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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이도-제주성~제주오름

by 구석구석 2011.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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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2동 교육박물관

제주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어서 도내 어디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주시 이도2동 제주지방법원 동쪽에 있는 제주시교육청 건물을 찾으면 남쪽에 이웃한 제주교육박물관이 보인다.

제주교육박물관은 교육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전·전시하고 제주교육의 변천과정을 정리하고 제주교육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 95년 개관됐다. 교육박물관에는 현재 3개의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야외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의 교육내용을 복제·모형·재현은 물론 실제 유품 전시 등을 통해 제주교육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이 알차다. 전시자료는 향토교육자료 2천3백여점에 제주교육자료 2만여점 등 총 2만3천여점에 이르고 있다.

 1층에 있는 제1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해방 이전까지 다양한 교육자료를 전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옛 사설 초등교육시설인 서당의 모습을 재현하고 동몽선습, 소학을 비롯한 다양한 교재와 습자본·벼루·연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향교의 모습은 대정향교의 축소모형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서양문물의 도입 영향으로 제주에 근대교육이 실시된 과정은 물론 1900년대 초 근대학교의 교육자료 등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귀한 교육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1전시실에는 일제하에서 제주도내 민족교육운동의 전개과정과 일제시대 학생 복장과 졸업앨범 등도 전시돼 꺼지지 않는 우리 선조들의 교육열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어 제2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에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제주교육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미군정 아래에서의 교육제도는 물론 셈본, 서양사, 옛글, 한글교수지침 등 우리 선생님들과 선배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다양한 교재를 보면서 경외감마저 들었다.

 

또한 1950년대의 교실 축소모형과 성적통지표, 학생증, 손잡이 학교 종, 필기도구 등 교육산물들을 보노라면 이전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도 했다.

 

제3전시실에는 제주교육의 특색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학교생활에서의 교과, 봉사, 체육활동 등을 3차원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멀티큐브로와 어린이들의 놀이문화를 미오라마기법으로 재현해 놓았다. 최근에는 50∼70년대 학창시절을 대변하는 도시락 모형을 전시해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좋은 학습자료가 되고 있다. 차롱도시락에서 양은도시락까지 10여종의 용기에 잡곡밥·반지기밥, 찐고구마, 마농지, 자리구이, 콩자반, 계란말이까지 실물크기로 전시해 놓고 있다. 한라일보 강동우기자

 

이도2동 손순두부촌 757-3172

제주시교육청에서 이도2동 사무소 쪽으로 200m 에 있는 '손순두부촌'에는 눈길 끄는 메뉴가 있다. 바로 '백순두부 백반'이다. 보통 순두부가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썰어넣어 매운맛을 더한다면, 이곳 순두부는 매운맛의 재료를 모두 뺐다. 하여 '몽글몽글한 손두부'가 그대로다. '화장을 벗은' 손순두의 맛이 궁금하다. 이 집은 주인장(양선희씨)가 제주산콩으로 직접 순두부를 만든다. 콩을 간수(천일염을 넣은)에 삶아 불려 맷돌에 정성껏 갈아 만든 콩물로 손순두부며 생손두부를 만든다.  '백순두부 백반'은 끓인 콩물에 바지락과 버섯, 돼지고기를 송송 썰어넣고 되장으로 간을 내 내놓는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맵지 않아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특히 환자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백순두부 백반'의 맛은 진솔하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도 맛이려니와, 부드러워 목넘이가 좋이 먹을수록 자꾸 수저가 가는 음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제철채소로 무장한 반찬들, 이를테면 호박무침, 오이무침, 채소셀러드 무생채버무림 등이  '백순두부 백반'의 가치를 높인다.

 

이 집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또 있다. '콩비지빈대떡'과 '손두부보쌈'이다. 버섯과 찹쌀가루에 오징어를 잘게 썰어넣은 '콩비지빈대떡'은 막걸리 한잔 생각나는 술꾼들에겐 환상적인 메뉴다. 야들야들한 돼지고기에 넓적넓적한 생두부, 갖은 채소가 어우러진 '손두부보쌈'의 푸짐한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시내 쇼핑거리와 연결된 동문재래시장

제주지역 동문재래시장은 1960년에 문을 열어 약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동문시장은 제주시에서 대규모이면서 중요한 상설시장으로 꼽힌다.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현재 조금은 정비되어 있는 모습이다. 산지천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상권은 중앙로 주변까지 확대되어 커다란 중심상권을 이루고 있다. 그 안의 점포 및 노점상까지 다양한 품목들이 즐비하며 부분별로 다양한 품목이 나름대로의 질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3,000평 / 점포 350개 / 농,수,축산물 및 의류 / 유동인구: 10,000명(내,외국인 포함) / 서안-수산물, 농수산물, 건어물/야간:먹거리 야식코너 운영 / 동안-청과,수산물, 축산물 / 골목시장- 건어물, 농,수,축산물, 의류

