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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영양 연당리 산촌생활박물관 서석지 작약봉 선바위

by 구석구석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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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에서 청송으로 내려가는 31번 도로를 타고 입암면 신구에서 좌우전하여 다리를 건너 911번 지방도를 타고 선 바위를 지나 10여분 시골길을 타면 연당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영양군을 대표하는 산이라면 단연 일월산(日月山·1,218.5m)이 되겠다. 더불어 일월산 하면 영양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비교적 산지가 발달한 영양 땅에는 일월산만큼 높지는 않지만 700~800m대의 산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영양읍을 굽어보며 솟은 작약봉(芍藥峯)은 북쪽의 흥림산(766.7m)을 지나 일월산에 그 맥을 대고 있는 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양군의 진산(鎭山)을 작약산으로 명기하고 있다. 진산은 고을이나 마을 뒤편에 위치해 그곳에 기운을 전하거나 보전해 주는 산이다. 일월산이 영양의 조산(祖山)이라면 작약봉은 영양의 주산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할 때에는 관민들이 모두 모여 이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작약봉으로 표기된 이 산은 작약산으로도 불린다. 이 산의 지형이 작약반개형(芍藥半開形·작약 꽃이 반쯤 핀 형국)으로 풍수지리적 명당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산봉우리가 함지박을 엎어놓은 모양이기에 함박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 남서쪽의 함박산이라는 산촌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또 산의 형태가 탕건을 닮았다 하여 탕건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한박산이나 대박산이라는 이견도 있다. 한박산의 ‘한’은 크다, 높다는 의미를 지닌 우리말로 한티재, 한아름, 한껏 등과 같은 용례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박산은 한박산, 즉 큰 박처럼 생긴 산을 한자명으로 적은 것에 불과하며, 함박산은 한박산으로 발음하기 어려움에 따라 변화된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현재 지형도상 작약봉으로 표기된 산은 실제 한박산이고, 탕건봉(탄감봉이라고도 하며 해발 512m)이 작약산이 아닌가 추정된다는 것이다.

 

입암~푯대봉~작약봉~영양 코스
산행 시작점인 선바위 관광지는 낙동강 상류인 반변천이 청기면 북부와 서부에서 발원한 동천(청계천)과 만나는 합수점이다. 이 강변을 남이포(南怡浦)라 하는데, 깎아 세운 듯한 바위절벽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른다.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거대한 촛대를 연상케 하는 바위가 하늘로 향해 솟아 있다. 이곳 지명을 낳게 한 선바위다. 입암(立巖), 선암(仙巖), 신선바우 등으로 불리는 이 바위와 남이포는 조선 초기의 무신인 남이장군(南怡將軍)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산행은 수석분재전시관 뒤편의 석문교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깎아지른 바위벼랑 아래에 닿으면 남이장군 등산로라 명명된 산책길이 있다. 이 산책길은 암벽 아래의 강변을 따라 좌우로 연결된다. 이 길 오른편 목재계단으로 오르면 한동안 잘 단장된 산책길이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다.

경관에 반한다…선바위 관광단지

지는 해가 잔잔한 강을 금빛으로 수놓는다. 황금 빛 물길에 산 귀퉁이가 잘려나간 듯, 깎아지른 듯한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강과 맞닿은 곳에는 평평한 석대가 화난 정승처럼 서 있다.


산과 하천이 석벽을 끼고 만나는 남이포. 영양군 입암면에 자리잡은 곳이다. 남북으로 흐르는 강의 물줄기가 입암면 연당리에 깎아세운 듯한 석벽을 끼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거대한 촛대를 연상시키는 바위가 있다. '선바위(입석)'라 불린다.

선바위 주변은 영양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선바위 관광단지'라고 불린다. 주변 물가에는 깨끗한 조약돌과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넓은 백사장이 있다. 여름철 피서지로도 인기가 높지만 돌과 강이 만나 자아내는 전망은 겨울철 '외로운 나그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줄 만큼 수려하다. 관광단지 주변에는 영양의 명물인 고추홍보전시관과 분재수석전시관이 있다. 차로 2분 거리에는 보길도 '부연동', 담양 '소쇄원'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가 정원으로 손꼽히는 '서석지'가 자리잡고 있다.

