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46번 국도→퇴계원→남양주→청평→가평→강촌→의암댐→403번 지방도→→춘천댐→5번 국도→화천. 우측으로 북한강을 끼고 갈 수 있는 환상과 낭만의 드라이브 코스다.
정보화마을 화천풍산마을 033-441-1213
평화의 댐
파로호 상류, 즉 북한강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해산터널을 지나면 평화의 댐이다. 북한강 수계 최상류 댐인 화천댐보다 위쪽에 위치한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이 착공한 금강산댐(임남댐)이 유사시 수공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한 대응댐으로, 87년에 공사를 시작해 1년여만에 완공했다.
평화의 댐은 화천의 대표적 안보관광지로서 ‘비목(碑木)’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비목공원이 있고, 평화의 댐 통일관, 비목공연장 등이 위치해 있고, 평화의 댐 기능을 안보관 내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시설이 돼 있다.
기념관 주변엔 대포 등도 전시되어 있다. 돌무더기에 세워진 비목 너머로는 민간인통제구역, 즉 민통선임을 알리는 팻말도 선명하다. 이 모두 배달민족이 20세기 중반에 겪어야만 했던 슬픈 사건에 대한 극명한 기록들이 아닐 수 없다.
6월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평화의 댐 등에서 열리는 비목문화제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4분의 4박자인 느린 템포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애창곡으로 불리는 ‘비목’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비목’의 탄생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색중대 소대장인 육군 소위는 어느 날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비무장지대를 사병들과 함께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는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이름 모를 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한다. 녹슨 철모, 카빈 소총 한 자루,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등걸, 그리고 무심히 피어있는 새하얀 산목련. 그는 그 자리에서 시를 한 편 지어 용사의 넋을 달랬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는 나중에 작곡가 장일남을 만나면서 1967년 ‘비목’이란 이름의 가곡으로 빛을 보게 된다. 그 소대장은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음악평론가 한명희다. 작곡가 장일남은 2006년 10월에 타계했다.
▲ 북한강변의 화천 읍내를 한 바퀴 돌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는 군악대.
화천군에서 매년 6월6일 현충일을 전후하여 열고 있는 비목문화제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의 슬픔을 평화통일로 승화시키려는 염원으로 펼쳐지는 호국안보 문화제다. 추모, 평화, 희망. 바로 비목문화제가 전하는 메시지다.
6월6일부터 10일까지 닷새 동안 평화의 댐을 비롯해 붕어섬, 관내 군부대 등에서 진행된다. 가족형 체험행사를 늘려 비목문화제가 단순히 전쟁을 기억하는 행사가 아니라, 추모와 반전의 희망을 노래하는 세계적 안보문화제로 도약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좌) 참호에서 병영 체험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이외에도 가상 지뢰찾기 체험 등의 행사도 있다 (우) 장애물을 넘으며 유격 훈련을 체험하고 있는 아이들. / 월간산
이외에도 화천지역 군부대 전역자 만남의 장, 해외참전국 향군회 초청 전적지 순례, 6·25 전쟁가요 경연대회, 병영요리왕 선발대회 등을 신설하고 문화재의 세계화를 위해 국제한국전참전향군연맹 회원국 중 미국과 에치오피아 참전용사도 초청한다.
이런 행사가 조금 딱딱하게 여겨진다면 30여 개 동호인팀의 참여하는 비목배 전국 페인트볼 서바이벌대회를 눈여겨 봐두자.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공연행사로는 SBS 만남과 희망의 대축제 공개방송, 군악합동연주회, 세계평화의 노래, 태극·태권무 공연, 전쟁영화 상영, 6·25 전쟁가요 경연대회 등이 있다.
▲ (좌) 비목문화재 사상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 비목문화제 기간에는 각종 공연 행사도 열린다. /월간산
이외에도 가상지뢰찾기체험, 참호체험, 열기구체험 등에서 비목문화제가 다른 축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임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부대행사로 비목마라톤대회와 비목콩쿨도 열리고, 한국전쟁의 현장인 화천을 세계평화의 진원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세계평화 메시지 선포식도 갖는다.
즐거움과 슬픔 교차하는 파로호 드라이브
분단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남한 최북단 파로호(破虜湖)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다. 녹음의 그림자 짙은 호숫가 주변엔 군인들의 경비초소가 즐비하다. 길목마다 지키고 있는 초병들, 조악한 설치미술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대전차 방어막, 능선마다 설치된 경비초소들….
파로호를 품고 있는 화천은 해방 후엔 북한에 속했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한 땅에 들게 된 고을이다. 그래서 다른 어느 곳보다 전쟁의 상처가 많다. 또 군인과 군인가족,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접경지역이다. 지금도 화천엔 ‘과부촌’이니, ‘캐러멜고개’니 하는 전쟁에 얽힌 지명과 사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분단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남한 최북한 호수인 파로호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다.
파로호는 한국전쟁 때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격전지였다. 파로호 전망대에 오르면 초여름의 길목으로 들어서고 있는 호수가 발아래 있고, 그 안쪽으론 화천댐도 보인다. 1951년 5월 국군은 화천저수지(파로호의 옛 이름)에 중공군 제10·25·27연대와 해병 1연대를 수장시켰다. 이 파로호전투가 끝난 뒤 호수 주변과 대리리 풍산리 일대는 중공군 시체로 뒤덮여 국군은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내면서 전진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와서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 명명했다. 이름의 유래조차 전쟁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파로호기념관 내부 전시물도 여느 댐들처럼 수몰과정이나 댐이 주는 혜택 등의 선전보다 파로호전투에 대해 소상히 소개하고 있는 것도 파로호의 상징성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옆 전적기념탑엔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기록되어 있다.
‘길손이여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우리는 겨레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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