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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칠곡 숭오리 금오산 금오동천

by 구석구석 2022.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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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구미인터체인지에서 내리면 바로 좌회전하여 구미시가지를 통과하는 33번국도를 타고 약 4km정도 가면 '금오산 사거리'이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도로 안내 표지판을 따라 약 3㎞정도 

남통동 253번지 금오산도립공원내 금오랜드 054-451-8500 

12월 초 ~ 2월말까지 운영하는 120미터의 눈썰매장이 있고 수영장은 7~8월에 운영

* 놀이기종 - 토네이도, 바이킹, 요술궁전, 환상체험, 우주전투기, 충돌차, 매직댄스, 회전그네, 회전목마, 공중자전거, 꼬마자동차, 꼬마기차, 귀신의 집, 카니발코너, 밧데리카, 어린이용 라이더와 소형기구 다수
* 유아전용시설 - 에어펀 3종 (어린이 전용 공기주입 풍선매트 놀이시설)
* 주차시설 - 자체주차장 및 도립공원 대형 주차장 2개소
* 숙박시설 - 공원내 대형 모텔4개소외 금오산 도립공원내 2천명이 이용할 수 있는 야영장 1개소

 

구미에 가면 금오산이 있다. 금오산(金烏山)을 빼놓고는 구미를 이야기 할수 없다.

구미시를 감싸안은 금오산은 산자락을 드리운 곳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며 다양한 문화를 낳고 숱한 인재를 배출해 온 구미의 보배. 그래서 금오산에 대한 구미사람들의 애착은 각별할수 밖에 없다.

짙은 안개가 걷히자 아름다운 속내를 드러낸 금오산의 약사봉(958m)/월간조선

금오산은 보는 곳과 사람에 따라서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낙동강 쪽에서 보면 거인상이요, 선산에서 보면 붓끝(筆峯)처럼 생겼다. 김천 개령지역 사람들은 도둑이 무엇을 훔치려고 숨 어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적봉(賊峯)으로 부르고, 인동 주민들은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에 비유해 와불산(臥佛山) 또는 귀봉(貴峯)으로도 부른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 또는 남숭산으로 불리다가 당나라 대각국사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던 중 저녁놀에 황금빛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금오산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산이다. 이 산 동릉 끝머리인 구미시 상모동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 고 박대통령은 혁명 후 경제와 국토개발 초기 귀향길에 금오산 대혜폭포까지 등산하다가 폭포 아래에 어지럽게 버려진 유리병 파편과 쓰레기를 손수 주운 적이 있다. 이 때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 후 금오산은 자연보호 발상지가 됐다. 금오산은 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면적 37.9㎢)됐다. 

금오산은 구미시내 방면 공원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 도선굴~대혜골, 도선굴~할딱고개~마애불~약사암, 법성사~약사암을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들이 잘 알려져 있고, 이 지역만 각종 가이드북에 교과서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고려 말 야은 길재선생이 기거했던 채미정/월간조선

구미시내 반대편인 금오산 남쪽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방면에도 비경을 간직한 코스가 있다. 이 방면 코스들은 영남지역 등산인들이 예전부터 다니기는 했지만 아직 상세하게 소개된 적이 없다. 이 방면은 대중교통편이 불편하고 주차시설이 열악한 것이 흠이다.  

▲ 금오동천의 선녀폭포. 갈수기라서 물줄기가 약하다. 비가 오는 6월에는 폭포수가 치마폭처럼 쏟아져내리는 곳이다.

금오산 이름과 무관하지 않은 숭오리(崇烏里)에는 경북팔경 중 첫손에 꼽는 금오동천과 소림사 석굴, 부처님바위, 도수령 능선에서 보이는 정상과 어우러진 약수암 풍경 등 비경지대와 보물인 대각국사비 등이 등산로 마다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방면은 대원사, 소림사, 숭산마을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들이 대표적이다.   

금오산은 높이가 9백76m에 불과하지만, 평지에서 우뚝 솟은 옹골찬 바위산들이 기암괴봉을 이루고 곳곳에 수려한 경관을 자아내 경북의 금강으로 불린다. 금오산은 곧은 절개를 지킨 명현의 은거지이기도 했다. 고려말의 충신이요 대학자인 야은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산자락에 세운 채미정이 바로 그 표상.

