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맞은 가을 수게 마중 인천 별미 상륙 작전
[여행스케치=인천 전설기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 뒤로 땀이 줄줄 흐르던 7~8월에는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19년 만의 대폭염, 그 덕을 볼 날이 올 줄은. 뜬눈으로 지새운 열대야의 고통이 이제 가을 별미의 기쁨이 되어 돌아왔나니. 먹어라, 우리의 여름은 힘겨웠으나 가을 수게의 맛은 황홀하리라.
여름이 더울수록 꽃게가 맛있다. 더위에 성난 사람을 달래기 위한 위로 같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이 더운 여름내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듯, 난류성어류인 꽃게도 수온이 높으면 여러 차례 게 껍데기를 벗고 탈피를 반복한다.
그 횟수에 따라 등딱지가 커지고 살집이 붙는다. 폭염이 꽃게의 대풍을 점치는 주요 기준이 된다면, 19년 만의 폭염이 한반도를 덮친 올해는 한층 크고 실한 게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인천의 김종아 꽃게잡이 선주가 풍년의 조짐을 귀띔한다.
“금어 기간 풀린 지 얼마 안 돼서 풍년이다 뭐다 말하기 이르죠.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수게 넓적다리를 보면 감을 잡거든요. 올해는 예년보다 살이 일찍 찼어요. 초가을에 잡아들이는 수게 살집이 벌써부터 딴딴하니, 10월이면 더 맛좋고 큰 게가 잡힐 겁니다.”
꽃게는 동해나 남해보다는 갯벌이 발달한 서해에서 많이 난다. 푹신한 갯벌은 꽃게에게 최고의 사냥터. 펄 깊숙이 숨어 있다가 작은 물고기를 낚아챈다. 맛난 먹이를 양껏 먹은 서해안 꽃게는 크기도 크기지만 살도 차지다. 인천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이 바다를 끼고 있어 서해안 꽃게를 가장 빨리, 쉽게 먹을 수 있는 최대 산지다.
전국 꽃게 생산량의 50%가량이 인천 앞바다에서 나니 명실상부한 ‘꽃게의 고향’이기도 하다.
수도권의 대표 어시장인 연안부두와 소래포구가 있으며 지난 5월에는 어민들이 직접 잡은 게를 직거래하는 화수부두 수산물 직거래 매장도 문을 열어 탄탄한 판매 활로를 다졌다. 17년 만에 수인선이 부활하면서 접근성도 더욱 높아졌다. 수도권에서 지하철을 타면 2시간이 안 돼 소래포구에 도착한다.
그러나 가깝다고 능사는 아닐 터. 인천에서는 매년 10월 꽃게 최대 산지로서의 위엄(!)을 보이는 꽃게 축제를 개최한다.
‘소래포구축제’와 ‘인천 명품 꽃게 특설장터 한마당’이 그것이다. 특산품 축제에서는 횡재 가격에 꽃게를 살 수 있고 배부른 시식과 체험거리도 함께 누려볼 수 있다.
꽃게 맛이 정점을 찍는 10월에는 가을 별미를 맛보러, 바닷바람을 쐬러 도시민이 몰려든다. 버겁기도 하련만 인천 앞바다의 거대한 꽃게 어항은 마르는 법이 없다.
딱딱게와 물렁게를 아시나요
“암게가 6월에 알을 낳아요. 씨가 마르면 안 되니까 6월부터 8월 말 산란기에는 법으로 꽃게를 못 잡게 금어 기간을 가지죠. 2달 기다렸다가 게를 잡는데, 암게는 막 알을 낳고 속이 비어서 먹을 게 없어요. 가을에는 암게가 알 낳는 동안 펄에서 좋은 거 먹고 속살 탱탱하게 오른 수게를 최고로 치죠. 그래서 가을 수게는 딱딱게, 암게는 물렁게인 거예요.”
인천 앞바다를 지척에 낀 소래포구 종합어시장의 박인성 사장이 가을 꽃게 맛 기행을 위한 팁으로 ‘가을 수게 딱딱이, 암게 물렁이’의 법칙을 전한다.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딱딱할 만큼 살이 꽉 찬 수게를 꺼내놓는데, 새벽 바다를 노닐다 이른 아침 납치된 수게가 잔뜩 성을 부린다. 툭툭 건들면 집게다리를 위협적으로 치켜든다.
