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왕실문화의 특징 보여줘
역대 유명한 시인묵객들의 시심을 자극해
다산 정약용의 ‘상심낙사賞心樂事’ 이룬 곳
세속을 잊고 마음의 평온 찾는 명소로 남아
[인문기행-경기도의 전통사찰 6] 다산도 반한 수종사의 사계… 남양주의 봄 새하얀 배꽃에 물든
◇국가 명승의 수종사, 왕가의 원찰로 남아=봉선사 말사이기도 한 수종사(水鍾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雲吉山) 자락에 위치해 있는 사찰로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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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명승의 수종사, 왕가의 원찰로 남아
봉선사 말사이기도 한 수종사(水鍾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雲吉山) 자락에 위치해 있는 사찰로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수종산기에 따르면 수종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 샘에서 물이 돌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지역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지점에 위치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예찬을 받았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서거정은 용강 위의 산에 있는 묵은 절이여, 오솔길 꼬불꼬불 푸른 숲으로 들어간다. '옛날 영운의 지나감을 자주 맞이했거니, 지금은 도리어 원공의 이야기가 막혔다'라며 ‘수종사 윤선로에게 보낸다’라는 시에서 수종사의 경치를 극찬했다. 수종사는 한강을 수로로 오르고 내릴 때 바라다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도성에 드나드는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았던 명소이다.
수종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5층 석탑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재가 있어, 사찰의 연혁과 함께 그 역사적 의미도 확인할 수 있다. 수종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사리탑과 오층석탑이 있다. 사리탑은 1439년에 건립되었고, 1459년 세조의 명으로 절이 중창되었고, 1493년에 왕실 여성들의 발원으로 5층석탑이 건립되었다.
이후 1890년 혜일스님이 고종으로부터 8천 냥을 하사받아 절을 중창하고, 1891년 다시 4천 냥과 금과 비단 등을 시주받아 사존불을 개수하였다. 이로 보아 수종사는 왕실 관련 사찰으로 판단된다.
◇조선 초기 양식에, 왕실의 안녕 기원과 불심 배어있어
수종사가 품은 문화재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우선 보물 제1808호로 지정된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이 탑의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 기와 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석탑의 1층 옥개석에서 불감과 불상, 2층 옥개석에서 금동불상 9구, 3층 옥개석에서 금동불상 3구 등이 발견됐다.
이 석탑에서 나온 ‘금동석가불좌상’의 발원문에는 성종의 장수와 덕을 찬양하고 왕가의 안녕과 부귀, 소원성취를 기원하며 옛 불상을 중수하여 탑에 안치하였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조선 전기 왕실발원의 탑 봉안 불상군 중에서 유일하게 명문과 발원문이 발견되어 의미가 크다.
다음으로, 보물 제2013호인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이 있다. 이 사리탑은 정혜옹주의 사리탑이다. 금성대군 부부의 시주(施主)로 세워졌다. 왕실과 관련된 조형물로써 왕실에 소속된 장인이 파견되어 설계 시공되었다.
상하 높이와 좌우의 너비가 적정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외관이 안정되고, 세부적으로는 장식적이고 섬세한 표현 기법과 함께 조선초기 대표적인 양식이다.
이 사리탑에서 나온 수정사리병(水晶舍利甁) 등 사리엄장구, 14과(顆)의 청백 사리 등은 불교 문화재 중 사리엄장구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으며, 조선 개국 이후 정식으로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불심이 깊은 일반 신자의 부도란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조선 문인들의 시심(詩心)을 자극해
수종사의 뛰어난 경관은 많은 문헌에 기록이 전하는데, 역대 이름난 문인들의 시심을 자극한 것이다. 조선 전기 최고의 문호로 알려진 서거정부터 김종직, 신익성, 임숙영, 이항복, 김창협, 정약용, 이만용, 박문규 등 남양주에서 살았던 문인들은 시문으로 남겼고, 겸재 정선의 독백탄(獨白灘), 정조 사위 홍현주의 수종시유첩(水鐘詩遊帖), 이건필의 두강승유첩(斗江勝遊帖) 등 문인 화가들이 그 빼어난 경관을 그려내었다.
