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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암곡동-무장사지

by 구석구석 2008.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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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찾는 답사 마니아들은 한 번쯤은 다 가보고 싶어 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절터인 무장사지. 가는 길이 아직도 먼 거리라 도보로 약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가는 길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맑은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고, 경주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라 날씨 또한 만만치 않은 차가운 곳이다. 암곡동에 있는 무장사지는 암곡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주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절터이다.

 

무장사지가는 길/김환대

이곳에는 현재 보물 제125호 무장사아미타불 조상사적비 이수와 귀부, 보물 제126호 무장사지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무장사라는 이름은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병기와 투구를 매장한 곳이라는 뜻으로 무장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나 일부 책에는 문무왕이 아닌 태종무열왕이라 설명되어 있다. 현지 문화재 안내 간판에도 태종무열왕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경주시에서 절터 입구에 길 이정표를 하나 해 두었으며, 계곡을 건너 가파른 절벽 위로 오르면 갈림 이정표로 삼층석탑과 귀부를 알리는 이정표를 설치해 두었다.

워낙 깊은 골짜기라 혼자 가는 곳은 조금은 위험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평상시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 같으나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답사지로 각광 받는 곳이라 발길의 흔적은 곳곳에 보였다. 몇 년 전 한 지방 신문에 무장사지 도굴이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어 다들 기억 속에 있는 장소일 것이다.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독특한 비석받침 

무장사지 귀부(거북모양의 비석받침돌)는 신라 제39대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비이다. 1915년 주변에서 발견된 세 조각의 비석 파편에 새겨진 글을 통해서‘무장사아미타조상사적비를 통해서 무장사지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현재 비는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비 몸돌은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고 절터에는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와 비의 머릿돌인 이수만이 남아 있다. 예전에 이수는 귀부 옆에 따로이 방치되어 있었으나 1999년 이후 가보니 귀부 위에 얹어져 있었다.

 

비 받침은 마멸이 심하나 자세히 알 수 없으며 2좌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등 중앙에 마련된 사각형의 비좌(碑座) 네 면에는 4구와 2구씩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앙증 맞기 그지 없고 이 또한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머릿돌인 이수에는 용이 구름 속에서 나와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으며, 이수의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어 귀중한 작품이다.

 

9세기 후반에 세워진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이중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이다. 아래층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 2개를 새겼고, 윗층 기단은 안상(眼象)을 각 면에 2개씩 조각하였다.

 

상층기단에 세워진 안상/김환대

 

1층 몸돌 상면 중앙에서 큼직한 네모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지붕돌 밑면의 층급받침은 5단이며,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양 끝에서 부드럽게 살짝 들려 있다.

 

 

 

무너진 채 있던 것을 1962년 다시 세우면서 윗부분을 새로이 만들어 올렸다. 9세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 - 2008 OhmyNews 김환대

 

가는 길  경주에서 보문단지로 진입하여 육부촌 맞은편(우회전) 경주보문유스호스텔 (구)자동차 야외극장 쪽으로 가면 암곡동, 손곡동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암곡동으로 향하여 왕산마을을 지나면 암곡 소망교회가 보인다. 그 곳에서 무조건 직전하면 비포장 길이 보이며, 무장사지 삼층석탑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할 경우 교통 시간을 미리 잘 알아 보고 가야 한다. 경주시내에서 암곡까지 1시간 30분마다 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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