기운 넘치는 수게는 당일 시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1kg에 1만~2만원 선이다. 꽃게잡이 배가 들어오는 포구가 지척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꽃게가 박해도 2만원을 넘지 않는단다.
본격적인 게 구경에 나선다. 정비가 잘된 소래포구 종합어시장에서는 신발을 적시지 않고도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다.
1층에는 꽃게를 비롯해 싱싱한 활어와 젓갈, 건어물을 판매하는 30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고, 2층에는 양념집 형식의 음식점과 각종 편의시설이 입점해 있다. 3층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테라스 정원으로 포구를 오가는 어선을 바라보며 낭만에 취하게 된다.
혹 시간이 허락한다면 5분 거리의 소래포구 뱃터재래 어시장까지 걸음을 옮겨보자.
조금만 안쪽으로 파고들어도 전통시장 특유의 복작거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빨간 대야 한가득 꽃게가 쏟아져 나오고, 제철을 맞은 전어가 물방울을 튀기며 몸부림친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마다 어느 것 하나 정지된 풍경이 없다.
대야에 담긴 것들은 살아서 팔딱팔딱 뛰어오르고, 생기 넘치는 바다 것들을 내놓는 상인들의 손놀림은 쉴 새 없이 바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어시장을 당당하게 활보하려면 ‘이쁜아’라는 간지러운 부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 어디를 가든 양손에 꽃게를 든 상인들이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온다.
목청껏 “언니, 언니, 언니!” 하는 소리에 숨이 넘어가고 “이쁜아, 여기가 제일 싸!”라며 귓전을 때리는 외침에 귀가 먹먹하다. 호객 행위에 이맛살을 찌푸리기에 앞서 들뜬 분위기에 몸을 맡기면 싱싱한 기운으로 가득한 전통시장의 매력에 빠져든다.
“가을은 역시 수게지요?” 물었더니 “수게가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6월의 알 밴 암게를 이길 수 있나. 사람이든, 게든, 뭐든 남자는 여자를 못 이겨!” 스타수산의 하남수 사장이 버럭 한다. 그 말에 “아니지, 가을은 암게가 알을 놓고 속이 비니까 살집 좋은 수게를 먹어야지. 살이 탱탱해서 날로 먹어도, 쪄 먹어도 맛있거든. 봄 암게는 맛있는 만큼 비싼데, 수게는 쌓아놓고 먹어도 주머니 넉넉하니까. 가을에는 수게가 왕이야.” 반대 의견이 또 막아선다. 따지고 들자면 암게 예찬론자도 수게 예찬자도 결론은 하나, 가을에 가장 맛있는 게는 수게라는 것.
꽃처럼 어여쁘니 맛도 좋아라
얼마나 맛있기에 입맛 까다로운 상인들도 입을 모아 칭찬할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골목에 즐비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시장 안쪽의 식당가는 시장에서 꽃게를 사서 들고 가면 일종의 자릿세 개념인 양념값을 받고 찜, 탕, 무침 등 다양한 꽃게 요리를 한 상 푸짐하게 차려준다.
양념값은 꽃게찜이 kg당 5000원, 꽃게탕은 kg당 1만원 선이다. 기다리는 동안은 입보다 코가 더 괴롭다. 큰 수게를 몇 마리 숭덩숭덩 썰어 넣고 얼큰하게 고춧가루를 쳐서 팔팔 끓이는 꽃게탕 냄새, 고소하니 달콤한 게 찌는 냄새에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기다림 끝에 수게가 찜통 안에서 사우나를 마치고 상기된 표정으로 상에 올라온다. 꽃처럼 붉고 예뻐 꽃게라더니, 선명한 홍색에 눈이 설렌다. 급한 마음에 게딱지부터 움켜쥐는데 파삭하고 손쉽게 껍데기가 갈라지면서 꽉꽉 들어찬 흰 속살이 드러난다.
