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군사 안보/해군

연평부대 9포병대대

by 구석구석 2024. 10. 28.
728x90

ㅁ 연평부대

ㅇ 여단급 부대로 6여단 소속이었으나 해병사령부 직할로 변경되었다.  전시는 연평도 사수,  평시 임무는 연평도와 우도를 경계하고 국지도발을 대비한다. 

ㅇ 해안경계병들의 처우는 열악하고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중대단위로 해안경계를 하고 순환하며 예비대로 전환되는데 이때 외출, 유격, 훈련을 받는다.

인천에서 연평도까지 뱃길로 122㎞나 되지만, 북한 강령반도의 육세미까지의 거리는 12.7km밖에 되지 않는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육세미뿐만 아니라 38km 거리의 해주까지 맨눈으로 또렷이 관측할 수 있다.

ㅁ 해병9포병대대

ㅇ 연평부대의 병력이 보병대대 급이었기 때문에 지원화력 또한 1개 포대였고, 2010년 이전에는 포7중대만 존재했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전 이후 화력의 증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서, 대대급 지상병력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을 대령으로 승급시키고 전투지속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K9 1개 대대에 K10을 기존 정수대로 배치되었고 현재 천무가 실전배치되었다.

ㅇ 본부를 비롯하여 관측중대, 6중대(선봉), 7중대(국가대표), 8중대(현무), 유도탄사격대에 다련장중대와 유도탄소대가 편성되어 있다. 

연평부대 포병 6중대에서 K-9 자주포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 한 병사가 장약(화약)을 들고 자주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해병대

ㅇ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예하 해병대 제6여 단과 연평부대가 각각 백령도와 연평도 등 부대별 작전지역에서 가상의 적을 향해 총 290여 발의 실사격 훈련을 진행했다. 이번 훈련에 동원된 무기체계는 K-9를 비롯해 다연장 로켓 K-239 천무, 스파이크 미사일 등이다.

K-9은 서북도서 해병대 전력의 핵심 주포로서, 최대 사거리는 40km이며 분당 6~8발의 155mm 포탄을 쏠 수 있다. 화력전을 위한 천무는 한 번에 300개의 자탄으로 축구장 3배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최대 사거리는 80km다. 최대 사거리 25km인 스파이크 미사일은 갱도에 숨겨진 북한의 해안포를 족집게처럼 공격할 수 있다. 

천무 해상사격훈련

정구영 해병대 제6여단단 포병대대장은 해병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적과 싸울 준비가 돼있다며, 적이 도발하면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즉각 적이고 강력하고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28x90

ㅁ 연평도 포격전

2010. 11. 23. 북한은 서해 연평도에 수십 발의 해안포와 곡사포를 발사했다. 북한의 공격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고 1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북한이 민간인을 목표로 공격을 가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이다.

ㅇ 이명박때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 도발'로 규정했다. '포격전'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은 것은 '전투'라는 명칭에서 오는 상호 대응의 성격을 감추고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2021년에야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되었다.

북한군이 연평도에 도발을 가한 당일 오전과 오후에 북한의 개머리 해안포 기지 주변으로 방사포 18대가 추가 배치되는 등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이 포착됐다. 하지만 우리 군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 北 포격 대응 아군 무기 체계 (서울=연합뉴스) 장성구 기자 = 이용걸 국방부 차관은 23일 오후 국회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관련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비공개 보고중 북한측이 오후 2시34분 해안포 20여발을 쏘면서 공격했으며, 아군도  K9  자주포로 오후 2시49분께 1차 대응, 오후 3시1분께 2차 대응을 했다"고 밝혔다.  sunggu @ yna.co.kr  @ yonhap _ graphics  @ stanleychang21  (트위터)

우리 군은 훈련 때에는 무려 3,657발을 쏘며 북한의 도발에 대비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170발의 포탄을 쏘았지만 우리 군은 북한을 향해 겨우 자주포 80발을 응사했을 뿐이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전체 6문의 자주포 중 훈련 중이던 1문과 경계를 서고 있던 1문은 포탄에 맞아 고장이 난 상태였으며, 1문은 훈련 중 불발탄으로 인해 고장인 난 상태였다.

