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능선따라 절경… 곳곳마다 눈꽃-상고대 반겨
'눈(雪)' 없는 겨울은 상상만으로도 을씨년스럽다. 마침 지난 연말연초 호남지방에는 폭설이 내렸다. 너무 쌓여 불편도 따랐지만 두터운 솜이불에 폭 싸여 있는 듯한 설경은 탐스러움 그 자체였다. 겨울 여정으로는 눈꽃(雪花) 기행을 빼놓을 수 없다. 추울수록 더 멋진 자태를 뽐내는 눈꽃은 한겨울에도 팔팔한 생기와 상서로운 기운을 전해줘 더 매력 있다.
국내 대표적 눈꽃 감상지로는 덕유산을 꼽을 수 있다. 이즈음 설천봉~향적봉(1614m)~중봉에 이르는 정상부에는 눈부신 자연의 신비가 펼쳐진다. 한 해를 시작하는 무렵 사방이 툭 트인 설산에 오르면 겨울의 낭만을 실컷 맛볼 수 있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닫힌 귀가 절로 열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순백의 캔버스에는 아름다운 새해 소망을 맘껏 그릴 수 있다.
▶ 설산에 피어난 자연의 신비 '눈꽃'
겨울 산행의 명소, 덕유산은 지금 눈꽃의 향연이 한창이다. 10월 말부터 4월 초까지 겨울이 머물다 가는 곳이지만 한겨울의 멋과 맛을 느끼기에는 1월이 제격이다.
1월 첫 주말(5일), 덕유산은 근래 최고의 자태를 뽐냈다. 큰 눈이 내린 직후 바람 한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은 금방이라도 잉크물이 뚝뚝 떨어질듯 파랬다. 탐스런 설화 사이로 펼쳐진 대간의 봉우리들 또한 운무 속 담채화를 그려놓은 듯 황홀경으로 다가왔다. 눈꽃 감상에는 최적의 날씨. 연중 2~3일에 불과하다는 행운을 만난 것이다.
최근 3일 밤낮을 내린 폭설 탓으로 덕유산 정상부 등산로에는 80cm 가까이 흰눈이 쌓였다. 하지만 줄지어 찾는 산행객으로 길은 자연스레 뚫렸다. 아이젠만 착용한다면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즐기기에 딱 좋을 만큼 눈길이 다져졌다.
덕유산의 대표적 눈꽃 트레킹코스인 설천봉(1520m)에서 정상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산길과 향적봉~중봉 사이 주목군락지에는 하얀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올라 환상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은 30분, 향적봉과 중봉은 20여분 거리로 가벼운 산행만으로도 눈꽃의 자태를 실컷 맛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눈꽃'은 설화(雪花), 상고대, 빙화(氷花) 등 세 종류로 나뉜다. 가장 흔한 게 설화다. 말 그대로 눈이 나무 가지에 쌓인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날리고, 햇살 아래 쉽게 녹는다. 상고대는 눈꽃과는 다르다. 일종의 서리다. 나뭇가지가 머금은 습기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얼거나, 구름이 스쳐가다가 얼어붙은 것이다. 결이 있고 단단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추운 날이 지속되면 키가 더 자란다. '빙화(氷花)'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 이른 아침에 흔히 볼 수 있다. 설화나 상고대가 녹아 흐르다가 기온이 급강하할 때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햇살을 받으면 수정처럼 영롱하다.
이즈음 덕유산 정상부에서는 그 자태가 일품이라는 설화와 상고대가 한창이다.
향적봉 대피소를 운영하는 박봉진 대장(50)은 "덕유산 눈꽃이야말로 국내 명산 중 최고"라며 그 이유를 들려준다.
일반적으로 지리산 등 국내 대부분의 산들은 동-서로 능선이 이어진다. 하지만 덕유산의 주능선은 반도의 중앙에 북-남으로 뻗어 내렸다. 때문에 겨울철 서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덕유산 능선에 부딪히며 수시로 구름층을 형성한다. 구름은 많은 눈을 뿌려대고, 능선을 흘러 다니며 주목과 고사목, 조릿대 등에 붙어 환상적인 상고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구름이 몰고 다니는 잦은 눈보라와 강풍은 시야를 가리기 일쑤다. 때문에 바람 한점 없이 맑은 날 설화를 대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박 대장은 맑은 날 덕유산의 눈꽃 감상 포인트로 두 곳을 추천한다.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남덕유 능선이 그 첫째다. 주목 상고대 사이 흰 눈을 이고 있는 부드러운 능선이 압권이다. 다음은 연무가 끼어 있는 오두산, 비계산 등 거창, 함양 방면 봉우리의 실루엣이다. 그 어떤 붓끝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천하의 절경이 펼쳐진다.
