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산군도로 가려면 ‘바다 위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새만금방조제(총 33.9㎞)를 관통해야 한다.
입도 전 레드카펫 밟는 듯 설레는 기분 덕에 앞으로 길게 뻗은 직선 도로가 지루할 틈이 없다. 방조제의 중간쯤, 이정표를 보고 빠져나오면 고군산군도의 관문과도 같은 섬 ‘신시도’에 닿는다. 신라 때부터 청어잡이를 위해 김해 김씨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신시도는 새만금방조제와 연결되면서 섬 아닌 섬이 됐다. 그 전까지는 군산항에서 무려 90여 분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던 외딴섬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에 휴양림 내 숙박 시설이 모두 ‘오션 뷰’인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이 개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숙박과 관계없이 입장료(성인 1000원)를 내면 당일 탐방도 가능하다. 자연휴양림이지만 꽃과 나무보다는 전망이 한 수 위다. “섬의 토질 때문에 식재할 수 있는 수종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게 김형주 숲 해설사의 말이다.
그는 “대신 바다를 가까이 둔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사스레피’ 나무 등을 관찰할 수 있다”며 “이곳 휴양림뿐 아니라 섬의 숲길을 걷는 동안 어디서 LPG 새는 냄새가 나는 듯하다면 이것이 범인일 수 있다”며 사스레피 나뭇가지를 들어 보였다.
고군산군도는 16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 군락이다.
고려 때 수군 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리다가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육지로 옮겨가며 ‘옛 고(古)’자를 붙였다. 신시도를 시작으로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등 비교적 큰 섬 사이엔 고군산대교, 선유대교, 장자대교 등 연도교(連島橋)가 놓여 차를 타고 쉽게 오갈 수 있다. 고군산군도 여행의 첫 번째 연도교이자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섬의 성찬이 시작된다.
신시도 건너편, 가까이 모여 있는 섬들이 마치 술잔과 장구, 무당이 춤을 추는 것처럼 생겼다는 ‘무녀도’엔 두 개의 ‘똥’섬이 볼거리다. ‘쥐똥섬’과 ‘똥섬’은 다른 섬에 비해 아담하지만, 서해 섬 여행의 묘미를 누려볼 수 있는 포인트다. 쥐똥섬은 물때에 따라 바다 갈라짐 현상, 일명 ‘모세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바닷길이 열리면 무녀도와 쥐똥섬 사이에 하얀 모래 카펫이 깔린다. 여행객 사이에 있던 한 마을 주민은 “코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지만,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10여 분만에 길이 잠긴다. 방심했다가 섬에 고립되는 사람도 많다”며 “안내 방송이 들리면 재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무녀도에서 선유대교를 건너면 고군산군도의 대표 섬이자 중심 섬인 ‘선유도’가 기다린다. 신시도와 무녀도를 거치며 고군산군도의 예고편을 맛봤다면, 이제 ‘본방’으로 들어갈 차례. 선유터널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선유도 삼거리로, 좌회전해서 장자대교를 건너면 장자도와 대장도로 이어진다.
선유도로 들어서자마자 탄성 내지는 괴성이 들려온다면, 선유도 해변 상공을 가로지르며 하강하는 ‘선유 스카이 썬라인’ 체험객들이 내는 소리다. 고군산관광탐방지원센터 부근 45m 높이 출발점에서 양주봉 입구까지 700m 구간을 매달려 내려오는 체험 시설(성인 2만원, 어린이 1만6000원)은 젊은 층뿐 아니라 50~60대에게도 인기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짜릿한 그 체험은 다음을 기약하고 명사십리를 자랑하는 선유도 해변(해수욕장)부터 찾았다. ‘십리’라 하지만 실제 길이는 1.5㎞쯤 된다.
4월의 선유도 해수욕장은 ‘바다 멍’ 즐기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깨끗한 모래사장 위 드문드문 놓인 이국적인 파라솔 아래 앉아 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물이 빠지고 펄이 드러나면 갯벌 놀이터로 어린아이들이 뛰어든다. 해변 끄트머리에선 바지락뿐 아니라 농게, 소라게 등과도 조우할 수 있다.
장자도에 들어서면 ‘호떡마을’이 마중 나온다. 촘촘하게 이어진 호떡집마다 ‘원조’ ‘직접 반죽’을 내세운다. 구운 스타일의 옛날 호떡이라기보다 기름에 튀겨내는 듯 익히는 요즘식 꿀호떡(2000원)을 판다. 카페 ‘호떡당’ 등에선 젊은 세대 입맛에 맞춘 크림치즈 호떡 등도 선보인다. 일대에서 1만원 이상 구매 시 공영주차장 2시간 무료 주차라 필수로 사먹는 분위기다.
