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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의성 산운리 산운마을 산운생태공원 금성산

by 구석구석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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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와 예의 고장 '의성'

의성의 전통적인 관광자원으로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사명대사, 함흥대사, 수월선사 등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거쳐간 단촌면 구계리의 고운사를 비롯, 고려 공민왕 때(1368년) 왕사인 지공국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해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다인면 봉정리의 대곡사, 신라 신문왕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아름다운 계곡으로도 유명한 금성면 수정리의 수정사, 금성면 대리리의 신라 경덕왕릉 및 주변 40여기의 고분, 춘산면 빙계리의 빙계서원 등이 있다. 유명 산으로 비봉산, 청화산, 금성산 등이 있고 곳곳에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산운마을과 산운생태공원

금성면 산운마을은 의성에서 대감마을로 불리는 전통양반촌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이다. 마을은 금성산을 뒤에, 비봉산을 옆에 두고 나지막한 구릉과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산운마을 들머리. 흙길을 따라 옛집들이 한데 어울려 있다/오마이뉴스 .

금성면 산운리 금성산 자락에 자리 잡은 산운마을은 의성의 영산인 금성산과 구름의 절묘한 조화로움이 서기 어린 곳이라 하여 산운(山雲)이라 한다. 영천이씨 집성촌으로 자연지형과 경관이 수려하다 학록정사(지방유형문화재 제242호)와 운공당, 점우당, 소우당, 등의 전통가옥 40여동이 보존되어 있으며 수많은 애국지사와 선비를 배출한 곳이다.

군은 전통마을을 보전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활용하기 위하여 산운 마을내 폐교된 교사를 매입하여 생태관과 자연학습원 겸비한 산운생태공원을 조성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3년,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흙을 날라 지었던 산운초등학교, 여느 시골학교와 마찬가지로 95년 폐교되자 4년간 동문들의 힘으로 지켜 생태공원으로 부활시켰다. 한때 국기게양대와 축구골대가 고철로 팔려 나가고 운동장은 돼지 분뇨의 야적장으로 전락했던 학교는 생태관으로, 잔디동산으로, 뒷마당은 연못과 관찰 데크, 나무다리, 산책로 등으로 새로워졌다.

생태공원은 지난 2001년부터 2006년에 걸쳐 폐교된 산운초등학교를 매입, 그 부지위에 전시실, 마을자료관, 영상실, 강의실 등을 갗춘 생태관과 연못, 초가정자, 징검다리 분수, 초화류 등을 식재한 생태연못과 잔디광장 등 1만5천㎡ 면적에 조성되어 관내는 물론 외지 방문객 및 학생들의 소중한 자연학습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인근에 있는 300여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373호)과 연계해 공룡에 대한 여러 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늦은 주말 오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공 던지기며 그네타기 하는 모습,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위에서 사진 찍는 아이들 모습에 잔잔한 평화가 있다. 

소우당은 중요민속자료 237호로 현 소유자의 7대조인 소우 이가발(李家發)이 19세기 초에 지었다고 전하며, 안채는 1880년대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며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는 一자형의 문간채가 있고 그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는 내측간이 있다. 안채의 서쪽에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공간을 형성하고 그 안에 안사랑채 또는 별당으로 불리는 건물을 배치하였다. 주위에는 연못과 각종 나무를 심어 정원을 꾸몄으며, 안채와 사랑채에서 각각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두었다. 간결하고 소박한 형태로 지어진 상류주택으로, 특히 담장 안에 꾸민 별당은 당시의 풍류와 운치를 보여주는 별서 건축의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운곡당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374호로 현 소유자의 5대조 이희발이 영월부사로 있을 때 세운 집이라고 한다. 1800년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는데, 안채는 약 60여년 전에 일부를 다시 지었다.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마을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점우당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375호로 영천 이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있는 집으로 1900년경에 세웠다고 전한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헛간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ㄷ자형을 이루고 있고 그 맞은편에 헛간채가 있어 튼 ㅁ자형 구조를 보인다. 평면 구성이나 기법에서 독특한 점은 보이지 않지만 여러 세대가 함께 살던 모습을 살필 수 있어 좋은 예가 되는 집이다.

