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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봉화 명호면-북곡리 청량산

by 구석구석 2008.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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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산 연적봉 정상석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관리사무소 054-679-6321, 매표소 054-672-4994)의 청량산은 높이 870m,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의 명산으로서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한다.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선학봉(仙鶴峰)ㆍ축융봉(祝融峰)ㆍ경일봉(擎日峰)ㆍ금탑봉(金塔峰)ㆍ자란봉(紫鸞峰)ㆍ자소봉(紫宵峰)ㆍ연적봉(硯滴峰)ㆍ연화봉(蓮花峰)ㆍ탁필봉(卓筆峰)ㆍ향로봉(香爐峰) 등의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루며, 그 가운데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는 최고절승으로 꼽히고 있다. 

 

강원도 황지(黃池)에서 발원한 낙동강 원류가 태백 준봉들을 빠져나오려고 숨가쁜 사행(蛇行)을 거듭하면서 약 2백여 리를 흘러내린 지점에서 제법 강다운 면모를 차린다. 그래도 아직 강폭이 넓지 않고 산악지반의 경사는 급해서 좁고 깊은 여울이 세차게 휘돌아 치는 절벽 위에 청량산 열 두 봉우리가 솟아있다. 

 

대구여행촌 권영길 대표는 청량산에 대해 "한국의 장가계"라고 소개했다. 여행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의 말이니 믿어도 좋으리라.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괴석이 등산객을 반긴다. 해발 870m에 불과한 아담한 산. 가벼운 탄성이 쏟아진다. 작은 산이 품고 있는 절경에 눈이 즐겁다.

 

청량산 장인봉 정상석

주봉의 높이가 870미터에 지나지 않는 청량은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다. 외양마저 평범한 흙산 같아서 마음 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다. 산 발치에서 쳐다봐도 명산의 면모는 없다. 몇 구비를 올려 쳐봐도 영락없는 야산세에 그렇고 그런 수목뿐이다.

 

그러나 숨가쁜 실망이 허탈로 바뀌려 할 때쯤, 대문을 들어서듯 산자락 하나를 헤쳐들면 놀라운 청량 비경이 꿈결인양 다가선다. 하늘 아득한 수직 봉우리들과 짙푸른 솔숲이다. 사뭇 무심하다가 일순에 속가슴을 열어젖히는 반전에 놀라움은 잠재우기 어렵다. 의상, 자소, 경일, 금탑, 연화, 다섯 봉우리가 사방에서 마주보며 둘러서서 저마다 크고 작은 암봉들을 품어 안았다.

 

이중환 선생이 택리지에서 "청량산은 밖에서 바라보면 흙 묏부리 두어 송이뿐이지만 들어가 보면 사면이 기암절벽으로 둘러 있고, 그 높이가 만 길이나 되어서 형상을 형언하기 쉽지않다."고 한 표현이 절묘하다.  

 

청량산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이「택리지」에서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명산 중 하나로 평가할 만큼 한국의 대표적 명산으로 학술적,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도립공원 청량산 한 가운데 자리잡은 청량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이 절이 자리잡은 청량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望仙庵)등 대소 27개소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 한다. 이 절의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찰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어느때인가 소실등 으로 인하여 거의 없어지고 약사여래좌상 1구와 길이 15M의 거대한 괘불이 남아 있다.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와서 머무를 때에 쓴 친필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청량사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응진전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유리보전과 같은 시대의 건물로 추정된다.

 

이름만으로도 시원한 산이다.

 

산 중턱까지 차가 오르니 그렇게 높지 않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산을 잘 타는 사람이야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청량산은 12개의 봉우리를 지니고 있다. 12봉이 아니라 왜 6·6봉인가. 학자들은 '12봉보다 어감이 좋아서 취한 말'이라고 추측한다. 

 

봉우리마다 푸른 솔숲을 머리에 이고 있다. 죽죽 자란 육송의 시뻘건 그루들이 진초록 솔잎 더미를 하늘 높이 받쳐들고 있다. 흙 한 줌 있을 것 같지 않은 바위 위에서 저토록 훤칠한 솔숲의 자태가 기이하다. 난석위의 풍란같다. 풍란이 공기를 마시고 자라듯, 청량솔(淸凉松)은 차고 맑은 바람만으로 저리도 청정하게 성장하는가?

