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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강원도

관동팔경

by 구석구석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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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西),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월송정()이 그것이며,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를 넣는 경우도 있고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양양은 청초호(靑草湖)로 나오기도 한다.

대관령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관동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그 명승지들은 관동지방의 수많은 경승지 중에서 특히 예로부터 손꼽혀 온 경승지로, 종래 강원에 속했던 망양정과 월송정은 현재 경북에 편입되었고, 또 삼일포와 총석정은 북한지역에 들어 있다.

관동팔경은 예로부터 칭송되어 온 명승지인 만큼 이곳을 노래한 시가와 이곳에 얽힌 전설들이 많은데, 특히 조선 선조() 때에 정철()이 관동팔경과 금강산일대의 산수미()를 읊은 《관동별곡》이 유명하고, 또 신라시대에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이 삼일포와 월송정에서 놀았다는 전설도 널리 알려져 있다.

1. 간성 청간정(淸澗亭)

관동팔경의 최고로 박정희 대통령이 기존의 현판을 대신하여 현판을 썼다고 하여 다소 문제시 되기도 했다.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로의 청간정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관동8경()의 하나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청간정에서 바라본 바다

정자의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미상()이나 1520년(중종 15)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40여 년 후인 1930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그 후 1955년 대통령 이승만()의 명으로 보수하였고, 1981년 4월 대통령 최규하()의 지시로 해체복원()하였다.

  2. 고성 삼일포(三日浦)

면적 약 0.7km2. 둘레 4.5km.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고성에서 온정리()로 12km 가량 가면 북쪽 언덕 너머에 있다. 석호()로 북서쪽에 거암이 솟아 있고, 남쪽 호안에는 기암이 많은 구릉이 있다. 신라시대에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등 4국선()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삼일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근처에 사선정() ·몽천암() 등이 있다.

'여지승람'에 네 신선이 관동팔경을 하루씩 구경하기로 하고 왔다가 삼일포에서는 하늘과의 약속을 깨고 사흘간이나 묵었다하여 삼일포라는 전설...

호수와 소는 고요하고 깊어서 예로부터 민중의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다.

 

네이버카페(김가네함가네)에 올라온 금강산 답사기중에서

36개의 봉우리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3. 통천총석정(叢石亭)

강원도 통천군 고저(庫底)에 있는 정자로 북한 명승지 제13호이며 천연 기념물 제214호

동해에 돌출한 해식애() 지대에 있으며 그 아래 바닷속에 구릿빛으로 그을은 6각형의 현무암 돌기둥이 여러 개 총립()하여 절경을 이룬다. 높이가 100척이 넘는 돌기둥도 있다.

 

총석정 사선암

기철은 원()나라 말기 순제()의 기황후() 오라비로서 세도를 부렸는데, 그가 강릉()에 갔다가 해금강(총석정에 올라 화랑의 낭도()였던 사선()이 노닌 자취를 보고 지었다는 총석정가》라는 가요가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김홍도는 왕명을 받들어 여러 곳을 여행하며 곳곳의 명승을 화폭에 담았다. 이 〈총석정도〉는 여행할 때 제작한 초본(草本)과 그때의 인상을 토대로 하여 나중에 제작한 것으로 《을묘년화첩》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화첩은 그가 50대에 들어서면서 자신감 넘치는 필치를 구사하던 때의 작품으로, 김홍도 화풍의 변천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통천군 동해안에는 기둥모양의 기암절벽지대가 육모로 남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위기둥들이 빽빽히 밀집해 있고 여러 바위기둥들이 묶음형태로 서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사선대(四仙臺)이다. 원래 총석정(叢石亭)은 이 곳의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바위위에 세운 정자의 이름이었으나 훗날 이 일대의 자연절경을 빚어내는 기암들을 말하고 있다.

동해안 800리에 걸쳐 아름다운 경관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총석정의 절경이 가장 뛰어나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첫 번째로 소개되고 있다.
지각변동이 활발하던 시대에 현무암 용암이 갑자기 찬 공기에 노출되면서 식어서 육각형 모양의 밀집한 바위기둥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암석의 모습을 주상절리 (柱狀節理) 라고 한다. 이러한 바위기둥 모습은 서있는 상태(立叢), 비스듬이 누워있는 상태(臥叢), 주저앉은 모습(座叢)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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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라시대 화랑 4인이 이 곳에서 푸른 바다와 기암절경을 감상하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에 비석이 있고, 이 곳의 큰 바위 기둥을 훗날 사선봉(四仙峰) 이라 불렀다. 훗날 바위 언덕에 고려말 기 철(寄 轍)이 정자를 지었고, 조선조에는 남쪽에 환선정(喚仙亭)이 있었다. 근대까지 있었던 정자는 원래 자리에서 남쪽 1km 지점에 세운 것이다. 현재 북한의 명승지 제13호, 천연기념물 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총석정의 경관은 망망대해 바다의 경치, 붉은 해변, 떠오르는 아침 해돋이, 달밤에 황금물결을 이루는 파도가 바위기둥에 부딪칠 때 치솟는 흰 물보라, 늘어서 있는 웅장한 바위기둥이다. 옛날에 사람들이 강원도 여행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이 곳에 들러 기암절경을 구경하였다.

