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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영광 진내리 최초불교도래지 숲쟁이 법성포단오제

by 구석구석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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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쟁이쪽에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맨위의 부용루부터 보면서 정문쪽으로 내려오는게 편하다. 

정문앞에서 가족여행 기념촬영

바다쪽으로는 존자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어 포구도 조망할 수 있고, 산과 언덕에 만들어진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의 주요 시설들도 바라볼 수 있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였는데, 그것은 아미타불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인도의 승려인 마라난타 존자가 불경 등을 가지고 동진에서 이곳 법성포 포구로 들어와 불법을 전했다는 것이다.  

불교도래지 전경

아무포라는 이름이 나중에 불법이 들어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을 가진 법성포로 바뀌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영광군에서는 이곳을 성역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간다라 유물관과 탑원, 부용루와 만다라 광장이 완성된 상태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사면대불상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직도 작업 중이다. 높이가 23.7m나 되는 사면대불상은 남방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다라 양식을 따르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변대불상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산기슭에 부용루가 만들어져 있다. 일종의 누각으로 부처님에 대한 기도와 참배공간으로 이용된다. 1층의 벽에는 부처님 전생의 인연과 현세의 일대기를 그린 조각이 23면에 걸쳐 붙어 있다. 2층은 스님들의 참선과 교학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행사시에는 바다를 조망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부용루에서는 과거 마라난타 존자가 들어왔을 그 뱃길을 가장 잘 내다볼 수 있다.  

간다라 유물관은 사면대불상, 부용루, 탑원과 함께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시설물이다. 이들은 모두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2006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들 시설물이 학술적인 고증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정체성에 약간의 문제는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유물관

하지만 간다라 유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기원후 2세기에서 6세기경 간다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이런 문제점들을 훌륭하게 보완해주고 있다. 유물관에는 불상, 불두, 부조 등 진품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간다라 불교 예술의 특징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유물관 건물도 간다라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마라난타 스님은 간다라에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쿠차와 돈황을 지나 장안에 도착했다. 이때 중국은 동진(東晉)의 효무제가 통치하고 있었다. 스님은 이곳에서 인도의 불교를 전파하고 후학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스님은 동쪽 절강성으로 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 마라난타 스님은 위태롭고 험난한 땅을 찾아 인연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해동고승전>은 적고 있다. 그는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 다시 절강성을 떠나 이곳 법성포에 이르렀고, 백제에 불교를 전해 준 최초의 스님이 되었다. 

간다라 불두/오마이뉴스

 다음 전시실에서는 간다라 지역의 불상과 6세기에 만들어진 소조불상 불두, 부도 등 불교 유물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간다라 지역 출토유물로 최근에 구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돌로 만든 석조불상 불두가 있다. 이 석조불상 불두에서 간다라 미술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물결모양의 머리는 위로 올려 묶었고(육계) 이마에는 백호가 양각되어 있다. 얼굴 표정도 이상적인 서양형에서 원만한 동양형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옆에 있는 불두들은 다른 표정과 다른 양식이어서 간다라 미술을 하나의 통일된 형식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부처님도 입상과 좌상이 있는데 형식과 표현 기법이 하나같이 다 독특하고 다양하다. 입상은 왕자 시절의 고타마같고, 좌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하는 모습 같다. 이들 입상과 좌상에는 정교한 옷주름 장식과 광배가 있어 불상이 예술적으로 한 차원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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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미술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 인도의 북서부 간다라 지역에서 번창했던 불교미술을 말한다. 

간다라 지방은 동서 교통로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쪽의 페르시아와 그리스, 동쪽의 인도와 중국 문화가 혼재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간다라 지방은 인더스강 상류로 현재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아프카니스탄의 카불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간다라 양식의 미술은 파르티아 왕국(B.C. 50-A.D. 75)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쿠샨왕조(1세기-5세기) 시대 절정을 이루었다. 카니시카왕(A.D. 128-151)은 페샤와르와 탁실라 지역을 중심으로 벵골만과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는 불교의 후원자로서 불교문화의 번성과 전파를 위해 노력했다. 당시 불교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에 전해졌고, 384년 마라난타 존자에 의해 이곳 법성포까지 들어오게 된다.  

간다라 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불상의 제작이다. 그때까지 부처를 상징하는 것은 보리수, 탑(Stupa), 법륜 등이었으나 간다라 지역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불상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불상은 불교의 상징이 되었고,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으로 눈이 깊고 코가 높으며 머리카락도 물결 모양이다.

