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1950년 7월 5일 미군 제24사단 소속 제21보병부대 및 제52 야포대대 소속 1개 중대로 편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북한과의 최초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1955년 7월 5일 미군 제24단과 장병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1964년 미 24사단 장병 및 동지회, 미8군장병, 육군 동지회, 재항군인회, 한국신문 편찬협회, UN군 자유수호참전 건립위원회 등에 의해 보수되었으며, 1972년 9월 20일 미8군, 제802 공병대, 제22 K,S,C 중대 및 K,S,C 제22본회에 의하여 약 20평의 주차장 확보와 1981년 전적지 개발계획에 의해 구 기념비 앞산에 5천여평의 규모로 새로이 단장하여 매년 7월 5일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경기관광공사

 

내삼미동541-2 무진장갈비 031-372-7500

유엔군초전기념비휴게소인근에 위치하며 넓은 창 밑으로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인상 깊고 옅은 적벽돌 사이사이에 회칠이 굵으며 부드러운 곡선이 있는 단층 짜리 건물이다.

산 밑에 바로 자리를 틀고 앉아 있음에도 왜소해 보이지 않을 만큼 건물의 규모 또한 만만치 않다. 안으로 들어가면 산을 향한 왼쪽 편만 제외하고 하나로 트여 있어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대표메뉴는 한우꽃등심, 생갈비, 양념갈비 등 주로 소고기 류가 인기가 좋다. 고기는 모두 질 좋은 한우만 써서 양념보다는 고기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생고기가 인기다. 다른 집에 비해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지만 고기의 질이나 풍성하고 맛깔스런 밑반찬이나 그 값어치는 충분히 한다.

 

이 외에 돼지갈비도 달짝지근한 양념이 잘 배어있어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영양가마솥밥, 쌀밥정식, 영양갈비탕, 갈비정식, 돼지갈비정식 등의 식사 류도 준비되어 있는데 맛은 평범한 편으로 한 끼 식사 하기에 무난한 정도다.

산을 면한 쪽은 5개의 독립된 별실로 이루어져 있다. 방마다 10명에서 2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실내가 이렇게 하나로 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지 않은 것은 곳곳에 배치돼 있는 각종 민속용품과 품격 있는 고가구들이 시야를 잡아두기 때문이다. 주차도 50대 가량 가능해 불편함이 없다.

 

내삼미동 753-2 문헌서원

 문헌서원은 고려조를 크게 빛낸 공신(문하시중-지금의 수상)이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구재학당이라는 사립 교육기관을 세워 나라의 인재를 길러냄으로써 해동공자로 추앙을 받는 문헌공 최충선생(984-1068)과 선생의 장자 문화공 최유선선생(문하시중), 차자 문장공 최유길선생(상서령)의 영정을 봉안하고 세분선생의 덕행과 훈업을 기리고 있다.

 

원래 문헌서원은 1550년(조선조 명종 5년) 황해도 해주에 세워졌으나, 해주가 북한땅인 관계로 이곳 오산에 다시 문헌서원을 세웠으며, 그 규모는 부지가 3,701평, 영정각이 27평, 서원이 100평(강당:50평, 재실:50평)이다.

 

고려시대의 유학자 문헌공 “최충”선생을 중앙에, 우측에는 문화공 “유선” , 좌측에는 문장공 “유길”을 봉안한 영정각과 강당을 겸한 2층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영정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에 청기와를 얹은 팔각지붕의 건물로 1991년에 건립.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중종 38년(1543)을 전후하여 동방성리학의 조종인 동시에 벼슬이 인신의 극에 달했던 문헌공 선생을 모신 “문헌서원”이 항해도 해주에 세워졌다. 이후 황해도 관찰사로 하여금 몇차례의 이동과 정비를 하면서 1945년 남북의 분단되는 시점까지 온존하게 보존되었다.


문헌서원은 최충선생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로서 현재 남한에는 두곳의 서원이 있다. 그래도 본거가 되는 서원은 해주의 “문헌서원” 이므로 남한의 20만 해주최씨 대종회인들은 북한 해주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못내 쉽게 생각하여 오산에 재건립 하였음.

경기관광공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