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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성 청룡리 청룡사 전통사찰

by 구석구석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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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는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있는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청룡사가 위치한 서운산은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해발 547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부드러워 많은 사람이 찾는 경기 남부의 명산이다. 산 정상부에는 서운산성이 있으며 서쪽 봉우리에는 우물이 있다.

 

[인문기행-경기도의 전통사찰 2] 자비로운 구름이 흐르는 서운산 청룡사 - 중부일보 - 경기·인천

청룡사는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있는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청룡사가 위치한 서운산은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해발 547m로 그리 높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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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년 중종실록에는 가뭄이 심할 때 전국에 기우제 지낼만한 곳을 열거하였는데 경기도에서는 파주 적성의 용두산과 안성의 서운산을 꼽았다. 서운산 봉우리 우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우제를 지내면 무릇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서운산은 청룡산이라고도 하였는데, 전통적으로 용은 비를 내리게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용이 들어간 지명과 기우제와의 연관성은 상당히 높다.

해체보수 중인 청룡사 사진= 홍원의 학예사 출처 : 중부일보

1720년에 세워진 ‘청룡사중수사적비’와 대웅전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현판 그리고 이번 해체보수 공사 중 발견된 1863년 상량문을 종합하면,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 명본국사(明本國師)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고 1364년 보제존자 나옹선사가 크게 중창하여 청룡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창건주인 명본국사는 원나라 절강성 항주 출신 승려로, 호는 중봉이고 1263년에 태어나 1323년에 입적한 사람이다. 명본국사가 만 2살 때인 1265년에 머나먼 이국땅인 고려에 와서 대장암을 창건하였다는 기록은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이는 향후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한편 중창주인 보제존자 나옹화상은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자비로운 구름이 흐르는 것을 보았고 이에 새로이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구비하니 건물에 꽃비가 어지러이 떨어지며 신비한 물체가 오르내리는 듯하고 연못 속에 깊이 잠기기도 하는듯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을 본 것이다. 이에 서운산 청룡사라고 이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초석 상부에서 발견한 곡척 사진=홍원의 학예사 출처 : 중부일보

이 절에는 고려말 공양왕의 초상화를 봉안하였는데, 1437년 세종의 명에 의하여 고양시로 옮겼다. 공양왕의 초상화를 모셨다는 점에서 국가에서 관할하는 진전사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세조는 이곳을 무척 아껴서 교지와 현판을 내리고 특별히 수원의 논 50두락을 하사하고 서울의 용흥사와 진관사의 물건들을 청룡사로 옮기기도 하였다. 인평대군의 사후에는 그의 초상화를 모시고 왕실의 태평을 비는 원찰로 삼았다. 이러한 왕실 사찰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병화를 피하지는 못하였다.

절 안에는 대웅전,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의 전각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고려 시대 석탑인 삼층석탑이 있다. 그중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조선 중기의 기법과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하였다. (※2021년 11월 문화재청에서는 국보나 보물 등에 붙이던 문화재 지정번호를 없앴다. 문화재의 지정순서가 가치를 판단하는 서열의 순서로 오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문자들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대웅전의 기둥이다. 전혀 가공하지 않은 아름드리 노송을 전각 기둥으로 세워 자연스러운 선을 살렸다. 이를 도랑주라고 하는데 조선 후기 자연주의 사상이 대두되면서 살림집과 사찰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출처 : 중부일보

대웅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자연미를 살린 기둥이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사람이 만드는 건축물에 최대한 자연미를 살린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 대웅전은 주요 부재의 노후화로 인하여 건물 전체의 변형이 심하여 2016년부터 2021년 12월까지 전면 해체보수를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뒤쪽 기둥 바닥 초석과 닫는 부분에서 길이를 측정하는 도구로 굽어있는 ‘곡자’가 놓여 있었다.

대웅전 상량문 등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1863년 수리 당시에 사용했던 것인데, 습기 조절을 위한 건초류와 고운 황토가 같이 나온 것으로 보아 후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의도적으로 넣어 놓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였다. 이 곡자는 1자를 313㎜로 하였는데 이는 1446년 세종대 도량형 통일에 따른 영조척과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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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주불로 모신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좌상과 천의와 보관을 착용한 좌협시보살입상, 대의와 보관을 착용한 우협시보살입상으로 이루어진 삼존상으로 흙으로 만든 다음 겉에 금박을 입혀 만든 불상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관음전에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고려 후기의 보살상 양식을 계승한 조선 초의 불상으로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청동으로 제작된 마지막 보살상으로도 중요하다. 172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불상에서 발견되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청룡사 동종 사진=홍원의 학예사 출처 : 중부일보

명부전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대웅전 불단에는 이 상을 1669년에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고, 일체의 중생이 모두 제도 되면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한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심판관인 시왕(열 명의 왕)을 거느리고 죽은자를 심판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는 가정에서는 지장보살의 자비로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빌어주는데 청룡사는 특히 죽은 이의 명복을 빌어주는 지장 도량이다.

