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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고산리 수월봉~당산봉 수월노을축제

by 구석구석 200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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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대정방향 12번 도로를 타고 가다 용수리, 절부암 방향 우회전 후 첫 번째 시멘트길을 따라 직진한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언덕과 당오름 표지석이 길 왼쪽에 있다.

 

제주의 가장 서쪽에 있는 수월봉

고산리 3,763번지/노꼬물오름 물노리오름 高山/표고 78m 비고 73m

이 오름 기슭에 노꼬물이라는 샘이 있기 때문에 노꼬물오름, 벼랑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므로 물노리오름, 오름의 모양이 물 위에 뜬 달과 같고 석양에 비친 반달과 같다고 하여, 또는 수월이와 노꼬라는 오누이의 애틋한 사연의 전설에 연유하여 수월봉(水月峰), 그리고 조선 시대 지도에는 마을 이름과 병행하여 고산(高山)이라 기록되기도 했다. 

 

이 수월봉은 제주의 가장 서쪽 끝머리에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이다. 그 위엔 조그마한 정자가 서 있으므로 서해바다를 한 눈으로 굽어볼 수 있다. 맑은날 온 바다위를 검붉은 기름덩이로 만들면서 떨어지는 크다란 둥근 낙조는 제주에서 이곳만이 그 장관을 볼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푸른 송림도 수월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알맞게 무리지어 있으므로 이 주변의 경관은 어느곳보다 수려하다.

 

 

   수월봉에서 동쪽 바닷가를 바라보면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가 보인다. 이를 '엉알산책로'라고 한다. '엉'이란 제주말로 '바위'를, '알'이란 '아래'를 의미한다. 즉, '엉알'이란 바위 아래라는 의미다.

 

엉알 산책로를 향해 내려가는 길목에 서면, 해안에서 수월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듯 가파른 낭떠러지를 관찰할 수 있다. 그 낭떠러지는 군데군데 화산력이 섞여있는 응회암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른다. 수월봉이 탄생했던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정자 이쪽 밑으로는 조그마한 암자도 있고, 용운천이란 약수가 솟는 샘도 있다. 바로 그 정자 아래는 거의 수직으로 수십미터의 낭떠러지이다. 이 높은 단애가 감돌아 나간 해안가는 사암질로 된 암벽이 해수에 침식되어 지구의 표피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 놓고 있는 단층이다. 또한 이곳에는 수월봉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서려 있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러 왔다가 동생 수월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자 오빠인 노꼬가 17일 동안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은 절벽 곳곳에 솟아나 샘물이 된다는 전설과 어우러진 해안단애는 장관을 이룬다. 해식애(海蝕崖)에서는 잘 발달된 층리(層理)를 볼 수 있으며 그 아래에는 해식동(海蝕洞 : 해수에 의해 생긴 천연 동굴)도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상에는 조그만 육각정자가 서 있어 서해 바다를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수월봉정상에서 보는 짙푸른 바다와 차귀도, 수직단애의 모습은 절경중의 절경.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제주의 서쪽 끝이니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경관이 빼어난건 두말 할 필요 없을듯 하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또한 수월봉에 오르면 고산일대의 평야지대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사방으로 확 트인 전망이 비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드넓은 고산 평야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누운 이 오름은 예부터 영산(靈山)이라 알려지고 있다. 오름 기슭의 해안단구는 신석기 시대의 선사 유적으로서 사적 제412호(1998년 12월 23일)로 보호되고 있다. 2000년 11월에는 이 오름 중턱에서 1757년(영조 33)에 제주목사 남지훈에 의해 세워진 조선영산비(朝鮮靈山碑)가 고산리민들에 의해 발견(한라일보 2000년 11월 21일 참조)되고 같은 해 12월 31일에 이를 복원하여 정상에 수월봉영산비(水月峰靈山碑)를 세웠다.

 

수월노을 축제

11월 초순경에 수우러봉및 자구내포구일대에서 1일간 열리는 축제로 영산제, 불꽃놀이, 해상퍼레이드, 풍물한마당 등이 열린다.

 

수월노을축제는 수월봉 일대 화려한 노을과 차귀도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 등 자연자원을 활용, 관광자원화할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수월노을축제에서는 식전 행사로 길트기 사물놀이와 영산제가 마련되고 있다. 본행사로 수월가요제, 연극공연과 난타공연, 선박 해상퍼레이드, 불꽂놀이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준비되고 있다. 부대행사로는 수월건강달리기 대회, 노을사진전시회, 수월사생대회, 연날리기 대회, 무료 페이스페인팅 연출과 지역특산물 판매코너인 장터가 열린다.

