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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괴산 19번국도-전법마을

by 구석구석 2008.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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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전법마을

 

 

볕이 뜨겁습니다. 시원한 그늘이 절로 생각납니다. 충북 괴산군 전법마을을 찾아갑니다. 마을 앞에는 20여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 채 볕을 막고 서 있습니다.
증평에서 괴산까지 이어진 34번 국도를 타고 가면 전법마을에 닿습니다. 짙은 녹음을 품은 느티나무가 외지에서 온 객을 반깁니다. 햇볕을 피해 얼른 나무 그늘로 뛰어듭니다.

붉게 상기됐던 얼굴이, 피부가 차츰 제 색깔로 돌아옵니다. 이마와 등줄기에 맺혔던 땀방울도 금세 증발합니다. 시원합니다. 살 것 같습니다. 달콤한 수박 한 덩어리가 머릿속에 둥실 떠오릅니다.

 괴산은 ‘고목(古木)’의 고장이라 불립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가 이 마을 저 마을에 흩어져 있습니다. 느티나무도 많습니다. 괴산(槐山)이라는 지명도 바로 느티나무 괴(槐)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전법마을 느티나무가 제법 이름난 이유는 20여 그루의 나무가 군락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느티나무 숲이죠.

숲속에는 이미 혼자가 아닙니다. 논에서, 고추밭에서, 옥수수밭에서 일하던 아저씨, 아줌마들이 잠시 피곤을 덜기 위해 그늘 아래 모여 앉았습니다. 마침 몇몇 어르신도 숲으로 마을을 나왔나 봅니다. 대체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이 나무들을 심었는지 물어보며 슬쩍 무리에 끼어듭니다.

“마을 앞이 확 트였잖아유. 그래서 액운이 잘 들어온다고 생각했나 봐유. 나무를 심어 앞을 막은 거유. 문을 만든 거지유, 문을. 옛날에 이 마을은 부자 동네였어유. 게다가 법도 있는 선비가 많이 산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전법(典法)’이유. 가난한 외지 사람이 마을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곤 했다는데 그래서 마을을 감추려고 나무를 심었다고도 그러대유. 어쨌든 가운데 저 나무가 어미목인데 350년 됐시유.”
이곳이 고향인 지달영 이장(48)의 설명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무와 숲이 마을의 화를 막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년마다 정월 대보름에 가장 오래된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빕니다.

“옛날 어른들은 나무를 만지지도 못하게 혔어. 언젠가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집을 지은 사람이 있었어. 근데 얼마 안 있다가 그 집에 불이 난 거여. 두 집이나 그랬다니께. 원래 저 마을 앞 개천까지 숲이었어. 그런데 20년 전인가, 논 만든다고 꽁지를 짤라버린겨. 아, 그랬더니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턱턱 쓰러지고 죽어 나갔다니께.”    

 

 김순분 할머니(78)는 아직도 당시의 일이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웃지 못할 일도 생깁니다. 작년 여름, 나무 한 그루가 부러졌습니다. 오래된 탓에 무성한 잎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죠.

숲 한가운데 나무가 쓰러져 있는데 누구도 치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을 이장이 주민들을 전부 숲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무를 만지게 했답니다. 공평하게 말이죠. 돼지 잡고 막걸리 받아 거하게 고사를 지낸 뒤에야 ‘잔해’를 치울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잘 대해주면 숲은 마을 사람에게 좋은 말벗이 되고, 재미있는 놀이터도 되어 줍니다. 윤숙규 할머니(76)는 옛날 나뭇가지에 새끼를 꼬아 그네를 만들어 타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때는 놀 게 그네 타는 거밖에 없었어. 줄이 끊어지면 다시 매고, 또 매고. 타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니까.” 한여름에는 나무에 소를 매놓기도 했답니다. “소가 시원하라고 그랬지. 그때는 퇴비장도 있었고, 쇠똥 굴러댕겨 구질구질했지만 시원해서 좋았어.” 윤 할머니 이야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박번 할아버지(71)는 농사일이 힘들 때 숲을 찾습니다. “요즘 농사 힘들어유. 다른 건 다 오르는데 쌀값, 고추 값은 거꾸로 떨어지잖유. 농사짓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니까유. 심난할 때면 여기 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가고 그래유. 숲에 오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져유.”

외지로 나간 사람이 다시 고향을 찾아오면 가장 먼저 “숲은 어뗘?” 하고 물을 정도로 주민들이 숲에 쏟는 애정은 남다릅니다. 군청에서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준다고 해도 주민들은 싫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무와 숲을 군청에 빼앗기는 것 같아서입니다. 스스로 나무와 숲을 가꾸고 관리하는 게 좋다는군요.

숲을 거닙니다. 아름드리 기둥 아래 초록의 이끼가 곱게 피었습니다. 가지들이 마치 바람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듯 사방으로 뻗었습니다. 초록의 잎이 하늘을 가리고, 햇빛을 막고…. 벤치에 앉아 더위를 쫓습니다. 부침개 먹고 가라고 손목을 잡아끄는 훈훈한 인심이 있어 더욱 시원합니다.

 

 

전법마을의 느티나무 숲으로 부족하다면 공림사에 들러볼까요. 전법마을에서 19번, 37번 국도를 차례로 타고 청천면으로 가면 공림사가 있습니다. 신라 때 창건된(873년) 고찰입니다.

  editor 김성환, photographer 장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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