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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성 청룡리 청룡사 청룡호수 호반가든 이해룡고가 풍물기행

by 구석구석 2008.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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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서운산은 경기도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해발 547m로 아담하고 바위도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에 푹 안겨 가족들끼리 가볍게 산행하기에 좋다.

 

더불어 청룡사와 석남사 등 문화유적지가 많아 쉬엄쉬엄 역사공부 하기에도 좋고 산 주변엔 호수들까지 있어 운치 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안성시에서 15 km 정도 떨어진 서운산 기슭 /  청룡사

고려 원종 6년(1265)에 명본국사가 지어 대장암이라 하였으며, 그 후 고려 공민왕 13년(1364) 나옹화상이 크게 다시 지어 청룡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무학대사의 스승이신 나옹스님이 이 절을 크게 일으킬 때 푸른 용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고 산 이름도 서운산이 되었다.

 

절안에는 대웅전, 관음전, 봉향각, 명 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조선 현종 15년(1674)에 지은 5톤 무게의 구리로 된 종이 있다. 

청룡사 삼층석탑(경기도문화재자료 제59호)은 2.2m 높이의 아담한 삼층석탑, 대웅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고려 원 종 6년(1265) 명본국사가 세운 것으로 당대의 불탑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지대석은 크기가 다른 여러개의 돌로 구성되엇고 그 안에 1매석으로 된 하대석을 놓아 탑을 받치고 있다.
이 하대는 4귀에 낙수면이 표현되었고 중앙에 3단이 괴임을 두었다. 상대갑석은 원래 1매석 이었으나 2개로 깨어졌는데 아랫면은 외반된 곡면으로 처리되었고, 윗면에는 3단의 옥신괴임이 마련되었다. 초층탑은 1매의 돌로 이루어 졌는데 모서리에 우주가 표시되었다. 옥개석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옥서받침은 4단층급으로 이루어졌다. 2층 옥신도 1매석으로 이루어지고 우부 표현이 있으나 옥신의 크기가 급격히 작아져 비례가 어색해진 감이 든다. 옥개석은 초층과 같은 모습이며, 3층 옥신과 옥개석도 같은 형태이다.

 

 청룡사 청동종은 보물제14-4호로 법당안에 있으며, 이 종은 검은빛이 감도는 큰 종으로서 원래는 1674년에 종루의 종으로 만든 것이다. 높이 128, 밑지름 89, 위지름 56, 두께 7.5cm이다.

 

숙종 대에 활동했던 승장 사인(思印)이 30대 중반에 지준(智俊)·태행(太行)·도겸(道兼)·담연(淡衍)·청윤(淸允)과 함께 만든 통일신라 때부터 보이는 전통 계열의 종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종들 가운데서도 우수한 작품으로 17세기 범종의 연구와 승장들의 사회 및 사원경제구조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보물제1302호인 청룡사괘불탱이는 불(佛)·보살(菩薩)의 육신부(肉身部)에 금니(金泥)를 이채(裏彩)하여 다른 불화(佛畵)에서는 거의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주목할만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그리고 하단의 여러 풍속장면들은 17세기 이후의 풍속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회화사적 의의가 높다.
 

 

청룡사의 창건 연대, 변천과정, 기타 사찰에 관한 사항 등을 알려주는 사적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4호). 이 비문은 승려 안성자준(安定羅浚)이 지었고 글씨는 직산현감을 지낸 황하민(黃夏民)이 썼으며, 사헌부 지평김진상(金鎭商)이 전액을 썼다. 비문에 의하면 고려 말 승려 나옹이 이 절을 중창할 때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아서 서운사 청룡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뒤 조선 세조가 수원지역의 농을 하사하고 서울 신흥사와 진관사의 기물을 보냈으며, 안평대군이 이곳을 왕실의 명복을 비는 원당으로 삼아 새 영정을 모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숙종 때 승려 사간이 영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관음전, 문수전 등의 전각을 중건했다고 한다.

 

청룡사 쪽에서 오른다면 절 왼쪽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오르면 개인농장을 지나 왼쪽에 나옹선사가 기도했다는 토굴암이 있다. 울창한 숲길을 헤치고 40분쯤 오르면 차령산맥 산등성이가 한꺼번에 내려다보이는 좌성사가 나온다.