1658년에 조성된 ‘영산회괘불탱’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괘불 110여 점 가운데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의 괘불이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취산에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괘불인데, 괘불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하기 위하여 법당 마당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걸개그림을 말한다. 또 1692년에 조성된 ‘감로탱’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감로탱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고통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염원을 담고 있는 탱화이다.

청룡사 감로탱 사진=홍원의 학예사 출처 : 중부일보

1874년에는 ‘아미타여래회도’, ‘지장시왕도’, ‘신중도’ 등 3점의 탱화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1878년에는 ‘석가여래삼불회도’를 조성하였는데 이는 모두 인평대군의 후손과 연관이 있다. 1915년에는 ‘팔상도’, 1917년은 ‘사자도’가 각기 조성된다. 이중 ‘신중도’는 1960년대에 안성 법계사로 옮겨져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작년에는 ‘아미타여래회도’, ‘지장시왕도’, ‘석가여래삼불회도’ 등 3점이 한꺼번에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실 청룡사에서 조성한 탱화는 이보다는 훨씬 많았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문서에 따르면 대웅전에 8점, 명부전에 1점, 관음전에 3점 등 총 12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그중 4점만이 남아있다. 나머지는 도난을 당한 것도 있으며 신중도처럼 다른 사찰로 옮겨진 것도 있다. 그리고 당시 조사되지 않은 것도 있어 정확한 수량조차 파악이 안 된다.

포벽화 속 옛도상 사진=홍원의 학예사 출처 : 중부일보

대웅전의 안팎에는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내부의 측면 벽에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치고 아미타삼존과 많은 인물을 태운 용이 끄는 지혜의 배가 극락을 향해 전진하는 ‘반야용선도’가 있고 그 옆에는 비파를 연주하고 박을 치는 ‘주악천인도’가 그려져 있다. 외벽의 공포와 공포 사이에 그려 넣은 포벽화에는 떨어져 훼손된 자리에 150년 전 처음 그려진 벽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로써 벽화를 그릴 때는 기존 그림을 지우거나 없애지 않고 위에 덧그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웅전 안에는 1674에 사인비구가 구리 800근으로 만든 청동종이 있는데 이 또한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인비구는 17세기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를 중심으로 동종을 만들었던 승려이다. 그가 만든 동종은 전국적으로 총 8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372년에는 대장군 김호와 영암군부인 최씨가 시주하여 능엄경을 간행하였는데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 청룡사는 조선 후기에 등장한 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청룡사 인근 불당골에서 겨울을 지낸 후 봄부터 가을까지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하였다. 청룡사 사당패의 흔적은 청룡사중수사적기에 적혀있는 불량답 시주자 명단에 사당들이 확인된다.

예부터 청룡사는 왕실 사찰로서의 역할도 하였지만, 시주자 명단에 안성 주변의 일반인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도 민중들과 함께 살아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 

/ 출처 : 중부일보 2022.3 홍원의 안성시청 학예연구사

청룡사를 통해 서운산 등산로를 올라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서운산은 해발 547m로 산세가 유순해서 초보 등산가들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리는 산이다. 산길을 통해 반대편에 있는 석남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신라 때 창건한 석남사는 칠장사, 청룡사와 더불어 안성의 3대 사찰로 꼽히는 천년고찰이다. 두어 시간이면 산행과 더불어 두 곳의 절을 두루 구경할 수 있으니 좋다.

여유가 있다면 청룡사-석남사 마애여래입상-석남사 트레킹 코스를 걸어보길 추천한다. 청룡사 진입로에는 서운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합쳐진 청룡호수가 있다. 고요하고 잔잔해서 제법 분위기가 좋은 호수다. 오리배, 모터보트, 수상스키 등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진천 방향 38번 국도는 운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 여기도 가보세요

청룡사와 가까운 한식당 풍물기행은 갖은 산나물과 된장찌개가 함께 나오는 보리밥 정식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한방 보쌈, 도토리묵 무침, 찜닭 등도 괜찮다. 나무 실내장식에 조롱박, 맷돌, 우물 등 예스러운 소품들로 꾸민 식당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식당 규모도 커서 식사시간대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역시 청룡사 인근에 있는 팽나무골 곤드레밥집은 돌솥 곤드레밥 정식 전문점이다. 심심하게 무친 나물과 조기구이, 훈제오리, 신선한 겉절이 등의 정갈한 찬과 된장찌개를 돌솥 곤드레밥과 함께 내어준다. 곤드레밥은 양념간장이나 강된장과 비벼 먹는다.

/ 출처 : 중부일보 - 유승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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