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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충주 82번국지도-평리 탄금대 태문산 중앙탑 충주박물관 중원고구려비 리쿼리움

by 구석구석 200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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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고속도로 호법IC를 지나 일죽IC를 빠져 나온다. 장호원 방면으로 달려 오행~양성~돈산온천~능암온천~가흥창지를 경유하여 고구려비를 지나 탑평리에 닿으면 된다. 영동이나 중부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할 경우엔 경부선을 타고 안성으로 빠져나와 38번 국도를 이용하거나. 성남에서 3번 국도를 타고 갈 수도 있다. 탄금대는 시내버스나 택시(2천원 미만)를 이용해도 됨.

 

충주 시가는 북쪽과 동쪽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서쪽은 그 지천인 달천강이 흘러 남쪽을 제외한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한강과 달천은 시가지 북서쪽에서 만나게되는데 이 두 강이 합류되는 지점일대에 태문산이 솟아 있다.

 

 국토 중앙부에 위치한 덕택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문화를 고루 받아 꽃피웠고, 일찍부터 수로와 육로가 발달하고 요충지를 이뤄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였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다.
일명 대문산 견문산 등으로도 불리는 태문산은 충주시의 제일 명소 '탄금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작은 산으로 그 밑으로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되는 곳이며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기암절벽과 함께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 또한 수려한 곳이다.


탄금대공원은 산 전체를 한바퀴 돌면 이곳 저곳에 많은 명소들이 널려져있다. 사적공원 탄금대의 탐방은 공원 입구를 조금 지나 가파른 고갯길에 세워진 탄금대의 내력을 적어놓은 `탄금대유래비'로부터 시작된다.

내력을 적어놓은 '탄금대유래비' 
충주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 때(537) 가야국의 악사 우륵이 망명의 한을 달래기 위해 가야금을 타던 곳이자 임진왜란 때는 신립(1546∼1592) 장군이 왜적과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곳이기도 하다.
평탄한 산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서면 이 고장이 배출한 항일시인이며 동요작가인 권태응선생(1918년~1951년)의 `감자꽃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은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나 항일민족운동을 벌이다 투옥을 당하기도 했고, 야학과 연극 등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광복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이다.
일본의 창씨개명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이 노래비는 1968년 새싹회의 후원으로 제일고보 학우였던 이해곤 선생이 세운 것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생사를 건 일전을 위해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사투를 벌였던 전적지로도 유명하다.


탄금대 앞강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부분이 많지만 대신 수량이 일정해 관광지로서의 입지 여건이 좋다. 볼거리로는 신립장군순절비·우륵선생추모비·탄금대비·탄금정·열두대·충혼탑 등이 있다.

 

 노송들이 가득하고 절경이 뛰어나다 
탄금대의 절경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왜적과 전투 중 열두 번을 오르내리며 활을 식혔다고 전하는 열두대 부근이다. 열두대는 강변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12개의 계단을 이루는 기암절벽으로 노송들이 가득하고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열두대 정상에 세워진 콘크리트 2층 누각인 탄금대에 오르면 옛날 충주를 유명하게 해준 대규모 암모니아 비료공장지대와 중앙탑 등을 바라볼 수가 있다.

탄금정이 위치한 자리는 지금은 시내 호암지의 동산으로 옮겨간 육각정이 있던 곳으로 근처에는 삼국시대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구릉을 이루는 지점에는 충장공 신립장군 순절비각과 대흥사 등이 들어앉아 있다. 이곳을 거쳐 충혼탑을 지나 정상 가까운 곳에 마련된 광장으로 올라서면 계단구조가 특이한 2층 규모의 충주문화원과 타원형 모습을 한 야외음악당이 있는 광장에 이른다. 글·사진/한지호(자동차여행가 mycartour@hotmail.com)

 

