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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대구광역시

대구 79번국지도-아영다원 파계사계곡 부인사

by 구석구석 2007.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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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파계사 밑자락에 위치한 아영다원

파계사 네거리 가기 전 오르막이 시작되는 서촌초교 바로 오른쪽으로 300m쯤 들어가면 다원이 나온다.

녹음이 짙은 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진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산바람을 쐬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다원주위 포도·복숭아·사과나무에는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도시의 소음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평화롭다. 여느 전원주택 같다. 정원에 자연석으로 쌓아올려 만든 화단에는 벌, 나비 등 곤충들이 날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기 그지없다. 요즘 보기 힘든 배추흰나비도 눈에 띈다. 혼자인 검은 삽사리 한 마리가 그 뒤를 쫓아다닌다.

원목에다 흰색을 더해 심플하게 꾸민 건물내부는 깨끗하면서도 정감이 간다. 아이보리색 커튼을 곱게 드리운 창가에는 다기, 화분 등이 놓여 있다. 조명도 자극을 피하기 위해 간접조명으로 했다. 전통다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가재도구 등은 없다. 편안한 가운데 쉴 공간을 강조하는 주인 정미호씨의 고집 때문이다. 탁자마다 화병이 놓여 있는데 장식이 다르다. 그냥 꽃잎을 띄운 것이 있는가 하면 포도나무를 꺾어다 놓은 것도 있다. 중앙 긴 탁자 위에는 차에 관한 책에서부터 사진책, 잡지 등이 놓여 있어 심심하면 가져다 볼 수 있게 해놨다.

창가에 앉아 하늘, 구름, 푸르름이 더해가는 수목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잊었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차와 음악, 여기에 정다운 이가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 우전, 세작 등 녹차와 중국차를 비롯해 허브, 한방차, 그리고 직접 만든 매실, 계피 등 다양한 차가 준비돼 있다. 차만 마시다 입이 심심하면 다식대신 주는 밤과자도 맛이 있다. 입구 한켠에는 다기를 구비해두고 필요한 분에게 팔기도 한다. 만약 차 마시는 법을 모르면 정씨가 친절히 가르쳐준다. 문의:053)983-6672.
자료-대구매일 최재수 기자

 

팔공산 파계사 진동루 바로 옆에 있는 파계전통찻집
출입면만 황토블럭으로 쌓고 다른 벽면은 황토모르타르로 바르기만 한것 같았습니다.

 

파계사는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 왕사가 창건한 절로 인근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다. 계율을 따라 수행하는 납자들의 도량이니 그럴 리 없건만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중생들은 ‘파계(破戒)’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파계는 ‘잡을 파(把), 시내 계(溪)’의 파계니, 아홉 갈래나 되는, 절 좌우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땅의 기운이 흘러나가는 것을 방비한다는 의미다. 진동루(鎭洞樓)라는 이름 역시 골짜기'동(洞)'의 지기를 눌러 준다'진(鎭)'는 뜻을 담고 있다. 누각 아래로 보이는 인공 못 은 바로 물줄기를 따라 흘러나온 기를 모으는 곳인 셈이다.

 

일주문을 지나 절집으로 오르는 산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산비탈에 우거진 소나무와 잡목 숲 사이로 음력 동짓달의 햇살이 시나브로 내려앉다가 사라지곤 한다. 진동루 앞 맨흙의 주차장엔 적지 않은 수효의 여러 종류의 차량들이 들어차 있었지만, 절집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팔공산 기슭 경사면에 천연석으로 지은 축대 위에 전각을 세웠다(좌) 진동루/장호철

진동루 앞 주차장 한가운데 서 있는 수령 250년의 키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석축 위마다 가지를 벋고 선 나무와 전각들이 연출하는 조화가 무던하기 때문이다. 상당한 규모의 이층 누각과 범종루 등이 높다랗게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는데도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 듯하다.

 

절은 조선조 제19대 임금인 영조와 인연이 깊다. 영조의 부왕인 숙종이 숭례문 근처에서 청룡이 승천하는 꿈을 꾸고 난 다음 날 예의 장소에서 한 승려를 만나니 이분이 파계사의 영원선사다. 숙종은 선사에게 아들을 얻고자 백일기도를 부탁했고 후에 숙빈 최씨가 영조를 낳는다. 이에 숙종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리고 파계사에 인근 40여 리의 조세권을 준다. 

 

그러나 현응은 이를 물리치고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게 하여 달라고 청원한다. 현응은 경내에 기영각(祈永閣)을 짓고 선조·숙종·덕종·영조 네 임금의 위패를 모심으로써 지방 유생들의 행패를 막고 왕실 원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910년 국권강탈로 위패는 서울로 옮겨갔고, 지금은 탱화만 걸려 있다. 이 전각은 숙종·영조·정조의 어필을 보관해 ‘어필각(御筆閣)’이라고도 불린다.