특히, 이덕형은 매일같이 수종사에 올라 강 건너 부용리에 묻혀계신 어머니의 무덤을 향해 인사드렸고, 이항복은 친우를 그리워하며 수종사를 생각했다. 신흠과 임숙영 등은 권력의 폭압과 암울한 시대의 대안을 찾고자 수종사에 올랐다.
신익성은 세속의 화려함에 감춰진 인간의 허상을 잊고 맑은 기운을 얻기 위해 수종사에 올랐고, 홍현주는 그림을 너무 좋아하여 그림같은 수종사의 정경을 담아내려 수종사에 올랐다. 정학연, 정학유 형제는 수종사에 올라 부친의 정신을 일깨웠고, 초의 선사도 스승을 생각하며 수종사에 올랐다. 그러나 수종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단연 다산 정약용이다.
◇정약용의 ‘상심낙사(賞心樂事)’, 기심(機心)을 잊게
다산 정약용에게 수종사는 공부방이고, 놀이터였으며, 활력소였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자랑거리이자, 고난을 이겨내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학문의 길에 뜻을 두면서부터 수종사에서 독서하고 공부를 하였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자 친우들이 모여 축하잔치가 베풀어진 곳도 수종사이다. 이처럼 수종사는 정약용의 고향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기나긴 고난의 연속이었던 유배시절 다산에게 수종사와 그 주변 경관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다산은 자신의 고향 친지들과 나라 사람들의 고난을 묵과하지 않고 자신의 일로 여기고 해결책을 찾았다. 그 결실은 500여 권의 저술에 담겨있다.
유배 18년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다산의 말을 빌자면 ‘상심낙사’가 있었다. ‘내가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것, 가장 즐거운 일’로 풀이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꼭 이루고 싶은 마지막 소원이라 할 것이다. 다산의 상심낙사는 고향의 절경을 직접 보고 가족과 함께 일상의 소소한 즐기는 것이었다.
다산은 ‘수종사의 눈 내린 풍광’이라는 시에서 ‘신선이 사는 선계와 같이 아스라하고, 백옥 숲과 은 병풍이 두른 듯, 하늘은 봉우리에 닿아 검어지고, 물은 여울을 만나 더 푸르네(風玄圃, 周遭玉樹銀屛, 天近峯巒似黑, 水逢湍瀨暫靑)라고 그리며, 눈 덮인 산과 배 꽃 만발해 하얗게 변한 수종사의 풍광을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꼽았다.
이제 남양주에는 여기저기 배꽃이 하얗게 피기 시작한다.
다산이 그렸던 수종사와 주변 풍광도 하얗다. 봄이면 하얀 배꽃으로 물들고 겨울이면 눈 내려 은 병풍과 백옥의 숲으로 변했다. 물론 다산이 살았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으나, 저녁 무렵 석양빛을 받아 빨갛게 물들어가는 강가의 풍경과 수종사에서 바라다보이는 푸른 물결과 청정하고 광활한 정경은 다산이 말한 그대로이다.
예나 지금이나 수종사를 자주 찾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수종사에 오르면 어느덧 세파의 때를 벗고 기심(機心 세속적 욕망을 숨기고 있는 것)까지 잊게 하는 듯하다. 이제 다산 정약용이 말한 ‘세속적인 이해와 승패가 관계할 수 없는 운치’가 살아있는 수종사의 멋을 찾아보자.
/ 출처 : 중부일보 2022 김형섭 남양주시립박물관 학예사·문학박사
도량으로 들어서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앞서 소개한 불이문 쪽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고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 쪽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 어느 쪽으로 들어와도 탁 트인 장관에 시선이 닿기 마련이지만 절의 첫인상은 조금 다르다. 도량 전체가 한 눈에 잘 보이는 방향은 은행나무 쪽에서 들어섰을 때다.
대웅보전, 선불장, 삼정헌, 산신각, 응진전 등 사찰의 전각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전각들이 지형을 따라 옹기종기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수목들이 울창해 옹골진 느낌이다. 창건연대는 불분명하나 조선 전기인 1458년 세조 때 중수한 이후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 약사여래불 등은 2000년대 이후 새로 세운 것으로 그 이전의 풍경은 지금보다 조촐했을 것이다. 시나브로 가람이 확장되어 왔어도 경내 풍경은 고졸한 정취를 잃지 않고 그저 겸손하기만 하다. 내려다보이는 두물머리 풍경에 저 자신을 양보한 듯 전각과 그 안에 모신 불상들은 모두 강 쪽을 바라보고 있다.