도선굴오르는 길과 도선굴 / 월간조선

금오산 등산은 주차장에서 채미정과 자연보호기념비를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해운사에 내려서 대혜폭포~흘송대~내성북문을 지나 정상의 약사암에 이르는게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금오산에는 바야흐로 봄이 한창이다. 계곡에는 옥같이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아기의 손길같은 여린 나뭇가지들이 코끝에 와닿을 듯 향그럽다. 

같은 산이라도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듯이, 같은 계절이라도 날씨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지루한 장마속의 산은 어떤 모습일까.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가는 빛줄기로 생명을 이어가는 숲 속 식물들은 어떻게 기나긴 장마를 견딜까? 의문을 낳는 생각들이 연일 내놓는 장맛비 예보처럼 끝이 없다. 

같은 산을 비슷한 시기에 여러 번 찾아도 흥미를 잃지 않는 산행이 야생초산행이다. 야생초를 찾아가는 산행은 관심 있게 보았던 식물을 다시 찾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야생초 산행은 수년전 빗속 산행에서 정상을 뒤덮은 운무 속에 피어있던 꽃을 찾아 금오산(金烏山 976m)으로 향했다. 

 금오산은 산 전체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곳곳에 경승지가 산재해 있다. 천연 요새이기도한 이곳에는 금오산성을 비롯하여 유서 깊은 고적과 해운사 같은 고찰이 산 정상부근까지 자리하고 있다. 기암괴석과 폭포, 명승고적과 유서 깊은 사찰을 품고 있는 금오산일대를 경상북도에서는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은혜의 물줄기 ‘대혜폭포’

야생초산행은 상가입구 주차장을 출발하여 대혜계곡을 따라 올랐다. 아침 한 때 장맛비가 지나간 후라 한 줄기 바람에 나뭇잎에 묻었던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숲 속을 맴도니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대혜폭포에 이르니 장맛비로 불어난 물이 우레와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폭포수가 떨어지며 일으키는 바람이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순식간에 날려 버리니 기분이 상쾌하다. 대혜폭포(大惠瀑布)는 28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하여 일명 명금폭포(鳴金瀑布)라 일컫기도 한다. 이 고장에서 유일하게 논밭을 적시는 물줄기를 쏟아내는 곳이니 은혜의 물줄기를 품어내는 대혜골과 대혜폭포라는 이름도 붙었다.

대혜폭포의 오른쪽 절벽에는 신라 고찰 해운사와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선사가 득도하고 야은 길재선생이 수도하였다는 천연동굴인 도선굴이 아스라한 절벽 가운데 붙어있다. 임진왜란 때는 동굴 옆으로 떨어지는 세류폭포의 물을 받아 연명하며 100여명이 피난을 했을 정도로 동굴의 규모가 크다.

도선굴

남통동 산94 해운사  054-452-4917

 

 

구름도 쉬어가는 해운사가 있다. 해운사는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사되었다가 복원된 지 7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탓에 고찰의 기운은 느낄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지금도 해운사 바로 위에서 구미시를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도선굴과 약사암, 마애보살입상 등 금오산에 산재되어 있는 불교유적지들을 비추어 볼 때 그 깊은 불사(佛史)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선굴이 “깊이 31척, 넓이가 3척 3촌, 높이 15척으로 세상에 전하기로 도선국사가 수행하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도선굴에서 또 한 사람이 도를 터득했으니 바로 금오산인(金烏山人)으로 불리는 길재 야은이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고향인 선산군 해평면 금오산으로 숨어들어 훗날 영남학파의 주춧돌이 되었다. 도선과 의상, 의천이라는 불교계의 고승들과 길재라는 위대한 유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중들까지 품어주고 키워낸 금오산이 있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폐사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25년 철하스님이 복원하였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海雲庵)이라고 바꾸었다.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폭포를 지나면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장맛비에 젖은 돌계단과 곳곳에 산재한 미끄러운 바위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가파른 등산로지만 물기가 있는 곳에는 산수국이 부족한 일조량에도 불구하고 한창이다. 꽃 주변을 맴돌듯 피어있는 무성화가 특히 아름다운 산수국은 금오산을 대표하는 여름 꽃으로 꼽아도 좋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다. 꽃빛깔이 다양한 산수국을 즐기며 오르니 어느새 마애보살입상으로 가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대혜폭포에서 등산로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는데는 1시간20~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정상인 약사봉 아래에는 신라고찰 약사암이 절벽위에 날아갈듯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금오산 최고의 절경. 