금성산 안내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수정사) 비봉산

산행계획은 금성산을 올랐다가 능선을 따라 비봉산을 거쳐 이곳 주차장까지 한 바퀴 돌아내려오는 코스다. 주차장에서 금성산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입산금지 송이버섯 채취구역' 현수막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비봉산 오르는 길 전역에 송이버섯 채취구역 현수막과 줄로 막아뒀다.

금성산 정상에서 비봉산 방향 능선에 빼곡히 소나무 군락지였는데 가을 송이버섯이 나는 시기에 막아둔 것이다. 산행이 목적이지만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처럼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겠나 싶어 계획을 수정한다. '수정사 1.9㎞'로 적은 도로를 따라 수정사까지 직진한다. 수정사 왼쪽 계곡을 따라 올라 비봉산을 올랐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를 잡는다.

수정사

한때 의성 의병 본거지로 쓰였던 수정사는 올해 초 대광전에 모셔진 석조아미타삼존여래좌상이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존인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경내를 둘러보고 대광전에서 나와 월영루 앞 계곡 사이를 오르면 텃밭을 지나면서 선명한 등산로가 나 있다.

수정사

계곡을 따라 선명한 등산로를 오르는데 최근 폭우에 쓸려나가 바닥이 패인 곳도 있지만 완만한 경사여서 힘들지는 않다. 15분쯤 오르니 등산로 오른편에 예전에 숯을 구웠던 숯가마를 만난다. 둘레를 돌로 석축을 쌓아올린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숯가마 터를 지나면서 계곡 왼쪽사면을 오르는데 등산로 좌우로 하얀 끈을 묶어 길 옆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두었다. 따라서 막아둔 끈만 따라가면 등산로다.

10분 정도 오롯한 길을 오르니 금성산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 삼거리다. 벤치가 놓여 있고 그 주변에도 줄을 둘러두어 등산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 두었고, '적외선 카메라 작동 중' 현수막 문구도 살짝 바뀌었다. 왼쪽은 금성산 방향인데 20분 거리에 '영니산 봉수대'가 있다. 이 일대가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조문국의 중심으로 외침을 대비한 봉수대로 쓰였던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비봉산 정상부에서 건너다보이는 금성산 일대.

멀리서 보면 여인의 머리카락을 풀어놓은 형상의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니 비봉산 정상이다. 정상 표석이 세워져있고, 소나무 숲에 '의성 12'로 적은 삼각점이 놓여 있다. 앞은 넓은 헬기장인데 잡목이 가려 조망이 시원치 않다. 몇 해 전에 올랐을 때에는 간벌작업을 해서인지 탁 트였는데 그사이 무성하게 자라 사방을 가리고 있다. 겨우 숲을 헤치고 나와 주변을 눈에 담는다. 왼쪽부터 선암산·조림산·팔공산이 지척으로 보이고, 오른쪽으로 금오산도 눈에 들어온다. 벌같이 생겼지만 침이 없는 꽃등에 무리가 윙윙거리며 날고, 여름내 울어대며 목이 다 쉬었는지 찌르륵 찌르륵 매미가 운다.

산행길잡이 : 수정사 주차장 -(15분)- 숯가마 터 -(10분)- 금성산 갈림길 -(15분)- 벤치 쉼터 -(10분)- 비봉산 정상 -(30분)- 수정사 갈림길 -(25분)- 수정사 주차장

 

비봉산은 금성비봉산으로 불릴 만큼 금성산과 말굽 형태로 서로 붙은 산으로, 금성산에서 비봉산까지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도 되고, 풍경이 빼어난 비봉산만 돌아 내려오는 코스를 잡으면 가족단위 산행으로 잡아도 무리가 없다.

금성산~비봉산을 연결하면 약 11㎞로 5시간 정도 잡아야 하고 비봉산만 산행한다면 약 4㎞ 거리로 3시간이면 넉넉하다.

산운마을 가기전 탑리에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국보 77호 5층 석탑이 있다. 금성면소재지의 옛 이름이 탑리인 것은 바로 이 석탑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높이 9.6m, 기단 폭 4.5m로 부분적으로 전탑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분황사의 석탑 다음으로 오래된 탑이다. 특징은 기단구조와 옥개석 상하면에 전탑의 양식을 하고 있다.

/ 영남일보 최원식 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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