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바다는, 다른 동해안의 바다와 풍경이 사뭇 다르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바다는 온통 뜨겁게 끓어 넘치고 해안은 힘찬 파도의 거친 갈기가 남긴 포말로 가득하다. 속초며 강릉 일대의 바다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라면, 포항의 바다는 근육질의 서사적 분위기에 가깝다.
포항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포항 북쪽에, 또 하나는 포항 남쪽에. 북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월포해수욕장에서 칠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이고, 남쪽의 드라이브 코스는 임곡항에서 호미곶과 구룡포를 지나서 장기면 양포항까지 이어진다. 포항의 해안도로 풍경은, 일찌감치 관광지로 다듬어진 속초나 강릉과는 다르다. 강원도 해안도로는 바다와 마을 틈을 비집고 길이 이어지지만, 포항에서는 길이 마을 뒤쪽으로 나 있는 게 보통이다. 바다와 마을 사이에도 길이 있긴 한데, 그건 이동을 위한 도로라기보다는 생활도로나 골목길에 가깝다. 포항 해안을 드라이브하는 매력은 바로 이런 길을 찾아가는 데 있다.
속초나 강릉을 비롯한 이름난 강원 동해안 도시의 해안도로가 마을 안을 헤집고 바닷가에 딱 붙어 지나가게 된 건 외지인, 그러니까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곳일수록 횟집이 즐비하고, 특산물 상점이 넘쳐난다. 그런데 손바닥보다 더 작은 생선을 말리고 해초를 따거나 더러는 보리밭을 경작하며 사는 포항 바닷가 작은 마을은, 외지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마을 안쪽을 길로 내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바다에 기대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진짜 어촌마을의 풍경이 거기 남아 있는 건 그래서다.
드라이브 코스뿐만 아니다. 포항에는 걷기에 좋은 해안 길도 있다. 동해안 걷기 길인 해파랑길의 포항구간 하이라이트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2코스’다. 그중에서도 입암리에서 마산리까지 이어지는 1㎞ 남짓은 ‘바다를 끼고 걷는 최고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한쪽으로는 거센 파도의 바다를, 다른 쪽으로는 기기묘묘한 기암을 끼고서 바다 위로 해상 덱 구간이 이어진다. 발밑으로 포말을 일으키며 들고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 길을 걷노라면 온몸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다. 해파랑길의 거의 모든 구간이 동해안을 끼고 이어지고, 그중에서 바다를 따라 걷는 운치 있는 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입암리에서 마산리까지의 이 구간은 전체 해파랑길 구간 중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이 길은 왕복해서 느릿느릿 걸어도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러니 이 길을 빼놓을 이유도, 핑계도 없다.
월포해수욕장
백사장 길이가 1.2km, 폭 70m 총 62,810m²(19,000평)의 해수욕장으로 물이 맑으며 수심이 얕고 민박이 가능하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되는 곳으로 동물성 플랑크톤이 많아 꽁치, 놀래미 등의 바다고기가 풍부하여 월포방파제 및 갯바위 낚시터로 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으며 아침에 동해일출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른 아침에 월포방파제에서는 금방 잡아온 횟감의 경매현장을 볼 수 있고 해수욕을 하면서 바다 조개를 잡을 수 있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당하다.
조용한 분위기와 깨끗한 물로 점차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주변에는 대한적십자사 청소년수련관과 POSCO(주) 월포수련관이 있다. 또한 남쪽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2㎞내려가면 이가리해안의 솔밭과 암석으로 자연발생유원지가 있어 해수욕 과 삼림욕을 함께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이가리해변
포항시 청하면 이가리 해변에는 ‘이가리 닻 전망대’가 있다. 언뜻 보면 ‘아가리’처럼 잘못 읽게 되는데, 자세히 보면 ‘이가리(二加里)’다. 이가리는 마을 이름. 김(金)씨와 도(都)씨, 두 성씨가 합쳐서 이룬 마을이라 해서 이런 지명이 붙었다. 바다로 밀고 나간 전망대는 위에서 보면 닻 모양이다.