산골생활의 어제와 오늘…영양 산촌 생활박물관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부지 2만여 평에 들어선 산촌생활박물관도 여행 시 들러볼 만한 명소다. 비록 국보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손때가 묻은 민속품들이 전시돼 있다. 영양 군민들이 기증한 민속품 하나하나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결이 오롯이 배어 있다. 박물관 1층에는 보릿고개, 산나물, 장 담그기 등 산촌의 살림살이가 전시돼 있다.

오랜 역사의 산촌이 지닌 신앙 및 자치활동, 농경·여가활동과 화전농경, 사냥·놀이·공예 등 생활 속에서 사용된 각종 기구 800여 점은 다양한 볼거리와 산촌생활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물관을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둘러보고 나면 시들지 않은 청정한 산촌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박물관 오른편을 돌아 왼편의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과수원 사잇길로 빠져나온다. 묘지들이 많은 산길 옆에는 문소 김씨 묘가 있고, 경주 김씨, 낙안 오씨 묘지를 차례로 지나 숲속으로 들어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제법 경사가 심한 숲길로 오르면 주능선이다. 이제부터는 이 주능선만 따르게 되는데 잦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북쪽으로 잇는 이 능선만 놓치지 않는다면 등로 이탈 염려는 별로 없다.

산길은 너무나 조용하다. 간혹 인기척에 놀란 장끼가 산객을 당황하게 한다. 주능선을 따라 25분이 지날 즈음 내리막 능선상에 자리한 묘지를 만난다. 곧이어 안부에 이르게 되는데 잠시 숨을 돌리고 땀을 식힌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일어나 다시 오르막 된비알로 올려채면 갈림길이 있는 440m봉이다. 산마루에 올라서면 그런대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가야 할 산릉이 북쪽으로 이어지고 멀리 산등성이 끝에는 작약봉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 산들은 물론 왼편의 동천과 오른편의 반변천이 산태극수태극을 이룬다. 갈림길에서 진행해야 할 방향은 오른편 비탈길. 오르내림이지만 연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는 경사가 가파르다. 특히 북사면은 잔설이 남아 있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급격히 떨어지는 내리막을 내려서면 산길은 능선을 비켜 오른편으로 에돌게 된다. 곧이어 나타나는 갈림길에서는 인적을 느낄 수 있어 반갑다. 남이장군 등산로, 생태 등산로라 인쇄된 리본이 달려 있다.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이 한적한 이곳에서 사람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에 새삼 온기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다시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운치 있는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간간이 새소리가 들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촌 풍경은 너무나 고즈넉하다. 한동안 편편하던 숲길이 된비알의 오르막으로 변한다. 갈림길에서 40분쯤 걸으면 낙안 오씨 묘지다. 여기서 코가 땅에 닿을 듯한 비탈길로 10분이면 푯대봉(578m)에 선다. 표대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봉우리에 오르면 이정표(선유봉 1.2km, 푯대봉 580m, 행곡령 1.2km)만 서 있을 뿐 삭막하다.

여기서 길은 행곡령으로 잡아야 한다. 낙엽이 푹신거리는 서북쪽의 능선길은 사람이 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봉우리를 넘으면 통정대부 영일 정씨의 쌍묘가 나온다. 묘지 앞을 지나 오른편으로 꺾어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행곡령 고갯마루에 이른다. 영양읍에서 청기면을 넘나드는 지름길로, 지금은 포장도로에 차량통행도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본래는 너무 험하고 가파른 꼬부랑길이어서 ‘울면서 넘는 고개(行哭嶺)’라는 것이다.

행곡령 건너편의 산비탈은 온통 개간지다. 이 일대는 1969년 독립가옥의 집단화 사업을 벌여 영양군 내 흩어져 살고 있던 화전민 20가구를 이곳 팔수골 위쪽에 정착시켜 새마을촌이라 부르고 시범촌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며 염소를 키우는 농가가 몇 집 있을 뿐이다.

작약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건너편 파랑새농장이라는 간판이 서있는 콘크리트 포장길로 오른다. 100m쯤 나아가면 이정표와 임도 안내판이 서있는 갈림길. 여기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편 동부리(골뱅이골) 쪽으로 가야 한다. 임도를 따르다가 왼편 산릉으로 붙어야 하는데 길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철이라면 애를 먹기 십상이다. 차라리 포장된 임도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길이 오른편으로 꺾어진다. 이 지점에서 왼편 인동 장씨 묘지 뒤편으로 치고 오르는 것이 수월하다. 

