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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양둘러보기 안양팔경

by 구석구석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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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안양의 자랑거리 49선'은 ▲안양8경 ▲자연환경 ▲문화유산 ▲문화체육분야 ▲산업경제분야 ▲조형·건축물분야 ▲안양시 우수시책 등 7개 분야에서 선정된 이야기가 있는 안양의 유무형 자산들이다. 이에 안양시내 곳곳에 있는 49가지 이야기를 알아본다.

아름다우면서도 안양을 상징할 수 있는 8곳이 「안양8경」으로 선정됐다. 안양시는 관광·건축·환경분야의 전문가와 교수, 사진작가 등으로 안양8경 선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안양8경」선정을 추진해 왔으며, 시민공모를 통해 620여명의 의견을 접수받기도 했다. 시민의견을 토대로 여섯차례에 걸친 심의위원회의 심도있는 논의 끝에 자연미와 인공미, 문화유적지를 중심으로 안양의 상징성과 역사성, 대표성이 고려돼 최종 확정됐다.

 

삼막천 만안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38호로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260번지 성혜병원 앞에 위치한 이 다리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화산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한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노량진, 과천, 수원을 거치는 것이 빠른 길이었으나, 과천 남태령고개를 넘는 등 험난한 고개를 넘어가는(그 로변에 대왕과 원한이 있는 김약로의 묘가 있으므로 불길하다 하여)등 노정이 바뀌어 시흥, 수원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 다리를 축조 한 것이다. 

정조가 만안교를 지난것은 7번째 능행부터이며 축조공사에는 당시 경기관찰사를 서유방을 중심으로 온백성의 힘을 모아 축조한 것으로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홍예수문과 그위에 화강암판석과 장대석을 깔아 축조한 것이다. 원래는 현 위치로부터 남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으로 1980년 8월에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만안교 다리밟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삼막사

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 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도문화재자료60호로 석수동 산 10-1번지 삼막사경내에 위치한 명부전은 조선 고종 17년(1880) 건립되었고 1975년 중수되었다. 기둥위에 결구된 공포는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조선조 말기의 일반적인 주심포계형식이며 3량가구에 맞배지붕으로 되었는데 내부에는 우물천정을 설치하였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위시하여 명부의 10대왕을 모신곳 으로 이들 명부의 왕을 모신곳이라 하여 명왕전이라고도 한다.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으며,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남근과 여근의 거리는 2m이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의 높이는 1.1m이다. 속전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한다.

 

 망해암 (望海庵)

망해암은 동안구 비산동 산19번지에 위치한 전통사찰로서, 봉은사말사지에 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조선 순조 3년(1803)에 정조 대왕의 모친인 홍대비께서 중건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가 탁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 시가지와 서해 일몰을 감상 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안양8경중 제1경인 망해암의 노을

서해 너머로 붉게 물들어 가고 갈길을 재촉하는 도심의 차 소리와 어우러져 회상속에 빠져들게 하는곳, 반짝임을 잃은 붉은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재빨리 날아가는 산새와 함께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낮과 밤의 공존을 숙연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 낙조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흠씬 느끼게 하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 서해의 붉은 바다와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린 안양시내를 바라보는 야경은 다정한 사람과 손잡고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망해암에서 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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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경기인천교구 3.1절 산상기도를 올리는 안양 망해암과 대종사의 발자취

 

망해암은 원불교 경기인천교구의 산상기도터이며 안양8경중 제1경으로 산행과 더불어 안양시내를 조망하기에 더 없는 곳이다.

경성출장소 창립주중 한 사람인 김낙원교도가 열반하자 경성회원으로서는 최초 열반인이 되므로 소태산 대종사께서 신정예법에 의한 치상절차를 지도하기 위해 원기 15년 음6월 20일 상경하였다. 치상절차를 마친 소태산 대종사는 여자들만 살고 있는 경성출장소인 창신동회관의 울타리가 허술하여 동네아이들이 동산으로 무상 출입하고 도둑의 위험이 있어 걱정이었다.

 

이를 본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8월 27일부터 노진허와 김영신을 대리고 직접 목재와 철주 및 소용물품을 구입하고 사람을 구해 바위에 구멍을 뜷고 목재로 기둥을 세워 찬자로 담을 만들어 인부들과 5일간의 공사를 미친 후 다음날인 8월13일 소창차 안양 망해암을 가기 위해 경성역에서 9시차로 출발하였다.

 

정황으로 보아 몇 일 동안 머무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튿날 창신동출장소로 돌아왔다.

 

망해암을 어떤 인연으로가 무슨 사정으로 다음날 돌아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망해암은 1922년 화재로 전소되어 겨우 법당과 요사를 신출한 상태여서 일반인이 몇 일을 머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망해암에서 돌아온 다음날 익산 본관으로 귀관하였다.