 

좌성사는 백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비교적 근래의 기도사찰이다. 좌성사에 오르면 반드시 대웅전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샘물을 먹어보자. 조금씩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물맛이 단맛이다.

 

좌성사 위쪽 요사채를 지나 오솔길을 오르면 새로 지은 듯한 서운정이 나온다. 여기서 정자 난간에 걸터앉아 바람도 쐬고 땀을 식히노라면 가히 신선이 된 듯한 기분. 다시 오솔길을 올라 토성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급경사를 오르면 가슴을 씻어낸다는 탕흉대가 나온다. 

 

은적암으로 내려가는 길의 단풍

탕흉대는 서운산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힌다. 이곳은 안성, 평택, 성환, 천안까지 시야에 잡힌다. 올라온 길을 돌아나와 토성을 따라 산길을 산책하듯 걷는 기분은 오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정상에서 땀을 식힌 뒤 은적암을 보고 울창한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청룡사에서 오르던 길과 다시 만난다. 이곳저곳 산세를 음미하며 둘러봐도 2시간이면 넉넉한 거리다.

 

정상에서 청룡사쪽 길을 접고 동북쪽 기슭으로 내려가면 석남사 마애여래좌상 앞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 등산코스 : 1) 제1코스 : 석남사 - 서운산 정상 - 서운산성 - 은적암 - 청룡사(1시간30분 소요)
○ 등산코스 : 2) 제2코스 : 중앙CC - 서운산 정상 - 서운산성 - 은적암 - 청룡사(3시간 소요)
○ 등산코스 : 3) 제3코스 : 청룡사 - 좌성사 - 서운산 정상 - 은적암 - 청룡사(1시간30분 소요)

 

청룡호수 ‘호반가든’ 

 

서운산을 오르는 산행코스의 첫 나들목 청룡사 가는 길에는 청룡호수도 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상스키와 모터보트까지 즐길 수 있는 청룡호수는 맑은 물이 마르지 않는 저수지로도 유명하다. 청룡사 앞쪽 1km쯤 되는 이곳 호반에는 50여 가구 150여 명이 살고 있는 서운면 청룡리인데, 식당 6곳과 카페 4곳이 문을 열어 놓고 손님들을 반긴다.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계곡가의 ‘호반가든(031-672-9090)’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유연숙씨(44) 2대가 38년 전통을 잇고 있는 토박이 식당이다. 옥호 ‘호반’이 말해 주듯 호수에서 잡아 올린 민물새우로 매운탕을 끓여내는 집으로, 삼복에는 계곡가의 넓은 식탁을 차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문난 식당이고 보면 민물새우매운탕 맛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4인분 30,000원. 토종닭백숙 30,000원).

방 4개로 민박손님도 받고 있는데 높은 인기로 예약 없이는 방 차지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차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해 놓았다.

 

호숫가의 자유와 사랑 카페 ‘타라 TARA'

 

청룡사로 가고 서운산을 오르는 길, 청룡호수 상류쪽 길가에서는 허름하게 느껴지는 작은 카페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카페이름이 ‘타라(TARA·031-673-5871)'다. 이름이 이채로워 주인 이수용(60)씨에게 뜻부터 물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인공 스칼렛의 고향목장 이름이라고 했다. 그 목장에서는 자유와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건네받은 명함에 찍힌 사진에 이해가 갔다. 영화속 한 장면인데 주인공역 클라크 게이블과 카페의 주인 인상이 빼닮았다.

카페에는 작은 테라스가 딸렸고, 길 건너편으로는 청룡호수가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그대로다. 넓지 않는 작은 마당은 파란 잔디가 깔려 있어 맨발로 밟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 실내 한 켠은 작은 스테이지로 몇 가지 악기가 놓여 있다. 누가 와서 연주를 하느냐고 물었는데 답은 뜻밖이었다. 주인 자신이 그 악기들로 음악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은 젊은 날 서울의 고등학교 교단에서 젊음을 불살랐던 선생이었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길에 이런 분위기의 작은 카페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차 한 잔 마시고 맥주 한 잔이라도 걸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잔잔한 작은 행복의 하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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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리55-1 여우가말했다 031-672-7626

저수지에서 서운산등산로를 따라 청룡사입구를 지나 좀더 오르면 있다. 

