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특무대 AISU(Air Intelligence Special Unit)
공군 첩보부대는 20특무전대 등으로 불려졌고 바로 이곳에서 북파공작원이 양성됐으며 특무전대는 북한지역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는 가장 강력한 북파공작을 하였기에 김신조 청와대습격사건때 보복을 공군에 맡겼다.
미 공군의 전투사령부에서는 항공정보부대(Air Intelligence Service·AIS)가 정보업무를 수행하는데, 미 극동공군에서는 항공정보전대(Air Intelligence Squadron)가 이 일을 한다(AIS는 지금도 있는 조직이다. 현재 오산에 있는 미 7공군은 극동공군의 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7공군에는 607항공정보전대가 나와 있다. 공군의 전대는 육군의 대대와 동급이다).
소련 전투기 비밀 캐기 위한 치밀한 공작
전선이 고착화될 무렵 극동공군은 서울 오류동에서 6006부대를 창설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지나는 오류역 뒤편의 야트막한 산 아래에는 평강교회가 들어선 넓은 부지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6006부대가 있던 곳이다.
6006부대의 책임자로는 대북공작 세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꼽히는 도널드 니콜라스가 임명되었다.
니콜라스는 미 육군 장교로 통신보안 분야의 일을 한 사람이다. 1945년 미군이 한국에 들어와 군정을 펼치자 그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수도경찰청에서 고문 역할을 하다 제대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터지자 보안 장교 활동을 한 경험을 살려 극동공군의 AIS에 문관으로 고용돼 6006부대를 이끌게 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인들은 영어보다 일어에 훨씬 더 익숙했다.
일어로 고양이(猫)를 ‘네코(ねこ)’라고 하는데, 당시 한국인의 귀에는 ‘니콜라스’가 ‘네코’에 가깝게 들렸다. 그리고 서양인은 고양이처럼 생겼다는 선입견이 있어 6006부대는 ‘네코 부대’로 불렸다. 이것이 전설적인 대북공작부대인 네코 부대란 이름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다.
한편 한국 공군은 6006부대와 같은 임무를 할 목적으로 20특무전대를 창설해 6006부대에 배속시켰다.
6·25전쟁 중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음속을 돌파하는 미그-15 전투기를 선보였다. 미그-15는 신의주 상공까지 침투한 미국의 B-29 폭격기를 12대나 격추하는 전과를 거뒀다. B-29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바 있는 ‘하늘의 요새’인데 미그-15한테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비상탈출한 조종사를 구해내고 미그-15의 비밀을 캐내는 일은 가장 화급한 과제가 되었으므로 극동공군은 대북 정보활동을 줄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니콜라스는 이용수씨(73) 등 8240부대에서 활약한 한국인 첩보요원들을 불러들여 조직을 강화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체결된 후로도 6006부대는 공작을 계속해 그해 9월23일 이용수씨가 참여한 대북공작부대의 노력으로 북한 공군 노금석 대위가 미그-15을 이끌고 한국으로 귀순케 하는 데 성공했다. 노대위가 귀순하는 즉시 미국은 미그-15와 노대위를 미국으로 데려가 초음속 비행의 비밀을 벗겨냈다.
휴전 후에는 항공기를 이용한 침투가 어려워지자 6006부대는 연평도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말도 등 서해 북방한계선 상의 섬을 기지로 대북공작을 펼쳤다. 미 공군이 이 지역을 10지구로 불렀는데, 이용수씨는 10지구의 부(副)대장 겸 말도 부대장을 맡았다. 이 시기 각 섬에 있던 6006부대 예하 공작부대는 선박을 이용해 많은 공작원을 북한에 투입했다.
1954년 9월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철수함으로서 6006부대가 사라지게 되자 한국 공군의 20특무전대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았다. 이런 이유로 서해상에 있던 많은 섬들이 공군 관할로 넘어왔는데 이중 하나가 실미도였던 것이다.
20특무전대는 대북정보활동을 하던 23정보대와 25첩보대, 그리고 국내에서 대공수사를 주로 하는 26특수수사대로 구성돼 있었다.
23정보대(제5382부대)는 '공군본부 정보국 제4과'에서 '공군본부 통신대 제3파견대'를 통합한 '진청대'(정보 통신대)가 제20특무전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되며 25첩보대(제5392부대)는 '공군본부 정보국 제3과 예하 분견대', '공군 특무대', '제90특무부대'를 거쳐 제20특무전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26수사대(제8263부대)는 '공군 방첩대'가 제20특무전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20특무전대의 수송기 6대가 동원된 집단 공수훈련으로 비무장이며 아무런 표식도 달지 않았다.
26수사대는 대공분야라고 하는 특수수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로 불렸는데, OSI의 명성이 커지다 보니 OSI를 공군의 대북정보부대로 잘못 안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20특무전대가 대북공작 임무를 떠맡으면서 26수사대는 오류동에서 여의도 비행장으로 옮겨갔다. 이로써 23정보대와 25첩보대만 남게 되자 20특무전대는 2325부대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325부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 대북공작부대를 유지하며 유사시 공군 작전에 필요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런 와중인 1968년 북한군의 대남공작부대인 124군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는 1·21사태가 일어났다. 그러자 가장 강력한 대북공작부대인 2325부대에 똑같은 방법으로 김일성이 거주하는 주석궁을 폭파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북한의 124군부대가 31명으로 편성되었으므로 김일성을 죽이러 갈 북파공작대도 31명으로 구성됐다.
실미도사건 이후에 2325부대는 6546부대로 바뀌었다.
실미도부대 209파견대 684교육대 (tistory.com)
2325부대는 과거 실미도에 이 공작대를 배치해 훈련시켰는데 이때 실미도 부대에게 부여된 명칭은 2325부대 209파견대였다. 1971년 8월23일 209파견대에서 훈련받던 에이전트(북파공작원)들은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 노량진까지 진출했다가 폭사했다. 그후 2325부대는 6546부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0년대 육·해·공군의 대북공작부대가 통합되면서 국군정보사령부로 출범했는데, 91년 국군정보사는 오류동에 있던 부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땅을 매각함으로써 지금은 평강교회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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