 

고난의 역사현장 '수월봉 특공기지'

수월봉 앞 해안까지 밀려왔던 바닷물이 빠지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태평양전쟁 당시의 특공정 유도로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갈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유도로 시설은 해초 등이 달라붙어 있어 60여년 세월을 실감케 했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22일과 24일 조사에서 처음 확인한 유도로 시설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특공정인 진양을 갱도 안에 숨겨 놓았다가 미군함정이 나타나면 바로 발진해서 자살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한경면 수월봉 해안에 일제가 구축한 특공기지 앞에서 바닷물이 빠지자 모습을 드러낸 특공정 유도로 시설. 

 

유도로 시설은 처음에는 수월봉 해안의 특공정격납고(갱도)와 연결돼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유도로 시설에서 해안 갱도까지의 거리가 60m 정도 되는 점으로 미뤄 유도로는 적어도 70m는 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60년 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파도 등에 의해 파괴돼 남아 있는 10여m만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해안가에는 유도로 시설 잔해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일본 (주)국서간행회가 발간한 사진집 ‘인간병기 진양특별공격대’에 실린 사진.

 

특별취재팀은 또 취재과정에서 수월봉 특공기지에 주둔했던 구일본군 진양대와 관련된 사진자료를 발굴했다.

 

일본 (주)국서간행회가 발간한 사진집인 ‘인간병기 진양특별공격대’에 실려 있는 이 사진은 실제 일본 해군 자살특공대원들이 배치됐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이 사진에는 ‘昭和 20년 5월 제주도 고산리 소학교 전(前)’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어 1945년 5월에 당시 고산국민학교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임을 알 수 있다. 고산국민학교에는 실제 진양대가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월봉 해군특공기지에는 어떤 부대가 배치됐을까.

 이 곳에는 제120진양대인 오노(小野)부대가 주둔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120진양대는 1945년 3월 25일 편성된다. 총 병력은 1백91명으로 ‘진양 5형’ 26척을 보유했다. 진양대가 제주를 향해 출발한 것은 1945년 4월 6일이다. 수송선인 성산환으로 사세보항을 출발, 8일에 45진양대가 성산포에, 119진양대는 서귀포에 상륙한다. 고산에 주둔한 진양대는 4월 9일 한림에 상륙한 뒤 4월 29일에 고산국민학교와 민가로 대부분 이동한다. 이들 제120진양대 기지가 바로 수월봉 해안이다. 지금도 수월봉 해안에는 10여 곳의 갱도를 볼 수 있다.

 

 ▲진양(震洋)이란=구일본해군 유일의 수상특공정으로써 승원 1명의 1형과 2명이 타는 5형이 있다. 이 특공정은 뱃머리에 2백50kg의 폭약을 싣고 자동차 엔진을 탑재하여 나무합판으로 만든 고속보트를 말한다. 적의 상륙부대가 상륙지점에 진입하는 전후에 밤의 어두움을 틈타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하여 선박을 격침시킨다.

 

일제가 제주도내 해안에 만든 특공기지는 모두 5곳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위기에 몰리자 1945년 들어 오름 등에는 대규모 갱도를, 해안가에는 미군 함정에 직접 부딪쳐 침몰시키기 위한 자살특공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대정읍 송악산을 비롯 조천읍 서우봉, 서귀포시 삼매봉, 성산읍 성산일출봉과 한경면 수월봉 해안가는 일제의 비밀특공기지였다. 지금도 이 곳에는 당시 일제가 파놓은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제주도에 배치됐거나 배치예정인 일본해군의 특공부대는 회천(回天·카이텐)과 진양(震洋), 교룡(蛟龍), 해룡(海龍) 등이었다.

 이 가운데 카이텐기지는 송악산과 서우봉에 구축됐으나 실제 배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일출봉과 삼매봉, 수월봉은 진양기지로 실제 일본군이 주둔했다. 이번에 확인된 유도로 시설은 이 같은 진양대의 실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사현장이다. 이에 따라 당시 해안특공기지 뿐 아니라 일제가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구축한 각종 군사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라일보 2006.7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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