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은 길이 만든 고장이다.
물리적인 통로를 뜻하지만 인간은 길을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수단, 즉 방도(方途)로 해석하기도 했다. 영어 ‘웨이’(way)도 마찬가지다. 동양에서는 더하다. 도는 철학·종교적 개념에서 무척 중요한 단어다. 조선 영남대로의 관문이던 조령옛길이 비단길로 물들었다.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로부터 떨어진 커피색 고엽이 길을 장식하고 있다.
파란 하늘은 샛노란 햇빛을 얇아진 나뭇잎에 투과해 천연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낙엽이 벌써 카펫처럼 깔렸다.
날개 달린 새도 넘기 어렵다던 험준한 고갯길 조령(새재)은 한양과 동래(현 부산)를 잇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구간이다. 영남 지역 유생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향할 때, 주로 이 고개를 넘었다. 또 급제 뒤 금의환향할 때 다시 이 길을 지났다. 문경(聞慶·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음)의 지명은 그로부터 유래했다.
지금은 선비 대신 가을 단풍 여행객이 채우고 있다. 명불허전이다. 깎아지른 듯 강직한 산세의 조령산과 유려한 곡선미의 주흘산이 양쪽에 버티고 섰다. 길을 따라 계곡이 함께한다.
제1관문 주흘관에서 1.2㎞ 정도 오르면 보행자가 묵어가던 원(院) 터가 나온다. 국가지정 호텔 격이다. 약간 가파르지만 발바닥에 와닿는 폭신한 느낌이 좋아 힘들지 않다.
제2관문(조곡관) 오르는 길은 좁아들지만 좀 더 고즈넉하다. 더 고불고불한 길이다. 급작스레 계곡이 좁아지더니 길을 해자처럼 막는다. 다리 건너 제2관문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길이 뚫리면 왜적이 한양으로 넘어온다. 그래서 요새처럼 성곽을 지었다.
1.6㎞ 정도 더 오르면 제3관문(조령관)과 마주한다. 충청도와 도계를 이루는 관문인데 앞에는 관아 터처럼 너른 평지가 있다. 조령관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한강과 낙동강으로 각각 나뉜다고 한다. 걷기 코스는 총 30㎞ 정도지만 보통은 이곳에서 끝내고 다시 내려온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지점이다. 내려오는 길은 여유롭다. 오를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단풍을 감상하며 내려오면 된다. 쉬엄쉬엄 2시간 왕복 길이다. 아쉬운 계절의 화려함이 동행한다.
/ 자료 - 한겨레신문
문경의 진산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남쪽의 중부내륙고속도로나 3번 국도를 타고 진남교반을 지나 마성면 너른 들판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기세 당당한 산이 하나 버티고 있다. 한눈에 비범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이 후련할 정도다. 양쪽 귀를 치켜세우고 조화롭게 균형미를 갖춘 산세에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이 산의 기세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옛 기록에는 영남이니 교남이니 하는 명칭이 다 이 산과 관련된 것이라 적고 있다. 영남지방이라 할 때 영남이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을 기준으로 영의 남쪽에 있다하여 영남이라 불렀다.
주흘산의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다.
산기슭에는 혜국사(惠國寺)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해발 520m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개창한 고찰로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절이다.
주흘산 등산로는 문경새재 3개 관문 어디서나 접근 가능하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제1 관문(주흘관)을 지나 여궁폭포를 지나 혜국사를 거쳐 정상(총 5km)에 올라 조곡골을 거쳐 제2 관문 조곡관(총 5km)으로 하산하는 방법이다. 제1 관문으로 원점회귀하려면 총 13km 남짓 된다. 소요시간 5시간 내외.
제1 관문에서 주흘산 주봉을 거쳐 1.3km(40분 내외 소요) 떨어진 영봉으로 간 뒤 제2 관문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제1 관문으로 원점회귀까지 총 13km에 5시간 30분 내외 소요.
종주코스는 제1 관문으로 올라가 주봉~영봉~부봉을 거쳐 제3 관문으로 하산하는 방법이다. 총 12.5km로 제1 관문으로 원점회귀하려면 8km를 내려와야 한다. 20km 정도로 하루 종일 잡아야 한다.
/ 자료 - 월간산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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