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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양 염불사 염불암

by 구석구석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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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245번길 150 / 염불사

밝은 기운 널리 퍼뜨리는 염불사의 상징

염불사 대웅전 앞마당, 보리수 한 그루의 신록이 눈부시다. 절을 감싼 산림 전체가 4월의 연둣빛으로 물들었지만 석가모니 부처를 가까이서 모시는 보리수는 그 중 주인공 같다. 봄볕 머금은 여린 잎사귀들로 풍성한 나무는 고(苦)를 모르는 순수한 청춘과 같은데 나무는 어느덧 600년을 살았다. 나무가 빛난 600번의 봄은 찰나, 대부분의 시간은 풍파와 수난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었을까, 부처를 모시듯 나무를 귀히 여긴 스님들 덕분이었을까.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육백 번의 봄 · 육백 번의 번뇌…천년의 염불소리 ‘염불사’ - 중부

밝은 기운 널리 퍼뜨리는 염불사의 상징염불사 대웅전 앞마당, 보리수 한 그루의 신록이 눈부시다. 절을 감싼 산림 전체가 4월의 연둣빛으로 물들었지만 석가모니 부처를 가까이서 모시는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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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은 전보다 많이 야윈 것이라고 한다. 수년 전 태풍에 가지가 잘려나갔고 나이 들어 약해진 몸통은 시멘트가 들어찼다. 그럼에도 의연한 나무는 누구에게나 봄의 기운을 나누어 주는 중이다.

출가 후 6년간의 고행한 끝에 보리수 아래 앉은 싯다르타. 깊은 선정에 든 그는 마침내 세상 이치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깨달음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보리수는 여러 사찰 경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염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 말사로 조선시대에는 한양 인근에 있는 4대 명찰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규모가 컸고, 지금도 연주암과 삼막사와 함께 관악산의 3대 사찰로도 꼽힌다. 출처 : 중부일보

사실 부처님의 곁에 있던 보리수는 우리나라 기후에서 자생할 수 없는 ‘인도 보리수’로 염주나무로도 불리는 우리나라 보리수와는 다른 품종이다. 보리수는 여름이면 빨간 열매를 맺는 보리수나무와도 다르다. 보리수의 열매는 보리자라고 하며 이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독일 슈베르트 가곡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보리수(Linden Baum) 역시 다른 계통의 나무다. 어쩌다 이름이 죄다 보리가 되어서 이렇게나 혼란스럽다. 보리수(普提樹)의 보리(普提)는 산스크리트어 ‘보오디(bodhi)’를 음차한 불교 용어로 깨달음, 지혜를 의미한다.

염불사 보리수는 고려 말 이곳에서 불도를 닦던 스님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일원이고 게다가 살아있는 생명체라서 보배롭고 소중하다. 기록에 따르면 염불사는 보리수가 뿌리 내리기 한참 전인 고려 태조 9년(926년)에 태조 왕건과 능정스님에 의해 안흥사(安興寺)로 창건되었다.

수령 600년이 넘은 보리수와 암반 앞에 모셔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미소를 짓고 계신다. 출처 : 중부일보

기록이 아닌 전설은 그보다 앞선 신라 문무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자 움막을 치고 수도하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일정 기간 함께 염불하던 장소가 바로 염불사였다는 이야기다. 염불사가 위치한 산은 세 사람이 수행한 산이라 해서 ‘삼성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고려 말 우리나라 불교를 이끈 나옹, 무학, 지공 세 스님이 정진한 산이라서 삼성산이 되었다고도 한다.
 

 
웅장한 자연 암벽 병풍으로 두른 ‘큰 절’

삼성산은 관악산의 줄기로 염불사는 산의 남쪽 중턱, 가파른 암벽 아래 자리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외곽 4대 명찰 중 하나였고 관악산에서는 삼막사, 연주암과 함께 3대 사찰로 꼽혀 왔다. 그럼에도 삼성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숱한 선사들이 수행처로 삼았던 삼막사의 명성에 가려진 감이 없잖아 있다. 그렇지만 오며가며 절 구경하는 행락객들에게는 삼막사보다 접근성이 훨씬 좋다. 안양 문화·관광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안양예술공원이 지척이라 놀며 쉬며 도보로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양유원지 걷기코스.  안양예술공원 초입에서 삼성산 숲길을 조금만 오르면 가파른 절벽 아래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 있다. 아직까지 ‘염불암’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염불사로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다. 이 사찰 역시 고려 태조 왕건이 세운 ‘안흥사’란 절의 후신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염불암중수기’에 원효, 의상, 윤필 세 사람이 도를 깨친 곳이라 ‘삼성산’이라 했고, 염불을 하던 정토라는 뜻으로 ‘염불암’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불교에서 안양은 극락정토의 세계다. 불성이 느껴지는 지명의 뿌리가 바로 안양예술공원에 있다. 안양이란 이름은 고려 때 사찰 안양사(安養寺)에서 기원했는데 주춧돌로 남은 터가 현재의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 부지다. 이 흥미로운 땅의 내막은 추후 중초사지를 다룰 때 자세하게 꺼내볼 수 있을 것 같다.