 

망해암은 경기도 안양 관악산에 있는 암자로 665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망해암이라 했다. 1922년 화재로 전소되어 소태산 대종사가 망해암을 찾은 원기15년(1930)에는 법당과 요사채만이 신축되어 암자가 어수선한 상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암자는 한국전쟁으로 암자가 소실되어 소태산 대종사께서 망해암을 찾았을 때의 모습을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는 용화전 안에 모셔진 미륵존불만이 있다. 망해암 중심건물인 용화전에 모신 석조 미륵불은 원효대사가 망해암을 창건하고 석조 미륵불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옷자락선, 균형감각, 의복의 차림등으로 볼때 고려 초 미륵불로 추정된다.

안양9경중 하나인 망해암의 일몰

 

망해암에는 조선 세종 때의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세종 때 삼남지방에서 한양까지 조세를 운반하는 여러 척의 배들이 곡물을 가득 싣고 인천 월미도 부근을 지나가다가 심한 풍랑으로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다. 사공들이 당황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뱃머리에 한 승려가 나타나서 사공들을 진정시키고 인도하여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풍랑이 잠잠해진 뒤 한 사공이 승려가 살고 있는 절이 어디인지를 묻자 '관악산 망해암에 있다'고 함란 뒤 홀연히 사라졌다. 사공들이 한양에 도착하여 은혜를 갚기 위해 망해암을 찾았으나 그와 같은 승려는 살지 앟고 용모가 아주 닮은 부처님이 법당 안에 봉안되어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의 자비신력으로 구원받았음을 깨닫고 나라에 상소를 올려 이 사실을 알렸다. 이를 가상히 여긴 세종은 매년 한 섬씩 공양미를 이 절의 불전에 올리도록 하였다. 이일이 있은 후 4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중앙공원

36,000평의 공간에 각종 조경수와 편의시설을 비롯하여 다목적운동장 등 체육시설을 구비하여, 특히 4계절 테마(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를 부여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의 정서함양과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심공원의 미래상을 조명하여 10월 오픈을 목표로 조성중인 공원 내 수경시설은 207M의 계류와 다양한 형태의 분수시설(상징분수, 스크린분수, 터널분수, 바닥분수)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도심 속에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더 청량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주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그늘, 파고라, 산책로는 녹음 및 그늘을 제공하며 야간에 수경시설의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할 것이다. 또한, 공원과 연계하여 시민들의 동적인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인라인 스케이트장, X-게임장, 차 없는 거리가 있다. 

차 없는 거리는 토요일 오후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알뜰 벼룩시장의 문화 공간과 ,가족 연인끼리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전거 도로 및 자신의 솜씨를 뽐내는 인 라인 매니아의 체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우레탄으로 조성된 1000평의 전용 인 라인 스케이트장과 X-게임장은 가족 단위 및 청소년들의 생활 체육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인근시의 주민들도 즐겨 찾고 있다. 

 

수리산의 최경환성지

최경환은 (프란치스코 1805-1839)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으로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안양9동)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 신앙을 전파하던 중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그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 압송되었다.이들은 배교(背敎) 하라는 고문과 회유 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그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다.

부인 이성례도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 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에 의해 1984년 5월6일 성인 반열에 올랐다. 수리산 성지는 2000년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다.

수리산 최경환 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며 전국 각지에서 연중 30,000여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양예술공원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명칭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으며, 안양의 명물로 이름을 떨쳤던 포도가 오가는 이의 미각을 돋우어 주던 곳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행락객의 꾸준한 증가와 계곡주변에 무허가 주택과 음식점 등이 무질서하게 형성되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열악한 시설과 낙후된 환경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유원지라는 명맥만 유지해 왔다.이러한 안양유원지를 국제적인 명소로 만들어 옛 명성을 되찾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여 택지조성, 도로, 상하수도, 하천장비 등 기반시설정비와 노후불량 건물을 철거하고 주택을 새로 지어 주변환경을 정비하는 한편, 유원지 상류에 소형 댐을 만들어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또한 인공폭포, 야외무대, 전시관을 비롯해 광장, 산책로, 조명시설 등을 설치하였으며, 공원조성사업과 연계하여 국제적 수준의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추진 전망대, 1평정보센터, 하늘다락방, 물고기눈물분수 등 유원지 곳곳에 국내외 유명작가의 예술작품 52점을 설치하고 안양유원지 명칭을 안양예술공원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안양예술공원 주변에는 울창한 숲 사이로 잘 발달된 여러 등산로가 있어 수도권 시민들의 등산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안양사, 염불암 등 전통사찰과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당간지주를 비롯해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중초사지 3층 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등이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병목안 산림욕장

병목안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 초입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리워진 안양 9동의 명칭이다.계곡이 길고 경치가 수려하며 맑은 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잇다. 병목안을 거슬러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산이 수리산으로 해발 489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X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여러 산행 코스를 이루 고 있다.

