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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순창 남산리 남산마을 귀래정 신말주

by 구석구석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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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읍에서 멀지 않은 남산마을 기슭에 정자 귀래정이 있다.

남산마을은 고령 신씨의 세거지. 세조 때 영의정 자리까지 오른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는 마을이다. 형 신숙주와 동생 신말주는 성향이 전혀 달랐다. 형이 세조의 왕권탈취에 협력하며 승승장구하는 등 권력욕을 드러낸 인물이었다면, 동생 신말주는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으며 자나 깨나 은퇴를 꿈꾸었던 인물이었다.

신말주는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 벼슬을 했지만, 벼슬을 받으면 극구 사양하다가 하는 수 없이 부임하게 되면 갖은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처가가 있는 순창에 내려가서 오랫동안 귀임지로 돌아가지 않아 파직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가 말년에 물러나 은거한 곳이 바로 귀래정이다. 그가 순창으로 낙향했을 때 가깝게 지내던 서거정이 정자를 지어주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인용해 ‘귀래(歸來)’를 이름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귀래정 아래는 사당과 고택의 사랑채와 안채, 서책을 보관하는 유장각, 강학건물인 충서당 등의 전통건축물들이 처마를 잇대고 마을을 이루듯 들어서 있다.

보슬비 속에서 남산마을과 고령 신씨 세거지를 둘러 본 뒤에 귀래정에 올랐다. 솔숲 한가운데 사방으로 마루를 두고 있는 한 칸짜리 정자는 적요했다. 정자 툇마루에 앉으니 비가 막 그친 뒤의 청아한 뻐꾸기 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그는 왜 권력을 버리고 끊임없이 돌아오고 싶어 했을까. 그 뜻이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 귀래정의 마루에 있으면 문득 번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을 알 수 있을 듯했다.

 

정자에서 내려오는 길에 돌비석에 새겨놓은, 서거정이 신말주에게 써 줬다는 글을 읽는다. “지금 벼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벼슬이 주가 되고 일정한 다른 업이 없는지라, 한번 그 봉록을 잃으면 돌아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 배회하며 살피다가 벼슬을 탐한다는 나무람과 봉록을 도둑질한다는 비방까지도 듣게 되니 애석한 일이다.” 그때도 누리던 자들의 관성 같은 욕망은 그러했던 모양이다.

 

 

/ 글 - 문화일보 2021 박경일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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