주위에는 관광시설이 없고 접근이 불편하다. 현재 현대의 금강산 관광코스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으며 육로로 차로 가거나 특별히 배를 띄우기 전에는 관광이 불가능하다. 앞 바다에는 '알섬 바닷새 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 21호)'이 있고, 이 곳 북쪽 율동리(栗洞里)에는 팔경대(八景臺)가 있다. 팔경대(八景臺)에서 총석정 주위의 4계절과 아침, 저녁, 밤, 낮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네이버 블로그 '자밀라'에서

 

   4. 양양 낙산사(洛山寺)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6호의 홍련암(관음굴(觀音窟)이라고도 한다.)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며,.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다고 하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 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 ·25전쟁으로 소실되고 말았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이 절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강원유형문화재 제33호 홍예문. 조선시대에 세워진 전형적인 성문으로 당시 강원도를 이루던 26개 고을에서 돌을 하나씩 내놓아서 축을 쌓았다고 하며 1466년(세조 12) 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사찰을 중수하고 세운 무지개 모양의 석문이며, 1962년 10월에는 팔작지붕의 누각을 세웠다.

낙산사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관음상은 6 ·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하고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靈穴寺)에서 옮겨 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에서 바라 본 동해바다 그리고 포구

홍련암유래 :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이 입산을 하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색깔이 파란 이상한 새를 보고 이를 쫓아갔다. 그러자 새는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의상은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석굴 앞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나체로 정좌하여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7일 7야를 보내자 깊은 바다 속에서 홍련(붉은 빛깔의 연꽃)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의상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기원하니 만사가 뜻대로 성취되어 무상대도를 얻었으므로 이곳에 홍련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5. 강릉경포대(鏡浦臺)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28주(柱)의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樓臺)로, 강릉 오죽헌(烏竹軒)에 있던 율곡(栗谷)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하여 걸었다.

경포호 / 호반 서쪽의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경포대는 예로부터 경포호를 배경으로 한 관동8경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경포호는 호수 주위의 오래 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유명하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海岸沙洲)는경포대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1326년(충숙왕 13)에 안무사(按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으며, 1508년(중종 3)에 부사(府使) 한급(韓汲)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호

경포대를 중심으로 8경이 있는데, 녹두일출(菉荳日出) ·죽도명월(竹島明月) ·강문어화(江門漁火) ·초당취연(草堂炊煙) ·홍장야우(紅粧夜雨) ·증봉낙조(甑峯落照) ·환선취적(喚仙吹) ·한사모종(寒寺暮鍾) 등을 말한다.

 

6. 삼척 죽서루(竹西樓)

關東第一樓(관동제1루)라는 현판이 말해주듯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누각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있으며,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는데, 그 후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구기(舊基)에 의거하여 중창(重創)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좌우 양단에 1칸씩을 늘린 것 같고, 그 부분만은 공포(拱包)의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의 건물의 측면 외부에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누각이 전에는 맞배지붕 건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포는 주두(柱頭) 뒤의 두공(頭工)으로써 대들보를 받도록 한 후 그 보머리가 그대로 길게 나와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직접 받고 있다.

제일 밑에 있는 첨차(遮)는 기둥머리에 꽂혀 있는데, 이는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에서 볼 수있는 수법이다. 그러나 그 첨차의 형태는 오히려 다포(多包)집 계통의 것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조선 초기의 건축이지만 몇 번에 걸친 수리 때문에 원형이 손상된 부분이 많다.

  

7. 울진 망양정(望洋亭) 

오랜세월 풍우로 인해 낡은 것을 1957년 울진군, 울진교육청이 국·도비 보조금과 뜻있는 지역인사들의 도움으로 1959년 9월에 중건 낙성한 것을 1979년11월에 군에서 보수 정화한 바 있고, 1994년 9월에 사업비 9천1백20만원을 들여 재보수 하였다.

망양정은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져 있으며, 그 경치가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가는 곳이라하여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의 편액을 하사하였다 하며, 숙종과 정조가 친히 지은 어제시와 정추(鄭樞)의 망양정시, 정철(鄭澈)의 관동별곡초, 채수(蔡壽])의 망양정기 등의 글이 전해오고 있다.

망양정 아래 포구에는 군이 1985년에 개설한 망양 해수욕장이 있고 인근에 천연기념물 제155호인 천연동굴 성류굴이 있다. 울진군 홈페이지

 

 

  8. 평해 월송정(越松亭)

신라시대의 화랑들(永 ·述 ·南石 ·安祥)이 이 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였다는 정자이다.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로, ‘月松亭’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鄕人)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월송정에서 바라보는 바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의 휘호로 되어 있다.

/ 자료 - 네이버백과사전, 네이버 지식iN, 울진군 홈페이지, 네이버블로그 'bird306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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