‘장자대교’를 건너면 장자도를 거쳐 대장도에 이른다. 대장도엔 고군산군도 섬 여행의 방점을 찍을 만한 대장봉이 기다린다. CNN 속 고군산군도의 대표 이미지도 대장봉에서 내려다본 섬 무리 풍경이다.
대장봉은 해발 142.8m로 높지는 않으나 만만하게 볼 코스는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구불길’로 올라가 대장봉 정상을 거쳐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하는데, 정석이긴 하나 길이 좁은 데다 일부 구간은 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목책,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코스도 노약자에게 쉬운 코스는 아니다.
계단이 가파른 데다 끝없이 이어지는 듯해 ‘욕(하며 오르는) 계단’이라는 악명도 높지만, 길을 잘못 들 일이 없고 구불길보다는 ‘비교적’ 수월하다. 오르는 길엔 ‘할매바위’나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어화대’, 바다 전망 공간에서 잠시 숨을 고를 틈이 있다.
식사를 위한 식당은 주로 선유도 고군산관광탐방지원센터 일대에 밀집돼 있다. 공영주차장 뒤쪽 ‘남도밥상’은 군산박대구이정식(1만5000원)을 먹으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 곳. 정식엔 맑고 시원한 바지락탕을 곁들여낸다. 팔팔 끓인 바지락탕에 칼국수(3000원)를 투하해 먹으면 더욱 푸짐하고 맛있다.
싱싱한 회를 맛보고 싶다면 선유도어촌계수산물센터 ‘고래포차’를 눈여겨볼 만하다. 2~3인이 막회(4만원)나 밑반찬과 맛보기용 해산물이 곁들여지는 막회 세트(5만원) 등에 매운탕(5000원)을 추가하는 게 기본이다. 공깃밥 대신 물회(1만5000원)나 멍게비빔밥(1만2000원)을 곁들이기도 한다. 멍게나 해삼, 소라 등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한접시(2만~2만5000원)’ 메뉴도 다양하다. 유람선 선착장, ‘기도등대’와 가깝다.
/ 글 조선일보 2023 주말뉴스부 박근희기자 / 사진 2023.5.6 새만금여행에서
ㅁ 아름다운 섬의 향연, 군산 고군산군도… 대장봉에 오르다
[여행스케치 = 군산] 바다 위에 흩뿌려진 크고 작은 섬들이 모인 고군산군도. 저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대장봉에서 굽어본 고군산군도의 풍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전북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길이 33.9km의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바다 위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내달렸다. 저 멀리 서로들 마주 보며 떠 있는 정겨운 섬들이 보이더니 이내 그 속으로 빠져든다. 크고 작은 섬을 넘고 바다를 건너며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감상하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살며시 샛길로 빠지면 그만이다.
섬과 섬을 잇다
고군산군도는 선유도를 중심으로 신시도와 무녀도, 장자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섬의 군락’이다.
전에는 배를 타고 와야 했다지만, 지난 2017년 야미도부터 장자도까지, 섬 사이를 관통하는 길이 8.77km의 고군산연결도로가 완전히 개통되면서 이제는 육지에서도 차량으로 군도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각각의 특색을 가진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 있는 고군산군도, 그 중심에는 선유도가 있다.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산과 서해 같지 않은 투명한 바다, 매끈하게 이어지는 고운 백사장을 보고 있자니 가히 신선이 노닐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유도 뒤편의 봉우리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또는 신선이 노닐던 섬처럼 경관이 수려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최근에는 선유도 외에도 ‘한국의 이스터섬’이라 불리는 야미도와 형형색색의 마을버스가 다니는 무녀도 등이 SNS에서 인기를 끌며 젊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가볍게 즐기는 트래킹, 구불8길
흐렸다 개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장자교를 건너 대장봉으로 향했다. 고군산군도의 둘레길인 구불8길(고군산길)은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와 장자도, 대장도 등 주변 섬을 두루 탐방할 수 있는 코스다. 가파른 오르막이 없는 데다 대부분의 코스가 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어 쾌적하게 걷기 좋다.
총 길이 21.2km의 구불8길은 크게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망주봉과 선유3구를 둘러보는 코스와 선유해수욕장-장자도-대장도로 이어지는 코스, 무녀도에서 무녀봉과 무녀염전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나눌 수 있다. 그중 선유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장자도를 지나 대장봉을 오르는 3km 남짓의 구간은 산과 바다, 어촌마을 등 다양한 풍경을 두루 볼 수 있어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에게 추천할 만한 하다.