5분이면 주능선의 산길을 찾을 수 있고, 정상까지는 20여 분이면 충분하다. 밋밋하게 오르는 능선길은 한동안 소나무숲이던 것이 참나무숲으로 바뀌면서 시야가 조금씩 트인다. 곧이어 능선상에 있는 삼각점(1981년 6월 신설, 내무부)을 볼 수 있고, 3분 정도 나아가면 정상석이 반긴다.

서남쪽 조망은 참나무에 가려 좋지 않다. 그러나 북쪽으로는 지척에 보이는 흥림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렇지만 연결된 능선이 급격히 떨어지고 등산로 또한 나있지 않아 작약봉~흥림산 연계산행은 어려울 것 같다.

흥림산 너머로 멀리 일월산도 볼 수 있다. 동쪽에는 낙동정맥 산봉우리들과 그 봉우리를 이어가는 산등성이가 아슴푸레하게 스카이라인을 긋고 있다.

하산길은 영양읍내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서 남동릉을 따르는 산길은 정비한 듯 반듯하고 뚜렷하다. 처음부터 경사가 심한 내리막으로 내닫다가 보면 왼편 바위 위에 ‘樂山靈泉(요산영천)’이라 쓰인 빗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영양 출신인 권영성(1881~1923년)씨 후손들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권씨는 행상으로 큰 돈을 벌어 영양 지역의 복지후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빗돌을 지나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 내려서면 묘지군을 만나고 그 앞으로 임도가 가로지른다. 길은 임도를 건너 다시 숲속으로 접어들었다가 잠시 후면 능선을 벗어나 왼편 산자락으로 잇는다. 임도에서 10분이면 개간지가 보이고 뒤이어 개간지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길에 선다. 이 길 오른편을 따라 얼마쯤 가면 주택을 만난다. 주택 사이 골목길을 벗어나면 큰길과 서부3리 마을회관이다. 곧 영양초등학교 정문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난다.

월간산 2009.4 황계복

 

한국의 3대 아름다운 정원 중 백미…영양 서석지

연당마을 서석지는 광해(光海), 인조(仁祖) 연간에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鄭榮邦)(1577ㅡ1650년)선생의 별장이다.

서석지에 들어서면 400년 된 은행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연못에는 연분홍 연화가 곱게 펴 자태를 뽐내고 서재인 주일재 뜰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를 심어 선비의 지조를 엿볼 수 있다.

흡사 사극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올 법한 고색창연한 서석지 처마끝으로 장마비가 낙수되어 연지로 떨어지는 서석지는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은 듯하다. 이곳은 조선조 진사 정연방이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여 은거생활의 낭만을 즐긴 서석지는 연꽃이 곱게 피는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서석지 정자문을 들어서면 왼편 서단에는 규모가 큰 경정(敬亭)이 자리하고 있다. 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있는 큰 정자이다.

맞은쪽 연못가에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마루에는 운루헌(雲樓軒)이라고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주일재 앞 화단에는 송죽매국(松竹梅菊)을 심어 사우단(四友壇)을 만들고 었다. 그리고 정자인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었는데 큰 채에는 자양재(紫陽齋)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아랫 채에는 지금도 디딜방아가 그대로 있다.

경정(敬亭)앞의 연당(蓮塘)에는 연꽃과 수초가 자라고 서석군은 동편 연못바닥을 형성하는데 크고작은 암반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다. 돌 하나 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있다. 서석지라는 이 연못의 이름도 연못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찾아가는 길은 34번, 31번 국도 교차점인 진보 월전마을에서 31번 도로를 타고 입암면 소재지 마을인 신구에서 좌회전하여 다리를 건너 911번 지방도를 타고 선 바위를 지나 10여분 시골길을 타면 연당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경북일보 곽성일기자

 

○선바위 관광지~산촌생활박물관~440m봉~푯대봉~행곡령~작약봉~영양초등학교 <5시간30분 소요>
○월삼사~푯대봉~행곡령~작약봉 정상~영양초등학교 <3시간 소요>
○선바위 관광지~산촌생활박물관~440m봉~푯대봉~행곡령~월삼사 <3시간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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