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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북도

제천 532번지방도 부산리 오지마을

by 구석구석 2007.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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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반 오지 마을을 찾아서

지루한 길. 오른쪽은 산, 왼쪽은 호수. 그 사이로 이어진 길. 길 중간중간에 자리한 호숫가 마을들. 길이라면 무조건 포장하고야 마는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긴 비포장길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이 좋다. 먼지 날리고 덜컹거려도 나는 그 불규칙한 덜컹거림의 리듬이 좋다. 가끔은 내 삶도 이렇게 덜컹거리면서, 덜컹거리는 나를 느끼고 싶다.

길은 호수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수몰 마을에서 윗자락으로 옮겨온 마을들이 묻혀버린 옛날을 바라보듯 자리해 있다.20여 년 전 충주댐이라는 거대한 다목적댐은 단양에서 충주로 이어지는 강줄기에 젖줄을 대고 살던 많은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실향민으로 만들어버렸다.

 

호수를 휘감은 채 금성에서 동량까지 이어진 이곳의 에움길은 무려 30km가 넘는 비포장길로 충주시 동랴연 지동리까지 이어진다. 황석리, 후산리, 사오리, 부산리, 오산리, 만지, 지동리. 그러나 사오리에서 뽕나무거리까지 중 일부 구간은 포장공사를 하기 위해 길을 닦아 놓은 상태다. 이곳의 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마을은 언제부턴가 낚시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판잣집. 분명 오지 마을에서 이제는 낚시 마을이 다 되었다.

내내 호수를 눈에 담고 달리는 길. 하늘에 뜬 구름 몇 점이 호수에도 떠서 느릿느릿 제 몸을 밀고 간다. 그렇게 나도 간다. 산 뒤에 있다는 후산(後山)리 지나는 길에 길을 막고 풀을 뜯는 수십 마리의 흑염소 떼를 만났는데, 한동안 길을 비켜주지 않아 아예 차 엔진을 끄고 10여 분을 기다렸다. 차마 녀석들의 평화로움을 깨고 싶지 않았다.

사오리지나 부산리. 30km가 넘는 호숫가 에움길에서 만나는 여러마을의 중간쯤에 자리한 마을이다. 황석링서 오든 지동리에서 오든 한참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마을이다. 부산리에서 만난 고창운 노인은 귀가 어두웠다. 얼굴 가까이 입을 들이밀고 이야기해야 대화가 통했는데, 그 늙은 나이에도 혼자 밥해 먹고 토종벌도 치고 옥수수 같은 간단한 농사도 손수 짓고 있단다.

"적적해두 할 수 없쥬. 사는 게 다 그렇쥬 뭐." " 내가 아흔둘이유. 힘이 없으니 이래 지끔은 지팽이 짚구 댕기유." 사는 게 다 그렇다는 말을 아마 나는 90까지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부산리는 며느리산 밑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풀어서 말하면 며느리 마을이 되는 셈이다. 그 때문인지 부산리에서는 산제당에 여신을 모신다고 한다. 또 다른 마을과 달리 당산제도 특이하게 한여름인 7월 초하루에 지낸다. 금줄을 두른 느티나무(당산나무)아래에서 만난 지수영 씨(65)는 바로 앞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다 나와 묻지도 않은 당산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느티나무 아래쪽을 보니 길 옆에도 새끼줄을 드리워 금줄을 쳐놓았다. 이렇게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니, 그 신령하도 넉넉하리라. 느티나무는  그 그늘을 고스란히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제사를 지내주는 것에 느티나무는 그늘로 보답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요,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쉼터요, 마을 전체로 보면 신앙터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당산나무인 셈이다.

열 가구 남짓 사는 외떨어진 호숫가 마을. 부산리 사람들은 다들 마음이 넉넉하다. 지수영 씨는 느티나무 그늘이 좋으니 좀 쉬었다 가라고 자꾸만 붙잡고, 잘 데는 있느냐고 물어본다. 내가 부러 없다고 하니, 그럼 잘가라고 한다. 귀가 어두워도 내 맘을 잘 알아주니 그게 나는 좋다.

부산리를 벗어나 지동리 쪽으로 난 길을 버리고 호수 쪽으로 내려가자 만지에서 길은 호수로 빠져든다. 만지, '가득한 연못' 이란 뜻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선조들은 이곳이 물에 묻힐 것을 알고 만지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그 신통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물 속에도 길이 있다면, 길이여 내가 살던 곳이 여기서 지척이니 그곳에 가거든 안부나 전해 다오.


숙박 정보
먹을 곳과 잘 곳은 청풍으로 나와 해결하거나 금성면에서 해결한다. 국민연금청풍리조트(043-640-7000), 학현민박촌(640-6753), 금성면 성내리에 있는 금수산송어장횟집(652-0005)은 금수산 계곡에서 기른 송어와 향어, 산천어를 이용한 비빔회가 일품.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제천 IC로 나와 597번 지방도를 타고 금성까지 간다. 금성에서 포장길을 따라가면 청풍문화재단지고, 호수를 따라 비포장길로 들어서면 한참을 가서 부산리다. 충주에서 동량 쪽으로 향하다 솟대거리를 지나 지동리 쪽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호젓한 길이다.

 

자료

위클리 프라이데이 (http://wfriday.patzzi.com) editor 유철상 writer 이용한(시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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