섬을 3개나 이동한다지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다리와 길로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하나의 섬이라 봐도 무방하다. 넉넉히 잡아도 2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짧고 완만해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소박한 어촌마을, 장자도
선유도해수욕장에 위치한 고군산군도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구 장자교를 건너면 장자도 먹자골목의 활기찬 분위기가 여행객을 반긴다. 누군가는 소란스럽다 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다.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과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고 각종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과 분위기 좋은 카페도 볼 수 있어 나름 볼거리도 많은 편. 넓은 주차장과 깔끔한 편의시설은 덤이다. 대장봉까지 곧바로 오르고자 하는 여행객들은 이곳에 주차 후 걸어서 대장도까지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안쪽에는 도로 폭이 좁아 주말에는 교통체증이 극심한 편이다.
장자도는 100여 명의 마을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지만, 원래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섬이었다고 한다. 사방이 섬으로 둘러싸인 태풍의 피해를 거의 받지 않는 천연 대피항에다, 과거 조기가 많이 나던 황금어장이어서 항상 많은 배가 정박해 있던 곳이었다고.
전성기에는 조기를 잡기 위해 수백 척의 고기잡이배가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작업을 하던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주변의 바다가 온통 불빛에 일렁거리던 이 모습을 ‘장자어화(壯子漁火)’라 부르며 아직도 선유8경에 꼽고 있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대장봉
장자도를 지나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고군산군도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대장도에 닿게 된다. 다리가 연결된 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가장 개발에 적고 자연적인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다. 자유롭게 섬을 누비는 작은 강아지, 한가롭게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겹다.
가운데는 해발 142m 대장봉이 솟아 있다. 대장봉은 산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또 언덕이라 하기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돌이 많고 경사가 심해 다소 힘은 들지만, 정상까지 20분이면 닿으니 꼭 올라가 보길 권한다.
실제로 입구에서부터 전망대가 있는 정상까지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체감 소요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고백하자면 오르기 전부터 이 봉우리를 과소평가했다. 겨우 142m밖에 안 되는 뒷 동산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우거진 숲길을 10분쯤 걸었을까. 어느새 거친 숨을 나지막이 내뱉고 있었다.
중간쯤 가면 보기에도 막막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겹겹이 입은 웃옷을 벗어젖히며 계단을 올랐다. 그래도 시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오르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다. 오른편으로는 마치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 할매바위도 눈에 띈다.
이 바위는 장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전설이 깃든 바위로 ‘과거에 급제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혼자 착각을 해 돌이 되어 굳어버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이 바위를 보며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지고 배신하면 돌이 된다고 한다.
대장봉은 높진 않아도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이 가히 압권이다. 잔잔한 바다와 사방에 흩뿌려진 크고 작은 섬, 소박한 어촌 마을의 포근함이 어우러지며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다가 온다. 때마침 잔뜩 흐렸던 하늘이 개더니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쏟아질 땐 잠시 코끝이 찡했던 것도 같다. 잔잔한 바다 위로 부서지던 고군산군도의 일몰은 단지 20분 남짓의 산행치고는 넘치게 아름다웠고 과하게 보람찼다.
보통의 서해안 해수욕장이 펄로 이뤄진 것에 반해, 선유도해수욕장은 고운 모래로 이뤄져 있어 물이 깨끗하고 투명한 것이 특징이다. 또 백사장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아 산책하기에도 좋고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특히 선유도해수욕장은 환상적인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해 질 녘 즈음에는 차들이 줄지어 들어오니 예정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다.
신선이 노닐던 섬, 선유도
대장봉에서 내려다보면 선유도해수욕장의 유려한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선유도해수욕장은 유리알처럼 고운 천연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명사십리는 ‘모래가 파도에 쓸리면서 내는 소리가 십 리 밖까지 퍼진다’는 뜻으로,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닷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고군산군도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제도로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야미도 등 12개의 유인도와 횡경도, 소횡경도, 십이동파도 등 40여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6개의 섬(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야미도, 대장도)은 새만금 방조제 및 고군산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INFO 선유스카이 SUN라인
선유도 해수욕장에 조성된 높이 45m, 길이 700m의 집라인. 12층 높이의 타워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망주봉 입구인 솔섬까지 약 700m 구간을 짜릿하게 하강한다. 출발에서 도착까지는 1분 정도 소요된다.
체험 시간 : (하절기) 오전 9시~오후 7시 / (동절기) 오전 9시~오후 6시
출처 : 여행스케치 민다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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