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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삼척 활기리 준경묘 영경묘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

by 구석구석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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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추천 8월에 떠나는 숲여행 '준경묘' 

무더운 여름으로 심신이 지치고 답답할 때 솔향기 가득한 삼척의 숲길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강원도 두타산과 덕항산 사이로 가파르고 아름답게 이어지는 산세를 따라가다 보면 금강송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삼척 준경묘(濬慶墓)의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이 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穆祖)의 아버지인 이양무(李陽茂) 장군의 묘소이다. 안내판 앞에 주차를 하고 나면 산쪽으로 콘크리트길이 보인다. 울창한 원시림 속에 약 45도가 넘는 비탈길을 10분 이상 걷다보면 곧 평탄한 흙길로 이어지고 빼곡한 금강송 군락은 하늘을 찌르는 듯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1 혼례 소나무 옆의 쭉 뻗은 미인송들. 2 거북등처럼 갈라져 건강한 소나무 수피

울창한 숲속의 그윽한 솔향을 맡으며 걷다보면 특이한 사연을 가진 소나무한 그루가 우리를 반기는데, 우리나라에서 형질이 가장 우수하여 최고의 미인송으로 꼽히는 혼례소나무가 그것이다. 높이 32m, 둘레 2.1m인 이 소나무는 충북 보은군의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소나무 전통혼례식을 가짐으로써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이력이 있다. 

환경단체인 ‘생명의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이곳에서 약 30분 정도 산책을 하다보면 바로 강원도 기념물 제43호로 등록된 준경묘에 도착하게 된다. 기생 때문에 산성별감과 다투게 된 목조는 부친 양무 장군과 함께 이곳 삼척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다.

애석하게 부친상을 당한 목조는 후대에 왕을 만들 자리로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 도승의 말에 따라 선친을 이곳에 안장하게 되었다. 이후 5대에 이르러서 이성계가 탄생하여 조선왕조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준경묘이다.

하사전리에 위치한 영경묘의 중수중인 제실

여기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는 영경묘(永慶墓)가 있는데 이는 양무 장군의 부인이 묻힌 묘지이다. 준경묘 소나무림 보다는 못하지만 보존상태가 좋고 형질이 우수한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산길로 200m 쯤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이번 여름, 붉고 푸른 기운을 동시에 담고 있는 금강송 군락에서의 높고 곧은 기상을 이어받아 무더움을 이길 수 있는 정기를 한번 받아 보자!

준경묘·영경묘는 1960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준경묘영경묘봉향회가 설립되어 매년 4월 20일 제향하고 있다. 1981년 8월 5일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다. 묘역 주변은 국유림으로 산림청에서 관리해왔다. 산림청과 별도로 문화재청은 지난 10년간 국유림 준경묘의 조림사업에 40억 원을 투입한 바 있다.

영경묘역의 소나무도 아주 빼어난 금강송들이다.

그동안 준경묘·영경묘의 소나무는 왕실과 국가에서 보호·관리해왔기 때문에 잘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주요 문화재를 복원할 때마다 벌채 1순위로 지목되곤 했다. 주요 문화재 복원에 다른 나무를 쓸 경우 내구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02~2004년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를 할 때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근정전 주기둥 4개 가운데 온전히 보존된 것은 단 한 개에 불과했다. 그것은 소나무였으며, 전나무를 쓴 세 개의 기둥은 모두 썩어 있었다. 고종 4년(1867) 경복궁 중건 당시, 고작 11m짜리 소나무를 구하지 못해 강도가 한참 떨어지는 전나무를 쓴 결과였다. 그래서 문화재 보존에는 우리 소나무를 써야 한다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다.

준경묘는 1961년 숭례문 해체 복원 때도 가장 큰 소나무였던 ‘장수 솔’을 대들보로 바쳤다. 2006년에는 문화재청이 광화문 복원용으로 이곳 소나무를 쓰려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준경묘영경묘봉향회와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쳤다. 반대가 심하자 문화재청은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산림전문가들은 준경묘 숲은 너무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서 있고, 병에 취약해 간벌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베어내는 게 숲의 생태에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 2월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이 완전 소실되고 복원문제가 떠오르자 봉향회와 주민들이 3차례 회의를 거듭한 끝에 벌채를 허락했다. 국보 1호 복원에 동참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소나무 20그루가 2008년 12월 10일 준경묘에서 벌채되었다.

/ 월간산 2009.11 김규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금강송

문화재청은 준경묘 일대에서 광화문과 숭례문 복원사업의 성공적 추진과 안전한 작업 등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갖고 금강소나무 1그루를 시범적으로 벌채했다. 벌채된 금강소나무는 110년 수령의 높이 30미터, 지름 74센치 대경목이다. 

금강소나무는 조선시대부터 궁궐공사의 자재로 사용될 정도로 선조들로부터 우수성을 인정 받았으며, 지난 2004년에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식을 가지는 등 명품성을 유지해 왔다. 문화재청은 준경묘 일대에서 모두 20그루를 베어낸 후 경복궁으로 옮겨 대들보와 창방, 추녀 등 숭례문과 광화문의 복원용 목재로 각각 10그루씩 사용할 예정이다. 준경묘의 소나무는 그 품질이 우수하여 조선시대부터 궁궐공사의 자재로 사용되었다. 