수리산 중에는 산세가 관머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관모봉이 있다.

관모봉에서 바라보는 안양 시가지는 넓은 벌판을 보는 것 같이 크고 작은 빌딩들과 도로가 어우러져 안양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리산에는 시에서 잘 꾸며 놓은 삼림욕장이 있다. 시에서 설치한 1, 2, 3, 전망대는 장소별로 각기 조망이 달라 산행의 즐거움을 더 해준다 특히 제 1, 2, 전망대의 목재 전망 데크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발 지압장 그리고 연장 25m의 출렁 다리와 임간 교실 등이 지난해 6월 시에서 설치 한 이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백영 약수터등 10여개의 약수터는 시민에게 맑은 약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병목안을 상징 해주면서도 수리산을 징표이기도 한 병모양의 석탑! 양쪽에 조화롭게 병 모양으로 쌓아올린 탑은 주변의 쓸모없는 돌 무더기들을 이용해서 자연의 조화와 인공의 미를 살린 수리산 삼림욕장의 명물이며 이정표 이기도 하다.

석탑이 상징하듯 백영 약수터 오르막길에는 돌무더기 곳 곳 마다 정성을 쌓아올린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있다. 시민 휴식처로서의 수리산은 계절마다 독특한 특성과 삼림욕의 최적지로서 손색이 없으며 아이들과 함께 산행 중 가장 상징 깊게 화면에 남는 곳은 바로 혼신을 다해 정성껏 쌓아올린 석탑이 될 것이다.

 

안양1번가

 

재래 상권인 안양 시장이 1926년 이곳에 개설되어 상권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1980년도에는 먹거리 옷가게 유흥주점이 주류를 이루었던 곳이 1990년대  젊은 취향의 캐쥬얼 스타일의 의류와 내셔널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 하였다.

2000년 이후 컴퓨터 통신 시네마 등 쇼핑과 문화가 잘 융화 된 거리로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상권을 형성하여 안양최대의 번화가로 부상  하였다. 안양의 금융 교통 상권을 태동시킨 안양 1 번 가는 지역 발전을 일어 킨 상징적 의미에서 "안양 1 번 가"로 부르게 되었고 시에서는 1998년 상가 주변 길을 "안양 1 번가 길" 로 명칭을 부여했다. 

1996년부터 매년 10월에 젊음의 도시 패션의 거리 안양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번가 거리 대축제가 열려 시민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함께 자유와 멋과 낭만을 느끼고 체험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 자연환경

 

▲학의천(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 다양한 곤충과 물고기, 새가 날아드는 살아 있는 생태하천으로 산책이나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자연학습의 장과 문화적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2007년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돼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산책로'로 인정 받았다.

▲석수체육공원= 쓰레기 매립지를 활용해 조성한 곳으로 공원 내에 공인 야구장을 비롯, 축구장·인라인롤러장·농구장(2면)·배드민턴장(8면)·족구장·풋살·배구장 등의 운동 시설과 차량 240대를 수용할 수 있다.

▲병목안 시민공원= 수리산 자락에 자리하고, 1930년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용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 부지에 조성됐다. 공원 내에는 높이 65m, 폭 95m인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폭포와 체력단련장이 마련돼 있다. 인접한 수리산 산림욕장과도 연계돼 있다.

 

#문화유산

 

▲중초사지 당간지주= 절에서는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고 중생을 계도하기 위해 절의 입구에 두개의 돌기둥 사이로 깃대를 세우는데 깃대에 묶는 깃발을 '당'이라 부른다. 이때 깃발을 세우는 기둥을 '당간'이라 부르며, 이를 고정시키는 지주를 '당간지주'라 부른다. 중초사지 당간지주 바깥쪽에 새겨진 글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원년(서기 826년)에 채석해 다음해인 827년 2월 30일에 완공된 것으로서 연대가 분명한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석수동 마애종= 현존하는 마애종으로는 유일한 문화재로 매우 귀중한 자료다. 스님이 매달아 놓은 종을 치고 있는 모습을 거대한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마애종은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양사 귀부= 안양사 대웅전 앞에 있으며, 비신과 이수는 없어지고 귀부만이 남아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어떤 농부가 비신을 잘라 숫돌을 만들어 팔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가족이 멸족 됐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삼막사 삼층석탑= 삼막사 경내 육관음전 옆 우측의 축대 자연석 위에 세워져 있다. 고려 고종 19년(1232년) 삼막사의 승도인 김윤후가 몽고의 장군 살리타이를 용인 처인성 전투에서 화살로 쏘아 죽인 후, 싸움에 이긴 것을 축하하는 승전탑이라 전해지며 높이는 255㎝이다.

