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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성 죽산리 봉업사지 죽주산성

by 구석구석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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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위에 우뚝 선 석탑과 당간지주


석탑과 당간지주 주변은 온통 논밭이다. 바로 앞으로 4차선 도로가 지나 소음이 제법 있지만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평면적인 풍경에 시야가 편안하다.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일대는 여주 고달사, 양주 회암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때 손꼽히는 대형 사찰이었다는 봉업사 터다.

안성 비봉산과 죽주산 남쪽 평탄지에 위치한 봉업사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돼 있으며, 양주 회암사와 여주 고달사와 함께 고려시대 경기도 3대 사찰로 꼽히는 중요 사찰 중 하나이다. 출처 : 중부일보

고달사지와 회암사지는 허허로운 빈터로나마 절터였음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봉업사지는 주춧돌을 남겨 보존한 절터가 따로 없고 최소한의 부지에 탑과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러나 매년 곡식이 자라는, 살아 숨 쉬는 땅으로서의 폐사지를 아쉬워 할 이유는 없다.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석탑 아래 푸른 벼 물결…빈터만 남은 안성 봉업사지 - 중부일보 - 경

논밭 위에 우뚝 선 석탑과 당간지주석탑과 당간지주 주변은 온통 논밭이다. 바로 앞으로 4차선 도로가 지나 소음이 제법 있지만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평면적인 풍경에 시야가 편안하다.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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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업사지의 일부 흔적으로 남은 보물 제435호 오층석탑과 유형문화재 제89호 당간지주를 보기 위해 굳이 밭두렁을 걷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면 일부러 방문해 둘러볼만한 볼거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면서 차창 밖으로 넘겨보고 ‘여기가 절터였구나’해도 충분한 감상이다. 하지만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어 걷기를 마음먹는다면 봉업사지가 특별한 코스가 될 수도 있다.

봉업사지를 지나는 길은 삼국시대부터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던 도로의 한 구간이었다. 이 길은 지난 몇 년간 트레킹 코스로 정비되어 ‘경기옛길’로 거듭났다. 경기옛길은 크게 6갈래로 이중 영남길이 성남, 용인, 이천, 안성을 잇는다. 116km의 영남길은 다시 10개 코스로 나뉘고 이중 제8코스가 봉업사지를 지나는 ‘죽주산성길’이다. 죽주산성은 봉업사지 오층석탑을 마주보고 섰을 때 탑 뒤로 보이는 비봉산 정상부에 둘러진 성곽이다. 


고려시대 왕실사찰은 왜 죽산에 지어졌을까


용인시 백암면 황새울마을을 시작점으로 하는 죽주산성길은 쉬운 트레킹 코스는 아니다. 총 거리 13km에 죽주산성이 있는 해발 372m 비봉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봉업사지는 이 코스의 거의 끝 지점이라 정석대로 길을 다 걸으면 다소 지친 채로 도착하게 된다. 길을 완주하기에 부담스러운 이들은 봉업사지를 출발점으로 삼고 매산리 석불입상을 지나 죽주산성까지 걷는 약 3km의 코스를 추천한다.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제435호). 옥개받침의 치석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는 고려의 위상을 그대로 석탑에 투영하고 있다. 출처 : 중부일보

죽주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도로 포장이 되어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굳이 걷기 코스를 추천하는 이유는 봉업사지가 심심해서 이왕이면 주변 문화재와 자연을 두루 구경하면 좋겠다는 취지가 우선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궁극적으로는 길 위의 유적들이 모두 봉업사지와 유기적으로 관련이 있어 흔적이 별로 남지 않은 봉업사지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의미가 있다.

봉업사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화차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3차례에 걸친 경기도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절터에서 화차사라고 적힌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후 절은 고려 광종 때 크게 중창되고 봉업사라고 개칭, 고려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사원으로 거듭났다.

『고려사』에는 홍건적을 피해 안동까지 피난했던 공민왕이 1363년 개경으로 돌아오면서 봉업사에 모신 태조 영정을 참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절의 덩치가 커지고 봉업사의 위상이 높아진 까닭은 고려 왕실이 지방 호족들을 통합해 지지기반을 다지고 이 지역 불교세력을 포상하기 위함으로 추정한다.

그만큼 당시 죽산 지역은 죽산 박씨(竹山 朴氏)와 같이 대대손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토호세력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고장이었다. 또한 당시 죽주(竹州)로 불렸던 죽산은 지리적으로 기호지방과 삼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신라 때부터 전략적으로 중요한 땅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죽주산성이 축성되었고, 조선말까지 도호부가 자리해 있던 경기?충청의 주요 행정구역이었다.
 