 

청량은 바위와 초목이 조화하여 자연의 경이를 자아내는 산이다. 성근 진달래가 연초록 솔빛과 어울리고 검은 그루터기의 산도화가 바위옷 암봉과 유정스럽다. 정상을 오르다보면 총명수와 김생동굴을 만난다. '총명수'는 마시면 총명해진다고 전해지는 물이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에 호기심이 가지만, 마실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러워진 탓이다. '정말 이 물을 마시고 똑똑해졌을까' 궁금증이 자꾸 생긴다.

 

초입의 분수대와 겨울의 얼음기둥 김생동굴에도 잠시 머물러보자. 신라의 명필 김생이 10년간 글씨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는 동굴이다. 김생동굴에서 바라본 청량산 풍경이 사진처럼 인상에 남는다.

 

 

가는길

청량산을 찾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중앙고속도로에서 남안동 서안동 풍기 IC(택일)로 빠져나온 뒤 도산서원으로 향하면 된다. 도산서원에서 청량산은 가깝다.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리는 안동을 관통하는 기분도 괜찮다.  

/ 자료 - 영남일보 / 경북신문 (김문호) / 봉양군청 문화관광과

 

 

청량사와  단풍

천하절경 청량산 청량사 도량 내에 자리한 '안심당'황토집을 짓고 큰 간판을 달아놓아 시원스럽다. 청량산, 청량사, 안심당은 다정한 삼남매 오누이같다.

 

 '청량사 찻집 안심당'에 들어가려면 점점(點點)이 박힌 고목의 나이테를 밟는다.  어쩌면 내 나이보다 많은 어른 나무를 딛고 잠시 마음을 내려 놓아본다...

 

'안심당' 출입문 벽에 걸린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현판이 찻집 분위기를 한마디로 함축했다.  정말 어떨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안심당은 찻 집 이상의 찻집이다. '안심당'에 들어서면 정감있는 분위기가 좋다. 한지에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만든 등 갓, 시야가 확 트이는 투명유리  위로 올리는 창문, 아기자기한 소품, 은은한 다향(茶香), 감미로운 선률~ 등 모든 자리 배치와 소장품은 주지스님이 직접 챙기셨다고 한다.

 

나무벽 한 켠에 가지런히 꽃혀있는 있는 피리가 눈길을 끈다. 찻집 보살님 왈, 주지스님이 가끔 피리를 부시는데, 바람 결에 들으면 '여기가 극락인가!' ...금방 취해 버리지요"

 

번쩍 위로 들려 있는 한지바른 전통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세상도 별미(別味)이다. 세심한 배려와 공간배치가 안심당을 찾는 길손이 정말 편하게 머무를 수 있으니, 또 가고 싶다. 벽난로가 함박웃음 웃는다. 한 겨울 눈이 소복히 쌓여 온통 은세계일때, 활활 타는 장작불을 상상해 보라. 안심당은 어디에 눈 길을 주어도 다 편안한 소품이라 세심(洗心)이다.

 

안심당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으로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숨을 돌리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넉넉한 공간이다. 또한 대중들에 대한 포교의 장이 되기도 하는데 이때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은 대중들이 스님을 만나는 곳이 된다.

 

더 나아가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중생구제의 한 실천으로 포교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 전통다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은 안팎 곳곳에서 은은한 전통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모두에게 개방된 산사의 포근한 쉼터이다.

 

청량산공민왕문화제

문화제의 하일라이트는 공민왕당 백중제로 고려 공민왕이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몽진해 왔을 때 감화를 입은 이곳 주민들이 수 백년 동안 지내오던 동제(洞祭)로 최근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행사는 청량산에 남긴 공민왕의 흔적을 더듬는 한편 청량산 주변의 자연과 문화를 잘 가꾸고 보존해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문화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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