▲삼막사 마애삼존불상= 삼막사 경내 칠성각의 암벽에 높이 약200㎝, 너비 약250㎝, 깊이 약13㎝의 감실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한 치성광삼존불로 조선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이다. 얼굴이나 상체 부분이 생동감이 넘쳐 조선 불상으로는 파격적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아래 '건륭 28년'이라는 문자가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양시민의 소리 북(임선빈)=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0호인 임선빈 장인이 직접 제작, 1997년 11월27일 안양시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안양시청에 보관돼 있다. 북통의 길이 220㎝, 울림판 240㎝의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옛 서이면사무소= 1917년부터 1949년까지 32년간 관청 건물로 사용됐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행정사 및 문화적 가치와 함께 관청으로는 안양의 유일한 전통 한옥 목조건물이며, 근세 역사를 정립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문화체육

▲안양시민축제= 안양시민축제는 시 승격(1973년7월1일) 기념일에 시민체육대회 형식으로 열렸으나, 2000년부터 각계 각층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축제추진위원회가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매년 10월초 3일간에 걸쳐 메인마당·댄스마당·공연마당·어울마당·풍물마당·예술마당 등 6개 테마로 나뉘어져 운영되고, 놀거리·볼거리·먹거리·살거리 등이 풍성한 한마당 잔치로 펼쳐지고 있다.

▲평촌아트홀= 공연장과 전시공간 외에, 향토사료들이 전시된 안양역사관 등을 갖추고 있다.

공연장은 오케스트라·합창·실내악·독주회 등의 클래식 공연과 대중음악 콘서트, 소규모 뮤지컬과 연극 공연이 가능한 공간으로 음향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전문 콘서트홀이다.

▲안양체육관= 총 6천690석, 최첨단 디지털 영상시설, 자체 중계시설 등 첨단기술과 인간공학적 3차원 설계를 자랑하는 초현대적 시설, 안양시 연고 KT&G 프로농구단를 비롯한 배구, 핸드볼 등의 경기가 열리며, 체육관 옆 실내빙상장은 지하 3층, 지하 1층 규모에 1천284석의 관람석을 갖추고 있다. 안양시에 연고를 두고 있는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팀의 홈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업경제

▲안양벤처밸리= 2000년 11월 명학역~범계역~평촌역~인덕원역 일원 약3㎢에 걸쳐 조성됐다.

IT산업을 중심으로 1천여개의 벤처중소기업과 안양지식산업센터, 동안벤처센터와 안양과학대학벤처센터, 두산벤처다임 등의 지원 시설이 입주해 있다.

▲안양포도= 1960년대에 재배면적이 90㏊에 이르러 면적은 물론 맛도 전국 제일의 포도로 명성을 얻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는 등 '안양하면 포도'를 떠올릴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안양 포도는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고 현재는 관악산 인근의 관양동과 비산동에서 6.9㏊가 재배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공인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지역명품으로 품질인증을 받아 옛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조형건축

▲알바로 시자 홀(전시관, 알바로 시자, 포루투갈)=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인 알바로 시자의 작품. 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어진 알바로 시자의 건축인 전시관은 어느 각도에서도 같은 형태로 보여지지 않는 독특한 공간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미술전시관으로 사용될 목적으로 지어져 많은 예술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안양 전망대(전시관, MVRDV, 네덜란드)= 삼성산의 등고선을 원뿔형으로 연장해 산 속에 '다시 솟은 산' 형태를 띠는 높이 15m, 램프 길이 146m의 작품이다. 전체 구조가 나선형으로 되어 있어 사방에서 각각 다른 전경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전망대 최상층에 올라가면 안양예술공원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티 하우스(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작)= 체계적인 도시 관리를 통해 아름다운 예술도시를 만들기 위해, 전국 최초로 '안양 아트시티 21'시책을 2002년부터 추진해 나가고 있다.

'안양 아트시티21'은 건축·조경·미술 등이 결합된 공공예술의 도입, 2005년 과거 수도권 휴양지로 각광 받던 안양유원지를 새롭게 정비,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영구 작품 52점을 설치하고, 2007년에 개최한 제2회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는 '전유·재생·전환'을 주제로 국내·외 유망작가 46명의 작품을 평촌 일대 공공장소등에 설치 전시, 이중 37명의 작품은 영구 설치, 시민들의 자산으로 보전·관리되고 있다.

/ 인천일보 이동화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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