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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밀양여행 무봉사 만어산

by 구석구석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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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

 

밀양시를 관통해 흘러가는 밀양강을 따라 시내 중심에 들어서면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누각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루로 꼽혀왔던 영남루는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밀양강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밀양관광의 중심에 해당한다.

 

밀양(密陽)의 ‘밀’자가 비밀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일까. ‘밀양의 4대 신비’로 일컬어지는 표충비, 얼음골, 무봉사 태극나비, 만어사 어산불영경석은 밀양 관광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밀양은 신비의 고장으로 둔갑한다.

 

거리 곳곳에서 영화 ‘밀양’의 향기가 살아 숨쉬는 경남 밀양은 다양한 체험과 여유로운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적한 숲까지 볼거리가 풍성한 밀양으로 떠나보자.

 

하늘의 전령 ‘무봉사 태극나비’


땀 흘리는 표충비만큼은 아니지만 밀양에는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마다 찾아왔다는 태극나비의 전설이 전해져온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직전 날개에 태극문양을 한 나비들이 영남루 주위를 날아다녔고, 며칠 후 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에 고려 초기에는 나라를 일으킨 나비라는 뜻의 국성접(國成蝶)이라 칭하며 보호했다고 한다.
광복을 맞이하던 1945년 8월15일에도 어른 손바닥만한 태극나비가 영남루에서 가까운 무봉사의 법당으로 날아들어 사흘 만에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표충비와 함께 국가의 대사를 신호하는 하늘의 전령으로 회자되고 있다. 
 

 

재약산 사자평

 

매년 10월 말이면 125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억새밭이 절정이다.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그다지 예쁘지 않지만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구리 빛의 거대한 바다를 보는 것 같이 경이롭다.

사자평으로 오르는 길은 경남 밀양의 표충사에서 곧바로 이어진다. 해발 850m쯤 되는 사자평에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5~6가구의 민박촌인 고사리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헐리고 분교 건물만 남았다.

 

사자평에서 재약산 정상인 사자봉까지는 40여 분.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올라온 길로 되돌아가면 된다.

가는 길에는 10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 표충사를 눈여겨보자. 원효가 창건해 ‘죽림사’라고 했고, 그 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황면선사가 재건해 ‘영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839년 헌종 5년에 무안면 표충사에 있던 청허·사명·기허대사의 진영과 위패를 옮겨와 절 이름을 ‘표충사’라 고쳐 부르게 됐다.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려이면서도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2년에 세운 표충비가 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라의 길흉을 전후해 비석이 땀을 줄줄 흘리니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나라와 민족을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함이라고 표충비를 신성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894년 갑오군란을 비롯해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광복, 1950년 6·25전쟁, 1960년 4·19의거, 1961년 5·16군사혁명 등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고 한다. 최근에는 2002년 여중생 미군장갑차 참사 촛불시위와 다음해 이라크 전쟁에 맞춰서도 눈물과도 같은 물기가 맺혀 흘렀다고 전해진다.

길이 130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와불이 들어설 예정인 영산정사는 몽골, 스리랑카, 미얀마 등 각 불교국가에서 수집하고 기증한 진신사리 100만과, 10만개의 패엽경, 2,000여점의 불상을 전시한 성보박물관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표충비각을 지나 30번 지방도를 따라 무안면 고라리로 더 내려가면 오른편으로 사명대사 유적지도 나온다. 지난 2006년 복원된 이곳은 사명대사가 태어나 입산하기 전까지 생활한 곳. 마을 뒷산 서쪽으로 사명대사의 할아버지·할머니·어머니·아버지의 산소도 보존돼 있다.

사명대사 유적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어른 2천원, 어린이 5백원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055-359-5637 

찾아가는 길

밀양연극촌에서 밀양시가지 방향으로 진입해 달리다 KT 밀양지점 앞 사거리에서 부곡 방향 1080번 지방도를 따라 우회전. 무안 삼거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표충비각이 나온다.
 

만어산

만어산에 가면 수만 개의 커다란 바위가 펼쳐진, 좀처럼 보기 힘든 너덜 지대(자갈이나 돌더미가 쌓여 있는 곳)를 볼 수 있다. 경부선의 작은 역인 삼랑진역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 봉긋 솟은 만어산이 보이고, 만어산 정상에서 남쪽 아래쪽으로 만어사와 신비의 종석이라고 불리는 폭 100m·길이 500m의 너덜 지대가 있다. 

서기46년에 세워진 만어사 / 여성동아

 만어사 대웅전의 오른편에는 멀리서 바라보면 부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버린다는 만어사 어산불영경석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바위에는 언제나 부처님의 영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찾아가는 길

대구~부산 고속도로 삼랑진IC에서 삼랑진방향으로 진입. 굴다리를 지나면서 왼쪽을 보면 만어사 이정표가 있다. 길을 따라 좌회전해 계속 들어가면 산언덕 입구로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산외면 남기리 밀양강변에 있는 기회송림은 밀양 사람들 사이에선 ‘긴 늪 솔밭’이라 불리는 곳이다.

폭 200m, 길이 1500m의 울창한 솔숲으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여름 휴가지로 사랑받는 곳. 최근엔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가 종교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놓고 도망치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해졌다.

