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서귀동-소암기념관 삼매봉~외돌개 문섬

by 구석구석 2008. 1. 22.
728x90

 

무명빛 종이위 푸른섬 바다빛 출렁 / 소암기념관 760-3511~2

 

무명빛 종이위에 짠내음이 실리지 않았을까. 때로 붓은 끝간데 없이 너른 바다를 헤쳐가는 외로운 배였을 수도 있겠다. 두둥실 저 바다와 푸른 섬을 늘 눈에 담고 지냈으니 말이다. 서귀포시 서귀동 소암기념관 한켠 '조범산방(眺帆山房)'에 오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동산길 언덕배기에 들어선 조범산방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가 이마에 걸린다. 소암기념관을 낳은 소암 현중화(1907~1997)선생은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이지만 그곳에서 20년을 보냈다. '서귀소옹'으로 자호(自號)하고 글씨로 즐거움을 누렸던 생애 말년의 먹향이 배어난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소암기념관은 제주출신 예술가를 기리는 문화공간이면서 전국에서도 몇 안되는 서예 박물관이다. 소암의 거처를 품고 지었다. 그래서 여느 공간에 있는 전시실 뿐만 아니라 창작실이 더해졌다. 방의 주인이 잠시 외출을 떠난 것처럼, 소암이 머물던 조범산방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방에 놓인 연습지를 보면 이른바 '소암체'가 어디서 연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전에 대한 쉼없는 천착과 연습은 소암 서예세계의 밑바탕을 이룬다. 글씨가 마르면 다시 그 위에 글씨를 써나간 탓에 먹판이 되어버린 화선지는 흡사 추상화처럼 보인다. 소암은 그렇게 연습지가 수북이 쌓이면 그걸 들고나가 태우곤 했다.

'近來傳得安心法 萬壑松風枕上聞(근래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을 터득했더니 온갖 골짜기 바람이 베개 위로 들려오네)'. 소암이 써놓은 글귀중 하나다. 기념관엔 소암의 어록이 붙어있다. 평소 제자들에게 들려줬던 말이다. "자연은 모든 예술의 본이다. 그것은 자연 자체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하고 다층적인 의미체이기 때문이다." "서예엔 스승도 제자도 없다. 글씨 공부보다 마음 공부에 힘써라."

 전시실을 휘돌아 감는 소암의 작품은 새삼 글씨를 쓰는 과정이 곧 마음을 다스리는 일임을 일깨운다. 무릇 붓을 잡은 이들이라면 대가연하고, 남을 헐뜯고, 속임수를 쓰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그렇다. 내려긋는 한 획에 헛된 욕망을 떨쳐내고, 분노를 씻어낼 일이다.

기획전시실에선 지금 대학생 경서대회 입상작을 선보이고 있다. 청년 서예에 희망을 걸었던 소암의 뜻을 이어 기념사업회가 치르는 대회다. 관람객이 한달 1000명을 조금 웃돌고 있는 현실에서 경서대회만이 아니라 박물관의 특장을 살린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한자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만큼 소암기념관의 콘텐츠는 경쟁력이 높다. 서예는 문자적 조형미를 갖춘 느림의 예술이다. 뒤돌아볼 여유가 없는, 속도에 물린 어른들에겐 쉼터가 될 수 있다.

소암을 말하는 지역의 연구자가 많아져야 한다. 소암을 '지방의 서예가'로 가두자는 게 아니다. 제주서예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그 미래를 그려가기 위해서다. 소암기념관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라일보 2009.7 진선희기자

 

삼매봉...신비의 남극성(星) 볼 수 있는 곳 

 

관광도시 서귀포의 명소이자 일주도로를 따라 중문에서 서귀포로 진입할 땐 반드시 거쳐가는 관문역할을 한다. 도심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유원지이자 체육공원이어서 시민들이 늘상 찾는 곳이며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빠지지 않는 소문난 장소다.  

삼매봉은 세 개의 매화같이 아름다운 봉우리가 연달아 있어서 삼매봉 또는 삼미봉이라고 부른다 하며 일명 사모산이라고도 했다 한다. 오름의 모양새가 세 개의 아름다운 매화가 연달아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삼매봉, 이를 달리 삼미, 사모라고도 하고 있다.
풍수지리설상 주위의 학수바위는 학의 머리, 그 좌우의 능선은 학의 날개, 하논은 학이 알을 낳는 둥지, 하논을 둘러싸고 있는 삼매봉을 비롯한 주변의 능선은 학의 알을 집어먹으려는 뱀의 형상, 이 오름은 뱀의 꼬리에 해당하여 사미봉이라는 설도 있다.

체육공원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삼매봉 정상에는 남성정이란 이름의 팔각정이 서 있다. 근처에는 남극성을 조망할 수 있다는 남성대도 보이고 한녘 사면엔 TV 중계소도 눈에 들어온다. 때문에 굳이 산책로로 오르지 않더라도 중턱을 돌아 꼭대기에 이르는 순환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차로 오를 수도 있다. 산책로를 이용해 정상까지 오르는데 소요시간은 고작 10분 내외. 건강도 챙길겸 차보다는 두 발을 이용하자.