국보 제6호 중원탑평리칠층석탑 
인근에는 국보 제205호로 지정된 중원고구려비와 국보 제6호 중원탑평리칠층석탑, 충주산성 등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석탑으로 가장 높은 칠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일반형 석탑으로 이 탑은 지리적으로 한국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하여 중앙탑이라는 속칭으로 불리어 지는데 신라 원성왕(785 ~ 798) 때에 세워졌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양식으로 보아 그 시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탑 주변에는 넓은 잔디밭에 조각공원이 만들어져 있으며 충주박물관과 술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탄금대 일대는 지난 1989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충주시민은 이곳을 탄금대공원이라고 부르며 수시로 찾아 휴식과 산책을 즐기고 있다.

글·사진/한지호(자동차여행가 mycartour@hotmail.com)

 

 

중앙탑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이다. 이렇게 높은 석탑을 일찍이 본 적이 없거니와 그 모양새 또한 말끔하고 늘씬하다. 성숙한 탑의 형식이 잘 살아있고, 하늘로 승천하려고 웅비하는 모양새이다. 중앙탑은 주위의 지대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웅장함과 장중함은 다른 탑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앙탑은 너무 가까이에서 보기보다 약간 떨어져서 보는 게 낫다. 중앙탑이 자리잡은 자그마한 언덕에 올라가지 않고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중앙탑의 위엄이 좌중을 압도한다. 그리고 중앙탑이 있는 작은 언덕에 서 있는 사람과 그 크기를 비교해서 바라보면 과연 이 탑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게 정녕 1200여 년 전에 세워진 석탑이란 말인가!

 

 

중앙탑은 이층기단으로 된 구조에 7층의 탑신석이 그대로 올라가 있다. 하층기단은 넓적하여 전체적으로 중앙탑의 하중을 받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상층기단은 하층기단에 비해 눈에 띄게 높고 1층 탑신과 비교하여 펑퍼짐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송영대

 

1917년 해체하고 복원할 시에 6층 몸돌에서 훼손된 고서류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칠합과 은제 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되었는데, 구리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때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 차례 해체복원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층기단의 상대갑석 위에는 7층의 탑신이 주르륵 펼쳐진다. 초층탑신, 즉 제일 아래에 있는 1층의 탑신석의 경우는 기단부처럼 안정감을 위하여 다른 탑신에 비해 높게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주 사이에 탱주를 하나 두어, 2층 탑신부터는 탱주가 보이지 않는 것과 약간의 차이를 두었다.

 

옥개받침은 5겹을 만들어 놓아 정연하게 해 놓았다. 고려시대와 신라 말기에 가면 이러한 양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형된 규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 때문인데, 중앙탑은 그 크기에 따른 무거움 때문이라도 5겹의 옥개받침이 어색하지 않고 그 때문에 더 질서 있어 보인다.

 

중앙탑은 그 크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돌도 여러 개를 짜 맞추어야 했다. 1층부터 5층까지의 옥개석은 4개로 나눠져 이를 합쳐 놓은 것이고 6층과 7층은 돌 하나를 조각하여 올려  놓은 것이다.

 

옥개석의 끝부분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이곳에다가 풍경을 꽂아 넣어 바람에 흔들리면 그 소리가 나게 한 것으로서 이러한 모습은 다른 석탑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러한 풍경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중앙탑 상륜부

상륜부는 다른 많은 탑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남아있지는 않다. 노반과 복발, 그리고 앙화가 남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노반이 2개가 겹쳐서 올라가 있다는 것이며 그 위에 복발, 앙화가 있는 것이다.

 

중앙탑을 보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중앙탑의 바로 앞에는 돌로 된 무엇인가의 흔적이 보인다. 바로 석등의 흔적으로서, 석등의 하대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중앙탑이 세워질 당시에는 중앙탑만 있었던 것이 아닌, 석등도 있어서 환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중앙탑앞의 석등 하대석

 

석등의 하대석은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복련이다. 앙련이 하늘을 우러러 본다면, 복련은 꽃잎이 아래를 향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석등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많이 보인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중앙탑 앞에 서서 환한 석등의 불빛을 조명삼아 거대한 중앙탑을 우러러 보았을 것이다.

