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밀양시 원동면 1022번 지방도로
영국사 북암 터 부근에서 바라보는 천태산
양산면 명덕리 쪽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누교리에서 오르는 길보다 훨씬 멀지만 등산객이 드물고 한가한 맛이 있다. 산자락마다 단풍이 제법 보기 좋게 물들었다. 이윽고, 그 옛날 북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 곳에 도착한다. 감나무 한 그루가 홀로 묵상에 잠겨 있다. 억새들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천태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대각국사 의천으로 알려졌다.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 문종(1046~1083)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승려가 되어 송나라에서 천태교학을 익히고 돌아온 그는 이 산에 있던 절을 국청사라 부르고 지록산이었던 산이름을 천태산이라 바꿔 불렀다고 전한다.
암릉길에서 보는 영국사의 은행나무
영국사오른편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등산코스 안내도 보관함'을 만난다. 오른쪽 길가에서 쓰레기통을 고친 듯이 보이는 통 속에는 복사해 담아 둔 등산 안내도가 들어 있다. '천태산 산악회' 이름으로 된 이 안내도는 천태산 지킴이 배상우씨가 만든 것이다.

올라갈수록 길이 가파르다.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길엔 로프가 설치돼 있어 잡고 올라가도록 해 놓았다. 바위길을 올라가다 내려다보면 영국사 주변 풍경이 옛날 70년대 이발소에 걸려 있던 그림처럼 다가온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로프를 붙잡고 암릉을 탄다. 이제 끝났는가 싶으면 다시 암릉 코스가 기다린다. 그러나 이곳의 암벽은 전혀 무섭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부닥친 암벽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경사가 70도 정도 되는 듯하다. 길이는 75m. 이 코스를 오를까 하다가 암벽 옆으로 난 우회등산로를 택한다.
우회등산로 역시 그렇게 만만한 등산로는 아니다. 가랑이 사이에 넣은 로프를 잡고서 조금씩 올라간다. 산에선 아무리 낮고 우습게 보이는 지형지물이라도 절대 방심은 금물이다. 적당한 긴장과 안도감이 교차하면서 산타기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암릉길의 등산객과 천태산 정상석
바람이 시원하다. 길옆 바위 위에 올라서서 영국사를 내려다 본다.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는 등산객의 모습이 멋지다. 긴장과 스릴을 느끼면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쓸데없는 잡념이나 헛된 아집을 버렸을 터. 그렇게 만들어낸 모습이기에 저리도 아름다운 것인가.
암릉길에서 보는 갈기산과 천태산 정상에서의 조망
다시 산을 오른다. 쉬지 않고 앞으로만 가도 병이지만 너무 오래 쉬어도 병이다. 오래 쉬면 몸이 굳기 때문이다. 중도가 얼마나 어려운가. 동남쪽 능선을 따라 눈길을 주니, 저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가 닿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오르던 영동 분에게 산 이름을 물으니 갈기산이라 한다. 말갈기와 흡사하다 하여 갈기산이라 했다 한다.
암릉이 끝난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영국사를 내려다본다. 크고 작은 나무들 속에 둘러싸인 풍경이 무척 평화롭다. 이다음에 죽어서 서방 정토에 간다면, 어쩐지 영국사 부근의 모습과 닮은 풍경일 것만 같다.
정상에는 금산군 연합산악회 이름이 적힌 표지석이 서 있다. 새삼스럽게 이곳이 충남 금산군과 영동군의 경계라는 걸 떠오르게 한다.
천태산정상
산행의 묘미는 어디까지나 조망에 있다. 그러나 날씨가 잔뜩 흐린데다 키 큰 나뭇가지에 가려 멀리까지 바라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동서남북을 돌아가며 차근차근 조망한 다음 바위에 앉아 잠시 쉰다. 정상에서의 머무름은 짧고 산을 오르는 과정은 길다. 등산은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등산은 모순의 세계이다. 산을 오르면서는 의지를 다지는 법을 가르치고, 정상에서의 재빠른 내려섬은 허무를 가르친다. 오르기는 힘들고 더딘데 내려서는 건 잠깐이다.
'조망석'이라 표시된 바위에 올라서서 풍경을 조망한다. 멀리 충남 금산 제원면의 산자락이 보인다. 주변의 산 빛이 비단처럼 곱다. 산길을 조금 내려오니 남고개다.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피난온 고려 공민왕이 옥새를 숨겨 놓았다는 옥새봉으로 가는 길은 막아 놓았다.
예서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육조골이 있다.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工) 등 6조가 있던 곳이라 해서 육조골이라 했다니 제법 오랫동안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영국사로 가는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보물 제532호 영국사 부도가 있는 산 기슭으로 올라간다. 영국사 부도는 안녕하시다. 주변 생태계도 산불이 일어났던 2005년보다는 많이 안정을 찾은 듯하다. 산불이 나고 나서 며칠 후 이곳에 들렀을 때 참혹했던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자료-오마이뉴스 2007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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