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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구좌-세화~종달리해안도로

by 구석구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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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출 세화~섭지코지(세화해안도로) 16km 

세화부터 성산일출봉 근처인 오조리까지는 포구 마을이 이어지는 고즈넉한 드라이브 코스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차도 한켠에는 우레탄이 깔린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갖추고 있어, 최근 신혼부부들의 하이킹 코스로 사랑받는 곳이다. 일출봉에서 섭지코지등대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는 갈대와 들풀들이 난무한 곳. CF 촬영 장소로 애용되는 등대 앞 언덕길은 한가로움이 가득 묻어난다. 

제주의 동쪽 해안을 끼고 달리는 도로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한다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구경할 수 있다. 비록 일출을 보지못하더라도 안개를 가득 머금은 바닷바람이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코스이다. 세화에서 출발해 5분이면, 새까만 화석암을 쌓아놓은 별방진성에 이른다. 성벽 아래로 다소곳이 자리잡은 시골집의 무지개 색깔 지붕들이 푸른 바다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세화해안도로는 해안선 주변의 아름다움이 진국이다.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요술쟁이바다를 보기위해 사람들은 더디 가는 길을 택한다. 그 해안도로를 달리노라면 행여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심심해할까 봐, 철새들이 먼저와 바다를 지키고 있다. 띄엄띄엄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조형물들이 인간이 억지로 만든 예술이라면 수평선 너머에서 몰고 온 하얀 파도를 실어 나르는 돌탑공원은 누군가가 만든 작품 같다. 

세화해안도로 돌탑공원이라야 공원지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다를 배경으로 돌탑공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장 찍고 가는 사람, 바다 구경을 나가는 사람, 심호흡을 하는 사람, 그리고 바닷가에 내려가 무수히 많은 돌중에 하나를 골라 돌무덤을 쌓고 가는 사람들이 전부다.


어찌 보면 무명의 휴게소라고나 할까? 돌탑공원 서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꺼이꺼이 울러대는 겨울철새소리와 세파에 시달려도 말이 없이 돌의 조화. 누가 이 공간을 돌탑공원이라고 이름 지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부처님의 좌대인양 모습을 하고 있는 돌, 그 위에 살며시 손을 들이댄다.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얼굴모습의 돌에는 마음대로 눈과 코, 입을 그린다.

돌에 무슨 색깔이 있겠냐마는, 비취색의 청자 모습을 한 돌도 있다. 고려청자 같은 청자모양을 한 돌의 형상은 고고함을 준다. 자연그대로를 간직한 문양에 그 의미를 붙이는 자유 그리고 청자에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 보는 것까지.

▲ 소망을 담아 돌무덤을 쌓아보고 / 오마이뉴스 김강임

발길을 돌려 바닷가로 내려가면 행인들이 쌓아놓은 돌무덤과 만날 수 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소망, 정성, 메시지가 웅성거리는 돌무덤을 파도가 어디론가 실어 나른다. 이 돌탑공원에서는 못난이는 못난이대로, 잘난 이는 잘난 대로, 동글동글한 돌은 동글동글 한 대로, 모가 난 돌은 모난 대로 다 쓸모가 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어떤가? 못난이는 기가 죽고, 목소리 작은 사람은 희생당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잠시 삶의 의미를 던져 주는 세화해안도로 돌탑공원. 수호신처럼 바다를 지키는 돌탑공원에서 잠시 여정을 풀어보면 산행 중에 초콜릿을 한 잎 깨물어 보는 것처럼 에너지가 솟는다. 이곳에서는 돌의 형상을 모두 가슴속에 담아 가는 것보다는, 각양각색의 돌을 바라보며 반성문을 써 보고, 돌 하나에 소망을 담아 해와 별과 달, 그리고 바다를 향해 돌무덤을 쌓아 보면 어떨까? 

자료-오마이뉴스 김강임

 

신석기 유적부터 해녀항일투쟁까지, 하도리의 흔적들 

 약 600년 전 제주 고(高)씨, 제주 부(夫)씨, 양천 허(許)씨 등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성종 12년(1418)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마을의 동쪽 바닷가에 있는 토끼섬 일대를 '도의여개'로 표기하였고, 마을 이름도 포구의 이름을 따서 '도의여' 마을이라 불렀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와 상도리가 인접한 곳에 이르면, 당시 제주 해녀들의 항일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과 해녀물관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근처에 야외조형물, 야외체험장, 야외공연장, 해녀광장 등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시설물들을 모두 포괄해서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이라 한다.

