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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교래리 성판악 탐라계곡 한라산

by 구석구석 2008.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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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조천읍 성판악~한라산

 

섬 중심에 우뚝 솟은 한라산은 방패를 엎어놓은 듯 완만하게 바다로 흘러든다. 사람들은 섬에 살았지만 바다보다 산에 더 의지했다. 목축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삶의 텃밭을 일궜다. 이들은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제주도”라 말한다. 한라산은 제주도의 전부다. 한라산을 오른다, 아니 제주도를 오른다.

 

제주도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이라는 신(神)이 있다. 어찌나 몸집이 큰지 빨래를 할 때면 한 쪽 다리는 마라도에, 또 다른 다리는 관철섬에 두었단다.

성산 일출봉을 빨래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삼았을 정도란다. 이 할머니가 500명의 아들과 함께 생활하던 거처가 바로 한라산이다. 휴전선 이남에서 가장 높은 해발 1,950m의 산, 그럼에도 부드러운(?) 산세가 거신(巨神)의 안식처로 손색없어 보인다.

 

한라산 등산 코스는 크게 네 가지다. 제주도의 각 방향에서 오르게 되는데 성판악 코스(동), 관음사 코스(북), 영실 코스(남), 어리목 코스(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로는 정상인 백록담까지 갈 수 있다.

영실 코스와 어리목 코스를 이용하면 1700고지(윗세오름)까지만 갈 수 있다. 정상 등정을 계획한 등산객은 대부분 성판악 코스로 올라가 관음사 코스로 하산한다. 성판악 코스가 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가지고 가면 아침에 관음사매표소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택시로 성판악매표소까지 간다.

오전 7시 30분. 성판악매표소 앞 매점에서 요깃거리를 준비한다. ‘진달래대피소 매점에서는 물을 팔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충분히 준비하거나 사라왁약수터에서 물을 담으세요.’ 매표소 앞 안내 문구가 물이 귀함을 친절히 안내해 준다.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 등반 코스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길다. 이곳에서 백록담 동릉 정상까지는 총 9.6km. 올라가는 데만 4시간 30분이 걸린다. 왕복 8~9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게다가 낮 12시 30분까지 진달래대피소(7.4km 지점)를 통과해야 하고 오후 2시에는 누구든 하산을 시작해야 한다. 안전을 위한 세이프가드인 셈이다. 

 

수목원 산책로 같은 성판악 등산로
이른 봄, 한라산은 여물지 않은 초록빛을 띠었다. 길은 시작부터 울창한 숲길이다. 아침 햇살이 숲을 뚫고 비집고 들어온다. 나무 사이에서 반짝거리는 햇빛이 보기 좋다.

‘솨아, 솨아악~’ 나무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가는 바람소리가 파도소리 같다. 진달래대피소까지는 경사가 완만하다. 침목으로 만든 트레일과 자갈길, 흙길이 잘 나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온 임형태 씨(31)는 15개월 된 아들 현성이를 업고 걷는다.

“마치 수목원에 온 것 같아요. 이 녀석 몸무게가 11kg인데 아직까지는 괜찮네요. 진달래밭 지나면 경사가 급해진다는데, 괜찮겠죠?” 서울에서 온 이영숙 씨(39)는 “웨이트트레이닝하는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체력을 뽐낸다. 그만큼 오르기가 쉽다.

그런데 좀 지루하다. 계곡도 기암절벽도 없고, 시야도 막혔으니 말이다. 해발 800m 지점에 삼나무 길이 나타난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잡목과 대조된 모습이 신선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다. 또다시 뒤엉킨 잡목이 눈앞에 깔린다.

 

‘고목의 신비로움이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시간은 딱 두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발점에서 5.4km 지점, 사라왁약수터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들이켜니 그나마 지루함이 조금 사라진다. 이곳을 지나면 물을 구할 수 없다. 수통에 물 채우는 것을 잊지 말자. 해발 1,500m인 진달래밭에 이르니 비로소 시야가 탁 트인다. 이제야 산에 온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5월의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5월 중순이 되면 이곳에는 붉은 진달래가 지천으로 핀다. 조금 빨리 온 것이 못내 아쉽다.