찾아가는 길

삼랑진IC에서 대구~부산 고속도로 대구 방향으로 진입해 밀양IC로 나간다. 밀양시가지 방향으로 진입해 첫 번째 사거리에서 기회송림 이정표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화려한 여름밤 공연예술축제 즐기고 연극 만들기 체험하는 밀양연극촌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은 중견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제작장. 지난 99년 이곳에 터를 잡은 연희단거리패는 이듬해부터 밀양시와 함께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연극, 세상 속으로 들어가다’라는 주제로 7월20일부터 8월5일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는데 연희단거리패 홈페이지(www.stt1986.com)에 자세한 일정이 소개돼 있다.

문의 055-355-2308 www.stt1986.com

 

찾아가는 길

영남루에서 창녕 방향 24번 국도를 타고 시가지를 벗어나 10분 정도 가면 춘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 방향으로 진입하면 얼마 안 가 길 오른쪽으로 밀양연극촌이 보인다.

 

 

밀양 미리벌 민속박물관

밀양시 초동면 범평초등학교에 자리잡은 '미리벌(밀양의 옛 이름) 민속박물관'은 폐교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박물관이다. 교실마다 가득 찬 2400여 점의 민속자료를 비롯, 대나무 울타리와 천연잔디가 깔린 운동장은 박물관의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1998년 문을 연 이 곳에는 성재정 관장이 30여년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수집한 전통민속공예품 3000여점 가운데 1000여점을 조선시대 사랑방(1전시실), 안방(2전시실), 부엌 가구(3전시실)와 신변 장신구(4전시실), 생활용품(5전시실)과 초등학교3학년을 위한 특별실(6전시실)로 테마별로 전시하고 있다.

이 교실 저 교실로 옮겨 다니며 조상들의 손때 묻은 민속품을 직접 만져 보면서 감상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박물관가는길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방향으로 가다가 영산 인터체인지에서 우회전한다. 영산톨게이트를 지나 부곡온천 사거리에서 수산·창원 방향으로 8㎞ 정도를 달리다 보면 미리벌박물관이 있는 초동면소재지에 도착한다.

 

/ 자료 - 미디어윌 M&B ‘교과서에서 쏙쏙 뽑은 가족 여행지 2’ / 경남일보(2006년 4월 16일) / 여행신문(서동철)

 

 

교동밀성 손씨 집성촌

언제 가 봐도 세월의 묵은 맛이 느껴지는 전통마을에서의 특별한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봄볕의 정취가 따사로워지는 것 같다.

 

예부터 밀양은 유일하게 안동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양반의 고장이라 하여 소(笑) 안동으로 불렸다. 안동이 퇴계 이황 선생 이후 비로소 양반 고장이 된 것에 반해 성리학 계보로 볼 때 퇴계의 증조부쯤 되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밀성 손씨 종가집 솟을대문 /경남신문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골목길을 걷다 보면 99칸의 웅장한 한옥 구조를 자랑하는 밀성 손씨 종가집을 만날 수 있다. 현재는 그 후손이 한식집(열두대문)을 운영하고 있지만 옛집의 푸근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솟을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면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장독대 등 옛 사대부 양반가의 풍류와 살림살이를 짐작케 하는 옛 물건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마루 전체에 창호문을 둘러 만든 겹방 구조나 구석구석 배치된 개화기의 가구 등은 근대 한옥집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교동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지방공교육 시설인 향교를 중심으로 유림의 주택들이 밀접해 생긴 마을을 이르는 말로 전국에 많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옛 풍모를 잃은 지 오래다. 그나마 밀양 교동의 밀성 손씨 집성촌만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밀양향교를 머리에 두고 소담하게 모여 있는 밀성 손씨 집성촌의 아름다운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왠지 정감이 넘치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밀양향교 앞마당에 핀 노란 산수유꽃/경남신문

 

 

예림서원

 

영남유림의 대부 김종직 선생이 후학들을 양성하던 예림서원과 그의 생가 후원재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자리한 예림서원(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은 명종 22년(1567년)에 당시 부사 이경우가 밀양유림의 요청으로 퇴계 이황의 자문을 받아 자씨산(慈氏山) 아래 영원사 옛터인 지금의 활성동에 서원을 짓고 덕성서원이라 하였다.

 

인조 13년(1635년) 상남면 예림리로 옮겼으나 숙종 6년(1680년)에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리자 부북면 후사포리로 다시 옮겨 왔다. 고종 8년(1871년)에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헐어서 치워 버림)되었으나, 고종 11년(1874년)에 향사림의 노력으로 강당과 동서재 등 부속건물을 보수했고, 1945년 광복 후에 사액(賜額) 현판을 다시 달아 오늘에 이르렀다.

 

 

용평동 월연정(月淵亭·지방유형문화재 제243호)

본래 월영사가 있던 곳으로 월영연이라 하였다. 한림학사 등 여러 요직을 지내다 기묘사화를 예견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월연 이태 선생이 중종 20년(1520년)에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쌍경당이라 편액(扁額)했으나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33년(1757년)에 8세손인 월암 이지복이 복원했다고 한다.

 

월연정은 가장 좌측인 남쪽에 있으며, 동향을 하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樑)구조로 팔작지붕을 한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이다. 북측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월연대(月淵臺)는 남동향이며, 월연정 주위에 건립된 제헌(齊軒), 월연대 등 모두 풍치가 수려한 곳에 무리를 이루어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지형에 맞추어 모두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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