'금오산마애보살입상'은 금오산 정상 북편 아래 암벽에 조각돼 있었는데 마음을 다잡고 오른 산이지만 마애불을 보는 순간 경이로운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높이 5.5m의 마애불은 특이하게도 암벽의 돌출 부분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조각돼 있었다. 그래서 양쪽 측면으로 봤을 때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년의 세월을 돌부처로 서서 세상을 관조하는 여래의 모습이 경이롭다/권미강

 산허리를 돌아야 갈 수 있는 보물 제490호인 금오산마애불은 장대한 신체에 강한 부조로 조각되었는데 비교적 갸름한 얼굴에 긴 눈은 가늘게 표현되어 있으며 초승달 모양의 눈썹은 작고 오똑한 콧잔등으로 이어져 있었다.

길게 표현된 인중과 가는 입술은 다소 경직되고 근엄함마저 풍겼다. 어깨에 닿을 듯 늘어져 있는 귀와 짧고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했다. 머리에 쓴 보관의 흔적과 높게 올려 튼 육계(肉髻), 머리 뒤에는 3중의 보주형(寶珠刑) 두광(頭光)을 조각하고 두광에서 이어져 내린 2중의 선으로 신광을 표현했다.

장마 견뎌내는 귀한 자생식물들

운무에 갇힌 마애보살입상 주변 울창한 숲 속은 어둡다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어두컴컴하다. 장마철이면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생존하는 숲속 식물을 걱정했지만 이 곳 숲속에서는 이런 생활에 익숙한 듯 대부분 건강한 모습이다. 여름 꽃으로 일컫는 나리 중의 하나인 ‘하늘말나리’는 아름다운적황색 꽃까지 매달고 있다. ‘하늘말나리’는 마치 빛을 쫓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처럼 꽃잎을 펼친 것도, 수술·암술도 하나같이 같은 방향이다. 아직 못다 핀 무르익은 꽃봉오리는 숲을 밝힐 등불을 켠 것처럼 스며 나오는 주황색 빛이 신비롭다.
‘하늘말나리’는 잎이 돌려나고 꽃이 하늘을 향해 피어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약사암

마애보살입상을 돌아 계속 나아가면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약사암에 이르고, 암자를 가로질러 더 나아가면 최고봉인 현월봉이다. 약사암은 신라시대 창건한 고찰이라 한다. 현월봉 정상은 통신시설이 자리하여 출입을 막고 있고 부근에는 큰 헬기장이 있다.

금오산 정상 현월봉에는 각종 통신시설물들이 세워져 훼손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바위투성이인 이곳에는 귀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수년전 이곳에서 만났던 ‘솔나리’도 그 중 하나다. 백합과의 ‘솔나리’는 주로 중부 이북지방의 깊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된 식물이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수년전 보았던 자생지를 찾았으나 입구를 막아 놓아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뒤지니 꽃봉오리 상태의 다섯 포기를 찾을 수 있었다. 꽃 핀 모습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주변을 샅샅이 훑으니 전혀 엉뚱한 곳에서 많은 개체가 자생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응력이 뛰어난 식물 인 것 같다. 

북방계식물인 ‘솔나리’는 자태나 꽃빛깔이 나리 중에 으뜸이다. 관상가치가 높다보니 자생지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쉽다. ‘솔나리’는 특이하게 잎이 솔잎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분홍색 ‘솔나리’가 꽃잎을 활짝 펼치면 매혹적인 모습이 된다.