 

생태하천으로 새롭게 태어난 산지천과 쇼핑의 거리 칠성통, 야간공연 및 젊음의 광장 탑동 등 제주시내 유명 관광지 및 쇼핑명소가 주변에 산재해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중앙로 지하상가와도 연결돼 있어 굳이 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지하상가 쇼핑을 하면서 겸사겸사 동문재래시장도 동시에 이용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산 물건은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매일 발송해 주기 때문에 짐을 들고 다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보성시장

 

 

추울수록 더 생각나는 음식, 순대국밥. 서민들의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고 때론 아픈 속을 풀어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국물에 쫄깃한 순대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은 보성시장 순대골목 안 '현경식당'이다. 이곳의 주인장은 홍춘열(63)씨. 순대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갓 만들어져 넓은 채반에 누워있는 순대와 커다란 솥에서 삶아지고 있는 대창, 북부기, 막창, 머릿고기를 보니 허기가 몰려왔다.

 

식당안에 들어서니 고기를 삶아 써는 손길이 분주했다. 주인장 홍씨는 '글 쓰는 순대국밥집 아줌마'로도 통한다. 그의 글의 소재는 당연히 국밥집 '손님'이야기다.

 

뼈를 우려내 만들어낸 국물에 순대와 내장이 적당히 들어간데다 연둣빛과 초록빛의 중간쯤인 배추가 숭숭 썰어진 순대국밥을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떠오르는 광고문구 '국물 맛이 끝내줘요'. 순대는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요란한 재료보다는 전통의 맛을 지키려는 홍씨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라일보 2011.3 이현숙

 

국밥 5000원, 백반 5500원, 내장모듬 1만5000원, 순대·머릿고기 1만원. 첫째주 일요일은 쉰다.

 

 

인하동 돌하르방식당 064-752-7580

 

인하초등학교 부근 골목길의 허름한 식당이지만 점심시간이면 30분은 으레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각재기(전갱이의 제주도 말)와 배추잎을 된장을 푼 물에 푹 삶아내 담백한 맛을 내는 음식으로, 찬바람 불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병어찜과 오징어무침이 밑반찬으로 나오고, 된장에 무를 넣고 졸인 ‘촐래’를 배추잎에 쌓아 먹어도 맛있다. 4인 이상일 경우 고등어구이 한 마리가 서비스로 나온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며, 각재기국 5,000원, 해물뚝배기 6,000원, 고등어구이 1만 원(사전에 문의)이다.

월간산 481호 한석필기자

 

오후3시에 문을 닫는다.

  


제주시 인근에 있는 제주 오름을 오르다 보니 오름 산정에 서면 으레 제주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제주시 사라봉과 제주시 원당봉, 제주시 도두봉 산정에서는 봉수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사람들에게 봉수대는 긴요한 통신시설이었다.

 

 


 

변방의 섬 그리고 제주성(城)
어느 곳에서나 성(城)은 자신이 살아왔던 역사를 말해준다. 또 성은 선인들이 지켜왔던 자립과 자존의 능력을 밟아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성지 역시 약자인 변방의 섬사람들의 아픔이 숨어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느 도시보다도 침략의 기회가 많았던 제주사람들에게 성(城)의 의미는 자신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

제주성지 안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침략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돌을 날라 성(城)을 쌓았던 사람들. 그래서 제주성지는 더 많은 궁금증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제주성지 인근에 새겨진 안내문을 읽는 순간 허탈감에 빠져 버린다.

성을 헐어 매립골재로 사용했다는 무지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고려 숙종 때 제주 지방 특유의 화산암을 이용하여 확장 축조했다는 제주성지. 제주성은 역사적으로 언제 쌓았는지 모르는 불분명함에도 탐라국 수부 축성-조선 중종 때 일어난 삼포왜란 당시 방어시설- 명종 때 을묘왜변의 격퇴- 하천 주변에 익성과 보를 쌓았다는 사실 등이 스며있다.

그러나 그 흔적을 찾아내기란 현존하는 제주성지가 왠지 어설프기만 하다. 몇 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린 고목 옆으로 한 치의 빈틈없이 쌓아올린 돌담길을 걷노라니 탐라의 유서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오현을 배향한 옛 터' 오현단

 

제주시 이도1동 1421-3번지 오현단. 이곳에는 조선시대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선비들이 제주 땅에서 유배의 눈물을 흘렸던 자국이 있다.

오현은 1520년에 유배된 충암 김정, 1534년 목사로 부임한 규암 송인수, 1601년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1614년 유배된 동계 정온, 1689년 유배된 우암 송시열.

 

 

*** 오현단

오현단은 1971년 8월 26일 제주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있다. - 제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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