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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

by 구석구석 2007.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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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29번국도 - 해미

 
해미읍성
 
성안에는 볼건 별루 없다. 공터비슷한데 건물이 몇채 있는 느낌만 있다. 이곳에 벚나무가 심어지면 볼만할텐데.... 성안 곳곳이 발굴하고 복원하느냐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역사의 현장이다.
500여년의 모진 풍파를 견뎌오면서 보존이 잘된 해미읍성은 충청도 군사 최고사령부인 병마절도사영으로 출발하여 호서좌영을 거쳐 충무공이순신장군의 근무, 대원군시절부터 100여년에 걸친 천주교 박해로 천여명의 집단순교, 19세기말에는 동학군의 주둔과 진압등 수많은 선열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곳으로 70년대부터 원형 복원공사가 현재 진행중이다.
 
 
진남문 왼편에 있는 루. 예전에는 성곽앞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1차저지선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보통성곽에는 해자같은게 있는데 이곳에서는 볼 수가 없다.
 
 성곽은 대리석이 아니고 자연석으로 쌓아 올리고 안쪽은 흙으로 넓게 쌓았다. 밑부분의 자연석은 상당히 넓어 안정감이 있어보이며 산성이 아니어서 주변이 상당히 복잡하고 주차할 곳도 마땅하지 않다.
 
1963년 1월 21일 사적116호로 지정되었고 성곽의 길이는 1,800미터로 높이가 5미터이며 동헌 객사 책실 내아 진남문 잠양루 지성루 암문등으로 되어있다.
 
                                        
                                                                                                               성안에서 진남문 을 보며...
 
해미읍성은 왜구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조선조 태종의 지시로 당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옮겨 쌓은것으로 230여년간 종2품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여 충청도의 군사권은 물론 내란방지등 사회질서가지 담당하는 격이 높은 성이다.
차후에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서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어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뀐다.
 
 
 
성내에 복원된 민가로 일자 3칸의 전형적인 초가집
 
 
이 초가는 부농의 집을 대표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고 'ㄱ'자형태로 되어 있으며 곡간이 별로도 되어 있다. 투호놀이는 하는 우리가족들....
 
조선조말 1801년 신유사옥이후 100여년간 천주교탄압이 심하였는데 이때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해미읍성에서 천여명을 처형당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순교성지이다. 특히 회화나무에 철사줄로 매달고 고문을 하였는데 철사줄이 감긴채 나무가 크고 있다고 한다.
 
왼쪽에 화단철책이 회화나무있는 곳이고 가운데 대문을 통해 옥사로 들어간다.
 
 
옥사 내부로 축제때는 이곳에서 곤장체험을 하며 건물은 모두 죄수를 가두었던 옥사이며 남녀를 구분하여 가두었고 목책이 설치되어 있다.
 
해미읍성 병영체험축제 해미읍성은 다른 성과 달리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어 역사체험을 할 수 있는 소재가 많음으로 매년 "해미읍성병영체험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서산시는 역사성을 살리고 일반 축제에서 탈피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병영축제가 열릴 때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며 내국인의 발길과 외국인의 탄성이 어우러져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동헌으로 현재 한창 복원중이라 출입제한구역이다. 바닥에는 흙속에 뭍힌 돌무더기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동헌을 끼고 급경사인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구릉에 오르는데 주변이 상당히 넓고 잔디가 깔려있어 단체로 놀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서산지역의 조선시대 생활상과 역사적인 인물,사건,민속 등을 테마로 구성한 국내 최초의 역사체험축제로 학생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높아 가족 단위의 관광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성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조선시대을 체험하게 되는데 연인끼리 팔짱을 끼고 갈 경우 포졸들에게 끌려가 곤장을 맞을수 있고, 옥사에 갇히고 형틀에 묶이는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관광객에게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2001년도 문화관광부에서 지역민속축제로 지정육성하고 있다 

 

 

주요행사내용으로는 관아체험, 옥사체험, 군영체험, 장터체험, 민속놀이체험등이 잇으며 많은 예술단체들도 참여하여 축제기간동안 해미지역은 흥겨운 축제 한마당을 연출한다.

 

해미읍성 정문에는 이름난 맛집들이 제법 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첫손에 꼽는 메뉴는 칼국수. 즉석에서 끓여주는

풍진해물칼국수

(041-688-2249)는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해미읍성 바로 앞의

해인칼국수

(041-688-2461)와 쌍벽을 이루는데 현지인들은 콩국수와 비빔국수는 풍진을, 국물맛으로는 해인을 쳐주는데, 자웅을 겨루기 힘들다고 옆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가격은 풍진해물칼국수 5000원, 풍진비빔국수 4000원, 해미칼국수 3500원이다.

사실 해미의 특미는 뚝배기와 순대국이다. 사골설렁탕(6000원)과 소머리국밥(6000원)이 유명해 멀리서도 찾아와 먹는다는

읍성뚝배기

(041-688-2101)와 시장에 위치한 시장순대집(041-688-4370)이 유명하다. 시장순대 1인분 3000원, 국밥 5000원. 여기에 자장면은 영선각(041-688-2047), 고깃집은 황우숯불갈비(041-688-0599)가 맛있다고 하니, 내친김에 맛까지 섭렵한다면 황후의 여행도 이보다 부럽지 않을 듯하다.

 
읍내리 해미성지(여숫골) 041-688-3183
서산이 갖는 교통상의 특성으로 천주교의 전파에 있어서도 선진성을 보여 준다. 해미를 중심으로 한 서산 지역은 18,9세기 천주교 신도들의 순교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산을 비롯한 내포 지역은 18세기 후반 내포의 사도로 알려진 『이존창』에 의하여 천주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천주교의 유포가 정치문제화 되면서 순교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799년 순교한 『박취득』은 해미에서의 최초의 순교자였다.

 

 이후 해미에서는 수백명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그것은 이 지역의 활발했던 천주교 교세와 관련이 있지만 아울러 내포8현을 관할하던 진영과 감옥이 해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진영의 감옥에 갇힌 천주교들은 교수형, 참수형, 몰매질 등 갖가지 방법으로 참혹히 처형당하였으며 1868년의 박해시에는 많은 인원을 생매장한 일도 있었다.


해미천 좌우 주변과 진둠벙에서는 1866년부터 1872년 사이에 1천 여명이상의 신자들이 팔이 묶인 채로 거꾸로 떨어뜨려져서 생매장 당하였다. 생매장시 천주교도의 죽음에 앞서 예수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는 소리를 예수머리로 알아들은 주민들이 이를‘여숫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에 그 일부를 발굴하였다.

이 일대에서 생매장 당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에 높이 16미터의 탑을 세웠고 야외 미사장을 개설하였다. 2003년에서는 무명 순교자 성지성전을 신축하여 순례자들이 미사를 볼 수 있도록 하여 매년 수만명의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미읍성 맞은편에 위치한 삼보정 닭개장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일단 맛을 한번 보면 이집 단골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 주인장이 끝내 비밀에 부친 비법 육수로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또 우거지와 숙주로 시원한 맛을 더해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

 

 

삼보정에 들어가면 입구부터 ‘열 받는 닭개장’ ‘열 안 받는 닭개장’이라는 재미있는 메뉴가 눈에 띈다. 얼큰한 맛을 좋아한다면 함께 나온 청양고추를 첨가하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거나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즐기려면 청양고추를 조금만 첨가해 기호에 맞게 얼큰한 ‘열 받는 닭개장’과 담백한 ‘열 안받는 닭개장’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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