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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군위 대율리 한밤마을

by 구석구석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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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대율리 혹은 한밤마을

마을은, 온통 돌담이다. 돌담길의 미로다. 화석 같은 돌담의 이끼가 푹푹 숨을 내쉬고 저 돌담길 모퉁이로 까르르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지나가는 것 같다. 양지바른 햇볕 든 골목, 마치 유년의 영상을 바라보듯 짠한 마음이 된다. 어린 시절, 이런 곳, 이런 골목길에서 뛰어 논 기억도 없는데 왜 돌담 앞에만 서면 유년이 떠오르는 것인지. 피에서 피로 이어져 온 일반적인 정서라는 게 이런 것일까. 마을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사람 떠난 빈집, 허물어진 돌담이 드문드문 보이고, 동시에 계획적으로 포개진 돌들이 시멘트로 엉겨있는 담들도 눈에 띈다. 마을 전체의 질서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마음에 전해지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은 유년의 시간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마을은 대율리 혹은 한밤마을이라 불리는 전통 문화 마을이다. 대율(大栗)은 고려 말까지 대야(大夜)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고려 말 경재 홍노 선생이 고려 멸망을 예감하고 낙향하여 도연명의 고향인 율리를 본 떠 야(夜)를 율(栗)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율리라는 노래 같은 이름도 좋지만 한밤마을이라는 이름이 더욱 마음에 든다. 입 안에 꽉 들어차는 '한밤'이라는 음조를 그만 꿀꺽 삼키고 싶어진다.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둥글고 우아한 얼굴의 석불입상(보물 988호)과 오래된 나무 결 그대로인 대청(유형문화재 262호)이 있다.

대청 옆으로 인접해 있는 군위 상매댁은 쌍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250여년 전에 홍우태의 살림집으로 세웠다고 전한다. 현재 건물은 그 뒤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 대청 상부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그 시기는 현종 2년(1836)경으로 추정한다.

원래는 독특한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재는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사당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 보이는 실용주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한 예로 볼 수 있는 주택이다.

마을 입구에는 5천평가량의 송림이 펼쳐져 있다. 성안숲이라 불리는 그곳은 임진왜란 때 마을 출신인 홍천뢰 장군이 군사를 훈련하던 장소로, 주변에 성을 쌓아 성안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숲에는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솟대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매년 정월에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홍천뢰 장군 추모비와 홍영섭 효자비는 애국과 효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학습장으로 방학을 맞이해 한번쯤 둘러볼만한 곳이다.

늦은 오후, 마을은 석축과 돌담 속에 숨어 멀어진다. 기와만 드러낸 돌담에 어둠이 내려앉고 그 사이로 빨간 가방을 실은 우체부 아저씨의 오토바이가 사라진다. 까르르 웃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돌담도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떠나는 건 나인데, 되레 마을이 멀어지고 있다고 우겨대는 이 마음이라니.

 

한밤마을 돌담문화축제

군위 한밤(大栗)마을의 자연·역사·문화자원을 전국에 알리기 위한 '한밤마을 돌담문화축제'가 남산리 제2석굴암 공용주차장에서 개최된다.

군위군이 후원하고 한밤마을 운영위원회(위원장 홍대일)가 주최하는 행사는 부계면 대율리 일대가 2007년도 행정자치부의 '살기 좋은 마을'과 농림부의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각각 선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다.

한밤마을은 950년경부터 대야(大夜)라 불리다 야(夜)가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율(栗)로 고쳐 부른 후 우리말로 순화해 '한밤'이라고 부른다.

경북일보 이만식기자

팔공산 능금마을

한밤마을에서 채 10분도 되지 않아 하얀 사과 꽃이 지천이다. 대구 하면 사과라는 것도 옛말이거니 했다. 예로부터 한 해의 이상 기후를 파악하는데 사과꽃을 기준으로 삼았을 만큼, 여름철 평균 기온이 26℃를 넘지 않고 겨울철 기온이 10.5℃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까다로운 과일이 사과이지 않은가. 사과 재배지는 이미 오래전에 북상을 시작해 의성을 지나 영주, 청송, 저 멀리 강원도까지 올라갔고 찜통더위 대구에서 사과는 이제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과 꽃이 지천이다.

군위군 부계면의 동쪽과 팔공산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동산리 일대는 반딧불이가 서식할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 동산 계곡을 끼고 마을 전체를 과수원이 감싸고 있다. 그곳이 행정자치부 지정 '정보화마을', 농림부 선정 '녹색농촌체험마을', 농협중앙회 선정 '팜 스테이마을'로 선정되어 있는 '팔공산 능금마을'이다. 이곳에서 나는 사과는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고랭지 기후를 이용한 저 농약 농법으로 재배되어 '팔공산 꿀 사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붙여진 많은 이름들만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조용한 정자와 맑은 약수터, 자연 체험 시설, 등산로, 낚시터 등 편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사과는 기후 조건도 까다롭지만 재배하기도 녹록지 않다. 초봄에는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내고 실한 가지를 골라 나무 모양을 잡아야 한다. 그 과정을 잘 해야 꽃이 많이 피고 열매도 많이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동안 쇠해진 땅에 비료를 먹여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4월 말경 꽃이 피면 중심 꽃은 두고 주변 꽃을 따낸다. 중심 꽃을 형아 꽃, 주변 꽃을 동생 꽃이라고도 한다는데 지금은 5월이니 거의 형아 꽃들만 웅성웅성한 셈이다.

사과 꽃만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어머나, 아저씨! 어머나, 어머나! 탄성을 지르고는 내내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입을 다물던 소녀, 빨간 머리 앤. 처음 애본리의 초록 지붕으로 가던 날, 흰 꽃이 만개한 사과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는 마차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꿈꾸듯 바라보던 꽃, 꽃들. 그 소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마슈아저씨. 앤은 그 길을 '환희의 하얀 길'이라 이름지었다. 꽃만 많고 열매는 없는 쓸모없는 나무라고 평했던 사람이 마리라였나? 환희의 하얀 길은 분명 형아 꽃과 동생 꽃이 함께인 사과나무였을 것이다.

꽃향기에 코가 뭉클하다. 환희의 하얀 길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능금마을이다. 열매가 맺히면 또 실한 녀석만 남겨두고 적과를 해야 한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최고의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겠지. 그 풍경을 향한 형아 꽃들이 그렇게 지천이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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