남양주시와 함께하는 '다산 발자취 기행' ④목민심도
경기도 남양주에 ‘목민심도(牧民心道)’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서로 꼽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본떠 이름 붙여진 ‘목민심도’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다산 능선’이라 불리는 구간을 포함해 남양주의 대표 산인 예빈산·예봉산·적갑산·운길산 등을 잇는 등산 코스다.
‘백성을 생각하던 정약용의 마음으로 걸어 보는 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일찍이 정약전·약종·약용 삼형제가 생가인 여유당(與猶堂·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서 집 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학문의 도를 밝혔다고 전해지는 ‘철문봉(喆文峰)’을 비롯해 다산이 ‘상심낙사(賞心樂事·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운 일)’ 중 하나로 꼽던 운길산 ‘수종사’ 등을 두루 거친다.
1801년 겨울,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은 유배 기간인 18년 동안 고향 산천이 그리울 때마다 ‘다산초당’ 뒷산(만덕산 자락)이나 ‘백련사’에 수시로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강진만(灣) 풍경은 고향 집이 있는 마재마을, 두물머리 풍경과 묘하게 닮아 위로가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0년이란 시간이 흘러 두물머리엔 팔당호가 생기고, 강진만 일부도 간척이 돼 풍경이 많이 변했지만, 낯선 유배지에서 다산이 애써 찾아낸 강진만과 닮은꼴 고향 풍경은 어디였을까.
다산을 연구하는 김형섭 남양주시 문화예술과 다산정약용팀장은 “정약용유적지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있는 예빈산(590m)과 예봉산(683m)은 다산이 생가가 있던 마재마을(능내)과 덕소를 오갈 때 애용하던 육로였다”며 “다산초당 뒷산에서 강진만을 보며 떠올린 풍경은 아마도 예빈산 견우봉이나 직녀봉·예봉산 철문봉 부근에서 바라본 마재·두물머리 풍경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철문봉은 다산이 강진 유배길에 오르기 전 형들과 능선을 거닐며 학문을 논의했다 알려진 곳이니 개연성이 있다. 다산이 꿈에 그리던 고향 전망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아니 오를 수는 없는 일. 그 길로 예빈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재마을 전망대’를 찾아서
다산의 고향 마재마을과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가려면 예빈산을 통해야 한다.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시작해 직녀봉까지 등산로를 이용하면 2시간 넘게 걸린다. 굳이 등산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천주교 묘역이 들어서 있는 ‘천주교 신당동 성당 소화묘원’(이하 소화묘원) 정상부 부근에만 가도 유배 시절 다산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풍경을 가늠해볼 수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산 중턱쯤 자리 잡은 소화묘원 정상부에선 마재마을은 물론이고 양수리 시내, 강 건너 광주(廣州) 분원과 양평까지 보인다.
‘내륙의 바다’ 팔당호와 사방으로 이어진 물길 덕분일까. 그러고 보니 팔당호 한가운데 떠 있는 족자섬을 포함해 주변 산은 마치 섬처럼, 마재마을과 두물머리 일대는 바닷물이 파고든 ‘만(灣)’처럼 보인다. 강진만 풍경과 퍼즐이 얼추 맞춰지는 그림이다. 내친김에 목민심도(거치는 코스에 따라 25~35㎞)의 코스 중 하나인 직녀봉으로 이어간다.
소화묘원 정상부 등산로 이정표에서 예빈산 정상인 직녀봉까지는 1.7㎞다. “소화묘원 등산로 이정표에서 시작해 승원봉과 견우봉을 거쳐 직녀봉에 오르는 코스는 짧고 강렬한 등산을 선호하는 이들이 알음알음 이용하는 구간이긴 하나 등산 초보자라면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라는 게 먼저 나선 등산객들의 전언이다.