밤하늘 별같은 ‘바위채송화’

최고봉인 현월봉에는 또 다른 나리인 참나리와 털중나리 군락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흙이 조금이라도 쌓인 곳에는 기린초와 산꿩의다리가 더 열악한 바위 겉에는 ‘바위채송화’가 빈틈없이 자리 잡았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니 어느새 정상부근을 이런 야생화가 차지했다. 노란 꽃이 피는 ‘바위채송화’는 돌나물과의 다육식물이다. 몸체에 다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흙이 없는 바위 겉이나 자갈밭에서도 살 수 있다. 작은 꽃이지만 다닥다닥 모여 핀 모습을 보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운 ‘바위채송화’다.

하산은 성안을 경유하는 길을 택했다. 분지처럼 드넓은 성안에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물이 많다. 물기가 많은 곳에는 고마리·물봉선 같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많았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하산 길 곳곳에는 하늘말나리·산수국·파리풀·가는장구채 같은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야생화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큰 계곡은 아니지만 바위를 타고 넘는 물길이 시원하다. 등산로는 대혜폭포의 물소리가 들리면 올랐던 길과 다시 만난다. 곧이어 도선굴이 자리한 단애가 건너편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험한 길은 끝난다. 금오산 야생초산행은 주차장-대혜폭포-마애보살압상-약수암-정상-성안-대혜폭포-주차장으로 회기를 했다. 등산에 걸리는 시간은 4~5시간으로 거리는 약 10km정도다. 

공원 어귀의 금오랜드에 갖가지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고, 금오지의 푸른 물결 위에서 유람 선과 보트 놀이를 즐기는 멋도 괜찮다. 호수를 굽이지어 돌면 갖가지 나무와 꽃을 알아보기 쉽게 꾸며놓은 자연학습원이 있어 가족들과 꼭 한번 찾을만 하다. 

대원사~금오동천~금오산성 성안~정상
대원사 들목은 김천과 왜관을 잇는 4번 국도가 지나는 부상리에서 북쪽 경호천 건너 숭오리 지경 마을이다. 지경에서 좁은 도로로 약 1km 올라가면 칠곡군에서 세운 대형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다. 금오동천과 금오산 남릉으로 가는 산길은 안내간판 뒤로 나있다. 

직진하는 길로 약 100m 거리에 식당가와 대원사가 있다. 대원사 지나 금오식당 앞에서 금오동천으로 가는 길도 있다. 금오식당 주차장 오른쪽 등산로 푯말(폭포 가는 길 1.2km→) 방면 길로 들어 6~7분 가면 제4폭포인 벅시소에 닿는다. 이후 기암괴석 사이로 5~6분 들어가면 제3폭포인 용시소가 반긴다. 

용시소를 뒤로하고 3~4분이면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맑고 시원한 계곡수가 깊은 바위 속에 소(沼)를 이룬 제2폭포 구유소로 올라선다. 구유소를 뒤로하고 약 50m 거리에 제1폭포인 선녀탕 폭포가 있다. 높이 15m인 선녀탕 폭포는 옛날 천산에 제를 올리기 전 8선녀가 용마를 타고 내려와 목욕하는 동안 타고 온 용마들도 2폭포인 구유소에서 물을 먹고 3폭포인 용시소에서 탕 속에 들어가 몸을 적셨는데, 용마 1필이 사라져 한 선녀가 승천하지 못하게 됐다. 선녀는 매일 선녀탕에서 상제께 용마를 보내줄 것을 눈물로 기원해 일명 눈물폭포로 부르기도 한다. 

선녀탕 폭포에서 오른쪽 급경사 길로 약 50m 올라서면 대원사 직전 대형 안내간판 뒤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수림으로 뒤덮인 계곡 길을 따라 1시간 15분 가량 더 오르면 성곽이 ∪자형으로 패인 성문 안으로 들어선다. 

성문을 뒤로하고 6~7분 거리인 고인돌을 지나면 왼쪽 대혜폭포 방면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산길로 30분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선산 11) 옆에 ‘현월봉’이라 음각된 비석이 있다. 이 코스는 약 4.5km로, 3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금오산 정상부를 테뫼형으로 두른 금오산성은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성곽은 천연의 암벽과 암벽 사이를 합리적으로 활용한 곳이 많다. 고려 말에는 선산 안동 개령 성주 등의 많은 주민들을 징발해 수비했고, 조선시대에 들어 1410년부터 1413년 사이에 성을 수축했다.