/ 글 오마이뉴스 이상기

 

법성포에서 홍농으로 넘어가는 산기슭에 조성된 방풍림 겸 놀이터인 숲쟁이는 그 역사가 천년쯤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5월 단오제가 열리는데, 그 역사가 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숲쟁이는 2006년 한국의 10대 아름다운 숲에 선정되어 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수령이 10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200주 정도 자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20m 정도이고 나무의 둘레는 2m 내외다.

숲쟁이 느티나무

법성포에서 홍농으로 넘어가는 산기슭에 조성된 방풍림 겸 놀이터인 숲쟁이는 그 역사가 천년쯤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5월 단오제가 열리는데, 그 역사가 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숲쟁이는 2006년 한국의 10대 아름다운 숲에 선정되어 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현재 수령이 10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200주 정도 자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20m 정도이고 나무의 둘레는 2m 내외다.

이곳에 나무가 심어진 것은 1514년, 지금도 남아있는 법성진성(法聖鎭城)을 쌓을 때, 성을 따라 느티나무를 심어서 마을이 외적의 눈에 쉽게 띄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하연(49) 영광군청 관광관리 계장은 “영광굴비의 맛도 바로 숲쟁이숲 덕분”이라고 했다. 법성포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을 막아 겨울에는 찬바람에 푸석푸석해지지 않도록, 여름에는 뜨거운 바람에 썩지 않도록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방풍림(防風林)’ 역할도 해온 똑똑한 숲이라는 말이다. 

왼쪽숲쟁이숲 끝에 정자가 있는 곳까지 오르면 법성포구가 눈 아래 펼쳐진다. 정자를 지나 충혼탑(忠魂塔)까지 걸어 들어 가는 숲쟁이 숲길은 가을에는 조금 쓸쓸하고, 야생화가 만발하는 봄이 가장 예쁘단다. 

법성진성은 전라남도기념물 제205호로 남쪽으로 바다와 접한 구릉의 남사면에 있으며, 평면상 직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법성진성은 돌로 쌓은 석성으로, 동서 너비 약 200m, 잔존 최대높이 300㎝ 내외, 성벽의 너비 700㎝ 내외의 규모이다. 남벽이 모두 파괴되어 남북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서의 길이는 250m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동벽 75m, 북벽 250m, 서벽 125m, 남벽 10m로 총길이는 460m인데 밖으로 돌출된 치부분을 포함하면 더 길어진다. 성벽은 외벽을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안쪽으로는 잡석과 흙을 섞어 채워넣은 형태이다.

법성진성과 느티나무군락 / 한국관광공사

법성진성의 성벽은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동벽은 북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으며, 동벽과 북벽이 만나는 모서리부분은 광주이동통신 중계탑이 설치되면서 파괴되었다. 북벽은 대부분 흙으로 덮여 있는데, 북벽의 중간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지점에 반원형을 이루면서 돌출된 치(雉)가 설치되어 있다.

서벽은 남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벽의 중간지점에는 문터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고 이 문터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각각 치가 설치되어 있다. 성 안에서 출토된 기와류·자기류·토기류 등의 유물이 모두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인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사용된 성으로 추정된다. 

한편 성벽에는 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전라도 관내의 군현명과 쌓은 척(尺), 그리고 감관(監官)·도색(都色)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글에 나타난 내용으로 보아 인원 동원은 물론 성의 축조와 관련한 당시의 제도 등을 파악하는 데 좋은 자료로 판단된다. 법성진성은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성벽에 새겨진 글 등 조선시대 진성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음력 5월5일은 단오(端午)다. 우리나라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단오는 전국 곳곳에서 단오 차례를 올리고 그네뛰기, 씨름놀이, 가면무용 등의 민속행사가 행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단오시절 잊은 지 오래다. 영광 법성포와 동해안 강릉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 올 뿐….

조선 중기부터 4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법성포단오제는 칠산 앞바다로 산란을 위해 조기떼가 찾아들 때쯤 열렸다. 조기 어획고가 급증해 파시가 열리고 어부들의 손에는 돈다발이 쥐어지는 풍요로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축제도 한결 흥겨웠다.

법성포단오제는 사흘 동안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숲쟁이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숲쟁이공원은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뤄 운치를 더해 준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2호로 지정돼 있다. 주무대는 '숲으로 된 성(城)'을 의미하는 숲쟁이공원의 나무그늘에 설치된다. 그네 터와 씨름장도 거기에 마련된다.