 

중앙탑 바로 옆으로 남한강에 조정지댐을 만들어 형성된 탄금호에는 여름철 수상레져를 즐길 수 있고 중앙탑공원 앞 탄금호에는 수경분수가 설치되어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 2008 OhmyNews 송영대

 

8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각종문화유적이 발굴되고 문화재가 발견되자 자긍심을 가진 지역 주민들 중에 유적지를 찾아 조사활동을 벌이거나 답사하는 동호인 모임이 생겨났다. 그 중에 예성(蘂城)동호회라는 향토사연구 모임을 중심으로 충주에도 중원문화권의 유물을 전시할 박물관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하면서 4년여에 이르는 준비기간을 거쳐, 86년 중원문화유물전시관이 발족되었고, 4년 뒤인 90년 11월 충주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한편 1995년 중원군이 충주시와 통합되면서 충주박물관(제1관)과 중원향토민속자료전시관(제2관)이 충주박물관으로 통합되어 현재는 시립박물관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충주박물관제1관(좌) 제2관/송영대

 

민속1실 내부 전시관 
충주시 성내동에 위치한 제 1관의 고고미술실은 충주지역에서 출토된 자료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인 특징을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져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민속자료실에는 선조들이 관혼상제에 사용하던 자료들과 민속공예품, 각종 농경용구, 화폐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였던 민속자료를 위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일제시대 충주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사진과 충주지방의 문화재 사진 및 탁본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한편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줄기와 국보 제6호인 탑평리 칠층석탑 주변에 자리잡은 제 2관은 중원문화권내에 산재한 유적과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충주성문 모형이 관람객을 맞이하는 역사1실로 들어서면 사적 317호로 지정된 미륵대원사지, 국보 102호인 홍법국사실상탑 모형과 중원지방에 산재해 있는 탑의 사진과 불화, 석불입상 등 불교유적을 중심으로 전시하여 중원지방의 불교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원문화권내 출토 유물들 
역사2실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석기류·토기류·도자기 등을 시대별로 발굴한 현장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고분군인 루암리고분군 모형과 조선 인조시대의 공신 충무공 이수일장군(1554~1632)의 유품과 유물이 눈길을 끈다.


민속1실로 들어가 보면 목계나루에서 행해지던 별신제와 줄다리기를 재현하고 있으며,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놀이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아라성(모심는 노래)을 부르며 모내기하는 모습과 철산지의 상징인 대장간의 모습을 각종 농기구와 함께 디오라마로 전시하고 있어 교육적인 효과도 높다.
충효의 고장 충주는 예로부터 풍류와 멋을 아는 고을로서 인식되어 왔다. 전면에 악성 우륵선생의 가야금 연주상이 돋보이는 민속2실은 전통 혼례복과 충주 부명착즙기와 칠보죽절용잠, 비녀, 은장도 등 규방용구를 가지런히 보여주고 있으며, 옛 집안의 살림살이를 살필 수 있도록 조각경상, 충주반, 함지 등 생활용구들과 예스러움이 가득한 뒤주, 농 등을 전시해 옛 맛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역사1실 입구에선 석불입상 
중원향토민속자료전시관 바로 옆으로는 남한강수석전시관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남한강과 달천강을 젖줄로 삼아 우리나라의 수석문화를 꽃 피워온 수석의 본고장에 세워진 수석전시관에는 충주시민과 경향각지의 수석애호가들이 기증한 천태만상의 수석들이 전시되어 있어 산수의 온갖 풍경과 기묘한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응축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신갈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다시 호법 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일죽 IC를 벗어나 좌회전하여 38번 국도로 40km 쯤 달리면 장호원과 앙성을 지나 가흥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 599번 지방도로 5.5km로 내려간 뒤 중앙탑 푯말을 따라 좌측으로 2km 들어가면 중앙탑 주차장에 닫게 된다.

