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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포구 차귀도 신석기유적

by 구석구석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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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맞닿은 해안도로 '바다올레'로 멋드러져
낚시꾼에 유명한 차귀도에 신석기시대 유적도

 

차량으로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50분 남짓 달리다보면 닿을 수 있는 자그마한 포구. 동쪽에는 성산포가 있다면 서쪽 끝에는 자구내 포구가 있다. 한경면 고산1리 바닷가에 위치한 자구내 포구는 관광지이자 명소다. 아마도 제주도민보다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듯 하다. 

자구내 포구는 크기나 유명세로 볼때 성산포와 비교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날씨가 화창할때는 파란색을 맑게 띠는 바닷물과 바닷바람에 건조되는 한치와 오징어 등은 여느 드라마에서나 봤음직한 '한가로운 어촌'을 연상시킨다.

고산리마을 뒤로 보이는 한라산

 

고산리 자구내 포구...아름다운 어촌마을 선정

자구내 포구앞 차귀도와 빼어난 해안절벽, 위엄어린 당산봉까지,,,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자구내 포구는 마치 베트남의 하롱베이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차귀도가 바다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자그마한 소규모 어촌마을의 포구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름다운 장관을 사시사철 앵글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의 성지같은 곳이다.

포구에는 다른 곳과 달리 많은 배들이 묶여 있다. 아름다운 경치 뿐만 아니라 이곳에선 배낚시가 유명하다. 뛰어난 풍광을 배경삼아 배낚시를 즐기려는 여행객들이 자구내를 찾는다. 때문에 포구에는 관광객을 위한 낚시배가 수십척 대기하고 있다. 배를 타고 나가 자구내 쪽을 바라보면 당산봉과 수월봉 사이로 산방산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 경치 또한 일품이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이 한치가 있는데 길가에 한치를 말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구내 포구엔 도대불이란 특이한 물건이 있다. 돌로 만들어진 아담한 규모의 돌탑처럼 보이는 이것은 제주의 밤 바다를 지키며 제주인의 삶의 등불을 밝혀 주던 재래식 등대다. 1973년 마을에 전기가 가설되기 전까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키다리 등대와는 그 모습에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이색적인 모습에 한 번 더 눈이 가고 보고 있노라면 투박함에 마음이 끌릴지 모를 일이다.

자구내 포구의 아름다움은 해양수산부가‘10월의 아름다운 어촌마을’로 지정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전국 9대 노을명소로 유명한 수월봉이 차로 2-3분 거리에 있다.

고산리 해안에서 2㎞ 떨어져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섬 차귀도(遮歸島). 아열대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서식하고 있는 식물이 매우 다양하고, 수심 5~10m 지역에는 어깃꼴거미줄과 나도참빗살잎 등 한국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홍조식물이 자라는 자연의 보고다.  

제주도에서 멋진 일몰을 감상하기에는 한라산 봉우리에 오르는 것도 좋지만, 고산마을의 포구에서 바라보는 차귀도 낙조도 일품이다.

차귀도는 낚시터로도 유명하지만 섬 자체가 빼어나게 아름답다. 섬을 떠받고 있는 절벽이 그렇고, 평평하게 펼쳐진 들판색이 또한 아름답다.

해질 무렵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불러일으키는 섬 차귀도(遮歸島). 0.160㎢의 면적에 죽도와 지실이 두개의 섬으로 이뤄진 무인도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는 아니었다.

  이 곳에는 82종류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수목으로는 시누대, 들가시나무, 곰솔, 돈나무 등 13종이고, 양치식물은 도깨비고비 1종류, 수심 5~10m에는 수많은 홍조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어깃꼴거미줄과 나도참빗살잎, 각시헛오디풀 등 한국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종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차귀도는 섬 자체의 분위기가 주는 신비로움과 함께 주변 수월봉과 자구내 포구가 주는 조화로움으로 더욱 섬을 아름답게 한다.

차귀도앞 잠수함 / 제주관광정보

차귀도라는 지명은 호종단이라는 중국의 풍수지리사 전설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전하는 이야기는 고려시대에 송나라 임금이 지리서를 보니 제주에서 인걸들이 쉴새없이 나올 땅임을 알고 호종단(胡宗旦)이라는 풍수지리사를 제주에 보내 물혈을 모두 끊으라고 명하자 호종단은 제주를 한바퀴 돌며 물혈을 끊어가다가 제주시 화북동에서 행기물을 찾지 못하자 포기하고 돌아갔는데 광양당신이 한마리의 매로 변한후 고산 앞바다에서 호종단이 탄 배를 수장시켰다.

 결국 호종단이 돌아가지 못한 곳이라 하여 차귀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인데.. 고려조정에서는 그 신기함을 보고 받은 즉시 광양왕이라는 작위를 수여하고 한라산 호국신사라 하여 매년향과 폐백을 내려 제자지내게 했다고 [동국여지승람]이나 [탐라지]등 옛 문헌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고산마을에서 보는 차귀도

일몰 못지않게 해질녘이면 차귀도에서 낚시를 끝내고 돌아오는 어부와 해녀 등 평화로운 어촌 마을의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다. 성산 일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고산마을에서 노을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추억거리가 될 듯. 

