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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양산 7번국도-법기리 법기수원지

by 구석구석 2007.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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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동면 법기리 본법마을 '법기수원지'

 법기수원지는 부산 회동수원지의 상류발원지라고 한다. 그래서 명장정수장 관계직원들이 관리하고 있다. 일본강점기 때부터 조성된 이 수원지는 상수원 보호구역인 관계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해 비교적 보존이 잘 돼 있다.


노포동에서 웅상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을 따라가다 보면 법기교차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법기리’라는 표지판을 따라 굴다리 아랫길로 접어들면 법기리 본법마을로 가는 오르막길을 만나게 된다. 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들어가면 갑자기 깨끗하게 정돈된 아름다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사람이 사는가 싶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곳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 신기하기만 하다.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법기수원지

 

법기수원지는 본법마을 끝에 있어 찾기 쉽다. 정문 옆에는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마을주민들이 이곳에서 족구나 미니 축구를 한 흔적이 있고, 여름철에 주로 이용하는 듯한 그늘막과 나무 평상도 보인다. 정수장 옆으로는 천성산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보이고, 늦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어 정겨움을 더하고 있다.

 

 

수원지입구의 공터

 

철문 안의 경관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거목들이 즐비하다. 일본 강점기 때부터 잘 가꾸어진 거목들은, 보는 순간 별천지를 연상케 한다. 너무도 이색적이어서 거목들의 천국이라는 북유럽 노르웨이의 숲이 연상될 정도다. 법기수원지를 조심스레 살펴보면 인공림과 천연림, 단순림과 혼효림의 뚜렷한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삶을 영위해 가는 데 있어서 숲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살아 숨쉬는 탁월한 자연생태계, 양산의 자랑

 

실제로 법기수원지 주변에는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2004년에는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이 70여 마리 이상 발견된 바 있고, 환경단체 회원들의 노력에 의해 반딧불이도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중에서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다는 반송나무도 수원지 둑 위에 우뚝 서 있다.


법기수원지는 수량이 적어서 주민들의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고, 부산 청룡동과 명장동 정수장의 희석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외국선수들의 식수로 사용했다. 그림의 떡이라 했던가? 바로 곁에 있는 최상급 수원지를 두고도 본법마을 사람들은 지하수 물을 마셔야 하고, 일부 농경지에는 늪지대에 흐르는 물을 끌어다 써야 한다.


이제는 논란이 종식됐지만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위한 터널이 혹시라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늪지대마저 마르게 할까봐 묵혀둔 걱정이 되살아났다. 물이 흐르지 않는 천성산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보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2007 최용호

 

■법기수원지의 상징 ‘반송 7형제’

오랜 세월 인간의 발걸음을 막으면서 감췄던 법기수원지의 주인공은 독특한 모양의 반송 7그루였다. 한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가 갈라진 채 부채 모양을 한 반송은 한 폭의 그림이다. 국내에서 찾기 힘든 종이다. 약 80년 전 법기수원지를 조성하던 때 수령 50년을 넘긴 ‘반송 7형제’를 이곳으로 모셔왔다고 하니 자그마치 수령은 130년 이상으로 추산된다. 쟁반처럼 자란다고 해 ‘소반 반(盤)’을 써 반송으로 부른다고 한다.

누구든 반송을 지나 또 다른 반송을 만나려면, 그리고 댐 마루를 조금 더 걷고 싶다면 반송의 가지 아래로 허리를 굽혀야만 한다. 속세에서 허리를 굽힐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곳까지 와서 허리를 숙이자니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허리를 굽혀 지나온 반송을 뒤돌아보니 처음 본 반송과는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항상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교훈을 법기의 자연에서 얻었다.


그런데 반송을 지나기 위해 고개를 숙일 때마다 어떻게 이 반송이 댐 마루까지 옮겨졌을지 궁금했다. 안내판 설명을 보니 어른 20명이 목도해 옮겨 심었다고 한다. ‘목도’란 둘 이상의 사람이 짝이 돼 뒷덜미에 긴 막대기를 얹어 무거운 물건을 함께 져 나르는 일이다. 댐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니 결국 반송의 목도도 일본인이 아닌 우리 선조의 몫이었을 터. 다소 불편한 기운이 몰려오는 순간, 취수탑이 보였다. 멀찌감치 떨어져 외로움을 표현하는 이 취수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반송을 주 배경으로 삼아 왼쪽에 취수탑을 담을 수 있는 곳이 법기수원지 최고의 사진 포인트라고 한다. 법기수원지의 대표 안내판에도 이곳에서 그려진 풍경을 ‘한 편의 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법기수원지는 1932년 완공 때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79년 만인 2011년 7월에야 빗장을 풀었다. 개방 후 처음 한 달 약 7000명이 법기수원지를 다녀갈 만큼 ‘금단의 숲’ ‘비밀의 정원’은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극히 일부 구간만 개방된 상태. 개방된 곳은 수원지 전체 680만 ㎡ 중 댐과 수림지 등 2만 ㎡다. 국제신문 송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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