 

남성대란 수평선 저 멀리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실제 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줄여서 남극성 또는 노인성이라 부른다. 노인성은 남극 부근 하늘에 뜨는 밝은 별로서 거리 180광년, 원래는 붉은 별이 아니지만 두꺼운 지구 대기층에 의한 푸른 빛의 흡수로 말미암아 붉게 보인다고....

사람의 수명을 맡아보는 별이라 하여 이것을 보면 장생한다고 전해진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새벽녘 이 별을 보기 위해 삼매봉을 오르기도 한다.
흔히 남성대가 있는 주봉만을 삼매봉의 전부로 알기 쉬우나 이것은 실은 삼매봉이라는 커다란 산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여타의 등성마루가 이에 비해 언덕같이 낮은데다 파괴되거나 과수원이 들어서 뚜렷이 드러나 보이질 않을 뿐이다. 그 분화구는 주봉 북쪽에 있는 바깥 둘레의 지금 1,000여m에 이르는 대화구이며 야트막한 내부에 화구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논이 많았던 데서 하논이라 불리며 이남녘, 즉 주봉의 북사면 하단부를 일주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분화구 안으로 산체의 복판을 가로질러 하루에도 수천대의 차량이 왕래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가 진입하는 동, 서양쪽의 등성마루는 파괴돼 있고 특히 동쪽은 예전부터 심한 파괴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하논을 에워싸는 사방의 등성마루를 하논거제라 하고 그 동쪽 부분을 하논동거, 서쪽을 하논섯거제, 북쪽을 하논웃거제라 부른다. 보통 삼매봉이라 하면 남성대가 있는 주봉을 가리키는데 정확하게는 하논과 하논거제를 포함한 전체를 말하는 화산체이다. 오름정보:표고 153.6m, 비고 104m

  보보스제주 강은정

 

인간병기 주둔했던 자살특공기지 '삼매봉해안'

1945년 초반이 되면 제주에는 특수임무를 띤 일본군 병력이 상당수 주둔한다. 이 시기는 일본군이 제주도를 동시다발적으로 전쟁기지화 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중국대륙에서 관동군이 직접 제주로 이동하는가 하면 일본토에서도 대규모 병력이 직접 제주에 상륙한다.

그 가운데 이제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병력이 바로 일본군 특공부대다. 이들 병력은 나무로 만든 배에 폭약을 싣고 상륙하는 함정을 자살공격 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일본 해군의 특공부대는 1945년 2~3월에 접어들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서귀포시 삼매봉 해안가에 구멍처럼 숭숭 뚫린 일본군 특공진지. /사진=이승철기자 

 

서귀포시 서홍동 소재 삼매봉(三梅峰 ·표고 1백53.6m) 해안가. 이곳 절벽 하단부에는 시커먼 입구가 구멍처럼 숭숭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일본 해군이 자살특공정을 숨겨놓기 위해 인공적으로 갱도를 뚫어놓은 특공정기지다. 갱도는 화산쇄설성 퇴적층과 현무암층을 뚫고 만들었다.

 

이와 관련 일본 자료인 '사진집-인간병기 진양특별공격대'에는 격납호(格納壕)라 표기된 것을 볼 수 있다. 즉 이곳은 '진양정격납호'(震洋艇格納壕)로 구축된 것이다. 진양특별공격대는 나무합판으로 만든 배에 2백50kg 정도의 폭약을 싣고 상륙하는 함정을 향해 자살공격 하는 것이 주 임무로 알려져 있다.

▲특공진지 안쪽에서 입구를 바라본 풍경. 문섬이 가깝게 보인다.
삼매봉 해안에서 확인되는 갱도는 모두 12곳이다. 각각 15m 안팎의 거리를 두고 직선으로 나란히 뚫려 있다. 길이는 약 10m에서부터 최장 30m까지 이른다. 내부 폭은 3m에서 450cm까지 다양하다.

이곳 갱도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열 번째 갱도다. 이 갱도는 직선형으로 된 것 같지만 내부는 열 한번째 갱도와 연결돼 있다. 전체적인 구조가 h자 형으로 된 갱도인 것이다. 갱도 모양으로 볼 때 이곳은 어뢰정을 수리하고 조정하는 용도로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구조는 송악산해안의 자살특공정기지에서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어떤 부대가 주둔했을까. 아직까지 일본군 자살특공기지로만 알려져 있지 주둔부대의 실체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진집-인간병기 진양특별공격대'를 보면 삼매봉 해안에 주둔했던 부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관심을 모은다. 즉 이곳에는 제주 주둔 진양대 가운데 제119진양대가 주둔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나카(田中)부대로 불린 제119진양대는 총 1백87명으로 편제됐다. 1945년 3월30일 편성돼 같은 달 25일 진해경비부로 배속된 뒤 그해 4월9일 서귀포에 배치됐다. 자살특공정인 '진양'은 5형(五型) 26척이 배치됐던 것으로 나타난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삼매봉 해안에는 실제 일본해군의 자살특공부대인 진양대가 주둔했던 것이다. 이들은 직접 지귀도를 한바퀴 돌면서 실전에 대비한 연습에 나서기도 했다.