젓가락으로 슬쩍 찌르기만 해도 흰 살이 먹기 좋게 쏟아진다. 노르스름한 내장은 흰 게살에 소스를 끼얹어놓은 듯 촉촉하게 배어들어 있다. 김이 모락모락 솟는 수게살을 덥석 물어본다. 쫄깃한 살 맛과 고소하면서도 은은하게 쓴맛이 도는 내장의 풍미가 입안 가득 넘친다.
“딱딱게가 3kg에 1만원!” 저울에 꾹꾹 눌러 담은 수게가 3kg에 단돈 1만원. 꽃게 구입을 마음먹고 온 고수들은 바로 이곳 인천수협 소래공판장 앞에 모였다.
막 조업을 끝낸 꽃게 어선이 포구에 들어오면, 발 빠른 상인들이 뭍으로 올라온 꽃게를 좌판에 깔아놓는데, 물량이 갑자기 밀려드는 때를 틈타 도깨비 세일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흥정에 재미를 붙이는 동안 게 몇 마리는 바다로 탈출을 시도하고 또 몇 마리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집게발을 찰각거리며 위협한다.
“오랜만에 딸이랑 사위랑 함께 나들이 나왔는데 꽃게가 싸고 좋아서 장 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한 박스 사다가 차 안에 넣고 다시 나왔어요. 아내는 게장 담글 게 본다고 다시 시장으로 갔고요. 사위가 일본인인데 일본에서는 꽃게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하더군요. 오늘은 하늘의 별을 따다 식구들끼리 밥상에 둘러앉아 꽃게 잔치나 벌여볼까 합니다.”
두 손 가득 꽃게 쇼핑을 마친 정동철·정연욱 부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다. 나들이객을 바라보는 인천수협 김남석 소래어촌계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소래포구의 가장 큰 매력은 조업을 마친 꽃게잡이 배가 바로 포구로 들어온다는 것이지요. 사리를 잘 맞춰 배 마중을 나오면 가장 싸게 꽃게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도 시장 사람들, 바다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깡(공판장 경매꾼) 못지않은 흥정의 재미를 볼 수 있죠. 특히 소래포구 축제가 있는 10월은 수게 맛도, 재미도 절정을 찍는 달입니다.”
인천에서는 꽃게도 축제가 된다
먹는 재미와 노는 재미,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10월의 게 축제는 총 2곳에서 열린다. 소래포구축제는 매년 소래포구와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에서 개최한다. 만선을 기리는 대동한마당 풍어제를 시작으로 꽃게잡이, 맨손 전어 잡기에 나서볼 수 있고, 어죽 등 바다 별미를 맛볼 수 있다.
시끌벅적한 어시장도 좋지만 가족과 여유 있는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인천 명품 꽃게 특설장터 한마당’을 추천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인천수협 지도팀 이대용 과장의 말을 빌리자면 오직 꽃게에 의한, 꽃게를 위한, 꽃게 대축제 한마당이다.
“잇속 챙기는 장사가 아니라 꽃게 원산지를 알리는 행사입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맛 한번 보기 힘든 특산품 축제가 많은데, 저희 행사는 주머니 걱정 없이 배불리 꽃게를 드실 수 있도록 무료 시식 행사, 체험 행사에 주력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잡은 꽃게를 참가 상품으로 가져가는 낚시 체험 경쟁이 치열했죠. 저도 참가했는데 손맛이 쏠쏠했습니다.”
축제 기간에 한해 1일 2회(1차 15:00, 2차 17:00) 한정으로 특별 할인 찬스가 주어진다고 하니 놓치지 말 것. 축제를 즐긴 후에는 인근의 소규모 놀이공원 월미도테마파크와 ‘한국 속의 작은 대륙’ 인천 차이나타운을 나들이 코스로 추가해도 좋다.
소래포구 종합어시장 / 주소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680-1
소래포구 뱃터재래 어시장 / 주소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111-198
소래포구축제 / 10월 18~20일 / 소래포구 수변광장 및 습지생태공원 일원
인천 명품 꽃게 특설장터 한마당 / 10월 19~20일 / 인천시 중구 월미문화의거리
출처 : 여행스케치(http://www.ktske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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