 

▲성판악코스로 한라산 정상등반을 하다보면 오름 중간쯤에 성널폭포가 있다. 옛날에는 백중날 이 폭포에서 물을 맞으면 신경통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에게는 통제가 되고 있다. 한라일보 강경민기자 

 

진달래밭에 진달래대피소가 있다. 콘크리트 침상을 갖춘 무인 대피소다. 그 옆에 매점이 있다. 김밥, 컵라면, 삶은 달걀이 주 메뉴다. 아침을 거른 사람은 대피소 앞의 나무 데크에 앉아 요기를 한다. 삶은 달걀을 주고받으면서 인사도 건네고 말이다. 대피소 주변은 평원이다.

 

털썩 주저앉아 달걀을 까 먹으니 목장에 피크닉 나온 기분이다. “이제부터 좀 힘들어집니다. 경사도 심하고. 쉬엄쉬엄 올라가세요.” 매점 아저씨의 말에 살짝 긴장된다. 아니나 다를까, 대피소를 지나기가 무섭게 경사가 급해진다. 길 폭도 좁아져 혼자 겨우 지나갈 정도다.

 

말수가 적어지는 대신,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군인이 행군하듯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며 무작정 걷는다. 힘들수록 ‘왜 산을 오르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횟수가 늘어난다.

 

구상나무 군락을 지나니 멀리 정상이 보인다. 방패를 엎어놓은 모양새다. 트레일이 원을 그리듯 정상까지 뻗어 있다. ‘해발 1,800m’라는 안내판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이제 150m만 가면 ‘남한 최고봉’에 오르는 것이다. 남은 150m 구간은 성판악 코스 중 가장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트레일 옆으로 초원이 펼쳐진다. 발아래로 여인의 젖가슴처럼 봉긋한 오름이 한라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트레일을 벗어나 저 넓은 초원으로 당장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래서 트레일에 난간을 설치해둔 것일까. 정상에 다가갈수록 수십만 년 전 불을 토했던 백록담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검은 바위가 백록담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군데군데 솟아 있다. 출발한 지 4시간 30분 만에 드디어 백록담 동릉 정상에 섰다. ‘한라’라는 이름처럼 손을 뻗으면 은하수를 잡아끌 수 있을 것 같은 높이다.

 

그러고 보니 한라산은 이름도 많다. 주봉의 형태가 솥뚜껑에 물을 담아놓은 것 같다고 해 ‘부악(釜岳)’, 산에서 오를 때 보이는 하늘 모양새가 둥글다고 해 ‘원산(圓山)’, 봉우리마다 평평하다고 해 ‘두무악(頭無岳)’, 중국 <사기>에 나오는 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과 비슷하다고 해 ‘영주산’ 등.

어디 그뿐인가. 한라산은 제주 사람에겐 ‘부라산’, ‘혈망봉’, ‘여장군’ 등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제주 사람에게 한라산은 다양한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리라. 정상에서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험준한 고봉 대신 작은 오름이 한라산을 호위하고 있다. 한라산은 마치 어머니처럼 그 오름을 보듬었다. 한라산 능선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있다. 왜 한라산이 제주도의 전부라고 말하는지 알겠다.

한라산을 빼면 바다만 남을 것 같다. 백록담은 한라산의 산신이 이곳에서 자신이 타고 다니던 사슴에게 물을 먹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설문대할망이 잠시 쉬려고 한라산에 누웠는데 봉우리가 솟아 있어 평평하게 하려고 손바닥으로 탁 쳤더니 백록담이 생겼단다. 둘레 3km, 깊이 115m의 거대한 분화구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느라 분주하다. 바람이 매섭다. 바람은 마치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분화구의 거친 호흡 같다.

 

웅장한 북벽과 탐라계곡이 장관, 관음사 등산로
동릉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관음사 코스로 하산한다. 관음사매표소에서 동릉 정상까지는 8.7km로 오르는 데만 다섯 시간이 걸린다. 내려가는 데도 네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성판악 코스보다 길이는 짧지만 경사가 급하고 길이 험해 시간은 더 걸린다. 동북릉 정상 부근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발길이 조심스럽다. 파란 하늘을 향해 뻗은 하얀 주목이 인상 깊다.