소화묘원 뒤편으로 난 등산로는 길이 다양해 등산의 맛을 느낄 수는 있으나 경사로가 이어지는 데다 비탈이 심해 미끄러운 구간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중간 쉼터에서 등산화 끈을 바짝 조이고 ‘승원봉’ 부근에 오르면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검단산이, 멀리는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후 ‘맛보기’ 해주듯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팔당호와 일대를 두른 산 능선이 우거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며 기대감을 높인다.
등산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다리에 힘이 풀릴 때쯤 견우봉 부근에 다다르니 비로소 시야가 확 트이면서 팔당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힘들게 산에 오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풍경이다. 시간만 잘 맞추면 ‘인생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산천에 초록빛이 강하지만, 차츰 조금씩 물들어가는 가을 산을 발아래 두니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다산이 “열수(한강) 가에 산다”는 걸 자랑스러워했을 만한 풍광이다. 예빈산과 예봉산은 서울 근교 일출 산행·운해(雲海) 전망 명소이기도 하다.
◇다산의 정원 ‘수종사’
다산이 고향을 떠올린 강진만과 닮은꼴 풍경이 또 하나 있다. 운길산(610m) 산허리 8분 능선쯤 해발 400m 부근에 자리 잡은 천 년 고찰 ‘수종사’ 마당에서 바라보는 마재마을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 역시 언뜻 다도해를 연상케 한다.
여유당에서 직선으로 6㎞ 정도로 가까이 있는 수종사는 다산이 시를 통해 ‘나의 정원’이라 했을 만큼 자주 찾던 곳이기도 하다. 김형섭 팀장은 “다산은 손님이 오면 접대 장소가 마땅치 않아 수종사에서 만나곤 했다”며 “초의선사, 홍현주 등 조선 후기에 종파와 당색을 가리지 않고 사회 변혁을 꿈꾸던 당대 선각자들이 수종사를 즐겨 찾은 이유도 다산 때문이었다”고 했다.
덕분에 수종사엔 다산과 관련한 즐거운 일화가 곳곳에 숨어 있다. 다산 또한 진사시 합격 후 ‘유수종사기(游水鍾寺記)’를 쓰는 등 수종사와 관련한 글을 여러 편 남겼다.
◇'독백탄’ 그림 속을 걷다
마재마을 일대 산의 능선을 따라가는 목민심도 코스를 종주하려면 등산 고수라도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다산 발자취 기행에 의의를 둔다면 의미를 되새기며 일부 코스만 거닐어도 충분하다. 다산의 동선을 따라가 보려면 생가 ‘여유당’이 자리한 정약용유적지를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정약용유적지에서 소화묘원 입구까지 도보 이용 시 최단 거리는 3㎞ 정도다. 다산생태공원, 북한강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 ‘봉안터널’ 진입 전 소화묘원 방향으로 이어가는 길은 천주교 묘역을 거쳐야 하는 코스의 ‘특수성’이 있지만, 열수(한강)를 가까이 두고 가을 운치를 만끽하며 걷다가 묘역의 포장길 따라 예빈산 중턱까지 올라가기에 수월한 편이다.
◇여기도 가보세요
수종사 주변에선 눈에 보이는 어딜 가든 반나절 나들이 장소로 훌륭하다. 춘천까지 곧장 이어지는 북한강자전거길, 남한강자전거길의 일부 구간을 자전거 타고 달려도 좋고, 강변길 곳곳에 조성된 공원을 산책해도 좋다. 팔당역과 운길산역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두 역 사이를 잇는 10km를 자전거로 달려보길 추천한다. 국내 자전거도로 중 손꼽히게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구간이다. 물의 정원과 다산생태공원은 산책코스로, 또 반나절 피크닉을 즐기는 장소로 적당하다.
수종사 근처 식당으로는 ‘이가네 자연밥상’을 추천한다. 운길산 등산로 9코스 입구에 자리한 식당으로 숯불고기쌈밥과 오리주물럭이 대표 메뉴다.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기본 찬들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간이 잘 밴 고기가 입맛을 돋운다. 봄부터 가을까지 시즌메뉴로 내놓는 미나리부추전도 별미다. 한 끼 만족스럽게 먹을 만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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