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와 익산, 완주가 만나는 삼례 5일장
완주 삼례읍의 삼례시장은 완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으로 매 3일과 8일에 5일장이 열린다. 삼례는 완주 안에서도 핵심지역인 봉동읍과 용진읍 그리고 익산시, 인구 65만이 넘는 전주시와 붙어있어 배후 소비시장이 든든하다. 게다가 젊은 귀농귀촌인들의 유입이 꾸준하여 인구 구조도 튼실한 편이며 늘어난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들도 안정적 삶을 살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삼례시장 활성화의 양분이 되었다.
현대화된 전통시장이다. 무료주차장 운영. 삼례 5일장은 삼례시장·청년몰 주위에서 열린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2층의 청년몰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조금 뜸해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죽 공방, 패브릭 공방 등 이 청년몰을 지키고 있어 가볍게 둘러볼 만하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여러모로 독특한 면이 있다. 전주시를 둘러 싸고 있는 지형이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를 닮았다. 그런데 땅이 둘로 나뉘어서 이서면의 경우 전주 땅을 밟지 않고선 갈 수가 없다. 두 도시를 통합하여 경쟁력 있는 광역시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자주 나오지만 완주군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인구는 9만이 넘는데 보통의 군 단위 지방도시가 1읍 형태인 것과 달리 완주는 읍이 셋이나 있다. 봉동읍과 삼례읍, 용진읍이 그것이다. 봉동은 생강이 유명하고, 삼례는 딸기가 유명하며, 용진은 우리나라에 로컬푸드 바람을 일으킨 시발점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세차게 내린다. 시장 초입에 몰려있는 닭집들에서 나오는 특유의 비릿함이 코를 자극한다. 보통의 재래시장에선 닭집들이 구석진 곳에 있는데 삼례시장에선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 고 있다. “닭집들이 삼례시장을 살리는 것 같아요.” 냄새나는 닭집들이 초입에 있다고 하자 대로에서 자두 좌판을 펼친 아주머니가 ‘이 양반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하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생닭을 직접 잡아서 판매하는 닭집이 삼례시장의 명물인 것 이다. 그러고 보니 입구 닭집들은 시장 안 다른 가게들보다 매장이 크고 직원들도 많고 간판도 큼지막했다. 우매한 여행객에게 진리를 전해준 자두 아주머니는 전주에서 왔다는데 자두 단일품목만 취급하는 나름의 전문점이다. 집에 아름드리 자두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해마다 그 덕을 보고 있단다. 검붉은 자두가 빗물을 머금어 유난히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5일장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아무래도 손님이 많지 않은데다가 상품만 버릴 수 있어 아예 나오지 않는 상인들도 많다. 그러나 주부 9단은 비 오는 날의 시골장터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줄 안다. 재고를 남겨서는 안 되는 신선식품들의 가격이 평소보다 싸기 때문이다.
“눈만 맞으면 팔아야죠. 돈 벌 생각 말고!” 좌판 매대에 진열된 전복을 손질하고 있던 어물전 경력 20년의 이광 수(52)씨와 눈이 마주쳤다. 비 오는 날에는 물건을 싸게 팔아야 한다 면서 오늘 가지고 나온 생선들은 어떡하든 팔고 가야지 남겨 가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살아있는 전복은 5일장에서 보기 쉽지 않은 품목이 다. 전복만 해도 보통 하루 100kg 정도 가지고 다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60kg만 가지고 왔단다. 가격 불문하고 모두 팔고 갈 셈이라고 하니 파장 무렵엔 얼마까지 떨어질까 궁금하다. 이 씨의 주 품목은 전복 외에도 꽃게, 갈치, 오징어 등이다. 그날그날 경매 받은 신선한 어물들을 전국의 5일장으로 옮겨 다니며 팔고 있다.
간판 없는 천막 아래 좌판이지만 ‘키다리수산’이라는 버젓한 사업자등 록증까지 가지고 있다. 상호처럼 키가 훤칠하고 친근감 가는 얼굴에 싹싹함과 친절함까지 갖춰서인지 단골손님들도 많다. “아귀(아구)는 잘 사셔야 해요. 중국산은 뒤집어 놓았을 때 배가 갈라져 있어요. 내장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제거해 놓아요. 그래서 애(간)가 없어요. 아귀는 애가 제일 맛난데...” 천막 안으로 들어온 주부가 한 마리 1만 원짜리 큼지막한 아귀를 2마리 1만5,000원에 손질하여 담아 간다.
삼례 5일장의 중심부에 위치한 삼례시장·청년몰에는 이색 품목이 여럿 있다. 건물 1층에서는 나름 맛집으로 입소문 난 반미(Bánh mì) 전문점에 눈길이 간다. 반미는 작은 바게트 빵에 고기와 허브 같은 채소를 푸짐하게 넣어서 만든 베트남식 샌드위치다. 창업 2년 만에 맛집으로 알려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국땅 생활을 하는 베트 남 자매가 주인이라 더 호기심이 간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언니 이영(45) 씨는 올해로 한국살이 18년째이고 유학 왔다가 정착한 동생 투이번(THUY VAN) 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이영 씨가 수년간에 걸쳐 남편을 설득한 끝 에 삼례시장에 반미 전문점을 오픈했을 때 주위의 우려는 컸었다. 그 도 그럴 것이 코로나 공포가 전국을 휩쓸 때 문을 열었고 특히 재래 시장의 주 고객층인 노년층이 이색 외국음식인 반미를 먹을 리 없었 기 때문이었다. 재래시장에선 순댓국 아니면 해장국 아니면 팥죽이나 짜장면이 기본이다.
그렇지만 이영 씨는 고향 호찌민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반미에 진심을 다했다. 우선 기계가 아닌 손반죽을 고집했다. 거기에 자연 숙성과 무방부제를 원칙으로 삼았으며 바게트는 딱 하루 팔 양만큼만 그날그날 구워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맛을 택하니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오후 5~6시면 바게트가 동나 영업이 종료된다. 메뉴판에 이름 박힌 반미들은 모두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바게트 특유의 식감이 고기와 어우러진 다양한 채소와 소스를 감싸주고 있 으니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머릿속에서 펑펑 베트남 폭죽놀이가 펼쳐 진다. ‘반미 420’이라는 상호를 누가 지었는지 궁금하다. ‘사이공(Saigon)’에 서 ‘420’을 뽑아낸 것은 한국인에게도 쉽지 않은 감각인데 아니나 다를까 평소 도움을 많이 받고 지낸 한국인 선생님의 아이디어라고 한 다. 420에는 베트남의 도시 이름 외에도 ‘사(4)람들이 이(2)야기하는 공(0)간’이라는 뜻도 담겨 있단다.
/ 여행스케치 박수남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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