자료 / 제주특별자치구 관광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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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토기 기원을 말하는 제주 고산리 유적

제주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가 출토됐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바로 제주도의 서남쪽 한경면 고산리(高山里)가 그 유적이다. 여행으로 찾은 제주에서 한국 역사의 서막을 생각하게 하는 장소다. 구석기시대가 갓 끝나고 1만 년 전경 신석기시대가 막 시작될 즈음 살았던 제주도 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공중에서 촬영한 제주 고산리 유적 전경. 숲으로 덮인 오른쪽 수월봉과 기상관측탑이 세워진 왼쪽 당산봉 사이의 지점으로 평야지대다. 맞은편에 보이는 섬은 차귀도다

1987년 정교한 석창(石槍)이 발견된 이래,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사람과 문화의 기원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내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선사고고학자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가 발견된 동아시아 지역임에도 유독 한반도 토기의 시기가 늦은 이유를 대단히 궁금해했는데 고산리유적에 바로 그 답이 있다.

제주도 여행자라면 성산 일출봉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떠오른 해가 떨어지는 곳, 당산봉 낙조의 황혼 풍경은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다. 더불어 그 황혼이 자연 조명이 되어 비치는 당산봉 아래 화산쇄설물이 만드는 화려한 땅의 문양을 보지 않았다면 제주도의 속살을 못 본 셈이다. 당산봉 이름이 ‘닥오름, 닭벼슬산’에서 왔다는 설화를 봐도 오래 전부터 최고의 멋진 경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 유네스코 지질공원의 가치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당산봉 아래쪽의 화산쇄설물층(윗쪽 사진)과 해안지대에 남은 2차대전 중 일본군 해변 참호

해안로를 걸으며 볼 수 있는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화산쇄설물이 이루는 장관은 화산과 바다의 만남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작품이다. 화산이 물속에서 폭발하면서 쇄설물들이 주변으로 흘러내려 수평퇴적층을 만들고, 그 후 오랜 세월 파도가 이 부드러운 층들을 깎아서 오늘날 지형이 생겨난 것이니 ‘자연이 최고의 조각가’임을 웅변하는 곳이다.

당산봉 역시 그 쇄설물의 일부가 남아서 이룬 봉우리고, 정작 화산봉우리는 침식돼 사라졌지만 분화구의 뿌리는 그 앞바다 속에 있을 것이다. 바로 이 화산쇄설물, 화산재, 화산암자갈로 구성된 지질층 위에 신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산리유적에서 출토·복원된 짚풀토기와 융기문토기

진흙에 억새풀 같은 풀짚을 넣어 반죽해 만든 것이 고산리식 토기다. 한반도에서는 오로지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그런데 이 같은 토기제작 기술을 일본이나 만주 아무르강 유역의 이른 시기 토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풀짚토기가 연해주로부터 구석기시대 말엽의 정교한 세석인(좁고 긴 작은 석편) 제작 기술과 함께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남해안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융기문토기가 빗살무늬토기 이전 시기에 나오는데, 고산리에서는 풀짚토기 다음 시기에 융기문토기가 나오니, 한반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오래된 신석기 유적임이 자명하다. 국립제주박물관에 전시된 원초적인 토기의 모습에 무언지 신비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고산리유적 전시관과 그 곳에 전시된 풀집토기 조각들. 짚으로 눌린 흔적이 남아 있다.

고산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 풀짚토기와 함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눌러떼기로 만든 크기 3㎝ 미만의 정교한 돌화살촉들이다. 작은 돌을 손 안에 넣고 뾰죽한 뼈로 눌러 압력을 가해 생선비늘 같은 박편을 계속 떼내 만든 것이다. 700점이 넘게 발견됐다. 하부를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둥글게 만들었는데, 활대에 끼는 꼬다리가 있는 것도 있다. 그 작은 도구를 장착하는 부위를 다르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제주박물관 선사실에 전시된 수많은 돌화살촉들의 미세하게 다양한 모습에 생기는 감탄이자 의문이다.

고산리유적 출토 돌촉과 돌창. 오른쪽은 화살대와 나무창에 돌화살촉이 장착된 모습. 제주문화유산연구원

고산리유적에 돌화살촉이 많이 남은 이유는 이 마을이 제작터였을 것이고 사냥이 시작되는 곳이었을 것이다.

당산봉과 수월봉 사이를 흐르는 자구내 양쪽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동쪽으론 한라산이 보이고 서쪽에는 해발 69m의 당산봉이 있다. 17세기 편찬된 탐라지에 따르면 과거에 빽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평야 남쪽 지평선에는 제주도 남쪽 해안의 산방산이 아련하게 들어오는 평평한 벌판이다. 이곳의 남쪽에 2차대전 당시 일본군 비행장이 남아 있는데, 고산리도 그 후보지 중 하나였을 정도로 가히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다. 수월봉에 어린 ‘녹고의 눈물이 샘물’ 전설에서 보듯 민물수자원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생산성이 높은 널찍한 들판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모여 살 만한 환경이다. 과거에는 제주에서 유일하게 벼가 재배되는 곳이기도 했다.

고산리유적 발굴 당시 드러난 원형의 집자리. 중심에 불자리가 있고 주변에 도랑이 있다. 오른쪽은 야외에서 불을 피우던 자리.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왼쪽은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화산암으로 만든 갈돌 갈판. 제주에서는 구석기시대 전통 유적인 타제석기(오른쪽)가 발견되기도 했다

/ 한국일보 2023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제주 고산리 수월봉~당산봉 수월노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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