 당시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순효(본명 고차동), 김계석 등 5명의 해녀 대표는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 야학을 통해 민족에 고취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시 청년 민족운동가들과 연계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을 단순한 생존권 투쟁의 차원에서 항일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이 운동은 전국최대규모의 여성 항일운동이자 제주도 내 항일운동 중 가장 치열했던 사건으로 꼽힌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 아래는 빗창과 호미를 들고 왜경과 맞섰던 해녀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오늘 이 땅에서 반복되는 비참한 압제와 수탈의 역사를 보면서 해녀 투사들은 뭐라 말하고 싶을까?

제주 해녀들은 맨 몸에 물소중이, 물적삼 등을 걸치고 수중에서 해산물을 채취했다. 전복이나 조개류를 채취할 때는 빗창을 사용하고, 해조류를 채취할 때는 호미류를 사용한다. 이들은 태왁이라 부르는 물체의 부력에 의지하여 장시간 바다에서 채취활동에 종사하고, 채취한 해산물은 태왁에 매단 망사리라는 그물주머니에 담아 보관한다. 특별한 잠수기구 없이 물 속에서 장시간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직업의 희귀성으로 인해, 해녀는 세계적으로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도리의 해안도로는 해녀박물관에서 창흥동 철새도래지까지 이어진다. 이 해안도로를 지나다 보면 마치 자연과 역사를 테마로 조성된 야외박물관에 온 듯 같은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해안 절경에 빠지게 된다.

해녀박물관을 지나 동쪽으로 푸른 바다를 끼고 가다 보면 길 오른쪽에서 복원된 옛별방진성을 볼 수 있다. 별방진은 조선 초기에 우도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중중 5년(1510) 장림 목사가 김녕방호소를 지금의 하도리 해안으로 옮겨 지은 것이었다. 별방진은 ‘특별방어진지’의 줄임말인데, 이곳은 당시 제주목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군사기지였다고 한다.   

별방진성에서 동쪽으로 1km쯤 되는 위치에서 해안가를 보면 작은 섬이 보이는데, 문주란 자생지로 잘 알려진 토끼섬이다. 문주란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바위 위를 걸어서 근처까지 가보니 문주란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바닷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아쉽게도 섬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곳을 지나면 해안선의 모양을 따라 해안도로는 남쪽으로 굽어진다. 그 길이 안내하는 방향대로 가면 창흥동 철새도래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철새들이 한가로이 따뜻한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이 철새 도래지는 바다가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으로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이어서 새의 먹이가 풍부하다. 게다가 그 일대에서 자라는 갈대숲이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담당한다. 

창흥동 철새도래지, 철새들의 천국 

겨울이 되면 이곳에 28종, 3천여 마리의 철새가 도래하여 겨울을 난다. 대표적인 종으로는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저어새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랑부리 저어새, 큰고니 및 멸종위기종인 큰기러기, 물수리, 말동가리 등이 있다. 

하도리 창흥동은 제주도 최대 철새도래지다. 이곳은 염습지인데 탕탕물, 서느렁물, 구녕물 등 주변에서 용천수가 염습지안으로 흘러들어가 바닷물과 교차한다. 면적은 77만㎡이며 평균 수심은 약 40㎝이다.

이곳이 철새들에게 보금자리로 각광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파래, 망둥어, 기수우렁이, 방개, 바지락 , 맛조개 등과 더불어 인근 양식장에서 기르는 숭어와 민물장어는 새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인근 지미봉과 두산봉이 바람을 막아주고, 갈대를 비롯해 갯가에서 자라는 많은  풀들이 새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요새를 제공한다. 풀들 중 갈대가 가장 키기 큰데, 풀들의 키는 바다 쪽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따라서 관찰하는 사람이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풀은 갈대이며, 밀물이 되어 수심이 깊어지면 먼 곳에 있는 풀들은 물에 잠기게 되어 새떼는 갈대숲으로 날아든다. 따라서 밀물 때가 새들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 흰기러기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 지역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서로 섞여 짝짓기를 한다. 그런데 겨울나기가 끝나서 봄이 오면 암컷은 자신의 원래 서식지로 돌아가는 반면, 책임감이 강한 수컷은 암컷의 서식지로 따라간다. 이렇게 해서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이동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한번 맺어진 인연으로 몇 년간 부부관계를 지속한다. 

