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질마재 제1 코스는 고인돌박물관~생태습지~원평마을로 8.8㎞에 이르는 ‘세계문화유산 고인돌길’이다.
1,680개. 고창에 잠들어 있는 고인돌이다. 이곳에서는 500년, 1,000년의 역사는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무려 3,000년. 의자만한 것부터 작은 집만 한 것까지, 고인돌들은 말없이 흘러간 시간을 내보인다.
길가의 바위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곳.
이곳의 바람은 미당을 키우고 소금을 익히며 사람들의 발길을 고창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고창 고인돌 질마재길은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빽빽하게 자리한 고창에서 100리 조금 넘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이다.
고인돌에 대해 부족하다 싶으면 이곳에서 기초 지식을 탄탄하게 쌓고 가야 가는 길이 즐겁다. 길가에서 문득문득 마주치는 고인돌과 아는 체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 됐다 싶으면 사람 보는 게 고인돌 보기 보다 힘들다는 고인돌유적지로 출발한다.
박물관에서 유적지가 훤히 보이지만 느긋하게 한가로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10분이 조금 넘는다.
한국판 왕들의 계곡은 산등성이부터 시작이다.
언덕에 발을 들이자 듬성듬성 놓인 고인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고인돌을 마주치면 바짝 놀라지만, 차차 엄청난 수의 고인돌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 시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하나 둘러보다간 이곳에서 지는 해를 맞이할 터, 산책하는 기분으로 언덕을 오른다.
탐방로를 따라 언덕을 돌고 돌며 풀숲에 앉은 고인돌을 본다. 3km 남짓되는 고인돌 탐방로 위로는 선들선들 바람이 분다. 이곳에서 원평마을로 난 길과 매산재를 지나는 길을 놓고 고민을 한다. 동양최대고인돌을 보려면 조금 더 걷더라도 매산재 길을 선택한다. 이길에는 동양최대고인돌 뿐만 아니라 생태연못과 생태습지가 있어,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오베이골 생태연못에는 어리연꽃, 수련, 노랑 꽃창포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란다. 쑥부쟁이와 억새밭 자생지이기도 한 습지식물의 보고, 오베이골 습지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가는 길로 물잔디, 네가리, 검정말, 왕버들나무 등 습지식물들이 반긴다. 습지식물의 생소한 모습이 신기하다. 식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어느새 운곡저수지가 나타난 것도 모른다. 저수지가 보이는 길은 호젓하다. 늘 바람이 먼저 지나가는 길이다. 저수지 위로 안개가 맺히는 날엔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듯 몽환적이다 텃새 날아가는 소리와 야생동물 발자국 소리만이 맴돈다.
길가로 동양최대 고인돌이 불쑥 나타난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풀이 우거졌어도 그 거대한 시간의 흔적은 흔들림이 없다. 거뭇거뭇한 표면은 비와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3,000년을 이어져 단단한 갑옷 마냥 반질하다. 운곡저수지는 여행자 옆을 마냥 따라온다. 용계리 청자도요지가 슬쩍 길옆으로 나란히 선다. 이곳은 고려 초기 청자를 빚어내던 곳. 고운 흙이 있고 바다가 지척이라 청자를 만들어 개성이나 중국으로 보내기에 좋은 위치이다. 지나치며 바라본 터만 봐도 얼마나 많은 도공이 청자를 만들고 부스며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이 된다.
전북은 지난 2015년부터 오는 2024년까지 10년 동안 1000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생태관광 육성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연 생태자원과 마을 인문자원을 두루 갖춘 지역을 지원해 관광명소로 키우는 사업입니다. 단순히 자연 생태를 보전해 매력 있는 관광지로 바꾸는 차원을 넘어 마을의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고,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토대까지 마련한다는 게 궁극의 목적입니다.
운곡습지는 30여 년 전 전남 영광에 들어선 핵발전소 용수 공급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마을의 묵은 논과 밭이 늪으로 천이(遷移)되며 원시의 숲을 이룬 곳이다. 수몰된 8개 마을 158가구의 집과 논과 밭이 습지가 됐다.
습지에는 나무 덱 탐방로가 놓여있다. 습지 한가운데로 뻗어있는 덱은 습지에서 1m가량 띄워 지어졌고, 바닥 나무판도 햇볕과 공기가 통하도록 작은 틈을 벌려놓았다. 덱의 폭은 80㎝로 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다. 난간의 높이도 허리춤을 넘어선다. 높은 난간과 좁은 덱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경관에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이곳의 매력은 충만한 생명력이다. 습지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잎을 다 떨군 채 하얗게 빛나는 은사시나무 군락이다. 겨울 추위가 매섭지 않아서인지 습지에는 아직 초록을 잃지 않은 식물들도 있었다. 고요한 습지의 숲에서 나무 둥치에 귀를 댔다. 겨울을 견디는 나무들의 심장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예전에 계단식 논이었던 전북 고창군 고창읍 운곡습지는 30년 이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복원됐다. 자연에 의한 습지 복원 사례로 보존 가치가 높아 2011년 국가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식물 376종, 곤충을 포함한 동물 488종 등 총 864종의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고 있고, 특히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 황새와 2급인 삵, 담비, 새호리기 등이 살고 있다.
운곡서원은 1766년(영조 42) 고창 모양 당산에 창건되었다. 김제(金濟)·김주(金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43년(헌종 9)에 자손이 세거하는 운곡으로 이건 하면서 주자를 모시게 되었다.
1868년(고종 8) 조령으로 사우가 훼철되었고 강당만 보존되어 오다가 1900년(광무 4) 사우가 복원되었으며 1981년 아산호 축조로 서원 주위에 거주하는 자손들은 이주하고 서원만 남아있으며 전북 고창군내 거주하는 네 분의 선생 후손들이 매년(음력) 3월 9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용계리 청자도요지를 지나 남으로 돌아선다. 운곡저수지를 둘러가는 길이라 물은 계속 여행자를 비춘다. 물그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원평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고인돌유적지에서 바로 왔으면 한참 전에 지나갔을 곳이지만, 대신 쌓인 시간만큼 묵직한 고인돌과 저수지를 끼고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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