‘경기옛길’ 따라 봉업사지에서 죽주산성까지

봉업사지 오층석탑을 정면으로 마주한 위치에서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차도 중앙에 커다란 동상이 보인다. 죽주방호별감 송문주로 1236년 죽주산성에서 있었던 몽골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죽주산성 전투는 6차에 걸친 몽골 침입에서 고려가 승리한 대표적인 전투로 기록된다.

죽주산성은 6세기 경 신라가 북진하는 과정에서 축조되었는데 고려 때 외성을 세워 전쟁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와편으로 볼 때 외성 축성 시기도 봉업사를 중창했던 광종 재위 즈음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에는 중성과 내성까지 축조해 방어력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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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죽주산성은 죽산 주민들의 ‘힐링 스폿’으로 통한다. 2010년부터 복원 공사가 이루어져 산 아래서도 보이는 외성과 중성은 세월의 더께 없이 희고 매끈하다. 내성과 성문, 포루도 복원해 산성을 한 바퀴 돌며 산책하기 좋다. 죽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필자는 죽주산성으로 자주 소풍을 갔는데 30년 전만 하더라도 외성은 거의 무너져 있고 주변은 수풀로 우거져 산성을 한 바퀴 돌기는 어려웠다.

중성 동문지에서 북쪽 성곽을 따라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 포루가 있다. 화강석 석재로 벽을 쌓아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국방일보

현재는 성벽 위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정돈된 분위기다. 특히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 북벽 포루의 경치가 근사하다. 포루에 서면 죽산면과 일죽면 등 안성 동부 지역과 이천 일대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중성 서남치성 위에선 봉업사지를 비롯한 죽산 일대가 보인다.

중성 동남치성과 남문 사이의 성벽이 허물어져 복구공사를 하는 모습과 마친 후의 깨끗한 성벽 모습(사진 위쪽). / 국방일보

내성의 북문지로 네모난 형태의 옛 삼국시대 성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국방일보

위에서 내려다보는 봉업사지의 풍경은 ‘봉업사’라는 명문이 쓰인 유물이 처음 출토되던 1966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전까진 ‘죽산리사지’로 불렸는데 기록에 따르면 이미 1530년에 봉업사는 폐사되어 없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불교의 꽃을 피운 땅

죽산에 남겨진 고려의 흔적은 봉업사지 오층석탑과 죽주산성 사이에 서 있는 매산리 석불입상도 있다. 석탑에서 죽주산성 방면으로 1km 떨어진 곳에서 매산리 오층석탑과 석불입상을 만날 수 있다.

안성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6구의 고려시대 미륵상이 자리해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매산리 석불입상도 그중 하나다. 5.6m에 달하는 큰 키에 균형이 맞지 않는 신체 비례가 투박하지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준 소중한 존재다. 미륵은 석가모니불이 세상에 오고 나서 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다. 지난한 삶을 살던 민초들은 이상세계에 대한 희망으로 곳곳에 미륵불을 세웠다.

죽산에는 안성을 대표하는 사찰인 칠장사도 있다. 본지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시리즈에서 소개한 바 있는 칠장사는 봉업사지에서 남쪽으로 13km 떨어진 칠현산 자락에 있다. 이곳 대웅전 옆에 보물 제983호인 봉업사지석조여래입상이 있다. 원래 봉업사지에서 가까운 죽산중학교 교정에 있던 것을 1980년경 칠장사로 옮겼다.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과거 두 사찰 간의 교류는 꽤 활발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에 이루어진 봉업사 불상의 칠장사 이전이 생뚱맞게 느껴지진 않는다. 더군다나 절터가 대부분 농경지다보니 석탑이나 당간지주와 달리 석불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할 때 비록 봉업사는 오래 전에 폐사되었으나 죽산은 신라 때부터 오랜 세월 불교문화의 꽃을 피워온 땅이었고 그중 고려시대는 죽산의 전성기였다고 할만하다.

현재의 봉업사지는 어떤 꾸밈도 없는 날 것의 느낌이다. 30년 전, 필자는 봉업사지의 논두렁길을 걸어 석탑과 미륵불을 지나 죽주산성으로 향했다. 산 밖으로 성벽을 노출해 존재감을 드러낸 죽주산성을 제외하면 지금의 모습은 그때 그 풍경 그대로다.

이 일대 땅을 가진 사람들은 발전이 없어 속상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룻밤의 상전벽해가 우습게 일어나는 오늘날, 변치 않음의 가치는 귀하고 무해하다. 절이 사라진 빈 땅에 푸른 벼가 물결친다. 폐사지는 쓸쓸하지 않고 충만하다.

/ 출처 중부일보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안성 죽산리-봉업사지 죽산향교

봉업사지 봉업사란 말 그대로 나라를 창업하면서 받들던 절이란 뜻이다. 고려 창업을 기념한 국사찰이었으며 왕건의 영정이 봉안되어 고려가 망하기전 475년동안 고려왕실에서 한해도 빠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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