실제 향적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대간의 줄기는 눈꽃 못지않은 풍광이다. 멀리 가까이로 펼쳐진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구름위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가야산-황매산등 주변 산줄기들에 탄성이 절로 난다.
만일 눈이 내리지 않아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덕유산 정상부에서는 겨울철 나뭇가지에 맺힌 새하얀 상고대를 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덕유산 눈꽃 산행
덕유산을 오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무주 구천동 삼공매표소에서 백련사를 거쳐 주봉인 향적봉에 오르는 코스(9㎞)인데, 가장 일반적인 산행 루트다. 쉬엄쉬엄 오르면 4시간 정도 소요 되고, 눈꽃 감상 뒤 하산 길은 2~3시간이면 족하다.
매표소에서 백련사까지의 길은 완만한 트레킹 코스다. 비파담, 구월담 등 구천동 계곡의 설경이 산행코스를 따라 이어진다. 신라 고찰 백련사 108계단을 올라 사찰 오른편 등산로로 접어들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져 만만치 않다. 향적봉까지는 4㎞, 아이젠이 필수다. 8부 능선부터는 본격 상고대지역이 이어져 발품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낭만 있다. 주말이면 사전 예약이 필수다. 하산길이 부담스럽다면 설천봉까지 내려가 곤돌라를 타고 무주리조트 방향으로 직행할 수 있다.
눈꽃 산행의 또 다른 방법으로는 곤돌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눈 덮인 겨울철 아랫녘부터 덕유산을 오르기란 쉽지 않다. 무주리조트에서 운행하는 관광곤돌라(오전 9시~오후 4시30분)를 이용하면 누구라도 눈꽃 감상에 나설 수 있다. 15분 정도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내리는 순간부터 겨울비경이 이어진다.
::: 여행메모
▶ 가는 길◇ 자동차 : 서울~대전(경부고속도로)~대전 통영고속도로~무주 IC~무주리조트/ 무주 구천동 ◇기차: 서울역~영동역, 영동역 하차 시외버스~무주읍(30분 소요)/반디랜드(셔틀 30분 소요)
▶ 먹을거리
덕유산과 금강 상류가 굽이치는 청정 무주에서는 그야말로 웰빙푸드를 접할 수 있다. 구천동 쪽에서는 산채요리가 흔하고, 무주읍 내도리 강변에서는 민물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그중 메자, 꺽지, 피라미 등 천렵으로 건져낸 민물고기와 파, 깻잎, 찹쌀 등을 넣고 푹 끓여낸 어죽(5000원)이 최고의 별미로 통한다. 무주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강나루 회관(063-324-2898)이 곧잘 한다. 이 집에서는 시래기를 듬뿍 넣고 매콤하게 끓여낸 쏘가리 매운탕(4만~5만원)도 별미다.
▶ 숙박
덕유산 눈꽃기행을 제대로 하려면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에서 하룻밤 묵는 게 좋다. 하지만 수용인원이 40명으로 사전예약이 필수다.
▶ 케이블카를 타고 눈꽃 감상
눈 구경에 좋은 때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눈꽃 감상은 겨울 등반을 거쳐야 한다. 이럴 때 손쉬운 방법이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남녀노소가 편안하게 눈 덮인 산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강원도 설악산, 전북 무주 덕유산, 완주 대둔산, 정읍 내장산, 전남 해남 두륜산 등이 대표적 코스이다.
무주리조트의 정상부가 향적봉인데, 향적봉이 바로 눈앞으로 바라다보이는 설천봉(해발 1,520m)까지는 관광곤돌라를 타고 누구든 쉽게 오를 수 있다. 이 곤돌라는 국내 최고 높이까지 오르고, 그 길이도 2.6k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길다. 곤돌라 종점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다. 구름을 뚫고 올라본 1,614m 향적봉 정상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산상의 설경과 맑은 날 적상산 마이산 가야산 지리산 계룡산 대둔산을 한 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는 환상적인 조망은 한 겨울의 큰 축복이기도 하다.
▶ 눈꽃 산행 주의사항
눈꽃 트레킹은 겨울산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지만 위험도 따른다. 눈이 많이 온 뒤 맑은 날을 골라 떠나야 제대로 눈꽃을 감상할 수 있다. 평소 산행 경험이 있는 산으로, 여럿이 떠나는 게 좋다. 자동차 바퀴 체인과 아이젠은 필수다. 또 두꺼운 방한복에 기능성 등산복, 등산화, 모자와 장갑을 준비한다. 특히 사진 촬영을 원한다면 충분한 배터리가 필요하다. 추운 날씨에 배터리가 금방 닳기 때문이다.
스포츠조선 글ㆍ사진 김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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