이가리 닻 전망대는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안에다 우후죽순 세우고 있는 해안전망대 ‘스카이워크’와 사실 다를 게 없다. 요즘은 출렁다리만큼 흔해진 게 스카이워크다. 그럼에도 이가리 닻 전망대가 참신하게 느껴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닻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것, 닻 끝의 화살표가 독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카이워크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것. 비슷비슷한 시설이라 해도 의미와 메시지를 더해 조금만 다르게 만든다면 주목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가리 닻 전망대 주변 해안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거북바위는 ‘뭐 그렇다니 그렇다고 해두자’고 넘겨야 하는 정도. 저게 거북이라면 해안의 바위 하나하나에 다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하다. 거북바위 위쪽에는 ‘조경대(釣鯨臺)’란 바위벼랑이 있다. 조선 인조 때 여기로 귀양 왔다는 선비가 이름을 붙였고,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현감으로 부임해 머무는 동안 자주 찾아가 그림을 그렸다는 ‘족보 있는 명승’이지만, 지형이 변했는지 지금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다.
이가리 남쪽 오도리에도 바다 전망대가 있다. 해안 벼랑 사이에 숨겨 놓은 범선의 뱃머리 형상의 ‘해오름 전망대’다. ‘해오름’이란 지난 2016년 포항~울산 고속도로 완전개통을 계기로 포항, 울산, 경주 3개 도시가 맺은 동맹의 이름. 이 이름을 따서 전망대를 지었다. 범선을 닮은 형태 때문인지 전망대에 오르면 마치 항해를 하는 느낌이다. 해오름 전망대는 목제 덱 길을 걸어서 찾아가야 한다. 길옆에 차 한 대 겨우 댈 수 있는 공간이 있긴 하지만, 주차금지 구역이다. 칠포1리에서 오도1리 사이에 900m 남짓 길이의 목제 덱이 있다. 동해안 전체를 잇는 해파랑길의 한 구간이자, 포항의 영일만 북파랑길이기도 하다.
오도항
이가리 남쪽 오도항 주변에 또 다른 전망대가 있다. 오도리 마을 뒷산 ‘묵은봉’이다. 해발 126.4m. 내륙에 있었다면 ‘언덕’ 수준이지만, 바닷가라 존재감이 뚜렷하다. 묵은봉은 그냥 산이 아니다. 묵은봉 아래에 ‘사방기념공원’이 있다. ‘사방(沙防)’이란 산이나 강, 바닷가에서 토사가 비나 바람에 씻겨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을 말한다.
오도리 묵은봉을 중심으로 한 오도리 일대의 산지는 본래 부스러지는 토질로 나무 한 그루 없는, 온통 헐벗은 황토지대였다. 오도리 일대는 국제선 항로상에 있어 비행기에서 바로 내려다보였는데, 비행기를 타고 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황무지 같은 모습을 보고는 대규모 사방사업 시행을 지시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진행된 사방사업은 규모도 그렇지만, 거기에 바친 어마어마한 노동력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연인원 360만 명이 묵은봉 일대에 2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것도 그냥 심은 게 아니라 광주리에다 흙을 담아 산 위에다 뿌린 뒤에 심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방사업이 뭐 이처럼 대단하게 기념할 만한 일일까 싶어 사방기념공원이 좀 뜬금없다 느꼈는데, 전시실에서 흙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산을 오르는 아낙네의 행렬 동영상을 보고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때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노동을 바쳐서 푸른 숲을 일궈냈던 마을 사람들이라면, 어찌 그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사실 요즘 묵은봉을 찾는 관광객들은 열에 열 모두 TV 드라마의 자취에 끌려서 찾아온 이들이다. 묵은봉 정상에는 난데없는 2.5t짜리 어선이 한 척 덜렁 놓여 있는데, 이게 인기 TV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등장했던 공간이란다. 사람들이 임도나 계단을 걸어 헉헉거리며 묵은봉 정상까지 오르는 이유다.
묵은봉 정상의 어선 옆에 서면 뒤로는 첩첩한 능선의 겨울 숲이 펼쳐지고 앞으로는 청진리 항구에서 조사리 너머의 곶까지 포말로 가득한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저 멀리 희미하지만 호미곶까지 바라다보인다. 사방기념공원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TV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해도, 묵은봉에는 올라가 보길 권한다. 너른 바다의 수평선과 바닷가 마을의 풍경만으로도, 거기까지 올라가 볼 가치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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