염불사는 이렇듯 삼막사와 중초사지에 밀리거나 주변 절들과 세트로 묶이는 일이 예사로 일어난다. 주변 명소가 많은 탓이니 어쩔 수 없지만 단독으로도 충분히 가볼만한 사찰이라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안양의 ‘공식 자랑거리’로 꼽히는 보리수를 보러가는 명분만으로도 충분하다.

안양예술공원의 천변길을 지나 서울대학교 관악수목원을 못 미쳐, 식당들 사이의 산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염불사다. 아스팔트 도로가 사찰까지 나 있고 등산로도 있다. 1.3km의 길은 꽤 비탈진 편이다.

염불사에서 다시 산길을 따라 1km를 더 걸어가면 삼막사다. 걷기도 숨찬 길을 산악자전거로 올라가는 이들이 이따금 보이는데 염불사 진입로는 라이더들의 도전을 부르는 ‘업힐 구간’으로 꽤 유명하다. 길은 매끈해도 경사도가 높아서 숙련된 라이더들도 마음으로 염불을 외며 겨우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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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이정표가 온통 ‘염불암’으로 표기된 까닭에 ‘암자’를 상상했던 이들은 절에 닿았을 때 가파르게 쌓아 올린 여러 단의 장대한 석축 아래서 살짝 기가 죽는다. 크고 작은 바위로 쌓아올린 옹벽의 가운데 돌에는 ‘참 좋은 절 염불암’이라 새겨져 있다. 축대 아래서 고개를 들어 넘겨다보는 절은 암자라기엔 그 규모가 크다. 흔히 큰 절은 ‘사(寺)’, 작은 절은 ‘암(庵)’으로 이름 붙인다.

염불사는 전각이 여러 채인데다 그 건물 한 채 한 채가 각기 높이를 달리한 땅에 세워져 굉장히 입체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웅장한 자연 암벽을 병풍으로 두르고 있다 보니 확실히 작은 절로 보이진 않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밖으로 보이는 형상과 느낌일 뿐이니 사암(寺庵)의 분별은 부처님을 바로 보는 일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확실히 해두자면 오랫동안 염불암으로 불려왔고 규모를 늘려가면서 염불사로 된 듯하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에는 ‘염불사’로 등록되어 있다.

구석구석, 요소요소 흥미로운 이야기들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전면에 대웅전, 왼편에 염불전이 있고 두 법당 사이에서 살짝 뒤로 불러난 나한전이 자리한다. 전각들은 대부분 현대에 신축했다. 국내 사찰에서 보기 드문 ‘염불전’이 생소한데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흔히 대웅전 좌측에 위치하는 지장전으로 보면 된다. 법당 이름을 사명(寺名)과 동일하게 지어 나름의 정체성을 살린 의도로 보인다. 일찍이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염불사에 모여 염불수행을 했다는 전설도 있으니 더욱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대웅전 오른편 석단에는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 산신상이 자리하고 석단의 가장자리에는 2018년에 봉안한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다. 이 석상들의 배경이 된 자연석 그대로의 병풍바위가 무척 근사하다. 약사여래상의 광배는 이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낙석 당시 염불사에 약사여래불이 없어 선물처럼 떨어진 돌을 약사여래상의 광배로 삼고 불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 인근에 있는 4대 명찰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그 규모가 컸고, 현재는 연주암, 삼막사와 함께 관악산의 3대 사찰로도 꼽힌다. 지금의 건물은 1910년에 지어졌으며, 6·25전쟁을 겪으면서 퇴락한 것을 1956년 중수한 것이다. 염불사의 가장 큰 매력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나한전, 산신각, 독성각 등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가람의 배치다.

주요 전각 뒤편의 암벽에는 레벨의 차이를 두고 작은 전각들이 자리하는데 사찰을 더욱 입체적이고 웅장해 보이게 하는 구역이다. 나한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애미륵불과 미륵전이 나온다. 높은 데서 안양 시내를 바라보는 높이 8m의 마애미륵불은 1969년 기석 스님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퇴락한 절을 안타깝게 여겼던 스님이 5년의 불사 끝에 완공했다고 한다.