금오산성터 성안 분지에 있는 늪지. 이런 늪지가 3~4개있다.

이 무렵 성내에는 3개 연못과 4개 우물이 있었다. 군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천혜의 요새로서 상당한 규모로 정비됐음을 알 수 있다. 3개 연못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연못 마다 하단부에는 농사 지은 흔적인 천수답과 밭터가 남아 있다.

성안에는 선산군 구미면이었던 시절인 왜정 때에는 3,000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방상의 요충으로 부각되어 선조 28년(1595년) 성벽을 수축해 승병대장 사명(四溟)도 이에 참여했다. 인조 17년(1639년)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해 내성과 외성을 다시 쌓았다.

영조 11년(1735년)에 선산도호부사가 산성별장(山城別將)을 겸하는 거진(巨鎭)이 되어 상주군병 3,500여 명이 배속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종 5년(1868년) 마지막으로 수축해 당시의 중수송공비(重修頌功碑)가 성안 금오정(金烏井) 옆에 남아있다.

 소림사 코스
소림사 들목은 두 곳이 있다. 북삼읍에서 버스가 들어가는 숭오3리 강진마을 15번과 115번 버스종점에서 서쪽 길로 약 1.5km 거리인 금곡 마을비석 삼거리에 이른 다음, 오른쪽 길을 따라 1.5km 거리인 소림사 입구로 가면 된다(도보 약 40분).  

대원사 방면 4번 국도에서는 대원사 들목 지경 마을 전방 2km 거리인 평촌 마을 삼거리에서 ‘대각국사비 4.2km→’ 안내판 방면 길을 따라 숭오3리 종점 방면 길과 만나는 금곡 마을비석 삼거리다. 이어 소림사 입구로 가면 된다(도보 약 40분). 

소림사 입구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길은 대각국사비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왼쪽 푯말(←금오산) 방면 좁은 길로 8~9분 오르면 석암사에 닿는다. 석암사 아래로 동기와 지붕을 이은 건물이 굴암사이고, 그 서쪽 건물이 금오사다.   

석암사를 뒤로하고 3분 오르면 남릉 굴암사 갈림길 방면과 만나는 삼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직진하는 길로 10분 오르면 소림사 마당으로 오르기 전 계단 아래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왼쪽 소림사 마당을 지나는 길과 오른쪽 지계곡 방면 길은 8~9분 거리에서 석굴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석굴은 출입구 높이 4m에 폭 10m. 안쪽 깊이가 8m 가량 된다. 이곳은 기도터다. 

석굴에서 왼쪽 벼랑길로 20m 가면 오른쪽 지능선 방면 철계단이 있다. 철계단을 올라 이어지는 지능선을 따라 45분 가량 오르면 부처님바위에 닿는다. 부처님바위 옆에는 대구에서 오신 할머니 한 분이 수 년째 바위를 지키고 있다. 

부처님바위를 뒤로하는 암릉길로 15분 오르면 남릉길과 만나고, 이어 도수령 갈림길~905m봉~헬기장을 경유해 정상으로 향한다. 이 코스는 약 6.5km로, 4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 경남일보 2007. 7. 19 / 월간산 2007 박영래 객원기자

 

숙박

금오랜드에서 해운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남통동의 뉴금오산관광호텔 / 054-453-8164

금오산 공영주차장 옆 식당가에 로뎀식당(054-452-7047), 하회마을(054-456-0591), 정일품(054-452-3268), 충청도식당(폭포식당과 같은 집·452-1135), 물레방아(054-457-6310), 고향촌(054-455-3010, 감나무백숙(054-452-6228), 그곳에가면(054-457-4272) 등이 있고, 버스종점 왼쪽 골목으로 산책로식당(054-455-0335), 청기와한정식(054-456-5161), 주왕산백숙삼계탕(054-455-2399)이 있다.

버스종점 앞에 천하태평식당(054-455-6838) 등 이용. 닭백숙, 닭도리탕, 닭불고기, 낙지전골, 아구찜·낚지복음사리·버섯전골·부대찌개·두부전골·동태찌대, 묵사발 등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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