자료-2007 OhmyNews 장태욱

지미봉

해안도로 어느 곳에서 차를 세우든 옥색 바다빛과 황금빛 모래해변에 누구나 반하게 되는 곳이다. 바닷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떼와 나풀나풀 해조류가 환히 비칠 정도로 맑고 깨끗한 물, 얕은 수심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한바탕 물놀이 장소로도 그만이다.

이런 곳에서 과연 무슨 낚시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은 금물.


잘자랐다면 어른 손바닥 만큼 크기의 게낚시를 할 수 있다. 준비물도 간단하다. 뜰채와 고등어만 있으면 준비 끝. 특히 미끼로 사용될 고등어는 전날 시장구경도 할겸 들렀다가 몇마리 사다놓는데 상한 고등어가 낚시에 큰 도움을 준다. 비록 냄새는 역하지만 그 냄새 때문에 게들이 고등어 주변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해안도로 주변 마음에 드는 해변을 선택한다. 다음은 무릎높이 쯤 되는 물속까지 들어가 여기저기 고등어를 뿌린다. 잠시 기다리면 고등어 냄새를 맡은 게들이 스멀스멀 몰려들다. 이때 뜰채를 이용해 확 낚아채면 된다. 미끼는 낚시가 끝날 때 까지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개의 뜰채로 많은 게를 잡을 수 있지만 서로 도와가며 번갈아 잡는 것이 가족여행의 재미를 배로 키워줄 것 같다. 단 아이들이 게에 물리지 않도록 신경쓰고 게가 모래속으로 숨지 못하도록 양동이 하나를 준비하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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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바다가 그리운 여름이 다가오면 성산포 근처의 지미봉을 오르자. 거기만 오르면, 분명 오르긴 산에 올랐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다가 더 많다.  

지미봉은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해안포구 입구에서 남서쪽으로 1㎞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바다로 튀어나온 종달반도 중앙에 위치한 오름이다.

오름의 이름 지미는 제주도의 땅끝인 지미(地尾)를 말하며, 서쪽의 한경면 두모리는 제주의 시작인 머리라고 한다. 조선시대 제주목의 경계는 머리인 두모리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종달리 땅끝을 말한다. 한자명은 지미봉, 지미악, 종달봉으로 표기하는데, 이 오름명에서 유래된 마을이름이 종달리다.

마을 안으로 주욱 들어간 남동 사면의 공동묘지가 들어선 쪽으로 매끈한 풀밭이 트여 있어 그쪽으로 오르면 쉽게 정상에 선다. 표고 165.3m에 기슭이 바로 바다에 접해 있어서 비고가 150m쯤 되는 비교적 가파른 산이다.

동쪽 약 3km의 바다 건너에 우도가 소리쳐 부르면 머리를 돌려 이쪽으로 다가올 듯이 길게 떠 있고 그 오른편으로 성산, 식산, 오밀조밀 들어앉은 마을이며 하얀 모래톱이 어우러지는 해변의 조망은 이 오름에서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풍경이다.


기슭 일대는 물이 좋아 수전지대를 이루는데 특히 이곳은 고래의 염전지대였다. 이곳에서 처음 소금이 만들어지기는 4백여 년전의 일이다. 선조 6년 당시의 목사 강려에 의해 제염이 시작되었던 것인데 이를 전후한 제염에 관한 흥미있는 기록도 발견된다.


지미봉의 북사면은 민틋한 원뿔 모양의 남사면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다. 온통 나무가 우거진 데다 말굽형 분화구가 북향으로 벌어지고 안에는 돌담 둘린 밭들이 가득 들어앉아 있다. 이쪽에서 보면 산 위 등성이는 뚜렷한 두 봉우리를 이루었으며 뾰족한 쪽인 정상봉 가까이의 안부에서 굼부리가 패어 내린다. 굼부리 북쪽에는 여남은 개의 조그만 동산이 나무나 풀에 덮여 산재해 있다. 굼부리 동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남동사면 하단부에는 부분적으로 소나무 등 잡목 숲과 대부분 부추, 억새띠 등 초지식물이 분포하며 마을 공동묘지가 있다.