/ 강원일보 2008.12 박수현

준경묘는 사실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아버지 묘를 쓴 이안사가 함경도로 이주했다가 원나라로 귀화하는 바람에 묘를 잃어버렸던 것. 조선 건국 이래 태조와 세종 등 역대 왕들이 이양무의 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묘는 조선 말기인 고종 때(1899년) 찾았다. 늦게나마 왕조 탄생의 기원을 찾았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었을까. ‘깊은 경사’라는 뜻으로 ‘깊을 준(濬)’에 ‘경사 경(慶)’ 자를 써서 준경묘란 이름을 얻게 된 이유다. 하지만 미심쩍은 건 역대 왕들이 백방으로 찾으려 했어도 못 찾은 묘를 6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찾았다는 것. 과연 묘는 진짜일까.

 

준경묘는 왜 삼척에 있을까

대대로 전북 전주에서 살았던 전주 이씨 이양무 장군은 왜 삼척에 묻힌 것일까. 그건 아들 이안사의 로맨스 때문이다. 이안사에게는 평소 아끼던 관기(官妓)가 있었다. 하루는 그 관기에게 수청을 맡겼다는 이유로 군 간부와 크게 다퉜다. 관기를 정부의 공공자산쯤으로 여기던 시대였으니 관기를 독차지하려는 건 작지 않은 죄였다. 이 일로 이안사는 도지사 격인 안렴사의 미움을 산다. 자칫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이안사는 외가가 있는 삼척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이양무의 묘를 삼척에 쓰게 된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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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백호길, 그리고 치유의 숲

준경묘 주변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청룡길과 백호길이다. 준경묘 주위에도 송림이 울창하지만, 금강송 숲의 하이라이트는 단언컨대 이 길 위에 있다. 준경묘를 뒤로 두고 서서 보면 왼쪽으로는 청룡길이, 오른쪽으로는 백호길이 있다. 짐작하듯이 풍수에서 명당의 조건으로 일컬어지는 ‘좌청룡 우백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 길은 확연하게 다르다. 청룡길은 준경묘 한쪽의 산자락을 에둘러 도는, 2.6㎞ 남짓의 등산로를 방불케 하는 제법 거친 길이고, 백호길은 준경묘 뒤쪽으로 이어지는 500m짜리 유순한 산책로다. 걷는 시간은 청룡길이 1시간 30분 남짓, 백호길은 10분 정도다. 청룡길이 ‘선택’이라면, 백호길은 ‘필수’다.

백호길은 준경묘 뒤에 있다. 준경묘를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면 길이 T자로 갈라지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백호길이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황장산의 백두대간 능선까지 이어진다. 이 일대는 붉은 수피의 거대한 금강송으로 가득 차 있다. 준경묘 주차장에 세워진 지도에는 준경묘 주변에 ‘미인송’이 있고, 이곳에는 ‘대왕소나무’가 있다고 적혀 있다.

미인송은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 전국을 뒤져 찾아낸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 그걸 기념해 지난 2001년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전통혼례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미인송은 보호철책 안에 있는데 굵은 둥치가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수직으로 힘차고 곧게 솟았다.

그런데 지도에는 있는 대왕소나무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삼척시청 산림과에 문의했더니, 대왕소나무는 특정한 나무가 아니라 백호길 입구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길 주변의 소나무 군락을 통칭하는 이름이란다. 하기야 수백 년의 풍상을 이겨 낸 금강송 거목이 숲에 가득하니 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골라 대왕이라 명명한다는 게 난감한 일이었으리라.

준경묘가 있는 땅의 지명이 ‘활기리’다. 활기(活耆)란 이름은 본래 ‘황제(皇帝)가 태어날 터’를 뜻하는 황기(皇基)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청정한 솔숲으로 가득한 첩첩산중의 마을을 보면 지명이 ‘활기(活氣)’로 읽힌다. 길지 중의 길지라지만 활기는 첩첩산중이다. 이곳에 ‘활기 치유의 숲’이 들어섰다. 자연휴양림을 만들면서 산림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을 들인 것.

고즈넉한 소나무 숲에 놓인 15개 코스의 숲길을 산책할 수도 있고, 산림치유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스트레칭, 맨발 걷기, 명상 등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개별 방문해서 족욕 테라피와 다도체험 등을 해볼 수도 있다.

 

활기리2-1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 050-2200-1919, 033-574-8771 http://www.hanok.co.kr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2002년 노동부로부터 직업전문학교로 인정받은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한국의 전통가옥(한옥) 집짓기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환경친화적인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한옥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곳에서 전문적으로 배울 수도 있으며, 6개월 과정의 직업훈련을 신청하여 받을 수도 있다.

 전통한옥(한옥, 사모정, 육모정, 팔모정, 십자정, 누각, 왕궁, 사찰 등)의 체계적 교육 : 이론뿐만 아니라 실습위주의 교육으로 현 실생활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실질적 교육을 하고, 전통한옥과 현대건축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한국적 주택양식(A트러스 목조건축) 특허공법(세로쌓기) 통나무주택 건축공법을 연구 및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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