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가면 신개념 사찰인 ‘묵언마을’(주지 지개야 스님)이 있다.
200∼300년 된 굽은 소나무로 법당이며, 요사채를 지었는데, 사찰이 아니라 요정의 집 같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동화속 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묵언마을에 들어서면 2100여 평의 대지 위에 돌절구통, 다듬잇돌, 우마차 바퀴, 문짝, 항아리, 농기구 등 옛날 물건이 즐비하다. 마치 민속촌에 온 느낌이다. 이어 스님이나 손님들이 기거할 요사채가 나타나는데, 나무지붕을 얹은 너와집도 있고, 볏단을 얹은 초가집도 있다.
‘ㄱ’자 형태의 2층짜리 법당은 묵언마을 맨 끝에 자리잡고 있다. 1층은 가난한 작가들을 위한 창작과 전시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고, 2층에는 대웅전이 들어선다. 비바람에 이리저리 구부러진 소나무와 황토로 지었다는 법당은 기둥, 들보, 서까래 등을 모두 뒤틀린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동화 속 요정의 집을 보는듯 흥미진진하다. 특히 심하게 구부러진 소나무를 잇댄 1층 출입문이 압권. 이곳 나무는 생긴 그대로 건물을 떠받치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신기해하며 불쑥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한다.
“세계 65억 인구 중 70%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30%는 살찔 것을 염려해 굶고 있습니다. 자살률은 왜 그리도 높습니까. 이러한 이상한 세상사를 바라보며 번민에 빠져 있다가 승려가 되면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머리 깎고 중이 되었지요.”
묵언마을은 목재 발굴에서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두 지개야 스님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 산림청 승인을 받아 거대한 소나무를 벌목해 이곳으로 이동해 오는 것부터가 대역사였다. 스님은 나무를 거의 깎거나 다듬지 않고, 생긴 그대로 사용해 국내 초유의 목조건물을 만들어냈다. 옛날 건축술이 발달하지 않을때 조상들이 어떻게 깎고 다듬었냐는 것이다. 생긴대로 짓되 안전과 견고성에만 최대 역점을 뒀다는 것이다.
‘묵언마을’은 사찰 이름부터 모든 것이 해학적이고 파격적이다. 한마디로 불교가 얼마나 일반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느냐를 가늠해 보려는 실험무대 같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공기업 임원과 정치인으로 잘나가던 그는 어느 날 마음의 소리를 듣고 태고종 소속 승가대와 동방불교대학을 다닌 뒤 쉰한 살에 계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됐다. 이후 처음 시작한 일이 묵언마을 개창불사. 2003년 칠장리에 농지 2100여 평을 구입해 신개념 사찰인 ‘묵언마을’을 일구기 시작했다. 신도가 없기에 시줏돈도 거둘 수 없었고, 종단 지원 한푼 없이 사재를 털어 5년 만에 2층짜리 법당 건물과 요사채 3개 동이 딸린 묵언마을의 완공을 바라보게 된 것. 그는 농민을 잘살게 지도·교육하며 스스로 실천해 보이려다 큰돈을 벌었는데, 이번에 절 짓는 데 몽땅 쏟아 부었다. “어차피 가지고 갈 수 없는 재물을 조금 일찍 사회에 내놓은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사찰은 건물 양식이며 용도, 수행자의 자세 등 모든 면에서 너무 권위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는 누구나 찾아올 수 없지요. 더욱이 어린아이들은 절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이름(복 지, 빌 개, 어조사 야)은 ‘복을 구걸하는 거지’를 뜻한다. ‘스님’이라는 용어는 너무 수행자 신분을 높이고 있다며 스스로 격식을 허물어 버렸다. 사찰 이름도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절 ‘사’나 암자 ‘암’자가 들어가는 법인데, ‘마을’이라는 동네 개념을 도입했다. 불자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이든 비신앙인이든 누구든 들어와 편안함을 얻어가라는 것이다.
“한번은 자신을 건축가라고 소개한 분이 법당을 살펴보더니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더군요. 이 같은 공법이 상식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었죠.”
목공 두세 명을 데리고 법당을 지었지만, 건물 설계는 모두 지개야 스님의 머리에서 나왔다. 3층 다락방은 아이들이 법당에서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놀이공간으로 꾸몄다. 2층 대웅전에서 앞산을 바라보면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가 밝혀진다. 한국 산하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평지토가 보이는 것. 이 평지토를 향해 주변의 산들이 부복하는 형국이 역력하다.
“종교는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곳을 사람 냄새, 시골 외갓집 냄새가 나게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는 묵언마을에서 매주 금∼일요일 3일간은 묵언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한편, 몇 가지를 실험할 예정이다. 우선 자살충동자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와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희망찬 발걸음으로 돌아가게 하고, 수시로 어린이와 가난한 작가들이 찾는 친근한 공간으로 꾸미려는 것이다. ‘안동한우’ ‘꽃등심’ 등 브랜드를 창안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사찰에서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에도 앞장설 예정이다. 또 누가 무엇을 물어오든 함께 해답을 얻기 위해 고민할 각오다.
“모든 종교의 기도가 그 형식은 다르나 내용이 같다는 것은 ‘종교는 곧 하나’임을 의미한다”는 그는 “모두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목사님이나 신부님, 억울한 사람 등 누구에게라도 법단을 내주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사회적 경험이 많아서인지 모르게 없고, 대자연에 대한 배려도 깊다. 스님이 달마지꽃, 푸성귀 등 들풀을 뜯어다 차를 끓여주는데, 그렇게 향긋하고 구수할 수 없다. “본래 차는 들풀을 뜯어다 먹는 것이고, 녹차는 겨울을 대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법당 처마에는 온갖 새들이 들어와 비를 피하며 살 수 있게 새집도 꾸며놨다. 스님의 넉넉한 자연사랑을 읽을 수 있다.
묵언마을에서 소설 ‘임꺽정’의 무대로 유명한 천년고찰 칠장사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 세계일보 정성수 기자
사진출처 https://cafe.daum.net/charmgoodtree/9Vb5/483?svc=cafe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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