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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함양 대봉산 개관산 대봉휴양밸리

by 구석구석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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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은 산(山)의 고장입니다. 남쪽은 지리산이 이끄는 거대한 산군(山群)이 있고, 북쪽에는 남덕유산의 지맥을 이어받은 산의 무리가 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함양 땅에서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산을 헤아려 보니 자그마치 서른네 개나 됩니다. 웬만한 산의 기세로는 함양에서 명함조차 못 내미는 것이지요.

함양 땅에서 해발 1000m가 넘는 두 개의 산을 골랐습니다. 하나는 대봉산. 새로 놓인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편안히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다른 하나는 황석산. 정상에 야수의 이빨처럼 생긴 암봉이 늘어선 산입니다. 길든 산 VS 길들지 않은 산. 그리고 그 발치로 흐르는 차고 맑은 계곡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가을 단풍 위를 지나가는 함양대봉산휴양밸리 모노레일과 집라인이 단풍철을 맞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출처 : 투어코리아

# 잘 길든 산…대봉산

대봉산을 두고 함양사람들은 ‘함양 뒷산’이라 부른다. 함양사람들이 그리 부르는 걸 들으면 고만고만한 ‘동네 산’처럼 느껴지지만, 대봉산의 해발고도는 1246m다. 1000m급이 훨씬 넘는 산을 ‘동네 뒷산’으로 여기는 정도니,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함양의 산이 얼마나 높고 많은지 말이다.


대봉산은, 실은 근래 개명한 이름이다. 본래의 이름은 ‘괘관산(掛冠山)’이었다. ‘걸 괘(掛)’에 ‘갓 관(冠)’ 자를 쓰니 ‘갓을 걸었다’는 뜻이다. 천지개벽 때 산 정상에 갓을 걸어놓을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갓을 걸었다는 의미를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런 해석 뒤에는 함양에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일제가 그렇게 이름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지리산과 백두대간 고산준봉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최장 3.93km 대봉모노레일과 자유비행방식 세계최장 3.27km, 최대 시속 120km 대봉집라인을 타고 생애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출처 : 투어코리아 - No.1 여행·축제 뉴스(http://www.tournews21.com)

본래 ‘괘관’이란 중국 후한기에 나오는 고사성어. 후한시대에 봉맹이란 이가 있었다. 국정을 농단하던 권력자가 이를 말리는 자기 아들까지 죽이자 봉맹은 관직을 던지고 옷과 갓을 풀어 성문에 걸어두고 가족과 함께 나라를 떠났다. 자리보전을 하며 안온한 삶을 유지하기보다는 도리와 지조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떠난 것이다. 그러니 괘관이란 탈락이나 낙오, 혹은 은퇴가 아니라, 지조와 은거의 뜻으로 새겨진 것이었다.

산 이름에 새겨진 ‘물러난다’라는 의미가 못마땅했을까, 아니면 그 이름 때문에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함양군은 지난 2009년 괘관이란 산 이름이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지명이라며 중앙지명위원회에 개명을 요청했고, 승인 고시를 거쳐 결국 산 이름을 ‘큰 봉황’이란 뜻의 대봉산(大鳳山)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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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동
야영장
대봉캠핑장

대봉산에는 ‘함양 대봉휴양밸리’가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된 산삼항노화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함양군이 큰맘 먹고 조성한 종합 휴양시설이다. 휴양밸리는 대봉스카이랜드와 대봉캠핑랜드, 두 개의 시설로 나뉜다. 대봉스카이랜드는 천왕봉을 끼고 모노레일과 집라인 시설을 갖췄고, 대봉캠핑랜드는 대봉산 정상 아래 계곡에 캠핑장과 숙소를 갖췄다.

/ 문화일보 2021 박경일전임기자 

 

# 모노레일 등산과 집라인 하산

 

함양 대봉휴양밸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설은 뭐니뭐니해도 대봉스카이랜드의 모노레일이다. 산 능선을 따라 레일을 놓고 모노레일 시범운행을 시작한 지는 1년도 더 됐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다 운행 안전점검 기간까지 더해져 개장이 미뤄지다가 지난 4월 말에야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대봉산 천왕봉의 해발고도는 1228m. 모노레일로 오르는 산 중에서 가장 높다.

함양의 대봉산 천왕봉 정상 직전의 가파른 구간을 오르고 있는 모노레일. 해발 1228m의 대봉산 천왕봉은 모노레일로 오를 수 있는 국내 최고 높이의 산이다. 천왕봉 정상에는 일대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에서 한 단 내려선 자리에 기이하게 생긴 소원바위가 있다.

