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나라 하면 떠오르는 미인이 하나 있으니, 바로 경국지색인 서시이다. 월나라는 나무장수의 딸인 서시를 호색가인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보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무기로 활용했다. 결국, 중원의 패권을 놓고 진과 다툴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던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에게 와신상담이라는 고어를 남기면서 복수와 피의 역사를 보여준 나라이자, 아름다운 서시의 조국이었던 월나라. 그 월나라에서 갖고 온 소나무의 씨앗을 주변에 심었다 하여 이름마저 그에 걸맞게 바뀐 소담한 정자가 하나 있다. 울진군 평해읍의 바닷가 어귀에 '서시'의 자태처럼 곱게 앉아 있는 '월송정(越松亭)'이 바로 그것이다.
관동8경의 정자들은 거개가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월송정도 고려시대 충숙왕 때 세워졌다는 말이 있는데, 갑자기 웬 월나라란 말인가? 아마도 이는 후세의 사람들이 월나라라는 이질적이고 신비한 소재를 끌어들여 월송정의 아름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향전에 의하면 관동팔경을 유람했던 네 사선(영랑, 술랑, 남석, 안양)이 달빛과 송림에 취해 여기 월송정에서 놀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月松亭'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월나라에서 가져온 소나무 씨앗이 심어졌든 아니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관동팔경의 최남단인 월송정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월송정에는 동해의 칼바람을 꿋꿋이 견디는 울울창창한 송림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둘러서 있다. 그리고 그 송림 사이로 푸르청청한 동해와 명사십리로 유명한 구산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이 수줍게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월송정은 여타 관동팔경의 정자와는 달리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져 있진 않아 천혜의 경치를 자아내진 않는다.
그러나 주변의 곰솔과 어울려 뜻밖의 풍광을 보여 주는 곳이 월송정이다. 곰솔의 적갈색 몸채는 거북등처럼 넓게 갈라져 있고, 휘늘어진 솔잎의 끝마디에는 투명한 이슬 빛이 맴돈다. 그 이슬 빛이 발하는 솔 향에 취한 채 정자에 올라 송림과 동해를 바라보면 유하주를 마시며 달과 대화를 나누었던 송강 정철이 결코 부럽지 않다.
조선시대 성종은 이름난 화공을 시켜 전국의 사정(활쏘기에 좋은 곳)을 그려오라고 시켰다. 화공은 영흥의 용흥각과 평해의 월송정을 그렸는데, 성종은 용흥각의 연꽃과 버들이 아름답기는 하나 월송정에 비할 수 없다며 그 경치를 극찬했다고 한다. 이 말의 진위 여부 또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남대천과 황보천이 만들어 놓은 넓은 평야 지대의 야트막한 구릉에 있는 월송정이 성종의 극찬을 받은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바다와 마주 닿은 것은 아니지만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월송정. 이곳은 분명 시인 묵객의 시적 유희와 고급 무사들의 무술 연마를 위한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팔작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가진 월송정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을 가진 조선시대 양식의 건물이다. 원래 건물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으나 중도에 퇴락한 것을 조선조 강원도 관찰사였던 박원종이 중건하였다 한다. 슬프게도 이 월송정은 완전 철거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이 미군 폭격기의 표적이 된다 하여 철거해버렸던 것이다. 원통하고 분할 노릇이지만 나라 잃은 설움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 후 재일동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철근콘크리트조의 월송정이 들어섰으나 원래의 건물과 너무 달라 다시 철거하고 말았다. 그리고 1980년에야 비로소 조선시대 양식으로 고풍스런 모습을 재현하게 된 것이다.
이 월송정의 현판은 당시 대통령 권한 대행이었던 고 최규하씨의 친필이라고 한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물러났던 최규하씨의 흔적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인 셈이다.
망양정과 더불어 경북의 해안 정자를 대표하는 월송정은 망양정보다 다소 큰 몸체를 자랑한다. 그리고 유지태와 김지수, 엄지원이 열연했던 영화 '가을로'의 촬영장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현우(유지태 분)와 민주(김지수 분)의 신혼여행 다이어리를 따라 촬영된 <가을로>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 60여 곳이 담겨 있다.
그 유명한 담양의 소쇄원을 비롯하여 내연산과 불영사, 구절리 전나무 숲, 영월동강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월송정도 포함된 걸로 월송정이 영화 촬영지로도 안성맞춤이었던 모양이다.
80년에서 200년 된 소나무 천 여 그루에서 시원한 바람이 늘 불어오는 월송정. 이곳에서 송림을 빠져 나와 구산해수욕장의 백설기 모래를 밟으며 일망무제로 펼쳐진 동해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경험하지 않은 이는 모를 것이다. 월송정에 가면 모든 것이 부드러워진다.
거친 바다에서 부는 바람들은 울창한 송림들을 지나면서 산들바람으로 순화된다. 덩달아 월송정에 올라 그 산들바람을 맞는 사람들도 자연에 순화된다. 그 산들바람을 맞으며 영롱한 달빛 아래에서 월나라 미녀와 유하주를 나눠 마신다면 세상 부러울 게 무에 있으랴.
/ 자료 - 오마이뉴스 김대갑기자
구산리 당간지주로 알려졌던 배잠사지 당간지주(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2호).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울진지역에서 유일한 당간지주로 도로변 길가에 있으며 현재 정비도 많이 되어 있다. 고려시대 창건된 사찰인 배잠사터의 것으로 전하며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정자국도 다수 보이는 등 고르지 못하나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배잠사지 당간지주를 지나 계속 마을길로 접어들어 왕피천 관광농원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마을 안에 외딴집처럼 탑 앞에 집이 한 채 있고 뒤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처음 찾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쉽지 않아 길이다.
보물 제498호로 이 일대가 고려시대 청암사로 알려진 곳이다. 이중 기단 위에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으로 1층 몸돌 남면에 자세히 보면 직사각형의 문비가 마련되어 있고 윗부분은 노반석만 있다. 1968년 복원하였고, 2004년 해체 수리하였다.
2006년 경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결과한 보고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인화문토기, 연화문수막새 등 불교 관련 유물과 청동수저 등 생활용품도 출토됐다고 한다. 석탑 앞에는 석등 부재들이 남아 있다.
/ 자료 - ⓒ 2008 OhmyNews 김환대
울진 구산리 왕피천 모래언덕펜션&캠핑장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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