천천히 내려가니 성판악에서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웅장하고 거친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한라산 북벽이다. 햇빛을 받아 검게 빛나는 모양새가 남성답다. 왕관릉(해발 1,700m)을 지나고 용진각대피소(해발 1,500m)에 도착할 때까지 북벽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거친 이미지로, 때로는 신령스러운 이미지로, 각도가 바뀔 때마다 그 모습이 변한다. 북벽을 보고 걸으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용진각대피소에서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다.

용진각대피소를 지나면 ‘약수터’가 나온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켠다. 이름처럼 뾰족한 삼각봉을 지나고 소나무와 조릿대가 무성한 개미목도 지난다. 두 시간을 걸었다. 북벽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질 때쯤 넓은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탐라계곡이다.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곳.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장관을 이루는 관음사 코스의 자랑이다. 봄에는 바위와 고목에 잔뜩 낀 푸른 이끼가 볼 만하다. 게다가 나무에 돋은 연둣빛 새순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니 산수화가 따로 없다.

 

계곡 옆에는 노란 야생화가 꽃길을 만들어놓았다. 한 시간쯤 걸으니 ‘구린굴’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옆을 보니 이끼 낀 돌멩이와 바위가 널려 있고 그 뒤로 커다란 구멍이 보인다.

구린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해발 680m)에 위치한 용암동굴이다. 구린굴을 지나 조금 내려가니 또다시 작은 계곡이 나온다. 물은 비록 없지만 이끼 낀 바위가 원시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한라산 계곡은 물이 없는 건천이다. 화산회토로 이뤄져 빗물이 땅으로 쉽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계곡은 길과 나란히 달린다. 길은 평탄하다. 참나무 숲이 매표소 입구까지 안내한다.

  

▶ Course
백록담까지 가려면 성판악 코스로 올라 관음사 코스로 하산한다. 차를 가지고 갔다면 관음사매표소에 세워두자. 성판악매표소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요금은 1만5000원. 윗세오름까지 가려면 영실 등산로로 올라 어리목 등산로로 내려온다. 차를 두고 이동하기가 번거롭다거나 아이와 함께라면 영실 등산로를 왕복하는 것이 좋다.
▶ Food & Water
성판악 코스의 진달래대피소에 매점이 있다. 컵라면, 김밥, 삶은 달걀 등을 판다. 하지만 물은 팔지 않으니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관음사 코스에는 매점이 없다. 각 코스 매표소 부근 가게에서 준비할 것. 성판악 코스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사라왁약수터. 관음사 코스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용진각대피소에 닿기 전 작은 계곡의 약수터다.
▶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성판악지소 064-725-9950  |  관음사안내소 064-756-9950

 

영실 등산로
봄 철쭉, 여름 신록,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을 모두 볼 수 있는 코스다. 매표소에서 참나무와 소나무 숲길이 20분 정도 이어지다가 작은 계곡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해발 1400~1600고지에 울창한 숲과 어울려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산재한다. 오백나한, 오백장군이라 불리는 이들 바위는 영주십경의 하나로 꼽힌다.
▒ Infomation
영실 등산로
총 3.7km(왕복 3시간) : 영실휴게소→병풍바위(1시간)→윗세오름대피소(30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영실지소 064-747-9950

 

어리목 등산로
윗세오름 정상까지 4.7km로 왕복 4시간가량 걸린다. 어리목광장을 출발해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가면 사제비동산을 지나 만세동산에 오르게 된다. 만세동산은 예전에 말과 소를 방목하던 들판이다. 만세동산 허리에 오르면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만세동산 오른쪽에는 윗세오름의 세 봉우리가, 왼쪽으로는 장구목고원이 펼쳐진다. 윗세오름은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뜻으로 백록담에 가까운 것부터 붉은오름, 누운오름, 새끼오름이다.
▒ Infomation
어리목 등산로 총 4.7km(왕복 4시간) : 어리목광장→사제비동산(1시간)→만세동산(30분)→윗세오름대피소(30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어리목사무소 064-713-9950~2

 

  editor 김성환 photographer 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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