결국 전체 6문 중 3문만을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모두 포상에 대피했기 때문에 다시 끌어내서 응사를 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K-9 자주포의 경우 분당 6발을 쏠 수 있는 완전 자동식으로 한 번에 최대 48발까지 장전할 수 있지만 군은 평소대로 4발만 장전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40kg의 포탄을 포까지 들어 날아야만 했다. 결국 우리 군이 초기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50발뿐이었다.

이후 고장 난 K-9 자주포 1문을 수리해 모두 4문으로 30발을 추가로 발사해 총 80발의 대응이 있었다.

특히 연평도에 배치된 우리 군의 대포병탐지레이더는 북한군이 1차 도발을 감행했을 때 우리 군은 포격지점을 찾지 못했다가 2차 포격이 시작되었을 때야 비로소 포격지점의 좌표를 알아냈다.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이 발사한 해안포가 사거리가 짧은 저탄도 직사 해안포였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포격지점만 제대로 알아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연평도의 군사적 중요성을 감안했다면 그동안의 지적처럼 군사장비의 추가적인 보강이 필요했었다.

/ 출처 : 폴리뉴스 Polinews 2010 전수영기자 (https://www.polinews.co.kr)

사진은 찰나의 예술이다. 이 찰나의 예술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한 번 더 빛났다. 포격 도발 당시 화염에 휩싸인 포진지에서 해병대원들이 K-9 자주포를 기동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본지 1면에 실렸다. 〈세계일보 2010년 11월26일자 참조〉 포격 도발 상황에 의문을 품었던 국민들에게 이 사진은 해병의 용맹함과 당시의 긴박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금도 해병대 연평부대 곳곳에는 이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진을 촬영한 연평부대 정훈장교 이성홍(27·사진) 대위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 대위는 작년 11월23일 오후 통상적인 K-9 자주포 중대 사격훈련을 촬영하고 있었다. 4포상(진지)에서 촬영하던 중 포에 문제가 발생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렸다.

“‘두둥 두둥’ 천지를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3포상 부근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는 경황이 없었지만, 들고 있던 카메라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포 진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화염이 치솟았지만 몸을 피하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 찰나의 기록이 연평부대의 역사가 됐고,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최초의 피격순간

이 사진에는 아직 제목이 없다. 21일 이 대위는 “사람들이 포진지가 불타고, 자주포가 대응사격을 하는 사진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제목을 하나 붙여 달라는 말에 그는 웃으며 “특별한 일도 아니다”라며 쑥스러워했다.

정훈장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성격이 총력전으로 바뀌면서 군의 충성심, 신념, 군인정신 등을 함양하기 위해 생긴 자리다. 이 대위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정훈장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세계일보 2011.11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불바다가 되었고 화재 진압이 시급했다. 부대 소방차를 출동시키려 했으나 정전으로 전동 셔터가 열리지 않는 상황, 지게차 운전병이었던 이 상병은 기지를 발휘해서 지게차로 셔터를 박살내서 소방차를 출동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7포대 탄약고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해서 자주포들이 대응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이 공로로 2011년 10월 국군의 날 기념식 훈장포창수여식에서 이명박대통령으로부터 개인포상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ㅇ 철모가 불에 타 녹는줄도 모르고 북한 포진지를 향해 대응포격을 한 임준영 상병(포7중대)의 감투정신이 해병대원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훈련 중 기습을 당한 임 상병은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직감적으로 대응사격을 위해 K-9 자주포를 포상에 위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의 포격으로 곳곳에서 터지는 포탄의 화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폭발로 인한 뜨거운 화마(火魔)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뿐인 임 상병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군 포격이 빚어낸 화염은 임 상병을 휘감았고 철모 외피에 불이 붙어 철모는 타들어 갔다. 급기야 불길은 철모의 턱 끈을 타고 내려왔다. 턱 끈과 전투복이 불길로 까맣게 그을렸지만 임 상병은 대응사격에 여념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임 상병은 입술 위쪽 부분(인중)에 화상을 입었다.

임 상병은 “오로지 적에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철모와 턱 끈이 타버린 상태였다”고 말했다.

임 상병의 군인정신은 25일 불에 탄 철모를 쓴 채 연평부대 피해복구 작업을 하던 임 상병을 발견한 부대 지휘관들에 의해 알려졌다.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이날 “폭격과 화염의 공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해병대 정신을 발휘한 임 상병의 철모를 해병대 감투정신의 상징으로 삼아 영원히 해병대 박물관에 보관하라”고 지시했다.

/ 동아일보 2010.11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