법성포단오제는 첫날은 인의제로 시작된다. 인의제는 마을 당산과 산신에 제를 올리고 포구를 떠도는 억울한 원혼을 달래주는 의식. 인의제가 끝나면 문굿(오방돌기), 전국 연날리기대회, 당산제, 연등행진, 불꽃놀이가 뒤를 잇는다.

단오제 이틀째엔 한제와 전국국악경연대회 본선, 사생대회와 글짓기대회, 전국그네뛰기대회 예선, 세계민속예술공연 등이 준비된다. 창포를 이용한 머리감기와 쑥떡 및 엿치기 체험도 마련된다. 

셋쨋날에는 전국에서 가장 그네를 잘 타는 사람을 뽑는 전국그네뛰기대회 본선과 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 공연, 각설이와 중국기예단 공연 등 푸짐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창포 머리감기와 쑥떡치기 체험도 가능하다. 법성포단오제의 피날레는 용왕께 풍어를 비는 용왕제와 어민들이 한바탕 어우러지는 선유놀이로 장식된다. 어민들의 일터인 칠산어장이 '생산의 바다'가 아닌 '놀이의 바다'로 변하는 순간이다.

관광객들이 영광굴비를 직접 선별해서 엮고 염장을 해보는 굴비체험도 17,18일 해볼 수 있다. 상인들이 굴비를 내놓고 영광굴비의 참맛과 섶간 등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가르쳐 줘 흥미를 더한다. 

고려 예종때 이자겸이 영광으로 귀향온 후 임금께 진상하면서 "귀양살이 신세이기는 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깊은 의미로 '굴비'라 이름하였다 한다. 

법성포의 굴비백반은 20여 가지 반찬에 굴비구이 그리고 탕까지 아주 푸짐하다. 음식은 본고장에 가서 제철에 먹어야 맛이 있는 법인데 굴비의 고장에서 굴비의 제 맛을 볼 수 있다. 음식들이 나오는데 가짓수가 장난이 아니다. 대부분 생선요리 종류였지만 모두 다른 것들이었다. 식탁에 모두 벌여 놓은 다음에 또 들여온 음식들은 놓을 자리가 없어 먼저 놓은 음식 위에 포개어 놓기도 한다. 

영광의 칠산 앞바다에서 음력 3~4월에 잡은 조기를 이곳 법성포 포구로 이송한 다음 햇볕과 바람에 적당하게 건조시키면 최상품의 굴비가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옛날만큼 조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 다른 곳에서 잡은 조기도 이곳으로 가지고 와 가공하기도 한다. 보통 우리가 먹는 굴비는 보통 3만원 정도 하며 장대, 오가라고 불리는 고급 제품들은 6~10만원 정도 한다. 그러나 특대오가니 특왕오가니 하는 최고급 굴비 세트는 50~6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어민들의 한바탕 어우러짐으로 표출되는 선유놀이

칠산바다는 포구에서 백수해안도롤 따라 달리는 오른 편으로 펼쳐져 있다. 마침 썰물이어서 법성포로 들어오는 바닷길은 바닷물이 빠져 넓은 갯벌이 드러나 보인다. 그러고 보니 법성포는 육지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조기어장이라는 칠산바다. 매년 춘분 경부터 약 2달 동안 연평도로 북상하던 조기들이 이곳에서 산란을 하기 때문에 이 시기가 황금 조기어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칠산 바다라는 이름은 이곳 영광 법성포에서 대하 새우로 유명한 낙월도 가는 중간 지점에 일곱 개의 섬이 모여 있어서 근처 바다를 통칭하여 칠산 바다라 부른다. 또 영광 안마도에서 군산 임자도나 비안도에 이르는 바다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칠산 바다 해역은 굉장히 넓은 편이어서 속담에도 '칠산 바다처럼 큰 바다. 사람 마음이 칠산 바다처럼 넓어야 한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옛날에는 실제로 조기가 하도 많이 잡혀서 그물이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고도 전한다. 그래서 칠산 바다는 "물 반. 조기 반" "영광법성포에서는 개도 만 원짜리 돈을 물고 다닌다더라"는 우스갯소리와 "사흘 동안의 조기잡이로 일확천금을 하여 일평생을 잘 먹고 잘 산다"는 사흘칠산 이란 말이 떠돌기도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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