 

특공기지 건설은 제주도민 뿐 아니라 다른 지방 광산 광부들까지 강제 동원돼 거의 맨손으로 이뤄졌다. 다른 지방 광부들은 경북 봉화 다덕광산, 전남 광양의 사곡광산광부들로 알려졌다. 이들에게는 목괭이 등이 작업도구의 전부였다. 강제 징용자들은 30명 정도를 1개 소대로 모두 3개조로 구성, 3교대로 밤낮없이 일했다.

삼매봉 해안은 말 그대로 일제의 무모한 전쟁야욕 뿐 아니라 고통스런 강제노역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역사현장인 이곳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면서 날로 훼손되고 있다. 갱도 내부는 온통 폐스티로폼과 자갈 등으로 들어차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곳은 지난 2006년 정부가 처음으로 지정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에도 올라있지 않는 등 당국의 관심부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삼매봉 해안의 특공정기지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추가 등재 등 보존정비 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라일보 2008.4 특별취재팀 064-750-2231 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단체 여행객인 듯한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있었으며 이곳에서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도 촬영했다는 팻말도 있었다. 외돌개를 찍기 적당한 장소에 만들어 놓은 난간은 사람들로 붐비고 고양이들도 덩달아 왔다 갔다 했다. 1132국도로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에 계단이 하나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온갖 들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기다림을 지나 그리움은 돌이 되어버리고 뭍에서 아슬아슬하게 홀로 외롭게 바다에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외돌개 남주의 해금강 서귀포 칠십리 해안가를 둘러싼 기암절벽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20m높이의 기둥 바위인 외돌개입니다.

 

 

서귀포 시내에서 약 2㎞쯤 서쪽에 삼매봉이 있고 그 산자락의 수려한 해안가에 우뚝 서 있는 외돌개는 약 150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섬의 모습을 바꿔놓을 때 생성되었습니다.
꼭대기에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뭍과 떨어져 바다 가운데 외롭게 서있다 하여 외돌개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된 할머니의 애절한 전설이 깃들여 있어 `할망바위`라고도 불립니다. 바위끝에 사람의 머리처럼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고 그 왼편으로 할머니의 이마와 깊고 슬픈 눈망울과 콧등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고 쩍 벌어진 입모양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외치며 찾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외돌개 바로 밑에는 물위에 떠있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이는 할머니가 돌로 변한 후 할아버지의 시신이 떠올라 돌이 된것이라 합니다.
뒤로는 선녀바위라는 기암절벽이 돌이 되어버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안스러운듯 병풍처럼 펼쳐서 감싸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한 설화에 의하면 고려말 최영 장군이 제주도를 강점했던 목호(牧胡)의 난을 토벌할 때 외돌개 뒤에 있는 범섬이 최후의 격전장이 였는데 전술상 이 외돌개를 장대한 장수로 치장시켜 놓았습니다.


그러자 목호들이 이를 대장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여 모두 자결하였다합니다. 그래서 이 외돌개를 `장군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지고 있습니다. 외돌개로 가는 왼쪽 길목에 소머리바위라고 하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위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주변에는 천연적인 낚시포인트로서 휴식과 레저를 겸한 유원지가 되고 있습니다.

 

외돌개 뒤에 보이는 범섬에 석양이 어릴 때의 경관은 더없이 장엄합니다. 서귀포 체류시 아침이나 저녁에 삼매봉과 같이 산책코스로 좋습니다. 관련지식 약 150만 년전 화산이 폭발할 때 생성되었습니다.

외돌개는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강한 암석만 남아 있은 것으로 시스텍이라 합니다. 인근 문섬및범섬천연보호구역은 천연기념물 제421호(2000. 7. 18)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주도 관광정보/오마이뉴스 2007 윤재훈

 

서귀포항 남쪽 1.3㎞ 해상 문섬

서귀포시 삼매봉 아래의 외돌개에서 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떠 있는 섬이 문섬이다. 해발 73m, 면적 96.833㎡의 무인도이다. 문섬 수중에는 난류가 흐르고 있어 사시사철 아열대성 어류들이 서식하며 63종의 각종 희귀 산호들이 자라고 있어 국내 최고의 수중생태계의 보고이다.

 

섬 안에는 담팔수나무 거목 등의 난대상록수가 울창하여, 제주도 지정 문화재기념물 제 45호로 보호되고 있다. 문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연도 어느 섬 못지 않게 흥미롭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느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하다가 그만 활집으로 옥황상제의 배를 건드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에 크게 노한 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졌는데 그 조각이 흩어져서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과 범섬이 되었고 뽑힌 자리는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문섬은 참돔, 돌돔, 벵에돔(흑돔), 벤자리 등의 어종이 많이 잡히는 5월~7월, 9월~11월 사이에 낚시하기 좋다. 그리고 동북쪽 바다에는 새끼섬인 의탈섬이 자리잡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