 

서운산 등산로 입구에 노란 지붕의 야트막한 집이 자리잡고 있다. 바깥벽에는 어린왕자와 작은 별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여우가 말했다"라고 쓰여진 노란색 표지판이 눈에 띈다. 화가인 이경희씨가 예전에 작업실 겸 까페로 꾸민 공간인데, 이곳의 단골이었던 부부가 3년전에 인수해 운영해 오고 있다.
당시 화가는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에 푹 빠져 동화 속의 주인공을 까페 곳곳에 그리고 이름을 "여우가 말했다"로 정했다.

 

실내 곳곳이 「어린왕자」의 이미지로 장식되어 있는 동화 같은 느낌의 전원 카페. 오솔길을 한참 들어가야 나오므로 찾는 데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숨어 있다. 곳곳의 그림과 LP음악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환상적인 분위기 가운데에서 부드러운 레귤러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문화재자료 제73호 이해룡고가

경기도의 제일 남쪽 끝인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후기 주택이다.
마을은 서운산의 남쪽 계곡에 계곡물을 앞에 두고 약간 경사진 곳에 작은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의 제일 뒷쪽 약간 높은 곳에 집이 놓여 있고 집 뒤로는 경사진 언덕이 시작된다.

 
집은 ㄱ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소위 튼 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 앞으로 약간의 빈터가 있고 집뒤 한단 높은 대지에는 전에 후원을 꾸민 흔적이 남아 있다. 안채 마루도리에 적힌 상량문에 가경(嘉慶)2년 즉 정조21(1797)년에 집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안채나 사랑채는 처음 지어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안채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 2칸이 옆으로 이어지고 그 앞으로 부엌 2칸이 이어져 소위 곱은자집을 이루며 대청 좌측에는 건너방 1칸이 있다. 건너방 앞의 툇마루는 대청보다 한 단 높게 꾸미고 그 아래로 방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를 내었다.

 

사랑채는 건너방과 이어져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ㅡ자형을 이룬다. 우측으로 2칸은 방이고 나머지 끝에 1칸이 마루가 되어 이 마루에서 뒤로 간채 건너방이 연결되며 앞에는 툇마루가 방과 마루를 이어준다. 방의 창문은 머름을 댄 띠살창으로 가공이 정교하다.

 

사랑채 우측으로 중문이 옆으로 이어지면서 행랑채가 되어 집의 앞쪽을 감싸도록 되어 있으나 행랑채 부분은 근래 벽돌조로 개조되었다. 집 뒤 언덕의 후원에는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이고 약간의 평지를 이루어 자연스런 맛을 남기고 있다.

 

청정 자연 속에서 즐기는 맛과 멋 '풍물기행' 031-677-5288

서운면 청룡리 102번지 / 찜닭 보리밥정식 두부전골

 

10년 전 안성에 내려오며 시내 곳곳에서 버려지는 옛날 집과 옹기 등 각종 물건들을 수집해 지금의 풍물기행의 기틀을 마련했다.

풍물기행을 접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식당의 안과 밖을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하게 꾸민 인테리어에 절로 환호성이 나온다. 아담한 아치형 다리로 꾸며진 입구를 들어오면 마당 한켠에 놓인 모닥불, 직접 꾸민 옛 우물가, 물레방아가 자리를 하고 있다.

 

실내로 들어오니 외부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직접 지었다는 집답게 서까래와 기둥들도 옛 정취가 묻어나고, 식탁 역시 옛 물건으로 꾸며놓은 것이 이채롭다.

 

 

 풍물기행의 가장 큰 인기는 역시 보리밥정식. 수육을 먹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정식을 주문한다고 한다. 먹기 좋게 썰어 나온 수육과 두부를 보니 다른 집과 차이가 많다. 두부는 점점이 박힌 주황색이 이채롭고, 11가지 한약재를 함께 넣어 삶은 돼지 수육은 먹음직스럽게 윤기가 흐르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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