미륵전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가면 독성각과 산신각이고 한번 더 계단을 따라 오르면 가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칠성각이다. 북극성을 불교적으로 표현한 치성광여래를 모시는 전각이다. 사찰 전각의 위계에서 칠성각은 하단에 속하지만 염불사 가람 배치에서의 위치 레벨은 최상단이다.

작은 전각이지만 그 높이가 주는 기대감이 있어 기어이 올라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위치다. 또 이곳에 올라야만 비로소 염불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축대 아래서 고개를 젖혀 보는 염불사의 앙감과 칠성각 앞에서 여유롭게 내려다보는 같은 절의 부감은 각각 전혀 다른 두 곳처럼 보인다.
 

박물관, 공원, 수목원 벗한 쉼터 같은 사찰

염불사에는 조선 후기 부도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는 부도군이 있다. 그중 마애부도 2기는 대웅전 우측으로 후미진 외딴 암벽에 있어 잘 살펴야 볼 수 있다. 자연 암벽에 구멍을 파고 화장한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형태인데, 새겨진 명문을 보면 스님이 아니라 재가신자임을 알 수 있다.

석종형 승탑 3기는 염불전 왼편 담장 너머에 있다. 이 승탑들은 사찰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형태는 일반적인 석종형 승탑과 비슷하지만, 탑신석이 거의 장방형이다. 탑신석 정면에는 장방형으로 얕게 판 틀 안에 명문을 새겼다. 상륜부는 보주형이다. 이 승탑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승탑의 주인공이 도일당, 인봉당, 서일당이며, 모두 재가신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작시기는 1810년, 1816년이다. 출처 : 중부일보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보기 드문 형태의 부도다. 석종형 부도는 조선시대 스님들의 장묘법으로 염불사의 사리탑 3기 모두 원통에 일직선으로 뻗어 내려온 원주형이란 점이 독특하다. 한 사찰에서 공존하는 마애부도와 석종형 부도를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부도들을 통해 염불사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매우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절의 옹벽 옆으로 졸졸졸 시내가 흐른다. 물을 뜰 수 있는 수각이 있을 법도 한데 아쉽게도 없다. 종무소에서 파는 1천원짜리 생수로 마른 목을 적신다. 그래도 잠시 엉덩이 붙이고 쉬어가기엔 참 좋은 절이다. 그늘도 있고 벤치도 있다. 늘쩡늘쩡 경내를 구경해도 뭐라 하는 이 없이, 부처님과 스님은 그저 빙그레 웃어주실 뿐이다. 조금 더 걸어 삼막사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염불사와의 연(緣)으로 충만하다. 염불사는 올 때나 갈 때나 통과할 문(門)도 없어 더욱이 자유롭다.

/ 출처 중부일보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마애승탑 3기는 염불사 동남쪽 선방 뒤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서로 높이를 달리하여 조성하였다. 암벽 향 좌측 하단에 조성된 현진당 마애승탑은 감실을 방형으로 마련하여 주위에 "현진당법홍거사건륭사십팔년십월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 명문으로 보아 승탑 제작시기는 1783년(정조7)이며, 주인공은 남성 재가신도임을 알 수 있다. 이 승탑은 현재까지 알려진 마애승탑 중 가장 이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염불사에 전하는 마애 승탑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된 승탑들과는 다른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조선후기 승탑이 많이 조성되는 것에 비해 적게 보이고 있어 역사성과 희소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애 승탑 형태에 따라 장례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며, 나아가 이는 현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납골당이나 수목장 등과 같이 죽은자가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불교 신앙과 산악 숭배, 바위 신앙 등이 습합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안양 지역이 갖는 독특한 불교문화로도 볼 수 있다.

염불사는 차량을 이용해서 올 수도 있지만, 1호선 관악역에 하차하여 삼막천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1795년에 정조대왕의 화산 능행차를 위해 만든 만안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 삼성천을 따라 가다보면 안양예술공원이 있고, 이곳에는 안양사지를 비롯해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 안양석수동마애종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염불사까지 가는 길은 포장도로와 숲길이어서 도보로 걸어가기 부담이 없으니 천천히 걸어서 만안교-안양사-염불사-삼막사를 묶어 삼성산 답사 코스를 체험해 보는 것도 추천해드린다.

/ 출처 : 중부일보 이현수 불교문화재연구소학예연구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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