 

기영각과 원통전/장호철

성전암 법당에 걸린, 영조가 열한 살에 썼다는 ‘현응전(玄應殿)’ 현판과 1979년 원통전의 관음보살상을 개금(改金, 금칠을 다시 하는 것)할 때 불상 안에서 나온 영조의 도포 등이 그런 역사적 사실을 증빙한다. 도포와 함께 한지 두루마리에 적힌 발원문에 따르면 1740년(영조 16) 12월에 대법당을 개금하고 불상과 나한을 중수하였으며, 영조가 탱불 일천 불을 희사하여 왕실의 원당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100여 평에 이르는 2층 누각인 진동루를 지나면 원통전이다. 원통전은 파계사의 중심 전각으로 좌우, 앞의 설선당과 적묵당, 그리고 진동루에 둘러싸여 ‘ㅁ’자 형의 안온한 공간을 여미고 있다. 이런 공간 구성으로 파계사는 내부 공간을 외부인으로부터 차단하면서 최소한의 수행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묵적당의 풍경과 하마비

'원통'이란 주원융통(周圓融通), 즉 '진리는 두루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니, 원통전은 곧 관음전의 다른 이름이다. 이 맞배지붕의 전각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씩이어서 그리 크지 않은 전각인데도 날렵한 느낌보다는 통통한 양감으로 다가온다. 원통전에는 은해사 백흥암의 수미단(須彌壇)과 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넣은 불단 위에 보물 제992호 목조 관음보살좌상을 모시고 있다.

 

산등성이에 깃든 절집이어서일까. 대부분의 전각들은 돌축대 위에 올라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손대지 않은 돌의 수더분한 결과 맵시가 정겨웠다. 적묵당 뒤편 석축 아래 목련 꽃눈이 아련하였다. 1월 초순, 소한이니 봄은 아직 멀다. 그런데도 뜬금없이 그게 내일 모레면 성큼 다가올 봄의 조짐처럼 마음에 닿아온다. 

 

아홉 물줄기를 모은 파계사의 인공 못과 멀리보이는 팔공산

목련 꽃망울 너머로 벽돌로 쌓은 굴뚝과 그 너머 풍경이 연초록으로 다가왔다. 눈높이에서 묵적당의 풍경에 낀 푸른 녹과 날렵한 물고기가 바람에 흔들렸다. 하늘은 깨어질 듯 명징한 청남빛. 오랜만에 돌아온 동네 거리를 둘러보는 건달처럼 나는 경내를 두어 바퀴 돈 주마간산의 절구경을 마치고 휘적휘적 절 아래 계곡을 굽어보며 하산한다.  자료 - 오마이뉴스 2008 장호철

 

신무동 356번지 부인사 (符仁寺) 053-982-5006

동화사에서 팔공산 일주도로로 해서 수태골 방향으로 가면 부인사와 파계사가 잇달아 나타나는데, 도로 오르쪽에 큰 돌로 세워 놓은 부인사 이정표를 보고 길을 오르면 포도밭과 약수터가 좌우로 펼쳐지고 이어서 부인사 주차장으로 가게 된다. 주차장은 비교적 공간이 넉넉하며, 승용차로 절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다.  

 

대구의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부인사는 이 지역의 대표적 명찰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구역상 소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5번지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의 부인사 연혁은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고려 말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사는 오랫동안 거찰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후기인 1203년(고려 신종 6) 무렵에 이르러 부인사에서는 큰 정치적 사건이 발생한다. 보통 "부인사 승도란(僧徒亂)"으로 부르는 사건인데, 이 사건은 부인사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최씨 무신정권에 반발한 반란이었다.

 

이미 1202년에도 운문사와 부인사·동화사 등의 승려들이 연합하여 경북 영천의 관아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 1203년의 부인사 승도란은 그 전 해에 있었던 영천 공격사건과 연계되는 난이었다.

 

무신집권기에 지방 사원의 승려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례는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부인사 승려들이 일으킨 이 난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에서 발생한 난과 함께 규모가 컸던 승려란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 승려와 지방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반란 사건은 고려 후기 정치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일반 정치사 분야에서의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여하튼 부인사를 중심으로 이러한 난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부인사가 이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숙식할 곳

심천랜드온천(053-986-8033)에서 목욕을 즐기고 바로 옆에 있는 오리고기 전문점 하늘천따지(053-982-6190)에서 생오리 숯불구이를 즐겨보는 것이 좋다. 양념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오리고기가 참나무숯불 향을 머금어 내는 은은한 맛은 질리지 않고 즐기기에 그만이다. 함께 구워먹는 버섯과도 맛의 조화가 뛰어나다. 덤으로 주는 죽과 오리알만으로도 한끼 식사가 거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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