이전까지 가장 높았던 문경의 단산 모노레일 정상(959m)보다 269m가 높다. 모노레일이 놓이는 산의 절대 조건은 ‘정상에서의 훌륭한 조망’이다. 대봉산 천왕봉 조망이 보여주는 압권은 남쪽으로 펼쳐지는 지리산 천왕봉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장터목, 세석평전, 벽소령, 형제봉,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능선 전체가 먹을 찍어 그린 것처럼 한눈에 다 들어온다.

대봉산 모노레일은 다른 지역의 모노레일과는 좀 다르다. 우선 레일이 왕복이 아니고 순환형이다.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가는 코스가 다르다.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봐야 느림보이긴 하지만, 경사구간에서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운행소음이 적고 승차감도 다른 모노레일에 비해 나은 편이다.

가장 큰 특징은 모노레일이 집라인과 결합했다는 것. 모노레일로 천왕봉 정상에 오른 뒤 거기서부터 집라인을 타고 양쪽 능선을 지그재그로 이동하며 산을 내려올 수 있도록 했다.

대봉산 모노레일은 그것만 타고 오르내리는 것보다 집라인과 함께 즐기는 게 열 배쯤 낫다.

모노레일이 닿는 천왕봉 정상에는 정상석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철제시설을 덧대 전망대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이 공간도 그리 넓은 건 아니다. 모노레일 운행에 따른 안전문제로 천왕봉 등산로를 닫아버려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도 없다. 그러니 전망대에서 그저 경관만 보고 있다가 내려가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집라인을 타고 스릴을 즐기며 내려가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고소공포증이 없고 담력이 뒷받침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아 참, 담력은 매표소 앞에서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집라인 이용요금은 4만6000원. 4인 가족이라면 20만 원에 육박한다.

대봉산 집라인의 전체 코스 길이는 3.27㎞에 이른다. 함양군은 ‘자유비행방식으로는 세계 최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3.27㎞라는 게 능선을 지그재그로 건너가는 다섯 개 집라인 코스를 모두 다 더한 길이다. 가장 짧은 이른바 ‘맛보기’ 구간이 첫 번째 코스로 150m 남짓, 가장 긴 건 4코스로 길이가 1150m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구간인 3코스와 4코스가 가장 아찔한데 이 구간에서 탑승자의 최고속도는 시속 120㎞에 달한다. 모노레일로, 집라인으로, 캠핑장으로 잘 길들인 산이 선사하는 짜릿함이다.

대봉산의 소원바위는 심마니들이 제단을 차려 지극정성으로 제를 올린 후 산삼을 채취하였다고 구전되어 오고 있으며, 한가지 소원을 간절히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황석산과 대봉산 사이, 풍류의 계곡

 

황석산과 대봉산 사이에는 화림동 계곡이 있다. 계곡의 여울과 소(沼)마다 정자를 세웠다고 해서 이른바 ‘팔담팔정(八潭八亭)’으로 불리는 곳이다.

벼슬을 내려놓고 물러앉은 이들이 은거한 채 이곳 정자에서 계곡의 정취를 즐겼을 것이니 대봉산의 옛 이름인 ‘괘관(掛冠)’과 썩 어울리는 공간이다. 여덟 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정자가 진짜 여덟이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지금 남아 있는 오랜 내력의 정자는 거연정과 군자정, 동호정, 그리고 농월정 이렇게 네 개다.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독창적인 자리에 앉아있는 게 거연정이다. 계곡의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자연석 암반에 섬처럼 정자가 들어서 있어 작은 다리로 물을 건너야 정자로 들어설 수 있다. 다리 아래로는 연못처럼 고요한 물이 담겨 있는데, 이 물을 일러 옛 선비들은 ‘방화수류천(訪花隨柳川)’이라 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거연정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자연과 함께 정자를 감상하는 맛이 훌륭하다. 질박하고 단아한 정자가 계곡과 바위 그리고 여윈 소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거연정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2㎞쯤 내려가면 물길을 끼고 동호정이 서 있다. 동호정은 경쾌하게 들어 올린 팔작지붕의 처마로 당당한 풍모를 뽐내는 정자다. 정자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란하던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린 공로를 인정받아 충신으로 추앙된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업고 달린’ 공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 계곡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소일했다.

 

/ 문화일보 2021 박경일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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