지미봉의 일출.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잇는 수평선상의 해돋이와 한라산을 정점으로 형성된 제주섬 등성이를 넘는 해넘이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는데 최근에 이 광경이 대외에 소개되면서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제주일보 2008.11 

북쪽 기슭은 하도리에 속하는데 종달, 시흥, 해안과 함께 철새 도래지로서 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다. 저어새, 도요새, 청둥오리, 그리고 황새도 날아와 겨울을 난다. 해마다 철이 되면 겨울진객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오름의 정상 중앙에 삼각점이 있는 곳이 봉수터이다.

지미봉수의 교신은 서쪽으로 서우봉수, 동쪽으로 성산봉수에 연결된다. 세종 19년(1437) 제주 안무사 한승순이 임명되어 세종 21년(1439) 2월경 제주도 방어계획과 여러조건을 보고한 이후 조정과 여러 차례 협의하여 문종 원년(1451)과 1510년 삼포왜란 이후 목사가 상소하여 지미 봉수와 종달 연대가 설치되었다. 제주 지역에는 지미봉수와 같은 봉수 25개소, 종달 연대와 같은 연대 38개소가 거의 동시에 세워졌다. 봉수는 밤에 잘 보이도록 횃불을 이용했고, 연대는 낮에 잘 보이도록 연기를 이용한 일종의 군사 시설이다.

 

그 당시 제주도의 연락망은 행정, 군사의 중심지였던 제주, 정의, 대정 등 3개의 성 주변에 9개의 진을 설치하여 연대와 봉수를 이용해 연락을 했다. 통신방법은 평시에는 봉화를 1개 올리고,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접근해 오면 3개, 적이 상륙하면 4개, 그리고 적과 교전하면 5개를 올린다. 현재 이 오름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있으며, 종달 연대의 자취가 없다.


지미봉 해안에는 고려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해장성(해안지역에 높이 3m정도 쌓은 돌성)이 부분적으로 흔적만 남아 있다. 

오름의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우도와 성산, 식산봉 등 북쪽으로 하도리 해수욕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오름 북쪽의 하도리 해안은 구좌읍 철새 도래지로서 조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은 백로, 저어새, 청동오리, 황새 등 겨울철새 휴식처로 유명하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북쪽은 사라봉, 별도봉, 원당봉, 고내봉, 수산봉, 동쪽은 입산봉, 서우봉, 지미봉, 일출봉, 서쪽은 당산봉, 수월봉, 저지오름, 남쪽은 산방산, 송악산, 삼매봉, 군산, 고근산 등 주요 지맥을 형성하고 있다.

보보스제주 /강은정기자

 

맛조개 종달체험어장 

제주의 옥색바다를 배경으로 뭔가 색다른 체험을 원하면 세화∼종달 해안도로로 핸들을 돌려라.

체험어장은 제주바다의 청정 해산물을 관광객이 직접 캐내고 건져 올릴 수 있도록 마련한 체험코스이다.

조천읍 동복리와 종달리, 애월읍 구엄리에서 체험어장을 만날 수 있으며, 체험어장에서는 조개와 소라를 비롯해 제주 보말 등을 채취할 수 있다.
그 중 동복리와 구엄리의 체험어장에서는 돌 사이의 보말을 잡기에 그만이다. 보말을 캐기 위한 도구는 필요하지 않지만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는 것이 좋고, 바지를 걷어 올려 기약 없는 파도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근처의 식당이나 민박에서는 이같이 관광객이 잡아 올린 보말 등을 손수 요리해주기도 한다.

구좌읍 종달리 체험어장은 하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채취 방법은 부삽을 들고 모래를 파서 조개를 건져 올리면 된다. 부삽으로 모래를 파다가 작은 구멍이 보이면 그곳에 소금을 살살 뿌리면 긴 맛조개가 나오는데, 일반조개보다 발견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나마 제주에서는 특이한 맛조개를 여럿 볼 수 있는 곳이다.

입장 및 채취요금은 무료이나 체험에 따르는 여러 장비들은 유료대여 한다. 각 체험어장은 물때에 맞추어 가는 것이 좋으며 음력 보름과 그믐달 3일을 전후하여야 잘 잡힌다. 이밖에 보목동 섶섬 앞 해안가와 강정동 해안가에서도 보말을 실컷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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