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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태안 603번지방도 도황리 연포해수욕장 안흥성 태국사

by 구석구석 200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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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포해수욕장 

 

서해 해수욕장은 이번에 처가쪽 행사가 있어 처음으로 가보았는데 백사장 모래가 상당히 고왔다. 백사장앞에 작은 솔섬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바다와 더불어 솔섬이 운치있게 보인다.

백사장에는 둥그런 영화촬영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영화제목을 잊어버렸다. 

 

연포백사장에서 막내화원이

 

백사장과 상가가 바로 인접해 있어 야영하기는 조금 불편해 보이며 다른곳 보다는 콘도형식으로 숙박시설은 잘 되어 있는 느낌이다. 해변의 숙박시설은 바닷가쪽으로 발코니가 되어 있어 경치는 볼만한지 모르지만 소음으로 잠자기는 좀 불편하다.


 

연포 해수욕장은 난류의 영향으로 수온이 높아 개장 기간이 전국에서 가장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사장이 아름다운 정죽리 갈음이해변

 

안흥항 바로 직전에 자리잡고 있는 숨겨진 비경. 태안에서는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백사장이 지극히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로 되어 있다. 게다가 항상 푸른 바닷물도 서해안에서는 보기드문 광경이다.
해변 오른쪽으로는 깍아지른 바위 절벽이 왼쪽에는 낮은 언덕이 가로막고 있어 아늑하면서도 갯바위와 모래사장이 잘 발달되어 있어 갯것 채취의 재미도 쏠쏠한 곳. 

 아직 이름이 나지 않아 찾는 사람들이 적은 덕분에 한적한 해변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을 더 한다. 갈음리 해수욕장의 아름다움은 해수욕장 입구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커다란 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지나면 하얀 모래언덕너머로 엽서에나 나올법한 한 그루작은 소나무가 보이고, 조금더 나아가면 소나무 뒤로 파란 하늘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눈에 들어온다. 뿐만아니라 해변을 두르고 있는 소나무 숲은 태안의 해수욕장중 최고라 할만하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과 이은주가 mt를 가서 일몰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솔숲에서 불루스를 함께 추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외에도 여러편의 사극이 이곳 해변에서 촬영되었다.

아직은 주변에 아직 이렇다 할 편의시설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 흠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한 곳. 따라서 안흥이나 연포에서 한나절을 즐기기 위한 연계장소로 활용한다면 으뜸 중 으뜸.

 갈음리에서 5분이면 안흥항이다. 이곳에서 신진도까지 연도교가 연결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 신진도를 한바퀴도는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이다. 특히 일몰무렵 신진도에서의 해넘이를 보며 드라이브를 해보면 아주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 
 

사진찍기좋은곳
갈음리의 진면목은 서해안에서는 드문 하얀 모래사장이다. 모래사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래사장위에 서 있는 한그루의 소나무가 그림엽서의 한장면처럼 아름답다. 이를 배경삼아보면 아주 멋진 풍경사진이 된다. 또한 해변 왼쪽의 바위 절벽쪽에 아침저녁으로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이를 배경삼아도 좋다.


 

정죽1리 1112-1 충청남도지정11호 안흥성

안흥성은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조(朝鮮朝)의 효종(孝宗)6년(1655)에 축조(築造)된 석성(石城)으로서 둘레 1,568미터에 높이는 3.5미터이다.

서문전경 / 태안군청 

축성 목적은 국토 방위였으나, 이곳에 축성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경기사인(京畿士人) 김석견(金石堅)이 군왕(君王)께 상소하여 안흥진성의 축조를 청원하니, 군왕께서 직접 지경연사(知經筵事)인 이후원(李厚源)을 불러 안흥진성 축조의 필요성을 하문(下問)하였다.

 

이에 이후원은 주저치 않고 이곳의 지형이 해중(海中)으로 약 10여리쫌 돌출하여 있는 천연적인 요충지(要衝地)이므로, 이곳에 석성(石城)을 축조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호서(湖西)의 양곡(糧穀)을 비축(備蓄)하여 두면 안으로는 강도(江都)의 표리(表裏)가 되고, 밖으로는 호령(湖嶺) 지역을 공제(控制)할 것이라고 진언(進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군왕께서는 즉시 충청감사(忠淸監司)에게 하명하여 안흥진성을 축조케 하니, 태안(泰安)을 비롯하여 인근의 서령(瑞寧) 해미(海美) 덕산(德山) 예산(禮山) 당진(唐津) 면천(沔川) 홍주(洪州) 결성(結城) 보령(保寧) 남포(藍浦) 서천(舒川) 한산(韓山) 임천(林川) 홍산(鴻山) 청양(靑場) 청주(淸州) 충주(忠州) 등지(等地)의 18개 읍민(邑民)이 이에 동원 되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무려 10여년만에 축성된 안흥진성(安興鎭城)은 240년간 내려오다, 조선조(朝鮮朝)의 고종(高宗) 31년(1894) 동학혁명(東學革命)때 성내(城內)의 건물이 일부 타버리고, 이에 따라 성곽은 자연히 폐성되고 말았다.

 

성동산(城東山) 태국사

창건연대( 創建 年代)는 미상(未詳)이다. 그러나 이 태국사의 창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설화(說話)가 전하여지고 있는데, 일설에 따르면 조선조(朝鮮朝)의 세종대왕(世宗大王)때 태안부사(泰安府使)의 꿈에 안흥항(安興港)의 바닷가에 상자(箱子)하나가 떠나려와 있으니, 즉시 이를 가져다 잘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꿈에서 깬 부사는 반신반의(半信 半疑 )하면서 아침 일찍 바닷가로 내려가 주위를 살펴보니, 현몽(現夢)한 대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금불상을 싼 보자기에는 기원 태평 국운(祈願 泰平 國運)이라 쓰여 있었다. 이를 보고 기이(奇異)하게 여긴 부사는 이 내용을 즉시 국왕(國王)께 상주(上奏)하니, 국왕께서 특명을 내려 승려(僧侶)를 현지에 파견케 하였다. 왕명(王命)을 받고 현지에 내려온 승려는 곧 터를 잡아 절을 세우고 명칭(寺名)을 보자기에 쓰여 있는 태평 국운에서 태(泰)와 국(國)자를 따라 태국사(泰國寺)라 명명하고 금불상을 안치(安置)하니 이것이 오늘의 태국사라는 것이다.

 

여하간 이 태국사는 다른 일반사찰(一般 寺刹)과는 틀리는 점이 있다. 서산군지(瑞山郡誌)에 따르면 「태국사는 국란이 있을 때 주승이 수막대장의 명을 받아 수군이 있는 18읍의 각 사찰의 승군을 지휘할 수 있는데, 이때의 군사상의 직권은 첨절제사와 같다」고 하였다.

 


찾아가는 길
1. 경부고속도로->천안 또는 평택나들목->온양->아산만-> 삽교호 방조제 -> 합덕 ->당진->서산-> 태안읍 ->만리포방향->연포/근흥방향-> 근흥 ->연포입구->안흥방향->갈음이해수욕장
2.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 -> 태안 ->만리포방향->연포/근흥방향 ->근흥->연포입구->갈음이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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