탄금호는 충주호의 보조댐을 만드느라 생겨났다고 하며, 탄금대에서 그 이름을 땄다고 한다. 탄금호에서는 물안개가 살포시 피어나고 있었다. 안개는 너울너울 노니며 가볍게 피어오르고, 또는 슬며시 호수에 그 몸을 맡기기도 하였다.

하늘에서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안개는 점점 걷혀지지만, 역으로 안개가 더욱 눈에 잘 띄게 한다. 안개는 가렸던 산에게 그 몸을 비켜나간다. 산도 안개에 몸을 씻고 나온 듯, 그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아침을 맞는다.

 

안개낀 탄금호

 

철새조망대

 

철새조망대에서 이러한 안개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 철새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안개가 그 철새를 대신해주면서 좋은 그림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탄금호의 안개를 바라보며 김기수(金綺秀 : 1832 ~ ?)가 쓴 <해사록(海槎錄)>에 나오는 ‘비를 만나 충주에 머무르며(遇雨留忠州)’라는 시를 떠올려본다. 김기수는 조선시대의 수신사로서 구한말 일본에 갔다온 바가 있다. 일본에 가면서 쓴 글을 엮은 것이 바로 <해사록>으로서, 이 시는 일본으로 가면서 충주에 들러 비를 맞았을 때 그 감회를 적은 것이다.

 

 

 

 

 

낙숫물이 줄줄 흘러 개울을 이루고          簷鈴滴歷亂成流
먼 안개 자욱하고 날이 개지 않는구나      遠靄微茫苦未收
무심한 비야 왕사가 급한 줄 알리오         雨意豈知王事急
인정으로 고향이라 머무르라 하는게지     人情亦爲故鄕留
탄금대의 물빛은 말갛게 불어나고           琴臺水色晴初漲
월악산의 봄빛은 파랗게 비쳐나네           月岳春光翠欲浮
마음 가득 이제 사신된 것 부끄러워라      多情自慚今杖節
십년 전엔 포의로 놀았던 곳이라네          十年曾是布衣遊

 

경치를 찾는 길손들이여, 그대들도 한번 탄금호를 찾아가는 게 어떠하겠는가. 맑은 술 한병 내어 그 경치를 감상하며 하루동안 신선이 되 보는 것은 또 어떠하겠는가.

자료 - 오마이뉴스2008 송영대

 중원고구려비(국보 제 205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이후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인 중원고구려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79년 남한강 가에서 발견된 이 비석에는 모두 700여자가 새겨져 있는데, 훼손이 심하여 그중 200여자만이 판독된다. 비문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사이좋게 지내던 때의 일과 두 나라의 사이가 나빠져서 백제와 신라가 힘을 합해 고구려에 대항한 내용이 있다. 고구려와 신라가 백두대간을 경계로 하여, 고구려가 형님, 신라가 아우가 된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비의 내용으로 보아 고구려가 가장 강성하던 5세기 후반,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하정책을 펴서 이곳을 점령하고 그간의 일들을 정리해서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중원고구려비는 우리나라 안에서 발견되 유일한 고구려비로, 만주 집안현에 잇는 광개토대왕비와 닮은 모습이다. 강성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비석이다.

 

 중앙탑공원에 자리잡은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

 건전한 술 문화를 비롯해 술에 관한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술 박물관 ‘리쿼리움’이 충주 가금면 일대에 조성돼 있다. 술박물관 리쿼리움(Liquorium)은 술(liquor)과 전시장소(rium)의 합성어다. 국보6호인 중앙탑이 눈앞에 있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박물관은 700여㎡의 대지에 약 300㎡의 건물 안을 관람객들이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세계 각국의 술과 문화, 예절을 함께 체험 할 수 있다.

