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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대구광역시

달성 하빈면-묘리 육신사 태고정 하엽정

by 구석구석 200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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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면 묘리에는 사육신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힘겹게 일으킨 순천박씨 세거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사육신 여섯어른을 제사지내는 육신사가 세워져 있다. 묘리에서 다시 큰 도로로 나오면 멀리 성주대교와 함께 낙동강의 큰 물줄기가 온전히 드러난다. 정자 하목정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며 옛 선비들처럼 풍류에 적어 보는 것도 묘미이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 육신사

 

순천 박씨가 묘골에 정착하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아픔이 간직돼 있다. 박팽년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 중 한 명. 죄인으로 몰려 일족이 화를 입을 때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 이씨는 임신중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관비로 삼고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는 명을 내린 상태. 이씨는 고향(하빈) 근처에서 관비 생활을 하던 중 아들을 낳았지만 여종이 낳은 딸과 바꿔 아들의 목숨을 보존했다. 그 아이가 바로 박일산이다. 박일산은 성종 때 박팽년의 손자라는 사실을 조정에 알리고 사면을 받은 뒤 묘골에 정착, 묘골 순천 박씨 입향조가 됐다. 묘골에 사육신을 모신 육신사가 있고 충절의 마을로 이름난 이유다.

 

묘골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충효당이다. 인조 22년(1644) 박팽년의 7대손인 금산군수 숭고가 별당으로 지은 것인데 충효당으로 개칭된 뒤 충`효, 법도를 가르치는 교육 공간으로 사용됐다. 원래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으나 1995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누마루를 부설했다.

 

육신사 정문 조금 못미친 지점에는 도곡재가 있다. 정조 2년(1778) 대사성 박문현이 지은 건물인데 1800년대 달성십현(達城十賢)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았던 도곡 박종우가 재실로 사용하면서 그의 호를 따 도곡재로 불리기 시작했다.

 

 육신사입구 / 오마이뉴스 문일식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종문이 1604년(선조 37년)에 세운 정자로, 어느 해인가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인조 임금이 그 정취를 잊지 못해 '하목정'(霞鶩亭)이란 정호를 내렸다.

 

육신사 오른편에는 박팽년의 유복손 박일산이 세운 정자인 태고정(太古亭)이 있다. 원래 99칸 건물의 일부였으나 임진왜란 때 전부 소실되어 현재의 건물은 광해군 6년에 중건한 것.이 건물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에 우측은 팔작지붕,좌측은 맞배지붕으로 된 매우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육신사 내에는 사육신을 모신 사당과 태고정, 숭절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과 박팽년의 후손인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기념 표지석,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가 있다.

 

보물 제554호인 태고정은 박일산이 건립한 종택의 정자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종택이 소실되면서 함께 훼손되었으나 1614년에 중건됐다. 보통 정자에 하나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반해 태고정에는 일시루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다. 태고정의 건축학적 묘미는 지붕에 있다. 오른쪽은 팔작지붕, 왼쪽은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서까래의 윗머리를 다른 벽에 지지시켜 달아낸 지붕)으로 마감한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자료 : 매일신문 이경달기자

 

 

아름다운 전통 정원… 하엽정

중요민속자료인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하엽정(荷葉亭)은 자연을 가까이 두려는 집주인의 마음이 잘 표현된 건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정원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11대손인 삼가헌(三可軒) 박성수가 영조 때 이곳에다 사랑채와 안채를 세우고 삼가헌이라는 편액을 건 데 이어 이듬해 서편에 정각을 세웠다.

주변에는 국화를 심고 100여평의 연못에는 연꽃을 심었는데 정자 이름을 하엽정이라 불렀다. 하엽정은 삼가헌에 딸린 정자인 것이다. 삼가헌은 나라를 고르게 하고(天下國家可均), 명예와 벼슬을 능히 사양하고(爵祿可辭), 갖가지 어려움을 능히 참고 밟을 수 있다(百忍可踏)는 의미다.

하엽정은 원래 서당으로 썼던 4칸의 '一'자형 집이었으나 나중에 현재의 모양과 같이 돌출된 누마루를 부설해 연못과 어우러진 별당채를 완성시켰다. 본 건물에 사랑채가 있으면서도 바깥에 별도의 사랑채격인 별당을 만든 사실에서 집주인의 풍류를 짐작하고 남는다.

앞의 연못과 뒤편의 대나무숲이 잘 어우러진다. 연못은 장방형이다.연꽃이 만발하게 되는 한여름의 경관은 매우 인상적이다. 누마루에 앉아 산들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며 연못을 바라보는 집주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노라면 시원함이 절로 느껴질 정도다.아쉬운 것은, 지금은 관리가 제대로 안돼 다소 어수선한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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