 전국 처음으로 전통주 품평회가 열린 세계술문화박물관 입구. /세계술문화박물관 

 술박물관은 와인관, 오크통관, 동양주관, 증류주관, 맥주관, 음주문화관, 음주체험관으로 나눠져 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약 3천500여 가지의 술과 관련된 자료, 3천400여 가지의 미전시 소품이 소장돼 있다. 최근 웰빙붐을 타고 와인에 대한 열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여기서 와인을 불로 증류 시키면 꼬냑이 된다. 꼬냑, 위스키, 럼주, 진 등은 불로 가열해 증류시킨 술이다.

박물관에서는 술의 정의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와인, 위스키, 보드카, 데킬라, 진, 술잔의 종류, 주전자, 유리잔 잡는 법, 술에 예절, 음주 문화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술병의 종류와 변천사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와인관에서는 고대 와인 문화의 발달과 전파 경로를 답사할 수 있다. 특히 중세의 기독교에서는 와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신성하게 여겨 대부분의 와인이 수도원에서 양조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포도원에서는 어떻게 포도가 재배되며 와인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월령을 12개월로 나눠 볼 수 있다. 수 백 가지 품종의 포도 중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10가지가 있고 포도원이 갖춰야할 토양과 기후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

맥주관에서는 전세계 술 소비량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대중의 술 맥주를 소개하고 있다.
맥주는 극지방으로부터 열대지방까지 생산 될 수 있으며 어떤 곡물로도 만들 수 있는 술이다. 맥주관에서는 맥주의 역사와 제조방법 그리고 갖가지 오프너와 맥주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양주관에는 아시아 각국의 술과 관련된 용기 등을 볼 수 있다. 충주지방의 민속주인 청명주(淸明酒)를 비롯해 문배주, 이강주, 안동소주 등이 있다. 기원전 3천여년 경 하(夏)왕조 시대부터 빚기 시작했던 중국의 곡주는 동양주의 원조로 중국의 양조 기술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파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증류주관에서는 리큐르, 보드카, 위스키, 브랜디, 진, 럼, 데퀼라 등 서양 증류수와 동양의 백주 및 소주에 대한 실물과 제조 방법을 알 수 있다. 또한 술이 숙성되는 신비한 과정과 기기묘묘한 모양의 증류주가 전시돼 있다. 1830년부터 150여년 간 브랜디를 증류하던 알라딘 램프 같은 모양의 꼬냑 증류기도 볼 수 있다.

음주문화관은 한·중·일 3국의 음주문화를 비롯해 서양의 음주문화도 엿볼 수 있다. 각국의 술 정책과 통계표가 전시돼 있고 음주의 신체적, 정신적 영향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향음주례는 세종대왕이 각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했던 6예(관, 혼, 상, 제, 상견, 향음주) 가운데 하나다. 언행을 바르게 지키면서 술을 마시는 예절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힘으로써 술로 인한 추태나 분쟁이 거의 없는 예의의 나라가 됐다. 우리 조상들은 공개적으로 술좌석을 가졌고 그 아들이나 제자들을 동행해 술심부름을 들게 함과 동시에 술 먹는 법도를 익히게 했다. 음주문화 체험장은 2층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계절별 칵테일을 맛보고 테이블 매너를 익힐 수 있는 체험장은 단체실습을 위해 80석을 갖추고 있다. 충북일보 기획취재팀

 

중앙탑오리집(043-857-5292)

 

담백하게 끓여내는 오리백숙(3만 5000원)이 일품이다. 담백한 국물과 쫄깃쫄깃한 육질이 어우러져 가을철 입맛을 돋우는데 더없이 좋다.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데,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직원이 익은 오리의 뼈와 고기를 분리하는 솜씨는 혀의 즐거움을 한껏 북돋워준다. 고춧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백김치와 오이소박이물김치는 또다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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